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침묵이 기분 나쁘게 끈적거리는 암울한 정적은 어니었다. 그가 그냥 혼자 있고 싶어 하는 것처럼 느껴졌을 뿐이다. 그런데도 그는 매주 찾아왔다. 그에게는 사람을 끄는 어떤 매력이 있었고, 나는 그와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어도 불편하지 않았다. 나로서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번 사례의 경우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으라고 돈을 받는 건 아니었다. - P94

나는 검색 범위를 넓힌 끝에 하버드대학교에서 수학한 원주민 정신과 의사 클레어 브랜트 박사를 찾았다. 그는 마침 미국독립전쟁 당시 맞서 싸운 것으로 유명한 조지프 브랜트 추장의 직계 후손이기도 했다. - P94

대니가 4살이었을 때 허드슨 베이의 한 상인이 그에게 책을 준 적이 있다. 그는 아직 글을 읽을 수 없었기 때문에 책장을 넘기며 이야기를 지어냈다. 대니는 그 챡을 사랑했다. - P101

"제가 피가 튀도록 채찍질 당하는 광경을 누나가 펜스 저편에서 보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는 게 마음이 아팠어요." 그는 잠깐 말을 멈추었다. "저는 거기서 지냐는 12년 동안 크리족 말을 다시는 한마디도 내뱉지 않았어요. 결국에는 그 말을 잊어버렸죠. 부모님과 더는 대화를 할 수 없게 된 거예요." - P106

대니와 나 사이에 눈곱만큼이나마 신뢰가 구축되기까지 꼬박 1년이 걸렸다. 이제 와 돌이켜보면 대니가 백인 사이에서 겪은 일을 감안했을 때 이 정도나마 신뢰가 구축됐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 P107

기숙학교에 대해 자료조사를 해보니 1907년 《몬트리올 스타》에 전국적으로 24퍼센트의 원주민 아이들이 학교에서 사망했다는 통계가 인용돼 있었다. (중증 질병으로 귀가 조치가 내려지자마자 집에서 사망한 아이들까지 합하면 42퍼센트였다.) 사망 원인은 결핵, 기근 또는 단순 방치였다. 대다수는 그냥 증발했다. 부모에게 통보되지도 않았다. 2015년 진실과 화해 위원회가 보도한 바에 따르면, 4,000명에서 6,000명의 아이들이 사망했다. 대부분 신고 되지 않았으니 실질적으로는 훨씬 많았을지 모른다. 150년이라는 기간 동안 15만 명 넘는 아이들이 사라졌다. 사망률이 워낙 높다보니 기숙학교에서는 셈을 중단했다. - P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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