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축구아카데미에는 어떻게 입단을 할 수 있나요?]

손 ㅣ 뭐 언제든지요. 초등학교 1학년에서 3학년 애들까지는 굳이 입단 테스트 안 하고요, 4학년부터는 해요. 잠재력이 없다 싶으면 아예 안 받고요. 부모한테나 애한테나 경제적으로 혹은 시간적으로 손실을 주면 안 되잖아요. 그건 그들에게 사기를 치는 거나 진배없잖아요. 사람한테는요, 양심으로 접근하는 거예요.

[운동장에서 보는데 감독님은 목청이 터지시고 저는 귀청이 떨어지는 줄 알았다니까요. 아이들과 계속 볼을 차시는 와중에 어쩌면 그렇게 지시 사항을 계속 내뱉으시던지. 저 받아 적으려다가 못 참고녹음기 켰잖아요. "빨리 줘! 우유부단하게 하지 말라고! 살피라고!
자세 읽히지 말라고! 단순하게! 짧게! 가까운 데 주라니까! 계산해!" 되게 평범한 말들인데 왜 훅 와서 꽂혔나 몰라요.]

손 ㅣ 애들 못해서 소리지르는 거 아니잖아요. 애들도 그걸 안다니까. - P111

집중하고 생각하라는 거예요. "내가 가르치는 게 다가 아냐. 그거 플러스 네 생각이야. 머리 써. 너 혼자 축구하는 거 아냐. 옆에 항상 상대 수비가 와 있어. 가상의 수비 위치를 계속 바꿔가면서 그때마다 네가 어떤 플레이를 해야 하는지 머리를 쓰라고. 축구는 즉흥이야. 축구는 순간이야. 축구는 머리야." 일단 운동장들어가면 사나워지라고하죠. 너 그거 하기 싫으면 집에 가 지금도 그거 거슬릴 때 엄청나게 야단을 치죠. 살펴, 살피라고! 그건 공간 정황을 빨리 인지하라는 거잖아요. 짧게, 단순하게! 그건 속도로 직결되는 거고요. 볼 가지고 지체하는 꼴을 내가 못 봐요.

[잘 모르는 제 눈에도 뭔가 아이들끼리 쫀쫀하게 훅훅 연결하고 있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어요.]

손 ㅣ 사실 저도 그걸 못 배웠잖아요. 지금 제가 화가 나는 게 기본기도 안 되어 있고 볼도 제대로 못 자는 애들 데리고 전술 운운하고들 해서거든요. 주입식으로 애들한테 전략 가르친들 순간순간 상황이 바뀌는데 그게 대입이 되나요? 축구에서 매순간 똑같은 상황은 발생 자체가 안 이뤄져요. 그러니까 감독이 공부해야 한다는 거예요. "상대와 부딪치면서 계속 생각하고 고민하고 성찰하라고 실수하고 실패하고 시행착오 겪으면서 너는 실시간으로 극복하는 거야. 그게 진짜 네 것이 되는 거야."  - P112

제가 전술 훈련을 안 하는 건 상대에 따라 열리고 닫히는 공간이 매번 같을 수 없어서예요. 왜 애들을 기계로 만드느냐고요. - P113

[정신력이 해이하다. 그런 걸 지적하는 뉴스를 저도 흔하게 봐온 참이라서요.]

손 ㅣ그건 어디까지나 개인 성향이에요. 축구에 안 미쳐서 그런거예요. 축구에 덜 미쳐서 그런 거예요. 정신력 운운할 필요가 뭐 있어요. 미치지 않았으니까 못 미치는 거지. ‘불광불급‘ 미치지 않으면 못 이루는 거예요. - P118

드리블이 뭐냐. 드리블은 여기에서 여기로 볼을 운반하는 거, 그거지, 사람 젖혀가며 온갖 지랄하는 거, 그거 드리블 아니에요. "야, 지랄하지 말고 빨리줘." 그게 내 축구예요. 내가 드리블한답시고 혼자 볼 가지고 많이 움직이면 그사이 상대 수비 다 채워져, 내 체력 소모 금방 와,
상대편 선수 달려들어 부상 위험 높아져. 볼 가지고 오래 있어봤자 좋을 거 하나 없어요. 나한테 볼이 오면요, 그 즉시 바로 떠나보내야 해요. 볼은 구십 분 동안 수백 킬로 뛰어도 하나도 힘 안들지만, 사람은 힘들어 죽어요. 방법은 나 대신 볼을 뛰게 하면되는 거예요. - P121

기술이 좋고 영리하고 기본기가 잘되어 있으면 그만큼 덜 뛰어도 돼요. 왜 미련하게 모든 걸 체력으로 접근하냐고요.
왜 한계가 불 보듯 뻔한 육체적인 걸 가지고 접근하냐고요. 몸이아니라 볼로 접근하면 훨씬 영리하게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어요. 그러면 우리 애들은 휘파람 불면서 축구할 수 있어요. 아주 안 뛸수는 없지만 효율성이 높아질 수 있어요. - P122

손 ㅣ일등은 판을 지키는 사람이라 했고, 일류는 새 판을 짜는 사람이라 그랬어요. 저 어렸을 적에 이거 잘못된 시스템이 아닌가,
내심 의심했던 축구판에도 조금씩 변화가 오는 것 같은데요, 아직도 과도기라 할 수 있죠. 보통 우리 축구가 경기에서 지면 분석들 거의 뻔했다고요. "너희가 오래 못 뛰어서 진 거야. 너희가많이 안 뛰어서 진 거라고." 전 그렇게 안 들어가요. "너희가 진거 아냐. 볼이 진거야."

[아이들 보면 시합 전에 로커룸에서 초조하고 긴장된 얼굴로 경기가 시작되길 기다리잖아요. 그때 감독님은 보통 어떤 얘기를 해주시나요.]

손ㅣ잘 들어, 나 세 가지만 얘기할 거야. 첫째는 투쟁심이야. 축구는 양복 입고 치마 두르고 하는 거 아니야. 싸움할 의지가 없는 녀석은 가차없이 빼버릴 거야. 둘째는 자신감이야. 너희에게 실수는 없어. 경험만 있어. 이 경험이 쌓이고 쌓일수록 너희들 크게 성장해, 셋째는 판단력이야. 상황 파악을 빨리빨리 하라고. 많이 보는 만큼 옵션도 많이 생겨. 너희들이 보던 축구와 다른 거 - P124

언제까지나 물고기를 잡아줄 수는 없잖아요. 물고기 잡는 방법을 다 가르쳐주고 나면, 최소한 물고기 사냥에 한해서는, 자식이 부모를 찾을 일이 없을 거 아니에요. 그렇게 부모로부터 자식이, 또 자식에게서 부모가 평생을 두고 멀어져 가는 게 인간사의 순리이며 정도라면 우리는 그 길을 제법 잘 걷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해요. 간혹 흥민이가 어떤 질문을 해올 때 보면요, 어느 정도 답을 알고 있다는 게 느껴지기도 하거든요. 아직은 불안하니까 저한테 확인차 묻는 것일 수도 있을 텐데요, 그러니까 그게 더 어떤 신뢰의 태도 같기도 한 거예요. 나중에 선수 생활 끝내고 얘도 자기 가정 책임지며 살아야 할 거잖아요. 사람은 다 제 생각만큼 살아가니까요. 많은 생각이 정말 좋은 생각을 낳을 거니까요. - P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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