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금 썼던 <에밀리아 페레즈> 리뷰에서 멕시코인들이 멕시코에 대한 스테레오 타입적 묘사에 불만이 많다는 부분을 쓰다가 그 부분이 길어져서 따로 페이퍼를 발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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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야와 마지막 드래곤>뿐 아니라 <조이 라이드(Joy Ride)> 디즈니의 <터닝 레드(Turning Red)> 모두 한국, 중국, 일본, 베트남, 말레이시아 등 다양한 아시아 문화 요소를 서양인이 나름 혼합해서 만든 작품인데, 아시아 현지인들의 반응은 대체로 부정적이었다. 아니, 부정적이라기보다 거의 끔찍했다.
아시아 현지인인은 이런 미국-유럽적 느낌의 문화적 뒤섞임을 부자연스럽고 어색하다고 생각한다. 다소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체적으로 하나의 역사와 민족으로 역사가 이어져왔다는 굳은 믿음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미국유럽이 다양한 혼종적 문화에 기반을 둔 것과 정반대다. 유럽인은 학교에서 국사(national history)를 배우지 않는다. 내가 아는 한에서 한국과 일본만 국사라는 말을 쓴다. 중국인은 중국사도 있지만 그보다 더 분절된 명사 청사로 네이밍을 한다.
한편 유럽인은 유럽사(european history)를 배운다. 프랑스인도 자국사를 공부하는 과정에서 영국과 독일사를 배운다. 제2차세계대전사는 거의 유럽 전역의 역사다. 순수하게 프랑스만 정류한 역사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유럽 안에서 산맥으로 구분된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와 해협으로 구분된 영국 정도를 제외하고는 다 평지다. 따라서 신속하고 자유로운 이동이 가능했고 곧 침략과 정벌도 신속하게 자유롭게 가능했다. 그러니 정치와 영토와 문화와 언어가 깔끔하게 나뉘지 않는다. 한 역사=한 언어=한 문화=정확한 국경 안의 한 국가라는 도식이 힘들다는 말이다. 예컨대 폴란드는 무조건 러시아와 독일을 같이 알아야한다. 프랑스도 기원은 로마이고 로마는 이탈리아사다.
그러니 우리가 역사를 이해하는 것과 유럽이 역사를 이해하는 것은 같지 않다. 사고방식과 패턴이 완전히 다르다. 미국사도 거의 이런 느낌이다. 기원이 유럽인이고, 이민자를 받아들여 국가구조를 만들었기 때문에 순수한 미국사를 만들 수가 없다. 살고 있는 땅의 기원은 원주민이다. 우리 느낌으로 삼국시대, 일본 느낌으로 무로마치 시대, 중국 느낌으로 선진, 5호16국 같은 느낌이 없다. 가장 가까운 역사는 컬럼비아 이전 시대precolumbian period인데, 문자가 없거나 미약했던 미국원주민사를 토기, 도구, 생태, 무덤 등을 통해 탐구한다는 의미에서 이 역사는 고고학+문화인류학을 섞어 놓은 느낌의 특이한 역사다.
물론 우리 수능과목에도 동아시아사가 신설되었지만, 중국사와 일본사와 기타 아시아사를 기계적으로 조립해놓은 과목이다. 청소년에게 동아시아사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넓히는 효과는 분명히 있지만, 유럽에서 배우는 유럽사 느낌의 혼종적인 교류사는 아니다. 둘 다 배우고 가르쳐본 사람으로서 느끼는 바이다.
미국유럽인 입장에서 아시아사를 볼 때 자기들의 원형적 이해에 따라 혼종적으로 파악하고 묘사하는데서 아시아인들의 불만이 발생한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문제가 없다. 자기네 나라에 들어와있는 아시아계 교포들을 묶어 생각하면 더더욱 이해가 된다고 여긴다. 왜 섞는게 문제인데?
그러니 미국유럽의 문화적 이해를 아시아의 문화적 이해로 동치시켜서 비교하면 절대 그들은 이해못한다. 원래 그들의 역사문화는 섞여있는 것이다.
다시 문제를 정리하면 구미 역사에서 여러 문화와 인종이 섞여 만들어졌기 때문에 다른 문화나 나라를 바라볼 때도 그런 방식으로 접근한다. 그리고 영화를 만들 때도 아시아의 다양한 문화적 요소를 샐러드처럼 섞는다.
이탈리아 빌라에서 살면서 스코틀랜드 킬트를 입고, 그 위에 바이킹 갑옷을 걸치고, 머리에는 프랑스 베레모, 아래는 미국 청바지, 독일 맥주를 마시는 느낌은 유럽에서 크게 이질적이지 않다.
그 느낌 그대로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에서는 태국식 사원과 베트남 아오자이 의상, 대나무 숲 옆 수상 배, 일부 조선 건축과 한지, 일본 사무라이 갑옷과 다도, 비늘 달린 용, 그리고 중국 치파오를 입은 도라가 함께 어우러진 쿠만드라를 그렸다. 전통문화 기반이라 홍콩식 디스토피아 사이버펑크를 안 그린 것이 다행이랄까.
아시아인은 이를 불쾌해한다. <에밀리아 페레즈>를 보는 멕시코인이 자국문화와 풍경을 제대로 묘사하지 않았다는 불만과 동일한 감정이다.
