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지내요
시그리드 누네즈 지음, 정소영 옮김 / 엘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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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인사말 안녕하세요?의 의미를 아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과거에는 먹고 삶의 환경의 힘들어 밤새 세상을 떠나는 일들이 많았기에 밤새 안녕하신가를 묻는 이야기라는 의미를 이해한다면 어떻게 지내요 역시 살아 있음을, 삶에 대한 물음을 뜻한다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물론 삶에 대한 질문이기에 사람들을 향한 사랑이 오롯이 베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사용하는 언어 하나에도 사랑의 의미를 느껴볼 수 있는 일은 언어에 대한 민감한 촉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을것 같다.

삶이 있기에 죽음이 존재한다는 필연적 상황을 통해 '어떻게' 라는 공통적 의식을 삶에 두기보다 죽음에 두어 현실의 삶에 대한 강박을 떨쳐내고 스스로의 삶을 독립시킬 수도 있다.


시한부 삶을 판정받은 존재의 오늘은 무엇에 더 애착이 생길까 궁금해 진다.

얼마남지 않은 삶에 대한 애착일까, 아니면 어떻게 잘 죽어야 할까를 고민하게 되는것에 대한 애착일까?

깔끔하고 산뜻한 죽음, 고통없이 한 방에 훅- 갈 수 있다면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죽음에 대해 두려워 하는 일은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그렇지만 나의 죽음을 알아 줄 누군가 한 사람은 있었으면 좋겠다는 나를 위한 위로는 내게는 바램이지만 친구 혹은 같이 있어 줄 사람에게는 당혹, 연민, 공감 등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 질지 자못 의심스럽고 궁금하다.

이미 내 사정에 대한 이해를 한 친구, 연인이기에 나의 죽음을 향한 여행에 동참한 친구, 연인 이기에 어쩌면 그 자신의 죽음과는 다르게 느껴지기 보다 마치 자신의 죽음을 곁에서 지켜보게 되는 기시감을 느끼고 공감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판단을 해보게 된다.

물론 죽음을 대하는 존재에 대한 사랑이 표현할 수 없는 마음과 감정의 고양으로 드러나지만 그 찰나적 순간에도 우리는 서로의 언어에 대한 명징한 다름, 언어의 온도에 대한 차이를 느낄 수 있으리라 판단한다.


같은 공간, 장소에 같은 민족이라는 동질성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우리가 쓰는 언어가 모두 같은 의미, 온도를 가지고 있다 생각할 수는 없다.

사랑하는 사람 끼리의 언어의 온도도 미세한 차이를 느낄 수 있듯이 죽음을, 헤어짐을 앞둔 사람들의 언어에는 어떤 의미가 전달될지, 죽음 마저도 온전히 내 삶의 일부로, 내가 처리해야 할 하나의 과정으로 느끼는 것을 통해 삶과 인생에 대한 유혹의 시선을 느껴본다.



**네이버 카페 책과콩나무의 서평으로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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