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단히 말하면, 저는 항상 주변의 일에 먼저 눈길을 줬으며, 보고, 맛보고, 만질 수 있는 것, 버터, 그레이하운드 버스 같은 것에 주의를 빼앗기곤 했습니다. 그 시절 저는 아주 신빙성 없는 여권, 위조 문서를 가지고여행하고 있었지요. 저는 제가 사고의 세상에서 합법적으로 살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사고라는 것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요. 당시 제가 아는 것이라고는 제가하지 못하는 것이 무엇인지 뿐이었습니다. 당시 제가 아는 것이라고는 제가 무엇이 아닌지뿐이었고, 제가 무엇인지를 알게 되기까지는 그 후로도 상당히 오랜 시간이 지나야 했습니다. - P115

그리고 그렇게 해서 알게 된 것은 제가 글을 쓰는사람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좋은‘ 글을 쓰는 사람, 혹은 ‘나쁜‘ 글을 쓰는 사람의 의미가 아니라 단순히 글을 쓰는 사람, 종이 위에 단어를 배열할 때 가장 집중하고 정열을 쏟는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제가 어떤 자격을 갖춘 사람이었다면, 글 쓰는 사람이 되지 않았을 거예요. 조금이라도 사고할 능력을 갖추는 축복을 받은 사람이었다면,
글 쓰는 사람이 되지 않았을 겁니다. 제가 글 쓰는 이유는 전적으로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내 눈앞에있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무엇을 보는지, 그 의미가무엇인지를 알아내기 위해서입니다. 내가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알아내기 위해서이지요.
1956년 여름, 카르퀴네즈 해협 주변의 정유 공장들이왜 불길해 보였던가? 밤에 베바트론에 켜진 불이 왜 20년 동안 내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았는가? 다시 말해, 내 머릿속에 남은 이 그림 속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그것을 알아내기 위함입니다. - P116

문법에 대해 제가 아는 것은 그것이 가진 무한한 힘뿐입니다. 문장의 구조를 바꾸는 것은 그 문장의 의미를 바꾸는 것입니다. 마치 카메라의 위치를 바꾸면 피사체의 의미가 바뀌는 것처럼 문법도 문장의 의미를 확실하고도 완강하게 변화시킵니다. 이제 카메라 각도에 대해서 아는 사람은 많아졌지만, 문장에 대해 아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단어들을 배치하는 것은 중요한 일인데, 자신이 원하는 배열은 머릿속에 있는 그 그림 속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 그림이 단어의 배열 방식을 정하는 것이지요. 그 그림은 이 문장이 절을 포함한 문장일지 아닐지, 강하게 끝나는문장일지, 아니면 점점 톤이 낮아지다가 끝나는 문장일지, 길지 짧을지, 능동형일지 수동형일지를 결정합니다. 그 그림은 단어들을 어떻게 배열할지 알려주고,
그렇게 배열된 단어들은 머릿속에 든 그림에서 무슨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우리에게 알려주지요. 노타베네(Nota Bene)."*

글이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우리가 글에게 알려주는 것이 아닙니다.


* ‘주의할 것‘이라는 의미의 라틴어 문구이다. 흔히 NB로 줄여 쓴다. - P118

[마리아는 자기가 절대 하지 않을 일들의 리스트를 만들었다. 그녀는 자정이 지난 후에는 라스베이거스의 샌즈 호텔이나 시저 호텔을 절대 혼자 가로질러 걷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그녀는 절대 파티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지 않을 것이고, 자기가 원하지 않는 S-M 섹스는 하지 않을 것이며, 에이브 립시에게서 절대 모피를 빌려 입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 P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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