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8일
집주인 총회. 계단 공간, 지하실 등등에 관한 얘기가 오간다. 어떤 안건을 다루든, 사람들에게는 〈어떠어떠한 장소에 계량기를 설치해야 합니다〉 같은 지식을 과시하거나 〈제가 전에 살던 건물에서는〉 하는 식의 일화, 또는 〈저번 날 6층 세입자가〉로 시작되는 이야기를 털어놓는 기회가 된다. 이야기란 존재하고자 하는 욕구다. - P7
5월 29일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에서 폭탄 테러 발생. 다섯 명 사망, 다수의 그림 훼손, 그 중에는 조토의 작품도 하나 포함됨. 다 같이 입을 모아, 추산이 불가능한 돌이킬 수 없는 손실이라고 외침. 사망한 남녀노소가 아니라 그림에 대한 말. 그러니까 예술은 생명보다 더 중요하고 15세기에 성모화가 어린아이의 몸과 숨결보다 더 중요하다. 그 성모화는 여러 세기를 지나왔고, 미술관을 찾아오는 수백만 관람객이 여전히 그 작품을 보면서 기쁨을 느낀다면 사망한 아이는 아주 소수의 사람에게만 행복을 안겨 줬고, 어쨌든 그 아이는 언젠가는 죽게 되어 있으니까? 그런데 예술은 인간보다 위에 놓인 그런 것이 아니다. 조토의 성모화에는 화가가 만나고 쓰다듬었던 여자들의 육신이 녹아 있었다. 아이의 죽음과 자기의 그림 파괴 사이에서 화가는 무엇을 골랐을까? 그에 대한 답은 확실하지 않다. 어쩌면 자기 작품일지도. 바로 그럼으로써, 예술의 어두운 부분을 증명하며. - P16
흘러가는 시간에 대한 감각은 우리 안에 있지 않다. 그 감각은 밖에서부터, 자라나는 아이들, 떠나가는 이웃들, 늙어 가고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들로부터 온다. 운전 연수 학원 혹은 텔레비전 수리점이 새로이 들어선 자리에 있던 문 닫은 빵집들로부터. 이제는 프랑프리라는 상호 대신 리데르 프라이스라고 불리는 슈퍼마켓의 구석 자리로 옮겨 간 치즈 매장으로부터. - P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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