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쪽)2장 정보는 무의미하다.

(67쪽)그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세계로부터 우리의 여러 감각에 입력되는 정보는 문자 그대로 어떤 것이라도 의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입력 정보 자체는 에너지나 문자에 불과하다.

 

우리 눈에 들어오는 광자, 귀로 들어오는 공기의 파동, 피부에 마찰을 일으키는 분자 결합들의 절단, 혀에 닿는 화학 물질, 코로 들어오는 화합물ㅡ이 모든 것은 이런 종류의 전기/화학적 에너지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들은 우리의 물리적 세계에서 기원한 기본 요소들, 즉 진짜 실재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에너지원에 직접 접근할 수 없고, 오직 이들이 만들어내는 에너지 파동이나 화학 물질의 기울기에만 접근할 수 있다.

 

우리는 기본 요소 자체가 아니라 기본 요소에 일어난 변화를 감지한다.

 

기본 요소에 직접 접근해봐야 아무 소용 없다. 물 분자 하나가 소용돌이에 대해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는 것처럼, 기본 요소는 고립된 상태로는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보에는 지시가 함께 따라오지 않는다.


대신 우리의 지각이 보는 ‘실재‘는 우리 뇌가 받아들이는 무의미한 정보가 지닌 의미인데, 그 의미는 바로 우리ㅢ 생태계가 제공한다.

 
어떤 것이 지닌 의미는 어떤 것의 실체 자체와는 다르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 다시 말해서, 지각은 시를 읽는 것과 비슷하다. 우리는 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해석하는데, 시는 어떤 것도 의미할 수 있기 때문이다.

(68쪽) 우ㄹ 는 의ㅁ 를 만들 ㅓ내는데, 세계(즉, 우리의 생태계)와 상호 작용함으로써 그렇게 한다. 신호등의 색에서부터 거리에서 스쳐 지나가는 낯선 사람의 미소(혹은 찌푸림)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모든 것에 대해 그렇게 한다. 우리는 이처럼 아주 빠르고 뛰어난 능력으로 의미를 만들어내는 기계이다.

(75쪽)우리와 다른 동물들 사이의 이런 차이는 우리가 진화가 덜 돼 지각 능력이 떨어진다는 걸 의미하지 않는다. 이것은 단지 우리의 진화는 생존을 위해 다른 선택을 했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83쪽)우리는 살아남기 위해 지각하도록 진화했는데, 그러려면 우리 쪽에서 행동, 즉 뭔가를 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지각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는 말을 달리 표현한 것이다. 우리 뇌는 우리를 움직이도록 하기 위해 지각을 진화시켰다. 사람으로서 살아가기 위해, 혹은 어떤 생물학적, 유기적 계가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은........ 반응이다. 

 

우리의 삶은 환경, 그리고 살아있는 것이건 무생일이건 간에 환경을 채우는 모든 잡다한 것들과 불가분의 관계로 얽혀 있다. 이것은 우리는 그저 끝없이 반응하고 행동하고, 또 반응하고 행동하길(미리 행동하는 경우는 전혀 없이) 반복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문제는 정보에는 어떻게 행동해야 한다는 지시가 전혀 포함돼 있지 않다는 점이다. 실재는 우리에게 어떻게 행동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명사들은 동사에게 어떻게 하라고 지시하지 않는다.

 

(83쪽) 대상들 역시 마찬가지다. 대상들은 행동을 제약하지만, 행동을 지시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돌을 살펴보자. 돌은 우리에게 그것을 가지고 어떻게 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돌은 도구가 될 수도 있고, 무기가 될 수도 있고, 문진이 될 수도 있다. 돌은 어떤 본질적 의미도 목적도 용도도 없다(비록 상대적 무게나 상대적 크기처럼 물리적 제약을 제공하긴 하지만). 돌에 적용되는 이 원칙은 기본적으로 우리 감각에 들어오는 모든 정보(빛 자체를 포함해)에도 적용된다. 따라서 정보는 분석이 없으면 무의미하다. 

