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종교의 외투를 입은 정치 스릴러


2. 흑인은 성추문으로 백인은 매관매직, 탐욕과 무능력으로 물러선다. 마지막이 압권


3. 화면 전체에 글자를 표시하는 게 몇 년전부터 트렌드다.


애플TV 드라마 <파친코>에서 오사카 등 도시 표시할 때,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가여운 것들>에서도 파리 등 도시표시할 때,그외에도 굉장히 여러 영화에서 이런 장면을 연출했다.


4. 감각적이 영화연출에 편집도 좋고 각본도 잘 썼다. 영어 대사 전달력과 리듬감을 동시에 구비하게 정말 잘 썼다.


5. 이탈리아어, 영어, 중세라틴어, 스페인어가 맥락에 따라 아주 훌륭하게 다듬어져 쓰인다.


6. 전반부에서 테데스코 추기경이 교회의 보편성에 대해 말하는 로렌스 추기경에게 실상은 그렇지 않다고 영어권, 이탈리아, 프랑스, 남미, 아프리카 등 언어와 문화가 통하는 사람들끼리 앉았다고 말하는 부분이 흥미롭다.


7. 계속 반복되는 라틴어 기도문은 거의 외울 정도다.


Testor Christum Dominum, qui me iudicaturus est, me eum eligere, quem secundum Deum iudico eligi debere.

테스토르 크리스툼 도미눔 쿠이 메 유디카투루스 에스트 메 에움 엘리제레 쿠엠 세쿤둠 데움 유디코 엘리지 데베레


여기서 g를 연음화해서 ㅈ로 발음하는 이유는 중세 교회 라틴어라서다. 키케로 등 고전 라틴어는 경음으로 ㄱ로 발음한다.


8. 나무위키 한글 번역은 다음과 같이 되어있다.

저의 주님이시며 심판자이신 그리스도님, 이 표가 하느님 뜻을 헤아려 제가 뽑혀 마땅하다고 생각한 사람에게 행사되나이다.



그러나 라틴어 직역하면 조금 더 이런 말에 가깝다. 

나를 심판하실 주님이신 그리스도를 증인으로 모시고, 내가 하느님 뜻에 따라 마땅히 선택되어야 한다고 판단하는 이를 내가 선택함을 증언합니다.


1) Testor Christum Dominum은 주절이다.

주어+동사는 테스토르= 증언한다(I call, I testify, I call as witness)라는 뜻이다. deponent이태동사로, 뜻은 능동인데 모습은 수동인 동사다.


Testor Christum Dominum

S V             O

주님이신 그리스도를 증인으로 모시고

I call Christ the Lord

I bear witness to Christ the Lord


Christ 그리스도는 구원자라는 뜻이고

Dominus 주인은 말 그대로다.

두 개가 동격이다. 주인이신 그리스도, 주인=그리스도


2) Christum Dominum을 수식하는 관계사절이다.

qui me iudicaturus est


qui 는 주인이신 그리스도를 수식하는 관계대명사(주격 남성단수)

me 는 대격 단수로 목적어 '나를'

iudicaturus est 는 미래 능동 분사 남성 단수에 esse(be 동사)가 붙어 Future active periphrastic다. 확실히 미래가 아니고 다가올 미래의 느낌이다. is to judge, is going to judge.

미래 능동 분사는 과거 수동 분사 iudicatum에 um떼고 urus붙인다.


합쳐서 who is going to judge me

나를 심판하실 (주님이신 그리스도님을)

(will judge가 아니다. 심판할 것이다, 가 아니라, 미래보다는 조금 더 앞선 전미래의 느낌이고, 그 느낌을 주면서 당위성도 부여한다. 심판하게 되실)


3) 간접문으로 목적어-부정사 구조다. 간접문은 고전라틴어에서 더 많이 철저하게 배우지만 중세 라틴어에 없는게 아니다. 

me eum eligere

~~하는 이를(그를) 내가 선택함을 (증언합니다.)


