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말

1. 날씨 덥다.

원래 6.26 장마시작이라 했는데 날씨 예보 쨍쨍하다.


2. 영화

올해 상반기는 블록버스터 기대작보다 전혀 예상못했는데 좋았던 독립영화가 많았고 하반기에는 영화가 별로 힘을 못 쓴다.


6월에는 디스클로져데이, 상자속의양, 토이스토리5인데 유명한 거장의 소소 평균작이다.

7.1 티모시 샬라메가 밥맛으로 나온다는 마티슈프림

(일본에서는 개봉했었는데 한국에서는 배급사문제로 뒤늦게 개봉)

7.15 나홍진의 호프, 8.5에 놀란의 오딧세이


3. 전시

늘 봄과 가을이 피크다. 3-6월이 좋았고 여름에 쉬어가고(큐레이터들 해외출장, 덥고 습하면 사람들이 이동하지 않아 비성수기) 다음 9-11월이 시즌이다.


4. 지난 주는

OCI,국현미개념미술,PKM이근민,송은전혜주, 영화는 토이스토리5


이번 주는

6.23화 국중박 태국미술명품전

6.26금 예술의전당 고야

영화는 없다

서울국제도서전이 코엑스에서 6.24부터


5. F&B 막 이런 저런 상품 많은데 외화내빈이다.

기대가 되지 않는다. 취사병 전설이 되다 콜라보가 좋다고 하지만..


마라, 흑백요리사, 들기름, 저당, 말차, 우베, 중국발 디저트, 동남아발 디저트, 망고, 수박, 여름프로모, 1인팥빙수 계속 아이템이 나오지만..


롯데리아 콜라보 2탄 하와이안 모짜렐라도 아쉽다. 1탄 번트치즈도 그닥 임팩트가 없었고 2탄 파인애플에는 통조림 물기가 너무 많았다



6월 말 날씨는 덥고 영화는 없고 전시는 썰물 F&B 없다


그러나 책 라인업이 매우 좋다. 정말 좋은 신간이 쏟아져나온다.


영화->전시->책으로 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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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rry Winogrand: All Things are Photographable (Sasha Waters Freyer, 2018)보았다.

창동서울사진미술관 전시 <컴백홈>에 갔다가 픽업한 샛노란 리플렛의 뒷편에 스크린 상영 일정 중에 있던 다큐영화다. 먼 길을 다시 발품 팔아 가긴 어려웠고 검색해보니 러시아 유투브에 영상이 있어서 온라인으로 시청했다. 미술관 영상관에 갔다면 한글자막이 있었겠지만 아무래도 괜찮았다. 화질은 좋았다.

오디오 중에 harbinger(선지자) of the public relations이나 라틴어에서 유래한(휠록 맨 처음에 소개되는), 끝에서 두 번째의=마지막의 바로 전(second to the last)을 이르는 피널티메이트(Penultimate) 같은 좋은 표현이 인상적이었다. 거의(almost)라는 뜻의 라틴어 paene와 마지막(last)을 뜻하는 ultimus가 합쳐진 단어인데 페닌술라가 거의+섬이라는 말로 휠록엔 설명되어있다.

미국 50-80년대 일상적 풍경을 사진으로 기록해 수백만 장의 이미지를 남긴 개리 위노그랜드에 대한 영상이 흥미로웠던 이유는 필름 시대에 이미 디지털 시대의 문제가 보인다는 점이다.

많은 이들이 전시장에서 그림을 보고 와 예뻐 감탄하면서 사진을 찍고, 날씨 좋은 날 정원에서 자연과 풍경 사진을 찍지만 스마트폰 속 누적 저장된 수십만 장의 사진을 다시 보는 사람은 드물다.

위노그랜드가 디지털 시대 이전에 이미 그런 삶을 살았다. 35mm 라이카 카메라로 100만 장이 넘는 사진을 촬영했다. 일견 현상은 비슷해보이지만 결정적 차이는 비용이다. 스마트폰은 셔터를 누르는 비용이 0원이다.

그러나 위노그랜드는 필름 구매 및 현상비, 인화비를 감수하며 찍었다. 만약 1970년대 기준으로 필름과 현상비를 합쳐 롤당 수만 원이라고 가정하면 그가 남긴 1만 롤은 수억 원대 비용에 해당할 수도 있다.

그러니까 위노 그랜드는 그냥 많이 찍은 게 아니라 어마무시한 경제적, 시간적 대가를 치르면서도논스탑으로 찍었다는 것이다. 더 특이한 점은 지속적으로 셔터를 눌렀는데 대부분은 보지 않았고 남기기만 해서 그의 때이른 죽음 이후 전문가들은 그의 아카이브를 어떻게 다루어야하는지 난제에 봉착했다.

