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자서전 쓰는 법 - 삶은 어떻게 책이 되는가
린다 스펜스 지음, 황지현 옮김 / 고즈윈 / 2008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대화가 필요해〕개그콘서트의 한 코너. 깔깔대고 웃으면서 보지만 한편 덜컹~ 마음이 내려앉을 때도 있는 그런 이야기. 이거이거 장난 아닌데? 이런 개그가 인기를 얻고 오래가는걸보면 정말 대화가 필요한 가족이 많은가봐? 그치? 피식- 거 뭐 딴 데서 찾을거 있나? 저거 딱 우리집 얘기네 뭐. 크크크크

딸-딸-딸-아들
세 딸 중에 그래도 하나쯤은 애교가 많거나, 하나쯤은 수다스럽거나, 하나쯤은 곰살맞거나 그럴만도 한데, 어째 우리집은 여자들이 하나같이 무.뚝.뚝. 거기다 막내 아들까지 어찌나 말을 아끼시는지. 침묵은 금이라고? 흥! 절대 찬성 못하지. 침묵이 금이라면 지금 나는 황금대궐에 살고있어야 정상일껄! 껄껄. 헌데 뭐야. 우리집은 썰렁썰렁 썰렁하다못해 가끔은 오싹한 느낌마저 드는게 완전 얼음궁전이쟎아. 으으으. 우리집은 정말 대화가 필요해.

그래도 요즘은 좀 낫지. 언니와 동생이 결혼을 해서 애들을 낳아놓으니까 다같이 모이면 떠들석~ 사람사는 집 같아. 언니는 결혼을 일찍 해서 큰 애가 벌써 열여덟살. 어엿한 나의 말상대가 되어주니 얼마나 반가운 일인지. 새삼 언니에게 고마운 마음까지 생기는군.

눈이 내린다. 그러고보니 언니의 첫 딸 인혜가 태어나던 날도 눈이 내렸어. 1990년 1월, 꼭 오늘처럼 포근포근 눈이 내리는 날 용인세브란스병원에서 태어난 아이 인혜. 언니에게는 첫 아이이고 나에겐 첫 조카, 엄마 아빠께는 첫 손녀로군. 이렇게 쓰고보니 인혜에게는 뭐든 '처음'이라는 의미가 아주 크구나.

인혜가 무얼 하기만 하면 뭐든 처음이 된다. 처음이란 많은 용기가 필요하고 책임도 큰 자리. 자칫 조심스러운 성격이 되기 쉬운데 다행히 인혜는 느긋하고 밝은 아이다. 웃음소리가 크고 마음이 따뜻한 인혜. 누구와도 거리낌없이 말하고 사귈 수 있는 귀한 천성을 잘 간직하고 열여덟살이 되었다. 복덩어리 인혜. 조카인데도 이렇게 사랑스러운데 부모인 언니는 얼마나 좋을까. 나를 세 명의 아이들의 이모로 만들어준 언니와 동생이 고맙기도 하고 또 솔직히 조금은 샘도 나는군.  

언니네 식구, 동생네 식구. 이번 주말엔 다 우리집으로 불러서 만두라도 해먹어야겠다. 만두라면 모두들 사족을 못쓰니까. 크크. 만두 빚으면서 엄마한테 옛날 얘기도 듣고 언니랑 동생들한테두 추억얘기 좀 떠들어보라고 해야지.

<내 인생의 자서전 쓰는 법> 책은 누구한테 줄까? 아무래도 언니가 낫겠지? 언니가 나보다 4년이나 더 살았고, 언니야말로 책 한권으로는 어림도 없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왔으니까. 아마 할 말이 많을꺼야. 그래. 나한테두 맨날 자기 얘기로 책 좀 써보라고 주문을 해대쟎아. 그렇게 할 말 많으면 자기가 할 일이지. 내가 써봐야 자기 흉만볼텐데 뭐. 

<내 인생의 자서전 쓰는 법>
이 책은 정말 딱이야. 딱! 딱 나를 위해 나온 책이라구! 어쩜 시간도 이렇게 딱 맞춰서 내 앞에 온 것인지! 이렇게 호들갑 떨어놓구 결과가 없으면 안되겠지! 걱정 없다. 결과가 없을래야 없을수가 없는책. 한 번 걸려들면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는 촘촘한 거미줄처럼 그렇게 치밀한 질문 질문 질문.
엄마에게 하나 해봤다. 

