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넷 딸, 여든둘 아빠와 엉망진창 이별을 시작하다
김희연 지음 / 디멘시아북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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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나, 오늘의 나, 그리고 내일의 나는 내가 생각하는 나일 수 있는가? 하는 물음에 그렇다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왜 이러한 말을 하는가 의아해 할 수도 있는 이들이 있으리라.

인간은 나이듦에 따라 어제는 잊어버리더라도 오늘의 나와는 다른 내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무척이나 농후함을 인식할 수 있다.

인간의 삶이라는 대상이 인과관계에 의해 삶의 모든 선택들이 나이들어 맞게 되는 결과가 바로 나를 우리를 온전히 내가 생각하고 바라는 나로 온전히 있지 못하게 하는 까닭이나 원인, 결과가 될 수도 있다.

삶과 죽음은 양면성을 가진 존재감으로 우리는 대한다.

삶의 순간이 어떠 했든 죽음을 맞이하기 전에는 나뿐 아니라 나를 기억하는 모든 이들에게 과거, 현재의 내가 아닌 모습으로 읽혀지게 되는 불편함을 목도하게 한다.

딸과 아빠의 이별, 그냥 이별이 아닌 엉망진창 이별이라니 어쩌면 진한 삶의 현장 속에 드리운 사랑과 죽음에 대한 향기를 맞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며 읽어본다.



이 책 "서른넷 딸, 여든둘 아빠와 엉망진창이별을 시작하다" 는 나, 우리 누구나 마주할 수 있는 삶의 순간들 속에 존재하는 이별의 과정을 고스란히 지면으로 옮겨 놓아 나, 우리의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이별의 과정을 되돌아 보며 반성과 깨달음을 얻게 하는 시간을 갖게 해주는 책이다.

누군가의 삶과 죽음에 이르는 과정은 한편의 드라마와도 같으면서도 그것을 바라보는 나, 우리의 마음 속에 애잔한 마음과 동병상련의 슬픔같은 느낌을 오롯이 전해준다.

물론 삶이 전해주는 것이 슬픔만이 있는것이 아니기에 저마다의 삶의 이야기들은 각각의 재미와 슬픔과 사랑과 아픔들이 녹아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애써 부인하고 싶지 않은 일은 사랑했던 가족, 부모, 형제, 자매와의 영원한 이별을 마주하는 일이고 그러한 이별은 완성되지 못한 인생과 삶에 대한 후회와 반성으로 나, 우리의 삶의 변화를 꾀하게 된다.

어쩌면 삶이라는 시공간을 함께하며 우리는 자신이 원하지 않는 자신의 모습으로 살아 왔음을 목도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러한 상황은 오롯이 공허라는 이름으로 나의 존재를 구멍속으로 밀어 넣는 결과를 낳는다.

애써 부인하지 않아도 그 공허는 애증의 대상으로 존재한 그들의 삶이 가로막은 상처로 기억될 뿐이다.



저자 역시 아빠와 함께 한 삶에서 그러한 공허를 느꼈음을 밝힌다.

누구나 다 그러하다 말할 수는 없겠지만 적잖이 그러한 사례들을 마주할 수 있는 일들은 우리가 드러내고 싶지 않은 나의 치부이자 속살이기에 아픔으로 배태되는 고통으로 묻어 두고자 함이리라.

그러나 그러한 외면은 나, 우리의 삶에 있어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

생각지도 못했던 질병으로 고통을 받는다든지 혹은 여전히 해결하지 못한 채 맞은 영원한 이별에 나 스스로 무너져 내려 아픔을 삭이게 되는 현실을 맞이하든 다양한 고통의 모습을 경험하게 될 수도 있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사는 나, 우리의 삶도 엄연히 나라는 존재의 독립적인 의식이 중요하다.

뗄 수 없는 혈연의 의미를 외면하라는 말이 아니라 가족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애증의 일들을 영원이라는 이별을 앞두고는 원만히 해결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야 한다는 사실을 저자의 글을 읽으며 전해보고 싶다.

그러하지 못했기에 더더욱 저자의 글에, 생각에 공감을 하며 더 나은 나의 삶을 위해 엉망진창인 이별이 되더라도 온전한 삶을 위해 단단한 나로의 삶을 꾀해 볼 일이다.


**네이버 카페 책과콩나무의 지원으로 

                개인적 의견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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