그러니까 위노그랜드는 너무 많이 찍고, 너무 적게 정리해 수십만 장이 미완성 상태로 남았다. 촬영자가 편집하지 않은 방대한 자료를 어떻게 다루어야할까? 에 대해 다큐에서 여러 전문가들의 고민이 담긴 인터뷰가 인상적이었다.

이런 아카이빙은 나아가, 이미지가 너무 많아질 때 우리는 무엇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는가라는 질문을 상기시킨다. 으레 예술은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버릴지 선택의 역사다. 그 반대 사례로서 위노그랜드는 선택을 포기했고, 오직 생산만 했다.

필름 시대의 사진가는 찍고 현상하고 개중 선택해 최종 인화하는 단계를 거치는데 특히 후반기의 위노그랜드는 습관적으로 찍고 찍고 찍고 찍기만 했다. 그래서 미현상된 몇 만롤의 유산은 촬영자가 평생 미처 선택하지 못한 가능성의 산더미라고 표현해볼 수도 있다.

그런 위노그랜드의 레거시를 다루는 다큐에 기대 오늘날 디지털 시대의 우리가 스마트폰에 이진법 신호로 남긴 ㅔ이터 더미의 의미를 생각해본다. 필름 시대에 디지털 인간이었던 그는 사진가보다는 데이터 수집가라고 함이 더 적절해보인다. 혼자서 세상을, 미국을 샘플링한 것이다. CCTV, 사물인터넷, 자율주행 데이터, 머신러닝 데이터셋의 아이디어처럼.

그 순간에는 진심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며 저장했던 것조차 잊어버린 엄청난 자료들. 읽지 않은 메모, 보지 않은 사진, 정리되지 않은 파일이 쌓이고 앞으로도 쌓일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예술가보다 데이터 아키비스트로서 위노그랜드는 미술관의 아카이빙의 역할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끔한다. 창동서울시립사진미술관이 중점적으로 하고 있는.

전시된 사진보다 보관소의 필름 상자가 더 많기 마련이기 때문에 큐레이션이 중요하다.

나아가, 심혈을 기울이는 제작방식 특성상 작품 숫자가 제한적인 회화와 달리 사진은 진정한 의미는 개별 사진이 아니라 덩어리, 모음집, 클러스터라고도 생각해보았다. 미국이라는 나라의 일상적이고 우연적인 모습을 30년 동안 지속적으로 그리고 무차별적으로 수집한 거대한 시각 데이터베이스는 전체 학습단위를 모두 이해할 때 그 온전한 의미가 다가온다.

위노그랜드가 미국을 백과사전과도 같은 초상(encyclopedic portrait)으로 구축했다고 다큐에서 말했을 때 그 의미도 동일할 것이다.

백과사전은 소설이 아니다. 결론이 없다. 플롯도 없다. 백과사전은 정보의 모음이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것을 촬영했던, 모든 것은 사진촬영대상이라고(제목) 생각했던 위노그랜드의 작업이 같다. 그의 사진은 답정도 아니고 재판도 아니다.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려고 했을 뿐이다. 해석하지 않고 기록만 했다. 거기엔 소수의 위대한 영웅의 불가능한 전설은 없고 매일의 평범한 영웅적 하루가 있다.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많은 것을 수집했으나 아무것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남기기만 했던 그를 보며 누구는 의미없다할지도 모르겠다. 도대체 왜 그렇게 까지 했던거야! 그런 의미없음에 일말의 미학이 있는 것임을 모른 채.

위노그랜드가 말하길, 나는 어떤 것이 사진으로 찍혔을 때 어떻게 보이는지 알기 위해 사진을 찍는다고 했다. 좋은 말이다. 그의 사진들이 부담스럽게 설교하지 않는 까닭이 왜 인지 짐작된다.

현실 속에 풍덩빠져 자기가 살고 있는 그 시공간이 사진 속에서 어떻게 변형되는지 실험하는 자세는 배려적이다. 이미 무엇을 말할지 정해두고 현실을 끼워맞춘 게아니라 세상이 무슨 말을 하는지 보자! 하면서 관찰한 것이다. 이해가 우선이고 해석이 나중이었다.

다큐에서 다 보여줄 수 없었지만 엄선된 그의 사진은 모두 일관적으로, 어색한 표정, 우연한 몸짓, 예기치 않은 구도, 의도되지 않은 연출이 많다. 드라마틱한 무언가는 별로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사진은 감상하기 편안하다. 무의미한 일상같지만 묘하게 중독적이다.

