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 없는 녀석

정 군은 지금 위기다. 

어제는 여자 친구와의 기념일인데 돼지껍데기에 소주를 먹자고 했다가 개념 없는 자식이라는 욕만 먹고 싸웠다. 그녀는 아직까지 연락두절이다. 

아침에는 설계실에 들어갔다가 어제 먹다 남긴 치킨을 치우지 않았다고 선배들에게 한참을 혼나고 혼자 대청소를 했다. 사실 어제 설계실에 오지도 않았고 닭고기 알레르기라 치킨을 먹지 않는 정 군은 억울하지만 이미 선배들에게 무개념으로 찍혔다. 

하지만 가장 큰위기는 지금 설계 스튜디오 시간이다. 한참 설명을 들은 김 교수는 팔짱을 끼고 한마디 툭 던진다.

"설계에 개념이 없네."

도대체 개념이 무엇이기에 내 인생을 이리도 힘들게 하는가? 내 개념은 어디로 외출 중이기에 나는 세 번 연속으로 개념이 없다는 소리를 듣고 있는가? 그 개념들 중에서도 김 교수가 지적하는 개념이 제일 무섭다. 호환마마보다도, 친구 자취방에서 본 음식물쓰레기보다도 더 무섭다.

개념이 없다는 말 한마디로 이제 김 교수는 처음부터 다시 설계를 해오라고 시킬 것이다. 그런데 나는 아직도 김 교수가 말하는 개념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설령 내 설계에 개념이 없다고 하더라도 왜 다시 처음부터 설계를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와서 드는 생각인데 아마 김 교수도 그 개념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 같다. 매번 개념이 없다고 하면서 정작개념이 무엇인지 한 번도 말해 준 적이 없으니 말이다. - P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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