여기서 대격이 두 번 나오는데 하나는 주어고, 다른 하나는 목적어이며, 간접문에서 대격+부정사로 주어+동사를 나타낸다.


me → 대격 주어로, 나를 아니고 나는이다. 형태는 목적어이지만, 문법구조상 그렇게 표현하는 것이다.

eum → 대격 목적어, 그를 -> 여기서는 quem의 수식을 받아 ~하는 이를

eligere → 현재 능동 부정사. 선택하다.

that I choose him.

내가 그를 선택한다는 것을

내가 그를 선택함을

~하는 이를 내가 선택함을


4) 관계사절

quem secundum Deum iudico eligi debere


quem → 대격 남성 단수, eum을 수식한다. ~하는 그, ~하는 이

secundum Deum → 합쳐서 주님의 뜻에 따라, according to God이다. secundum 다음에는 대격이다.

iudico → 1인칭 단수 현재 능동 직설 내가 판단한다. I judge

eligi → 현재 수동 부정사 선택되어야 한다.

debere → 현재 능동 부정사 마땅히 

->여기서 이중 부정사다. 주동사 iudico가 부정사 debere를 지배하고, debere는 다시 부정사 eligi를 취한다.


유디코 iudico 내가 판단한다 + 데베레 debere 마땅히 + 엘리지 eligi 선택되어야한다

->내가 마땅히 선택되어야한다고 판단하는


whom I judge ought to be chosen according to God.

(하느님 뜻에 따라) 내가 마땅히 선택되어야 한다고 판단하는



5) 최종적으로 이렇게 되는데, 우리말의 흐름을 고려해 testor 증언하다를 두 번 써야 자연스럽다.


<Testor Christum Dominum,> (qui me iudicaturus est,) 

<테스토르 크리스툼 도미눔> 쿠이 메 유디카투루스 에스트 

(나를 심판하실) <주님이신 그리스도를 증인으로 모시고,> 


(me eum eligere,) quem <secundum Deum> iudico (eligi debere.)

(메 에움 엘리제레) 쿠엠 <세쿤둠 데움> 유디코 (엘리지 데베레)

내가 <하느님 뜻에 따라> (마땅히 선택되어야 한다고) 판단하는 (이를 내가 선택함을) + 증언합니다.


I call Christ the Lord, who is going to judge me, to witness that I choose him whom I judge, according to God, ought to be chosen.



이 말의 속내는 투표권은 인간인 내가 선택하는데, 나는 하느님의 주권 아래에 있고, 내가 선택하는 사람은 하느님이 선택하실 법할 사람이라는 것이다.

하느님은 구원자이자 주인이다. 그 주인이자 구원자를 내 증인으로 삼는다. 그 분은 나를 심판하실 분이다. 나는 자발적으로 투표하는데, 하느님께서 선택하셔야 할 사람을 내가 선택한다. 이 선택과정을 하느님이 증언하신다.



그냥 천둥벌거숭이처럼 내 맘대로 투표한다는 게 아니다. 이후 나를 심판하게되실 주님이 있고, 그분을 구원자로 모시는 내가 있으니, 내 선택은 한편에서는 주님의 뜻을 대리하는 것이고, 한편에서는 다른 사람에게 영향받지 않고 내 스스로 생각해서 자발적으로 의사표현하는 것이다.


이 점을 이해하면 왜 성추문의 아데예미 추기경 투표가 52표에서 9표로 줄어들었는지가 이해되고


이 점을 이해하면 왜 그 모든 봉쇄의 노력을 해서 외부 압력없이 투표하는지가 이해된다.


다만, 콘클라베의 목적은 영주, 귀족, 왕족의 정치적 압력을 피하려는 것이었는데 그런 압력을 피한다고해도


추기경 간의 정치싸움은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아울러, 최신 기술로 전체를 도청불가능하게 막고해도, 밖에서 들어오는 정보라인이 로렌스추기경에게는 있다


정말 최선의 인물이 아니라, 그나마 나은 차악을 선택한다는 점에서 오늘날 정치 상황이 일부 반영되어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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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잃어버린 사회 - 시대를 앞서간 천재 버트런드 러셀의 비판적 세상 읽기
버트런드 러셀 지음, 장석봉 옮김 / 21세기북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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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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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쳐 지나가다가 어떤 SNS 글에 위의 책 추천이 있었다.