그의 사진을 보면서 우리는 왜 저런 표정을 짓고 있는걸까, 빛이 저기에 있으니까 정오겠네, 저 낡은 사물은 도대체 어떤 경로를 지나 여기까지 왔을까 토이스토리인가, 하는 연상작용의 몰입에 빠지게 된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의 끝에 정말 좋은 사진가는 세상을 엄격하게 분류하는 사람이 아니라 세상이 스스로 드러나도록 기다리는 사람이라고 자연스레 깨닫게 된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은 사진을 머리와 눈과 마음을 하나의 축 위에 놓는 것이라고 했다. 위노그랜드도 그 연장선에서 사진은 주장이나 판결이 아니라 발견의 과정이라 여겼던 모양이다.

좋은 사진가의 마음가짐이란 그런 것이다. 평가보다 관찰을, 규정보다 이해를, 해석보다 호기심을 앞세우는 것.

꽃을 보고 아름답다고 앞서나가 말로 프레이밍하기 전에 꽃잎의 방향과 색깔과 이슬을 지켜보기. 사람을 보고 호불호와 편견으로 판단중지하고 그가 서있는 자세와 손짓을 보고 느끼기. 낡은 건물을 보고 허름하다고 단정하기 전에 벽에 켜켜히 쌓인 시간의
윤슬을 응시하기.

그리하여 카메라는 눈의 연장선이면서(시각-기계), 명상의 태도를 수행하는 사유-기계가 된다. 세상을 바꾸기 전에 먼저 보는 방식을 바꿀 수 있게 만든다. 판단하기 위해 보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기 위해 지켜볼 수 있게. 좋고 나쁨을 결정하기 전에 우선 빛과 시간과 자연과 사람의 이야기가 무엇인지 경청하는 자세를 훈련할 수 있다.

다큐의 또 다른 흥미로운 점은 사진이 회화를 몰아내고 객관적 재현의 왕좌를 차지했다는 통념을 은근히 해체한다는 데 있다. 명시적으로 드러난 내용은 아니고 영화를 보며 나의 의식의 흐름이 그랬다.

19세기 초 광학기계 등장 초입에 많은 회화가들은 위기감을 느꼈을 것이다. 실제로 Paul Delaroche같은 사람은 오늘부터 회화는 죽었다고 했다고 한다. 실제 발언여부는 논쟁적이긴한데, 당시 미술계의 위기감을 잘 드러낸다.

그런데 사진의 발전사를 보면 오히려 역설적이다. 외적 발전사인 매체의 기술적 성장을 보면 사진기는 점점 완벽해졌다.

사진 기술은 계속 발전해서

노출 시간 단축, 선명도 향상, 컬러 구현, 자동 초점, 배터리 시간 향상, 광각 스마트폰 카메라, AI 보정 등등. 대단하고 눈부신 성과다.

기술적 목표는 일관적이었다.
더 정확하게, 더 많이, 더 빠르게 현실을 기록하자!

이렇게 외적으로 보면 사진은 승리의 역사다.

그러나 내적 발전사를 검토하면 점점 불완전성을 발견했던 것 같다.

사진은 진실을 보여준다고 초기에는 믿었는데 시간이 지나며 사진은 현실을 왜곡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예컨대 렌즈 선택, 구도와 프레이밍, 셔터 타이밍, 인화 방식, 크롭이라는 사진가의 인위적 선택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가 생성된다. 따라서 사진은 객관적 기록을 가장한 의도성의 결과물이었다.

여기서 위노그랜드의 생각을 다시 음미해보자. 거리에서 남녀가 걸을 때 회화적 관점은 ˝저들이 누굴까?˝라면 다큐적 관점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지?˝ 인데 위노 그랜드는 카메라가 저 장면을 어떻게 이상하게 만드는 거지? 를 고민했던 것이다.

시간이 없고 이제 출발해야해서 아래는 미완성노트복붙.

19세기에는
회화 = 해석
사진 = 기록

20세기엔
회화 = 자기 해석을 인정
사진 = 객관성을 주장하지만 실제론 강한 해석

그래서
회화는 ˝나는 해석이다˝라고 솔직하게 말함
사진은 ˝나는 현실이다˝라고 말하면서 해석을 숨기는 편

사진은 회화를 대체한 기술이라고 생각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사실 사진은 회화를 죽이지 않았다!

오히려 회화가 수천 년 동안 씨름해오던 문제를 재조우했다.