나:   엄마! 엄마는 어릴 때 꿈이 뭐였어? 
엄마: 뭐?
나:   꿈! 엄마는 꿈 없었어?
엄마: (황당하다는 표정뿐)
나:   아 왜 엄마 옛날에 미용기술두 배우구 그랬다며!
엄마: 꿈은 무슨. 그거야 결혼하기 전이니까. 결혼하구는 그냥 살았지.
나:   엄마는 아빠랑 연애결혼했지? 아빠가 엄마 쫓아다닌거야?
엄마: 그때는 뭐 나두 아빠를 좋아했지.
언니: 아빠가 청년회장하구 노래자랑 사회 볼 때? 그 때?
엄마: 그래. 거기 나가서 노래하구 상으루 쌀두 받구 그랬어. 니 아빠가 나를 좋아하니까 심사위원한테 힘을 쓴거지. 그때는 나두 노래를 잘 했어. 옛날노래는 잘 했다구. 그때는 한번만 들으면 다 따라하구 외워서 했는데.
나:    무슨 노래 불렀어? 기억나?
엄마: 그거 그거 ♪목숨보다 귀한 사랑인데 창살없는 감옥인가 만날길없네~ 박재란이 부른거. 기억나지 기억나. 1절은 다 기억나. ♪목숨보다 귀한 사랑이건만 창살없는 감옥인가..♪♪
 

아주 신났군. 엄마하구 남 얘기, 돈 얘기, 병원 얘기 빼구는 할 얘기가 없다구 우울해죽겠다구 했는데 말이야. 아 글쎄 살다보니 내가 엄마하구 이렇게 다정한 대화를 나눌 때두 다 있구나 그래! 흑흑 감격에 겨워 눈물이 다 날려구 하네 그래. 맞다 맞어. 이런게 정말 가족 아이가? 엉? 그렇제? 맞제? 엄마! 나 엄마 딸 맞제? 다리 밑에서 줏어온거 아니제?
(이건 또 뭐꼬? 니 바보가?)
그게 아니고 내캉 시방 느~무 좋아가~
(하이고야. 두 번 좋았다간 무신 영화찍는줄 알고 사람들 몰리겄다.) 킁! 몰리믄 좀 으떻노. 그라믄 울 엄마 노래나 한 가락 뽑으라카지 머.
(으이그. 또 특기 나오나? 삼.천.포! 삼천포 많이 댕겨왔다안하나. 인자 그만 제자리!)
오예~

그나저나 내 호들갑이 좀처럼 사그라들지를 않는군.
<내 인생의 자서전 쓰는 법> 이 책에 대한 확실한 리뷰라면 그것은 두 말할 것도 없이 나의 자서전이 될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여기서 리뷰를 마친다해도 그것으로 진짜 끝나는 것은 아니라는거지. 엄마에게 물어볼게 너무너무 많다. 하나도 빼먹지 말고 다 답을 들어야지.

엄마 나는 태몽이 뭐야? 언니 태몽은? 정미는? 창환이는? 아빠는 젊을때 속 안썩였어? 돈 잘 벌어줬어? 아빠랑 어디어디 가봤어? 제일 기억나는데는 어디야? 옛날에 어디서 데이트했어? 외할머니는 엄마한테 어떤 엄마였어? 엄마는 이모들 삼촌들 중에 누구랑 친했어? 아빠랑 결혼할 때 주례는 누가 섰어? 엄마는 많이 아픈적은 없었어? 엄마는 아빠한테 무슨 선물 받아봤어? 아빠 말고 다른 사람은 좋아한 적 없어? 아빠가 살았으면 지금쯤 뭘 하고계실까? 기타등등 기타등등 (한도 끝도 없네~ 아주 행복해.)

책에 나온 질문은 먼저 엄마에게 다 해봐야지. 엄마와 나는 대화가 필요하다. 절실하게. 이렇게 절실한데 왜 그렇게 용기를 내지 못했는지?

뭐 좋다. <내 인생의 자서전 쓰는 법> 이것으로 우선 엄마의 자서전을 쓰는 거다. 엄마의 자서전이 완성될때까지 나는 대필작가가 되는 거고. 얼마나 좋은가. 엄마랑 대화도 하고, 기록까지 할 수 있으니. 엄마도 좋을 것이다. 분명. 내가 옛날 얘기를 물어보는 게 귀챦지만은 않은거야. 노래자랑 얘기 할때는 꼭 그 때로 돌아간듯 아련한 표정을 짓는 엄마. 엄마도 옛날 얘기하면서 속풀이 꽤나 하실 수 있겠지. 엄마 이야기를 통해서 새롭게 등장할 나를 비롯하여 엄마, 아빠, 언니, 동생들, 조카들, 형부, 제부, 할머니, 할아버지, 이모, 삼촌, 고모, 사촌, 이웃에 팔촌 아줌마 아저씨들! 기대됩니다요!!!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내 인생의 자서전 쓰는 법> 이 책은 대화가 필요한 가족에게 특별히 유용한 책이다. 그래서 나에게 딱 알맞는 책이고. 그런데 대화가 필요없는 가족도 있나? 그만큼 사정거리가 넓은 책이라는 말이겠지. 작가는 돈 많이 벌었을 것이다. 부디 그 돈으로 좋은 일도 많이 하기를.~ 아무튼 이 글을 읽는 사람 대부분 이 책이 필요하다. 책 내용은 묻지 마시라. 그냥 사서 읽어보시라. 질문에 답하다보면 (물론 답은 글로 써야지!) 어느새 당신만의 책이 한 권 나올테니까!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더. 이 책을 읽고 책값이 아깝다고 느끼는 사람은 딱 두 부류 뿐일 것이다. 사랑을 모르는 부류 하나, 한글을 모르는 부류 하나. 지금 내가 한 말은 전혀 호들갑이 아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