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톤 체호프 《마차에서》를 읽는다.
책에서 또 다른 책을 읽다니. 오오~ 재미있군.

신나게 읽다가 밑줄친 부분을 읽고 띵, 가라앉는다. 어린시절의 기억이 흐려져 꿈처럼 흐릿하고 ‘형태가 없었다.‘ 라는 부분에서 철렁.
형태가 없다.
형태.

기억도 엄연한 형태, 형식을 갖추고 있다.
기억을 기억으로 간직하려면 형태가 필요하다.
형식, 절차, 모양.

마음을 모양으로
기억을 형식으로
사랑을 행동으로
눈에 보이게
느낄 수 있게
가닿게

그녀는 교사가 되기 전의 시간을 생각하던 버릇을 잃었으며 실제로 그 시간의 모든 것을 잊었다. 한때는 아버지, 어머니가 있었다. 그들은 모스크바 ‘붉은 문‘ 근처의 커다란 아파트에 살았지만 그녀 삶의 그 부분에서 기억에 남은 것은 꿈처럼 흐릿하고 형태가 없었다. 아버지는 그녀가 열 살 때 죽었고 어머니도 그 직후에 죽었다. 오빠가 있었는데 장교였다. 처음에 그들은 편지를 주고받았지만 오빠는 그녀의 편지에 답장을 하지 않더니 이내 연락이 끊겨버렸다. 전에 가지고 있던 물건 가운데 그녀에게 남은 것은 어머니의 사진뿐이었지만 학교의 습기 때문에 흐릿해져 이제 머리카락과 눈썹 말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 P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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