1차 세계 대전 이후, 10개국이 미국에 100억 달러(오늘날 가치로 1,900억 달러) 이상을 빚졌는데, 영국의 부채는 46억 달러로 절반 가까이. 당시 미국 재무장관 앤드류 멜론과 당시 영국 재무장관 윈스턴 처칠 스토리를 입체적으로 조망한 이야기


라고 했다. 흥미가 생겨서 주말 독서로 괜찮겠다 싶었다. 책을 구해서 읽었는데


4.6 billion 이라는 부분이 없었다. 4장에 가서 13국이 40억 달러 빚졌다 같은 표현은 있었는데, 검색으로도 한참 찾다가 글작성자님에게 문의했다. WSJ에서 본 서평이라고 했다.


이러면 이해가 된다. WSJ 서평자가 책이 아니라 다른 데서 얻은 정보랑 함께 요약해둔 것이었다.



https://www.wsj.com/arts-culture/books/mellon-vs-churchill-review-the-payback-problem-23453b9f


WSJ는 유료 구독해야 볼 수 있고, 다음 사이트에서 기사 일부를 볼 수 있다.


https://www.magzter.com/ja/stories/newspaper/The-Wall-Street-Journal/A-FEW-BILLION-BETWEEN-FRIENDS?srsltid=AfmBOooH1r2NLpG2wEJaQ6ENBL9v6i1U-ijHm1WDPBokmF6dA5EJEBsl


In a nutshell, the debt story of the 1920s goes like this. Following World War I, 10 countries owed the U.S. more than $10 billion ($190 billion in today's money), most of which had been used to purchase U.S. goods and munitions during the conflict. Britain's share of the debt, the largest, was $4.6 billion; France owed $4 billion. Their economies in shambles, however, they were in no position to commence timely and full repayment.


그냥 스윽 스윽 읽다가 11장에서 재밌는 것을 발견


Reporters asked American signatories to the bankers’ manifesto to explain why they supported high tariffs in the United States and no tariffs in Europe. They replied defensively, “It is only the European tariff that is bad. The American tariff is a different matter.



기자들은 은행가들의 선언문에 서명한 미국 측 인사들(signatories)에게 왜 미국에서는 높은 관세를 지지하면서 유럽에서는 무관세를 지지하는지 설명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방어적으로 답하기를,

"문제가 되는 것은 유럽의 관세뿐이다. 미국의 관세는 다른 문제다"






약 70년이후에 같은 문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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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썼던 <에밀리아 페레즈> 리뷰에서 멕시코인들이 멕시코에 대한 스테레오 타입적 묘사에 불만이 많다는 부분을 쓰다가 그 부분이 길어져서 따로 페이퍼를 발행한다.


---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뿐 아니라 <조이 라이드(Joy Ride)> 디즈니의 <터닝 레드(Turning Red)> 모두 한국, 중국, 일본, 베트남, 말레이시아 등 다양한 아시아 문화 요소를 서양인이 나름 혼합해서 만든 작품인데, 아시아 현지인들의 반응은 대체로 부정적이었다. 아니, 부정적이라기보다 거의 끔찍했다. 


아시아 현지인인은 이런 미국-유럽적 느낌의 문화적 뒤섞임을 부자연스럽고 어색하다고 생각한다. 다소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체적으로 하나의 역사와 민족으로 역사가 이어져왔다는 굳은 믿음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미국유럽이 다양한 혼종적 문화에 기반을 둔 것과 정반대다. 유럽인은 학교에서 국사(national history)를 배우지 않는다. 내가 아는 한에서 한국과 일본만 국사라는 말을 쓴다. 중국인은 중국사도 있지만 그보다 더 분절된 명사 청사로 네이밍을 한다. 


