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자 뉴욕타임즈에서는 반 고흐 사망 직전 최후 작품 나무고동tree roots에 얽힌 프랑스 마을의 갈등을 소개한다
아마 충동적으로 죽었기 때문이겠지만 반 고흐가 죽기 전에 남긴 마지막 작품의 년도와 위치가 특정되지 않았었는데 2020년에 이르러 프랑스 파리근교의 예술마을 우베르 쉬르 우아즈(Auvers-sur-Oise)의 한 언덕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기사는 마을과 사유지 소유주 간에 법적갈등, 사유재산권과 문화유산의 공공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내가 조금 더 인상깊었던 것은 디테일에 대한 천착이다

그림에서 보이는 나무뿌리는 팬들이 '코끼리'라 부르는 블랙 로커스트(Black Locust) 나무의 일부다.
전문가들은 반 고흐가 그린 생전 최후 작품이 이 나무뿌리를 그렸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검증을 위해 많은 노력을 했을 것이다.
아래 사진에서처럼 그림에서 보이는 뿌리 하나를 특정하기 위해 온갖 로케를 돌아다녔을 것이다

미술사박사와 학예사의 전문성이 존중받아야하는 이유다. 미세한 한 분야에 대한 윤리적 책임을 진다. 설령 그 의미를 아무도 이해못할지라도
유럽사도 자국사연구는 어렵다. 장기간의 훈련을 요한다
해외에 대중화된 유럽사는 유럽 내부에서 연구하는 자국사에 비하면 열화된, 다운그레이드된 버전이다. 로컬 입맛에 개량된 음식과 같다.
제대로 유럽에서 유럽사를 하려면 어마무시한 디테일을 습득해야한다. 그들의 학술적 논의에 핀셋을 꽃고 내 주장 한 숟가락 얻는 것은 매우 쉽지 않다. 라틴어부터 시작해 국제학술용 영어외에도 독일어 프랑스어 메이저 언어는 자유자재로 해야하고 온갖 건축장식명, 족보, 왕족가계도, 교우관계, 경제사, 법제사 알아야할 것 투성이다. 예를 들어 옛날에 Dumbarton oaks 중세사 학술지를 도서관에 신청했었는데 도저히 몇 페이지를 읽을 수조차 없었다
한국사도 마찬가지다. 시험으로 배우는 한국사와 전문한국사연구서는 큰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고문서, 산송, 예송논쟁 등. 한문부터 시작해서 장기간의 훈련을 요한다. 그 결과 대중과 소통하기 어려워져버린다. 한국말을 하고 있는데 도통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어져 버리고 상아탑 속 그들만의 리그가 된다. 그 괴리마저 연구자의 고뇌의 한 부분일지니
https://www.nytimes.com/2025/04/15/world/europe/van-gogh-tree-roots-france-auvers-sur-oise.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