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스피노자의 진찰실
나쓰카와 소스케 지음, 박수현 옮김 / 알토북스 / 2024년 12월
평점 :
**네이버 카페 책과콩나무의 지원으로
개인적 의견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해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말한 스피노자는 희망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인물이다.
이러한 가치관은 스피노자가 살았던 시대의 세계관에 반하며 또한 종교적 의미로의 신관의 대립과 사회의 윤리적 모토가 새롭게 전개되어야 함을 말하지만 그것이 오늘의 나, 우리의 세계관과 어떤 연관이 있고 깨달음을 주는지는 깊이 생각해 보지 않는다면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종교적이고 신의 전능함에 따른 인간이 아니라 인간의 주체적인 삶이 세속적이고 현실적인 삶에 더욱 집중해야 함을 설파한 스피노자의 삶과 가치관을 모토로 삶과 죽음의 현장을 오가는 의료계의 이야기를 따듯한 감성으로 만나 볼 수 있는 작품으로 전하는 책을 소개한다.
이 책 "스피노자의 진찰실"은 다른 나라의 의료계도 그러한지는 모르겠지만 의료대란을 일으키고 있는 우리나라 의사들에 대해 일말의 안타까움을 갖게 하며 우리와는 의료 체계가 조금 다른 일본의 의료 현장에서 일어나는 한 병원의 가슴 따듯하고 인간미가 넘치는 의사들의 이야기를 만나 볼 수 있는 책이다.
의료체계에 대한 이해를 조금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한국은 의사들의 왕진을 허용하지 않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물론 요구에 의해 왕진을 행하는 의사도 종종 있기는 하지만 사회적 합의에 의해 의료수가가 정해진 왕진제도는 아직 마련되지 않았지만 이웃나라 일본은 오래전 부터 가정내로 왕진을 하는 의료체계를 갖춰 실행하고 있어 의료를 필요로 하는 환자들에게 유익한 상황을 만들어 가고 있다.
그에 비하면 자신들의 밥그릇 투쟁 때문에 국민의 안위는 팽개쳐 버린 한국 의사들의 작태는 국민으로서 두둔하기 보다 지탄해야 할 일로 생각하게 한다.
소설에서 주인공 데쓰로는 교토의 작은 지역병원에서 근무하며 임종을 앞둔 환자들뿐만 아니라 다양한 환자들을 접하면서 의료인의 본분에 대해 주체성을 보여주는 의식이 돋보이게 드러나 감탄스럽고 그의 따스한 가슴이 지향하는 바가 오히려 가정에서 죽음을 맞고자 하는 환자들에게 희망의 상징처럼 느껴지게 한다.
희망이라는 것이 삶에만 국한된다 말할 수 없는 일이고 보면 자신이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방식대로의 죽음을 꿈꾸고 죽어갈 수 있는 일도 죽음을 마주하는 환자들에게는 희망으로 그려질 수 있는 일이다.
죽음을 재촉하는 일을 원하는 이들이 있을까? 하는 물음에 아마도 그런 사람은 없을것이라 단정지을 수도 있겠지만 삶의 지속가능성을 더이상 꿈 꿀 수 없는 이들이라면 죽음을 재촉하고 싶을 수도 있을지 모른다.
그런 이들에게 데쓰로는 '버티지 않으셔도 돼요, 그렇다고 너무 서두르지도 마세요"라고 말하며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환자를 돕겠다고 말한다.
이런 의사가 있을까?
지역병원에서 근무하는 데쓰로의 하루 일과는 병원에서의 수술이나 왕진으로 이어지는 고된 나날들이 이어진다.
그런 그이지만 크게 불평이나 불만을 갖기 보다 환자들 하나 하나의 얼굴을 기억하려고 애를 쓴다.
환자들의 얼굴 하나 하나 기억하고자 하는 일은 의사로서 환자에 대한 열정을 갖고 있음이며 그들의 삶이 죽음과 맞닿아 분리되는 시간까지 충실한 도움을 지속하겠다는 용기있는 자기 소신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의료대란이란 사상 초유의 사태를 이끌어 가고 있는 의사들에게 진정 의사로서의 양심을 버리지 않고 환자들의 얼굴 하나 하나를 기억할 수 있는 의미있는 의사가 될 수는 없는지 묻고 싶어 진다.
의사라고 왜 더 좋은 삶, 인생을 살고 싶지 않을까? 생각하지만 자신들이 선택한 길에 대한 최소한의 양심을 저버리는 일은 환자를 두고 해서는 안될 일이다.
스피노자의 철학이자 희망이 가득찬 진찰실을 매일처럼 여닫고 있는 데쓰노와 그의 동료 의사들의 이야기가 의료대란으로 속을 끓이고 있는 한국 독자들의 가슴에 따듯한 온기를 불어 넣는 기회가 되길 전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