한편 유럽인은 유럽사(european history)를 배운다. 프랑스인도 자국사를 공부하는 과정에서 영국과 독일사를 배운다. 제2차세계대전사는 거의 유럽 전역의 역사다. 순수하게 프랑스만 정류한 역사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유럽 안에서 산맥으로 구분된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와 해협으로 구분된 영국 정도를 제외하고는 다 평지다. 따라서 신속하고 자유로운 이동이 가능했고 곧 침략과 정벌도 신속하게 자유롭게 가능했다. 그러니 정치와 영토와 문화와 언어가 깔끔하게 나뉘지 않는다. 한 역사=한 언어=한 문화=정확한 국경 안의 한 국가라는 도식이 힘들다는 말이다. 예컨대 폴란드는 무조건 러시아와 독일을 같이 알아야한다. 프랑스도 기원은 로마이고 로마는 이탈리아사다. 


그러니 우리가 역사를 이해하는 것과 유럽이 역사를 이해하는 것은 같지 않다. 사고방식과 패턴이 완전히 다르다. 미국사도 거의 이런 느낌이다. 기원이 유럽인이고, 이민자를 받아들여 국가구조를 만들었기 때문에 순수한 미국사를 만들 수가 없다. 살고 있는 땅의 기원은 원주민이다. 우리 느낌으로 삼국시대, 일본 느낌으로 무로마치 시대, 중국 느낌으로 선진, 5호16국 같은 느낌이 없다. 가장 가까운 역사는 컬럼비아 이전 시대precolumbian period인데, 문자가 없거나 미약했던 미국원주민사를 토기, 도구, 생태, 무덤 등을 통해 탐구한다는 의미에서 이 역사는 고고학+문화인류학을 섞어 놓은 느낌의 특이한 역사다.


물론 우리 수능과목에도 동아시아사가 신설되었지만, 중국사와 일본사와 기타 아시아사를 기계적으로 조립해놓은 과목이다. 청소년에게 동아시아사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넓히는 효과는 분명히 있지만, 유럽에서 배우는 유럽사 느낌의 혼종적인 교류사는 아니다. 둘 다 배우고 가르쳐본 사람으로서 느끼는 바이다.


미국유럽인 입장에서 아시아사를 볼 때 자기들의 원형적 이해에 따라 혼종적으로 파악하고 묘사하는데서 아시아인들의 불만이 발생한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문제가 없다. 자기네 나라에 들어와있는 아시아계 교포들을 묶어 생각하면 더더욱 이해가 된다고 여긴다. 왜 섞는게 문제인데?


그러니 미국유럽의 문화적 이해를 아시아의 문화적 이해로 동치시켜서 비교하면 절대 그들은 이해못한다. 원래 그들의 역사문화는 섞여있는 것이다.


다시 문제를 정리하면 구미 역사에서 여러 문화와 인종이 섞여 만들어졌기 때문에 다른 문화나 나라를 바라볼 때도 그런 방식으로 접근한다. 그리고 영화를 만들 때도 아시아의 다양한 문화적 요소를 샐러드처럼 섞는다.


이탈리아 빌라에서 살면서 스코틀랜드 킬트를 입고, 그 위에 바이킹 갑옷을 걸치고, 머리에는 프랑스 베레모, 아래는 미국 청바지, 독일 맥주를 마시는 느낌은 유럽에서 크게 이질적이지 않다.


그 느낌 그대로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에서는 태국식 사원과 베트남 아오자이 의상, 대나무 숲 옆 수상 배, 일부 조선 건축과 한지, 일본 사무라이 갑옷과 다도, 비늘 달린 용, 그리고 중국 치파오를 입은 도라가 함께 어우러진 쿠만드라를 그렸다. 전통문화 기반이라 홍콩식 디스토피아 사이버펑크를 안 그린 것이 다행이랄까. 


아시아인은 이를 불쾌해한다. <에밀리아 페레즈>를 보는 멕시코인이 자국문화와 풍경을 제대로 묘사하지 않았다는 불만과 동일한 감정이다.


아시아에서는 역사와 문화가 유럽인들에게 종교와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 점이 중요하다. 아시아인들은 역사문화를 다른나라의 역사문화와 섞는 혼합을 극도로 싫어한다. 정통성을 훼손한다고 생각한다. 역사문화를 말하는 데 정통성을 논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미국유럽인은 역사문화에서 정통성을 논하지 않는다. 정통성은 종교에서만 논한다.


