슐레밀이 그림자가 없는 인간의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것은 바로 이러한 비장소화를 통해서이다. 칠십 리 장화 덕분에 그는 원하는 곳이면 어디든 한달음에 갈 수 있고, 세계의 구석구석을 자기 집처럼 친숙하게 돌아볼 수 있다. 그의 시야는 지구 전체로 확장되며, 인식의 지평 역시 그러하다. 그림자가 없다는 사실은 이제 그에게 더 이상 문제가 아니다. 그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으면서 인류 전체에 속하는 방법을 발견했기 때문이다ㅡ자신의 모든 시간을, 여생 전체를 글자들과 맞바꿈으로써. 얼굴 없는 저자가 되어 자기가 쓴 책들의 배후로 사라짐으로써. - P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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