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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을 쫓는 아이 (개정판)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이미선 옮김 / 열림원 / 2008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율법학자가 어깨에 무거운 가방을 짊어지고 당나귀에 탄 이야기는 들어봤소?”
내가 물었다.
“아니요.”
“거리에서 누군가가 왜 가방을 당나귀 위에 올려놓지 않느냐고 물었소. 그러자 그가 ‘그건 참 잔인한 일이오. 이 불쌍한 당나귀한테는 나만으로도 충분히 무거울 거요’ 라고 대답했다는 거요. (398p.)
흐흐흐. 이 농담 들어 본 적 있다. 원조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온 거였군. 나는 농담을 좋아한다. 하지만 나는 농담을 잘 못한다. 그걸 잘 하는 사람들을 보면 대개 머리가 좋고 순발력이 좋다. 나는 순발력이 떨어진다. 꼭 한 박자 늦게 터지거든. 그게 참 환장하는 거거든. 나 혼자만 킥킥대다 마는 거지 뭐.
『연을 쫓는 아이』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장장 556쪽에 이르는 장편소설을 한 번도 지루하다는 느낌 없이 재미있게! 아프가니스탄이라는 나라에 대해서 아는 바도 별로 없고, ‘하자라인’이니 ‘파쉬툰인’이니 ‘수니파’, ‘시아파’ 그런 용어가 생소했지만 그게 독서에 방해가 되지는 않았다. 아 왜 있잖아 그런 거. 정확한 개념은 없지만서두 그래두 뉴스에서든 신문에서든 아니면 잘난 척 하기 좋아하는 직장 상사를 통해서든 어쨌든 들어는 본 거! 생판 처음 들어보는 말이라 해도 별로 문제될 건 없다. 소설을 읽으면서 자연스레 무슨 뜻인지 알아가는 것도 나쁠 거 없으니까.
책을 다 읽고 나니, 책 소개 말 가운데, “그는 과감하게 우리 마음 속에 있는 모든 현을 잡아당겨 소리를 내준다.”-타임즈. 라는 문장에 공감이 된다. 여기에 한마디 더 붙이자면, “그는 과감하게 우리 마음 속에 있는 모든 현을 잡아당겨 소리를 내준다. 아무 의미 없는 ‘음향’이 아닌, 고운 멜로디, 아름다운 화음, 신나는 리듬까지 두루 갖춘 멋진 연주로!
내 생각일 뿐이지만, 이 책의 재미는 무엇보다도 개성 넘치는 등장인물을 보여주는 방법에서 시작된다. 주인공 ‘아미르’, 아미르의 아버지 ‘바바’, 바바의 친구 ‘라힘 칸’, 아미르의 하인(?) 하산, 하산의 아버지 알리, 하산의 아들 소랍, 아미르의 아내 소라야, 소라야의 어머니 칼라 자밀라, 소라야의 아버지 타헤리 장군… 이렇게 이름을 쭉 나열했을 뿐인데 지금 내 머리 속에는 이 사람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소설 속 등장인물이 이렇게 구체적인 모습을 하고 그려지는 경우는 별로 없었다. 나는 단지 책을 읽었을 뿐인데, 이 책을 원작으로 한 영화를 본 것도 아닌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그야말로 작가 할레드 호세이니의 재능 덕이라 생각한다.
나는 특히 ‘하산’이라는 인물에 반했다. 실제로 하산은 초반부에 무대 뒤로 퇴장했다가 중간에 다시 잠깐 등장해서 얘기가 끝나기도 전에 죽어버리고 말지만, 그렇지만 사실상 처음부터 끝까지 하산은 살아있고, 계속해서 이야기 중심 자리를 내주지 않는다. 당연하다. 하산은 주인공 아미르의 가슴 속에 영원히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하산이라는 인물은 불가사의할 정도로 충직하고 지혜롭다. 책에서 묘사한 바에 따르자면, 하산은 다른 사람에게 절대로 상처를 주지 않았다.(21p.) 그는 태어날 때부터 웃고 있었다.(21p.) 하산은 끈 떨어진 연이 어디로 날아갈 지 안다. 어떻게? “그냥 알아요.”(84p.) 그는 진심만을 이야기한다. 또한 다른 사람들 역시 진심을 말한다고 생각한다.(86p.) 문맹이라 글은 읽지 못하지만 다른 사람의 마음은 (특히 아미르의 마음은) 그 누구보다도 잘 읽는다. (97p.)……
사실 요즘은 이런 인물은 만나기 힘들다. 현실에서는 두 말할 것도 없고, 소설 속에서도 이런 인물은 만나기 힘들어졌다. 시대가 그렇다고 하지만, 그래도 내가 이런 캐릭터에 꽂히는 걸 보면,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사람들이 원하는 것, 마음 속 깊은 곳에 있는 것은 잘 변하지 않는 모양이다. (나만 그런건가?)
책에는 명예와 긍지를 신조로 삼고 살아가는 파쉬툰 남자들, “특히 아내나 딸의 정조에 관한 문제에 있어서는 더욱 그랬다.(220p.)” 는 파쉬툰 남자들에 관한 이야기가 이어져 나온다. 이상하게 이 부분에서 나는 다른 문화에 대해 생소함을 느꼈다. 대한민국 남자들도 명예와 긍지를 신조로 삼고 살아가지 않나? 특히 여자들의 정조에 관한 문제에 있어서는 말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전통적인 파쉬툰 남자들의 말이나 행동이 묘사된 부분을 읽을 때 나는 확실한 '이질감'을 느꼈다. 나의 부족한 어휘력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어떤 차이가 있다. 좀 더 깊이 따져볼 문제일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그냥 이 긴 책을 지루한 줄 모르고 끝까지 재미있게 읽었다는 점만 밝히고 싶다. 따지고 들었다가는 괜히 머리만 복잡해질 것 같으니까^^.
재미있는 소설이라는 것 외에, 이 책이 나에게 의미가 있는 것은, 내가 소설 속 등장인물에 매력을 많은 매력을 느끼고, 그렇게 매력있는 인물을 만들어내는 훌륭한 ‘글쓰기 선생님'을 만났다는 사실이다. 앞서 말했듯, 같은 농담이라도 적절한 분위기, 적절한 타이밍에, 뺄건 빼고 필요한 표현은 그림처럼 실감나게 해줘서 확실한 웃음과 박수를 받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재능이 꼭 타고난 것만은 아닐 것이다. 사람들 웃기는 것을 직업으로 하는 개그맨들을 보라. 그들이 얼마나 많은 시간 아이디어 회의를 하고 연습을 하는가. 오늘 또 한 명 훌륭한 글쓰기 선생님을 만났으니, 나의 글쓰기 수업도 계속 계속 이어져 가야겠지. 『연을 쫓는 아이』처럼, 아름다운 꽃 한 송이를 피우는 그 날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