저명한 동아시아학자이자 미국 외교관이었던 에드윈 라이샤워(Edwin Reischauer)는 아시아인에게 역사는 종교와 같다고 했다. 유럽+중동지역사람들에게 종교는 절대 타협불가능한 것이다. 이란인은 종교가 없는 무신론이라는 개념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한다. 그건 마치 밀로 만들어지지 않은 빵을 상상하는 것과 같을지도 모른다. (외국에는 우리네 쌀빵이라는 개념이 없다는 가정하에) 유럽사람들이 많이 정치와 종교분리원칙을 세웠다고 하고 요즘은 옛날 교회가 클럽이나 에어비앤비로 바뀌는 신성모독적인 경우가 많아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한 기독교 안에서 아일랜드인은 싸우고, 유럽 내 이슬람 혐오가 있고, 기독교 안에서도 수많은 파벌로 나뉘어있다. 많이들 종교에서 벗어났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종교의 영향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정치와 종교의 분리 원칙은 종교 때문에 전쟁을 해서 생긴 것이고, 그 말은 곧 종교 때문에 전쟁도 불사한다는 의미다. 아시아에서 종교 때문에 전쟁이 일어나는 경우는 유럽만큼은 없다. (태국 미얀마 등 제외) 분쟁이나 다툼은 있을 수 있지만, 1080배를 하지 않는다고 침략을 한다? 순복음교회 세력에 대항해서 대승불교가 총질을 한다? 가톨릭이 성공회에 폭탄을 던진다? 그런 일은 여기서는 없다. 아시아는 종교가 아니라 역사를 공격하면 싸운다. 한국과 일본의 성직자들은 종교가 사이좋게 공존한다고 하지만, 그건 유럽에서 종교에 대한 위치가 동아시아에서는 역사이기 때문이다. 역사를 부정하는 사람은 신성모독과 같아 용서할 수 없다. 유럽에서 역사는 동아시아의 종교다. 이것도 있을 수 있고 저것도 있을 수 있다.


자, 그럼 거울치료를 해보자.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에서 보여지는 문화 혼합적 요소들을 유럽식으로 바꿔서 거울처럼 비춰보자는 것이다.


우리의 역사문화는 유럽의 종교이니, 그들이 우리 문화를 섞었다면, 우리는 그들의 종교를 섞어보자. 다양한 문화적 요소를 결합한 종교적 아이콘을 창조하는 것은 어떤 모습일까? 보수적인 미국 기독교인들과 유럽인들에게 큰 충격을 줄지도 모른다.


티벳 비구니처럼 삭발하고

힌두교 신처럼 여러 팔을 가진

흑인 성모마리아가

티베트 불교의 오색 천(룽타)로 만든 

베로니카의 수건에

인도 수행자처럼 붉은 점(빈디)를 찍은 예수의 얼굴을 일본 우키요예 사무라이처럼 묘사되고

뒤에 천사는 도교의 선녀,

십자가는 인도네시아와 태국 불교의 문양과 옥.


이런 느낌?



베네치아 곤돌라를 타고 네스호를 건너며, 

로마군의 사슬갑옷(lorica hamata)을 입고, 

프랑스 초콜릿 크루아상을 먹으며, 

미국 카우보이 모자를 흔들고, 

영국 트위드 코트를 걸친 채, 

바이킹 뿔 투구를 쓰고, 

성 슈테판 대성당 앞에서 

페인 플라멩코 음악에 맞춰 춤을 추다가

중동풍 EDM을 배경 음악으로 러시아 문학을 낭독하며

폴란드 폴카를 흥얼거리고, 네덜란드 풍차 아래서 아일랜드 백파이프 연주자의 세레나데를 듣다가

그리스 토가를 입고 스웨덴 통나무집 앞에 서 있는 장면은


구미에서는 아무 문제 없다. 구미에서 자란 교포들도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아시아 교포들일수록 자신의 뿌리를 일부 가져와서 사용하기 위해 섞게 된다. 그리고 그 작품을 본 이민 2세대 어머니와 할머니는 손사레를 치게 된다.


