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형의 주인
조이스 캐롤 오츠 지음, 배지은 옮김 / 현대문학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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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살아가는 나, 우리는 모두가 어쩌면 '나' 라는 자아의 꼭두각시 인형과도 같은 모습을 갖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 볼 때가 있다.

나 라는 자아를 명확히 정의할 수도 없을 뿐 더러 나라는 존재 자체도 나에 대해 명확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으며 그러한 삶을 살고 있음이 진짜 나에 가려진 꼭두각시 인형과 같음을 표현하는 일이라 느껴지기에 그러하다.

인형이란 존재는 어린 아이들에게 필수불가결한 장난감에 불과하지만 심리적으로 볼 때는매우 큰 상징성을 갖는다고 볼 수 있다.

인간을 정의하는데 성선설과 성악설을 두고 있지만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는 어둠과 광기, 그리고 상황에 따라 변화하는 근원 모를 불안과 공포에 대한 모습은 저으기 인간의 내면적인 모습을 깊이 있게 탐구하고 변화시켜야 하는 우리가 가진 숙제라 할 수도 있을지 모른다.

인간의 심성은 아무것도 없는 백지로 이해할 수 있을까? 그런 인간의 마음에 환경이라는 변수가 소용돌이 쳐 근원적 고통으로의 변화를 일으키는 원인이 되는걸까? 무엇이라 딱히 꼬집어 낼 수 없는 일이지만 인간 내면의 근원적 공포를 조명하는 영미문학의 거장 조이스 캐럴의 작품을 만나 읽어본다.



이 책 "인형의 주인" 은 인간의 내면적 심리 상태를 파고들어 그 속에 잠재 된 어둠과 광기, 근원적 불안과 공포를 탐구해 독자로 하여금 상상력을 통해 짜릿함과 전율적 공포를 느끼게 만들어 주는 영미문학의 대가 조이스 캐럴의 단편모음집이다.

여섯 편의 이야기 마다 각각의 내용들이 오소소 소름 돋게 하는 내용이지만 제목으로 쓰인 '인형의 주인'은 읽는 내내 기이함을 느끼게 된다.

수 많은 사람들이 존재하는 지구이니 그럴수도 있다 생각할 수 있겠지만 보편적인 사람들의 성정을 생각하면 남자아이가 유독 인형을 좋아하고 애착을 넘어 광적인 사랑을 하는 모습은 쉽게 볼 수 없는 일이기도 하거니와 그러한 성향의 아이가 성장하면서 독립적 존재가 되어가는 시간은 상황의 변화가 일어나는 것으로 어떤 상황으로 반전 될 지는 아무도 모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단초는 있었다. 변화를 읽어낼...

길 거리에서 주워 온 인형들을 집 마굿간 후미진 곳에 숨겨 두고 고이고이 모셔두듯 하는 행위는 아이의 행위로 보기에는 마뜩치 않은 무엇이 있다.

부모의 만류에, 친구의 부추김에 의해 인형의 주인은 마침내 인형에 대해 무시하고 거부감을 갖는 자신의 엄마를 죽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무도 오지 않는 마굿간의 후미진 곳에 모아 둔 인형을 위해, 그런 자신을 힐난하는 엄마를 향해, 아무도 보지 못하게 문을 닫아야 한다는 독백은 그 이후의 일들을 독자들의 상상에 맡기는 전율적 공포감을 선사한다.



사이코 패스는 반사회적 행동, 공감 능력과 죄책감 결여, 낮은 행동 통제력, 극단적인 자기 중심성, 기만 등과 같은 특성을 포함하는데, 이런 성향을 높게 나타내는 사람을 사이코패스 또는 정신병질자라고 부르고 있다.

인형의 주인 남자아이의 성향이 위와 같은 모습과 일치하고 있음을 생각하면 그러한 심리적 특성이 유지되며 사회적 불편이나 사고를 일으키지 않는다면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지만 사이코패스적 성격을 가진 인물에 대한 다수의 영화나 도서들의 출판이 보여주는 서사는 결코 그들의 심리적 특성을 간과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고 있다.

저자 역시 여섯 편의 이야기들 속의 하나로 인형의 주인에서 사이코패스적 성향의 남자아이를 보여주고 있지만 끝내 극단적으로 치달리는, 그래서 결말이 어떠할지를 독자들이 상상할 수 있게 만드는 일은 작가의 탁월한 필력의 영향이겠지만 그것을 논외로 하고라도 적절한 대응과 조치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다각도로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심리적 단면들을 밀도 있게 보여주며 독자들의 상상력 제고를 통해 전율감을 느끼게 하는 저자의 작품에 박수를 보낸다.


**네이버 카페 컬처블룸의 지원으로 

                  개인적 의견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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