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딸 결혼식에서 동창을 만났을 때,


"애들 결혼시키면 끝인 줄 알았는데 또 다른 시작이었어."라며 한숨 쉬는 친구의 목소리에는 분명 한탄이 섞여있지만, 이어지는 명랑한 웃음 소리에는, '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나는 아직 할 일이 있다, 내 인생은 순항중'이라는 안도감 또는 자부심이 가득하다 .


"끝이 어딨어. 손주 태어나면 다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거지. 애들은 애들대로 부모되는 거 도와야지, 손주는 손주대로 얼마나 이쁘냐. 안 봐줄거라고 미리 큰소리 쳐봐야 소용 없어. 이쁜데 어쩌냐고. 죽어야 끝나. 죽어야.. 아? 아니지! 요샌 죽은 다음까지 생각해야되니까 죽어도 안 끝나는 거라더라. 아하하." 


우와. 진짜? 안 끝나? 죽어도? 거 참.. 물론 손주가 생긴다해도 그닥 어색하지 않은 나이가 되긴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런 대화에는 도무지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결혼을 시킨다'는 말부터 걸린다. 누가 시킨다고 결혼하는 사람이 어딨다고.. 휴우. 게다가, 아무리 자기 자식이 낳은 애라도 그렇지 아니 왜 할머니 할아버지가 엄마 아빠 노릇을 하려고 들어? 게다가 뭐? 죽어도 안 끝나? 기가 차서 원... 맘에 안든다고 박차고 일어날 수도 없고, 몇 년 만에 잠깐 얼굴 보고 헤어질 친구한테 싫은 소리 하기도 싫어 멀뚱한 표정으로 앉아있다가, 오랜만에 주고받는 친구들 소식에 갑자기 막 열광하면서 목소리 커지는 내 모습에 현타 온다. 아...


『소녀, 여자, 다른 사람들』, 사실 나에게는 저 어색한 대화보다도 더 어색한 소설인데 어쩌다보니(알라딘에서 죽때리는 나날들) 내돈내산으로 읽고 있다. 끄덕 끄덕 고개를 주억거리기까지! 별일이다. 정말.


『소녀는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를 주문하기까지는, 제목처럼 진짜로 소녀는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궁금하기도 했지만 양철북이라는 출판사 이름값이 영향을 많이 끼쳤다. 말하자면 너무 덥석 집어들었다는 말이다. 시작하자마자 내가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이야기가 나온다.  

「(11p.)시험을 치르고 나면 모여들어 서로 자기가 더 망했다고 경쟁하듯 이야기하는 여자아이들이 있다. 실패를 예상하는 편이 덜 힘들기 때문이다. A-보다 낮은 성적을 받으면 누구도 위로 할 수 없는 절망에 빠지는 아이들이 있다. 또 셀카를 올린 다음 계쏙해서 새로고침 하다가 조회수가 많지 않거나 '좋아요'를 충분히 못 받을까 봐 셀카를 지워버리는 여자아이가 있다. 점심때 너무 많이 먹은 건 아닌지, 의자에 눌린 허벅지가 너무 굵어 보이는 건 아닌지 따위 걱정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아 강의에 집중을 못 하는 여자아이도 있다.」 


공감은 안되지만, 이렇게 책으로 나오는 걸 보면 이런 애들이 진짜 많이 있나보네? 하고 다시 보고, 얼마 안 가 흥미를 잃고 그러다 '그럴 수도 있겠다' 싶은 얘기가 나오고, 또 금방 재미가 없어져 책을 덮으려는데 '어라?', '음. 그건 그래' 하는 심정이 일으키는 대목이 나오고, 그러기를 반복하며 꽤 많은 부분을 건너 뛰긴 했지만 아무튼 끝까지 읽었다. 그러기를 참 잘했다 싶다. 끝까지 읽기를 잘했다는 말이다. 마지막 10장의 제목은 「졸업반의 좌절, 대학 이후의 삶」인데, 여기엔 졸업한 지 28년째인 내가 읽어도 힘이 되는 말이 많다. 그 중 하나는 다음과 같다.


「(390쪽)애나 퀸들런Anna Quindlen은 이렇게 썼다. '우리의 성공이 우리 방색대로의 성공이 아니라면, 세상에는 좋게 보여도 우리 가슴에서는 좋게 느껴지지 않는다면, 그건 전혀 성공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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