아시아에서는 역사와 문화가 유럽인들에게 종교와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 점이 중요하다. 아시아인들은 역사문화를 다른나라의 역사문화와 섞는 혼합을 극도로 싫어한다. 정통성을 훼손한다고 생각한다. 역사문화를 말하는 데 정통성을 논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미국유럽인은 역사문화에서 정통성을 논하지 않는다. 정통성은 종교에서만 논한다.
저명한 동아시아학자이자 미국 외교관이었던 에드윈 라이샤워(Edwin Reischauer)는 아시아인에게 역사는 종교와 같다고 했다. 유럽+중동지역사람들에게 종교는 절대 타협불가능한 것이다. 이란인은 종교가 없는 무신론이라는 개념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한다. 그건 마치 밀로 만들어지지 않은 빵을 상상하는 것과 같을지도 모른다. (외국에는 우리네 쌀빵이라는 개념이 없다는 가정하에) 유럽사람들이 많이 정치와 종교분리원칙을 세웠다고 하고 요즘은 옛날 교회가 클럽이나 에어비앤비로 바뀌는 신성모독적인 경우가 많아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한 기독교 안에서 아일랜드인은 싸우고, 유럽 내 이슬람 혐오가 있고, 기독교 안에서도 수많은 파벌로 나뉘어있다. 많이들 종교에서 벗어났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종교의 영향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정치와 종교의 분리 원칙은 종교 때문에 전쟁을 해서 생긴 것이고, 그 말은 곧 종교 때문에 전쟁도 불사한다는 의미다. 아시아에서 종교 때문에 전쟁이 일어나는 경우는 유럽만큼은 없다. (태국 미얀마 등 제외) 분쟁이나 다툼은 있을 수 있지만, 1080배를 하지 않는다고 침략을 한다? 순복음교회 세력에 대항해서 대승불교가 총질을 한다? 가톨릭이 성공회에 폭탄을 던진다? 그런 일은 여기서는 없다. 아시아는 종교가 아니라 역사를 공격하면 싸운다. 한국과 일본의 성직자들은 종교가 사이좋게 공존한다고 하지만, 그건 유럽에서 종교에 대한 위치가 동아시아에서는 역사이기 때문이다. 역사를 부정하는 사람은 신성모독과 같아 용서할 수 없다. 유럽에서 역사는 동아시아의 종교다. 이것도 있을 수 있고 저것도 있을 수 있다.
자, 그럼 거울치료를 해보자.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에서 보여지는 문화 혼합적 요소들을 유럽식으로 바꿔서 거울처럼 비춰보자는 것이다.
우리의 역사문화는 유럽의 종교이니, 그들이 우리 문화를 섞었다면, 우리는 그들의 종교를 섞어보자. 다양한 문화적 요소를 결합한 종교적 아이콘을 창조하는 것은 어떤 모습일까? 보수적인 미국 기독교인들과 유럽인들에게 큰 충격을 줄지도 모른다.
티벳 비구니처럼 삭발하고
힌두교 신처럼 여러 팔을 가진
흑인 성모마리아가
티베트 불교의 오색 천(룽타)로 만든
베로니카의 수건에
인도 수행자처럼 붉은 점(빈디)를 찍은 예수의 얼굴을 일본 우키요예 사무라이처럼 묘사되고
뒤에 천사는 도교의 선녀,
십자가는 인도네시아와 태국 불교의 문양과 옥.
이런 느낌?
베네치아 곤돌라를 타고 네스호를 건너며,
로마군의 사슬갑옷(lorica hamata)을 입고,
프랑스 초콜릿 크루아상을 먹으며,
미국 카우보이 모자를 흔들고,
영국 트위드 코트를 걸친 채,
바이킹 뿔 투구를 쓰고,
성 슈테판 대성당 앞에서
스페인 플라멩코 음악에 맞춰 춤을 추다가
중동풍 EDM을 배경 음악으로 러시아 문학을 낭독하며
폴란드 폴카를 흥얼거리고, 네덜란드 풍차 아래서 아일랜드 백파이프 연주자의 세레나데를 듣다가
그리스 토가를 입고 스웨덴 통나무집 앞에 서 있는 장면은
구미에서는 아무 문제 없다. 구미에서 자란 교포들도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아시아 교포들일수록 자신의 뿌리를 일부 가져와서 사용하기 위해 섞게 된다. 그리고 그 작품을 본 이민 2세대 어머니와 할머니는 손사레를 치게 된다.
뉴욕의 어느 거리에서 일본 기모노를 입고 대만 화교가 운영하는 떡볶이집에서 차우멘을 함께 먹으며 태국 과일을 후식으로 먹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인데도 말이다.
서구 작가들은 아시아 서사를 오리엔탈리즘적 관점에서 다루며 문화를 하이브리드로 여기고
미국 태생 아시아 작가들은 그 영향을 받아 아시아 여러 문화 요소를 뒤섞는 경향이 있는데
아시아 본토 작가들은 자국 역사문화를 우선시한다. 그렇지만 영어 사용 능력이나 문화적 뉘앙스를 전달하는 데 각본이나 연출에서 국제적으로 받아들이기 부자연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