회화의 핵심 문제는 원래 인간은 세계를 어떻게 보는가?
였는데
사진이 등장한 뒤에는 카메라가 세계를 어떻게 보게 만드는가로 바뀌었고
사진은 재현의 종착점이 아니라... 재현 문제의 제2막
기술적으로는 최신 사진가였지만, 철학적으로는 오히려 고전 회화의 질문으로 되돌아간거다

사진을 통해 현실을 증명하려 하지 않지 않은 시각인식의 회의론자로서 위노그랜드는 외려 현실이 얼마나 쉽게 낯설어지고, 오해되고, 비틀리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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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엄경 강화 1 ㅣ 능엄경 강화 1
운허 지음 / 불교학술원 동국역경원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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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는데 달을 보지 않고 손가락을 보아서 예끼 이놈! 하며 노스님이 동자승을 혼냈다는 이야기의 원본을 책 읽다가 찾았다. 능엄경(楞嚴經)이었다.

도구를 숭배하지말고 형식에 얽메이지 말고 본질을 추구하라는 간단한 메시지지만 SNS시대의 마케팅, AI시대의 교육 등에도 적용될 여지가 많은 것 같다

좋아요 수, 팔로워 수, 알고리즘이 손가락이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진정한 소통이 달이다.

어느 순간 삶의 모습이 스크린의 환상을 좇아간다
몇 십만 팔로워인가?, 조회 수가 어느정도 나오나? 를 체크하며 숫자를 얻고 관계를 잃는다.

챗지피티의 활용이 손가락고
사유하고 이해하는 창의적 분석능력이 달이다.
유저는 프롬프트를 써서 답을 빠르게 제출하고 어느 모델이 더 효율적인가? 에 몰두하는데

정작 뭘 알고 싶고 뭘 알아야하고 왜 배우려 하는지는 궁금해하지 않아서

생각을 외주화하다가 배움을 잃는 다
달도 잃고 손가락도 잃은 셈

하지만 손가락을 버릴건 아니다.
손가락이있어야 달을 볼 수 있으니까
하지만 손가락에 머무르면 달을 놓친다는 것이 메시지의 고갱이다.

달을 본 사람도 손가락을 부정하지 않는 이유는
손가락과 함께 손가락 너머를 동시에 보기 때문이다

원문은 이렇다
如人以手 指月示人 彼人因指 當應看月 若復觀指 以爲月體(여인이수 지월시인 피인인지 당응간월 약부관지 이위월체)

어떤 사람이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켜 저 사람에게 보이거든, 저 사람이 손가락으로 인하여 달을 보아야 할 것이거늘 만약 손가락을 보고 달이라 한다면

此人豈唯 亡失月輪 亦亡其指(차인기유 망실월륜 역망기지)
그 사람이 어찌 달만 잃은 것이리요. 손가락까지 잃은 것이다

하이고(何以故) 어찌하여 그러한가? (왜냐하면)
이소표지위명월고(以所標指爲明月故) 그 가리킨 바의 손가락을 밝은 달이라고 삼았기 때문이다.
기유망지(豈唯亡指) 어찌 손가락만 잃었을(망각했을) 뿐이겠는가?
역부불식명지여암(亦復不識明之與暗) 또한 밝은 것과 어두운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하이고(何以故)어찌하여 그러한가? (왜냐하면)
즉이지체위월명성(卽以指體爲月明性) : 곧 손가락의 자체를 달의 밝은 자성으로 삼아
명암이성(明暗二性) : 밝고 어두운 두 가지 자성을
무소료고(無所了故) :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여역여시(汝亦如是) : 너(아난) 또한 이와 같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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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람 엄금 ㅣ 엄금 시리즈
치넨 미키토 지음, 김은모 옮김 / 북다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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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협소 채널에서 소개해서 알고 있었는데 재밌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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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작 토이스토리5, 국현미 개념미술, 마이어리거울프 등 한남일대 전시, 다큐멘터리 개리 위노그랜드 모든 것은 사진촬영대상이다,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수당 이전 중국고대사 남북조 전쟁사를 다룬 리숴의 책, 로널드수니와 발렐리키벨슨의 888쪽 짜리 러시아제국연구, 클로드 란츠만 감독의 9시간 반이라는 어마무시한 러닝타임의 홀로코스트 영화 쇼아1+2부 등을 보고 듣고 읽었지만 글로 쓸 시간이 없었다 글로 쓸 시간이 없을만큼 많은 정보량이 휘몰아쳤고 그 감격과 경탄과 충격 속에 허우적 거리다가 생각을 글로 정리하는 아웃풋을 내기보단 다음 날엔 다른 인풋을 집어넣어 지적 자극을 추구했다 어느 날의 지적 변비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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