 

(84쪽)그래서 우리 뇌는 의미를 만들어내야 하고, 이것은 반응(특정 반응이 아니라 여러 가지 중 하나의 반응)을 낳는다. 

 

어떤 순간에 반응하는 방법은 아주 많다. 그러면 뇌는 다음 순간에 대한 우리의 반응이 얼마나 유용한지 판단한다. 이것을 잘 보여주는 예는 우리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대상인데, 가장 중요한 것은 언제나 가장 모호한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다른 사람들이다.

 

술집에서 상대의 다정한 미소를 추파로 착각하고 그럴 의도가 전혀 없었던 상대에게 들이대는 장면을 상상해보라. 혹은 친구나 파트너에게 자신을 소흘히 대한다고 비난했다가 상대가 내게 신경을 덜 쓰는 것처럼 보인 이유가 날 위해 깜짝 이벤트를 준비하느라 바빴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상상해보라.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이런 일을 반복적으로 겪는다. 우리는 늘 모호한 정보를 처리하고, 우리 뇌는 다양한 반응들을 하나의 답으로 압축시킨다.

 

뇌의 관점에서 볼 때, 동료 인간들은 매우 복잡하고 무의미한 감각 정보들의 원천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은 우리가 가장 큰 관심과 열정을 쏟고 가장 많이 관여하는 '대상'이다. 그런데 그들은 늘 우리를 헷갈리게 한다.

 

(85쪽)의사소통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는데도 불구하고, 우리가 알거나 만나거나 상호 작용하는 사람들은 자세한 다이어그램을 들고 다니지 않는다. 그런다면 도움이 되겠지만, 동료 인간들은 자세한 사용 설명서가 딸린 이케아 가구가 아니다. 다시 반복하지만, 다른 사람은 다른 물리적 대상과 같다. 즉, 본질적으로 무의미한 정보의 원천이다.

 

사실, 우리 자신은 무의미한 자극을 만들어내는 존재이다. 따라서 각각의 상황에서 자기 자신은 말할 것도 없고 다른 사람에 대한 '최선'의 방법을 확실하게 아는 것은 선험적을 불가능하다.

 

(85쪽)우리는 실재를 보지 못하는 것이 나쁜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85-86쪽)과학은 이해를 얻기 위해 정보를 건너뛰어 물리 현상의 원천에 접근하는 방법이다. 신경과학은 특히 뇌가 어떻게 정보를 건너뛰어 의미를 찾아내는지 이해하려고 노력하는데, 데일 퍼브스Dale Purves와 나는 전에 이것을 정보의 '경험적 의미'라고 불렀다. 뇌가 하는 일이 바로 이것이데, 이 덕분에 사람이 살아남아 번성할 수 있었다.

 

우리 종은 실재를 보지 못하는 결함에도 불구하고 성공한 것이 아니라, 바로 실재를 보지 못했기 때문에 성공했다. 우리는 과거에 자신의 생태계가 해석한 것을 보는데, 이것은 뇌가 행동적으로 유용한 방식으로 반응하도록 돕는다.

 

결국 정보의 무의미함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취하는 행동인데, 인간 존재의 뿌리에는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 질문에 잘(더 정확하게는 더 잘) 답하는 것은 곧 살아남는 것인데, (지금까지) 우리의 가정은 이에 답하려면 실재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실재를 알지 못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수천 년 동안 살아남았을까? 우리는 어떻게 도시와 사회와 고층 건물을 건설했을까? 우리는 어떻게 무의미한 것에서 그토록 많은 의미를 만들어냈을까? 그 답은 간단하다. 바로 우리 내부넹서 일어나는 진화와 발달과 작동 방식을 통해서 그렇게 했다. 시행착오라고 부르는 방식이 그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세계와.... 경험적으로.... 관여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 뇌의 구조를 만든(그럼으로써 변화시킨) 방법이 바로 이것이다. 실험을 통해, 즉 모호한 정보의 원천과 능동적으로 관여함으로써 그렇게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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