뉴욕의 어느 거리에서 일본 기모노를 입고 대만 화교가 운영하는 떡볶이집에서 차우멘을 함께 먹으며 태국 과일을 후식으로 먹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인데도 말이다.


서구 작가들은 아시아 서사를 오리엔탈리즘적 관점에서 다루며 문화를 하이브리드로 여기고

미국 태생 아시아 작가들은 그 영향을 받아 아시아 여러 문화 요소를 뒤섞는 경향이 있는데

아시아 본토 작가들은 자국 역사문화를 우선시한다. 그렇지만 영어 사용 능력이나 문화적 뉘앙스를 전달하는 데 각본이나 연출에서 국제적으로 받아들이기 부자연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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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멕시코에 대한 스테레오 타입적 묘사로 멕시코 현지 분위기는 꽤 나쁜 모양이다.

태국, 중국, 인도네시아, 베트남을 샐러드볼처럼 섞어놓은 듯한 디즈니의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Raya and the Last Dragon)>만큼 스테레오 범벅이겠나 싶지만, 미국과 유럽 정서에서는 어느정도 이해되는 부분이 있다. 끊임없이 이민자가 들어와 형성하는 섞어찌개 문화에서는 혼종적 문화가 당연한 것이고, 모든 문화를 자기 것처럼 이해할 수 없다면 모든 문화를 다 피상적이고 표면적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다. 한 사람의 지적 깊이가 아무리 깊다고 해도, 어느 날에는 태국인처럼 태국어를 하고 짜끄리왕조와 태국불교를 이해했다가 어느 날에는 일본인처럼 일본어를 하고 에도문화와 우키요예를 이해할 수는 없다.


그래도 나는 <에밀리아 페레즈>도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도 다 재밌게 봤다. 오리엔탈리즘, 스테레오타입이라고 해서 작품 자체의 흥미로움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2. 몇 가지 넘버에서 특이한 것들이 있었다. 이 영화가 아니었으면 구현되지 않았을 넘버들


1) 방콕 성전환 수술장에서의 뮤지컬. ~제거, ~수술을 대사로 부르다니!


2)이스라엘 의사와의 듀엣 (보통 듀엣은 사랑이나 꿈을 대상으로 하는데, 수술하겠다 안하겠다, 수술 하면 인생이 바뀐다 안 바뀐다로 하모니를 만들어내는 부분)


3)아이가 꾸물꾸물 거리는 부분


3. 앞은 전형적이 뮤지컬인데 뒤로 갈수록 드라마가 된다.


4. 중간에 에밀리아가 과거 남편과의 경험과 생각을 추궁하는 듯한 부분이 있었다.


5. 셀레나 고메즈의 넘버에서

que amen, amen하는 부분이 있는데

접속법은 중간 모음을 하나 전환시켜주어서 원래 amar 사랑하다 1군동사의 3인칭 복수 접속법은 amen이다. aman이 amen이된 것. 접속법은 감정, 불확실성 등을 전달할 때 사용한다. 사랑한다가 아니라 사랑할 것 같다, 사랑한 듯하다.  정도의 의미다.

이 스페인어 접속법 amen을 예배나 미사에서 낭독과 기도 후 맞습니다, 진실로 그렇습니다라는 의미인 amen아멘으로 연결지었다.

흥미롭다고 생각했다.


6.  클라이맥스에서 부인에게 포주놈과 붙어먹었다고 흥분해서 말하는 신이 있다.

포주는 proxeneta, padrote 두 가지 단어로 표현되었다. 전자가 포주를 일컫는 법적용어이고, 후자는 부친padre라는 말에서 비롯된 슬랭이다. 멕시코와 일부 라틴아메리카에서만 사용된다. 


7. 대사에서 멍청이라는 욕이 종종 등장하는데, 뻰데호 pendejo다. 


8. 주여배우는 가오갤의 가모라, 부인역으 셀레나 고메즈. 둘 다 독특한 마스크다. 


9. 멕시코의 평지를 권력자의 시선으로 산 위의 별장에서 조감하는 신은 <보고타>가 생각나고

멕시코 가정부 묘사는 <로마>

멕시코 마약갱 묘사는 <시카리오> 가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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