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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두네 집
장은아 지음 / 문이당 / 2024년 7월
평점 :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4/0809/pimg_7974361234389838.jpg)
소설의 표지만 보아도 그리움과 정겨움이 한껏 묻어나는 그런 느낌이 든다.
우리의 오래전 60~70년 혹은 그 이후의 삶의 모습들이 고스란히 저 표지속에 함축되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올망졸망 놓여 있는 장독들이 사람들의 삶의 애환을 담고 있는 그릇인양 크고 작고 가깝고 멀고한 인간관계의 상징처럼 느껴지는건 나만이 느끼는 일일까 싶다.
거기다 살짝 아래를 가리는 흐드러진 꽃은 사각으로 보여지는 지붕들이 인간 삶의 형상을 표현하는 거라면 알수 없는 인간의 욕망에 대한 도드라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생각해 보면 작가가 어떤 이야기를 펼쳐 내 보일지에 대한 상상을 갖기에 충분하다는 판단을 해보게 된다.
어쩌면 지금은 찾아볼래야 쉽게 마주할 수 없는 모습일지도 모른다.
동족상잔의 비극인 6.25와 5.16 군사정변을 겪은 저자의 기억속에 존재하는 과거의 시간은 어떤 의미로 나, 우리에게 전달될까 기대감을 갖게 하며 마주한 책을 읽어본다.
이 책 "앵두네 집" 은 60년대와 70년대를 이어가는 시간 속의 인물들의 삶으로 되돌아가 오늘 나, 우리가 잊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삶을 조망하고 그러한 시간, 세월속에 삶을 녹여 낸 이들의 존재감을 기억해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는 책이다.
'초씨 어르신' 이란 표현을 지금은 쓰지 않는 그야말로 조선의 끝에 와 있는듯한 느낌을 갖게 하는터라 60년대 말쯤에서 70년대로 넘어가는 시기라는 저자의 표현대로 그때의 사람, 그때의 사람들의 삶이 어떠했고 지금과는 또 무엇이 얼마나 달랐을까 하는 궁금증을 살포시 갖게 한다.
표지의 지붕을 보면 꽤나 큰 집이 분명하며 안채와 바깥채로 구분지어지는 삶의 공간들, 그 아래 숨죽이며 희망을 담아내고자 하는 사람들의 삶의 모습들은 누군가에게는 의문을, 또 누군가에게는 그리움을 느끼게 하는 시공간이었을테니 삶의 현장이라 지칭해도 틀리지 않으리라.
쇠락한 양반가 초씨 어르신의 한옥에는 식모살이를 떠난 누이, 공장에 들어간 이모, 다양한 이유로 삶을 꾸려가는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삶을 이어가고 있는 현장이라 그야말로 죄충우돌의 현장이 날마다 벌어지는 곳이다.
보이는것이 다가 아닌 사람의 이면에는 다양한 비밀들이 숨겨져 있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밝혀지는 그 비밀들에 놀람을 갖게되는 또다른 이들의 모습에서 시간은 흘러도 여전히 우리 삶의 순간은 변하지 않는 그대로임을 확인할 수 있게 된다.
다만 나, 우리가 사는 삶의 환경만은 그 옛날의 삶의 현장과 같지 않아 부둥겨 안고 서로를 위로하며 따듯한 감정을 교류하던 기억을 이제는 더이상 공유할 수 없다는 사실이 매우 안타까운 일이자 나, 우리 사는 사회의 각박해진 모습을 인식하고 다시금 그러한 사회로 돌아갈 수 있게 하려는 작가의 의도를 그 시절에 대한 그리움과 안타까움으로 읽어볼 수 있을것 같다.
그리움은 보고 싶어 애타는 마음이다.
나, 우리의 기억속에도 그리움의 대상은 존재한다. 그것이 사람이든 또는 시절이든, 또는 물건이든 하나 이상의 그리움의 대상이 존재하지만 앵두네 집의 그 시절 그 때의 사람들의 삶을 그리워 하는 일을 삶을 녹여내어 살았던 치매 노인의 그리움으로만 치부하기에는 너무도 안타깝고 아픈 일이 될것 같다.
뿌리를 모른다면 자신의 정체성 마져 의심할 수 밖에 없고 혼란스러움을 겪을 수 있는 일이 될 것이다.
지난 시간의 나, 우리의 삶의 족적을 들여다 보는 일이 치매 노인만이 갖는 그리움이 아니라 오늘을 사는 나, 우리 역시 그러한 시대의 삶을 이해하고 오늘의 삶에 연결지을 때 비로소 단순한 그리움이 아닌 삶의 현장으로써 이해될 것으로 판단해 본다.
한 편의 영화로 만들어도 좋을, 따스함과 그리움이 묻어나는 삶을 기억하고 싶다.
**네이버 카페 책과콩나무의 지원으로
개인적 의견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