영혼의 시선 - 앙리 카르티에-브레송의 사진 에세이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지음, 권오룡 옮김 / 열화당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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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기술이라는 파괴적인 세이렌들과 권력의 탐욕, 그리고
새로운 예속상태를 유발하는 세계화에 휩쓸리고 이윤 추구의
중압감 아래 무너지고 있는 세계에서, 이 모든 것 너머에, 우정
과 사랑은 존재한다.
1998. 5. 15-(5)쪽

가장 가벼운 짐

-제라르 마세

앙리 카르티에-브레송은 가장 가벼운 짐만 들고
온갓 곳을 돌아다녔다.-8쪽

가장 가벼운 짐은 배움을 통해 습득되지는 않지만, 일단 우리가 그것을 이해하고 나면 어디나 지니고 다닐 수 있는 오랜 가르침이 된다. 이것 덕분에 앙리 카르티에-브레송은 인물로서의 자기 자신을 없앨 수 있었고, 순간을 더 잘 포착하기 위해 자신을 지움으로써 스냅사진에 의미를 부여했다. -9쪽

카르티에-브레송의 스타일은 그의 글, 즉 체험기나 설명문 또는 헌사에서 전부 생생히 다시 찾아볼 수 있다. 그의 글은 늘 간결한 예술작품, 거의 언제나 정곡을 찌르는 문장 감각(예컨대 요한-제바스티안 바흐의 「무반주 첼로 조곡」을 듣고 나서 즉석에서 발설한 "이 곡은 죽기 직전에 춤을 추기 위한 음악이다"라는 문장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과 같은) 덕분에 성공을 거두는 즉흥곡이다. 그의 글도 사진에서와 마찬가지로 결정적 순간에 대한 동일한 취향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물론 글에서는 수정이나 퇴고에 의해 작업을 망치는 경우를 줄일 수 있긴 하지만.
-10쪽

카르티에-브레송이 이 여분의 재능을 발견한 것은, 『결정적 순간』을 펴낸 잊을 수 없는 발행인인, 그에게 책의 예술을 보여준 테리아드의 권유로 이 책의 서문을 쓰게 된 덕분이었다. 그의 서문은 곧장 사진가들의 주요한 참고서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오늘날 더 폭넓은 방식으로, 다시 말해 별개의 완전한 시학으로 읽을 가치가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장 르누아르에 대한 생생한 반응들, 유머와 애정이 넘치는 사려 깊으면서도 정확한 추억담도 그렇고, 쿠바의 경우 그가 어느 누구보다 잘 볼 수 있었던, 어쨌거나 청탁받고 작업하는 많은 작가들보다 더 잘 볼 수 있었던 초기 카스트로 체제에 대한 선입견 없는 증언들도 읽고 또 읽어야 한다. -10-11쪽

카르티에-브레송은 먹으로 글을 쓰는데, 이는 아마도 먹으로 글을 쓰면 장황해지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팩스-글쓰기에서 이것은 사진에서의 라이카 카메라와 같은 것이다- 덕분에 장황하게 글을 쓰지 않는다. 그는 어떤 기계들이 그것이 가볍고 빠르기만 하다면, 즉 순간을 포착할 수 있게만 해준다면 싫어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확하게 겨냥한다는 것은 눈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때로는 숨죽이기를 요구하는 다른 사안이다. 그러나 앙리 카르팅0브레송이 자를 지니지 않은 기하학자임과 동시에 사격의 명수이기도 하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1996 -11쪽

영혼의 시선

사진은 기법상의 몇 가지 측면 - 이것은 나의 주된 관심사가 아니다 - 을 제외하면 그 기원부터 지금까지 변한 것이 없다.

사진은 쉬운 작업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 사진은, 사진을 찍는 사람들의 유일한 공통분모라고는 장비뿐인, 다양하고 모호한 작업이다. 이 기록 장칭서 나오는 것은 소비 세계의 경제적 제약, 갈수록 높아지는 긴장, 분별없는 생태학적 결과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달아나는 현실 앞에서 모든 능력을 집중해 그 숨결을 포착하는 것이다. 바로 그때 이미지의 포착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커다란 즐거움이다.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머리와 눈 그리고 마음을 동일한 조준선 위에 놓는 것이다.

나에게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다른 시각적 표현 수단들과 분리될 수 없는 이해 수단이다. 그것은 독창성을 입증하거나 확인시키는 방식이 아니라, 외침과 해방의 방식이다. 그것은 삶의 방식이다.
-15쪽

'조작'되거나 연출된 사진은 나와 관계가 없다. 내가 판단을 내리는 것은 오직 심리학이나 사회학의 차원에만 한정된다. 미리 배열된 사진을 만드는 사람들이 있고, 이미지를 찾아서 그것을 포착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에게는 카메라는 스케치북이자, 직관과 자생(自生)의 도구이며, 시각의 견지에서 묻고 동시에 결정하는 순간의 스승이다. 세상을 '의미'하기 위해서는, 파인더를 통해 잘라내는 것 안에 우리 자신이 포함되어 있다고 느껴야 한다. 이러한 태도는 집중, 정신훈련, 감수성, 기하학적 감각을 요구한다. 표현의 간결함은 수단의 엄청난 절약을 통해 획득된다. 무엇보다도 주제와 자지 자신을 존중하면서 사진을 찍어야 한다.

무정부주의는 윤리이다.

불교는 종교도 철학도 아니다. 불교는 자신의 정신을 다스려 조화에 이르고, 자비로써 다른 사람에게 조화를 베푸는 수단이다.

1976-16쪽

나의 열정Ma Passion은 사진 '자체'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잊어버리고 피사체의 정서와 형태의 아름다움을 찰나의 순간에 기록하는 가능성, 다시 말해서 보이는 것이 일깨우는 기하학을 향한 것이다.

사진 촬영은 내 스케치북의 하나다.

1994. 2. 8-19쪽

나는 라이카를 발견했다. 그것은 내 눈의 연장(延長)이 되어 한시도 곁을 떠나지 않았다. 마치 현장범을 체포하는 것처럼 길에서 생생한 사진들을 찍기 위해 나는 바짝 긴장한 채로 하루 종일 걸어 다니곤 했다. 무엇보다도 돌발하는 장면의 정수(精髓)를 단 하나의 이미지 속에 포착하고 싶었다. 기록사진을 만든다는 것, 다시 말해 여러 장의 사진으로 어떤 이야기를 들려 준다는 생각은 내게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훗날 동료 작가들의 작업과 사진잡지들을 살펴보고, 또 나 자신이 그 잡지들을 위해 일하게 되면서 비로소 기록사진 만드는 것을 조금씩 익히게 되었다.

여행할 줄 모르면서도 나는 많이 돌아다녔다. 나는 나라들간의 미묘한 차이를 느끼며 천천히 여행하기를 즐긴다. 일단 도착하면, 거의 언제나 나는 최대한 그 나라 식으로 생활해 보기 위해 그곳에 정착하고 싶어지기까지 한다. 나는 절대로 계속해서 세계 일주를 하는 여행자는 될 수 없을 것이다.
-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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