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적 SF가 있다면 화성에 정착한 22세기 한국인은 전라도 경상도 평안도 조선족 억양을 쓸 거라고 생각한다.
아일랜드 이주민의 강한 R발음이 남서부 미국의 특징이 되고, 퀘벡이 파리가 아닌 알베르 레미로 대표되는 농촌 프랑스어를 보존하고 있고,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아프리칸스어가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데려간 선원, 농민의 말씨를 동결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본국의 표준어가 변화하는 가운데 척박한 개척지에 이주한 공동체는 고립된 환경에서 특정 시기의 사회계급적 말씨를 유지한다. 어떤 의미에선 사회언어학적 표본을 유리병에 담아 다른 대륙으로 옮겨놓는 것과 같다.
그러니까 런던 상류층, 파리 부르주아, 네덜란드 부유층은 돌아오고, 남겨진 이들은 지방, 농촌, 소외계층이며, 해당 시대,계급,문화적 언어가 보존된다는 것이다.
이는 중국 본토에서 표준어가 노마드와 강남이 교류하며 계속 변화하는 동안 한국이 당나라 한자와 발음을, 일본이 도입시기를 기준으로 불교는 오음, 행정은 당음, 상인은 송음을 보존하는 것과도 비교해볼 수 있다. 일본은 마지막 견당사(894년) 이후 9세기 이후는 현지화, 토착화의 길을 걸었다. 교류가 끊어지면 별개의 진화의 길을 걷는다.
으레 타국으로 아예 이주하는 사람은 한 사회 안에서 이미 굳건한 성공의 기반을 가진 이들이 아니다. 기득권은 외국의 문화자본을 흡수한 후 다시 본국으로 돌아오거나 중간적 매개체, 교량이 된다. 워킹홀리데이, 유학, 이민 등을 선택하는 까닭은 대체로 현재 문화자본, 사회지위, 네트워크가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케바케 사바사지만 어쨌든 지금 이 땅 위에서 부족하다고 생각하니 이동을 선택한다는 큰 전제가 있다. 나의 현지 삶이 풍족하고 인생에 대해 만족하면 굳이 고생하러 떠날 이유가 있겠는가? 조선이 잘 살았다면 멕시코 애니깽 농장으로 (과대광고에 현혹되어) 떠나지 않았을 것이고, 간도를 개척하러 가지 않았을 것이다. 카레이스키, 남미의 한국인 디아스포라, 자이니치.. 모두 특정 시기에 자기가 태어난 공간에서 먹고 살기 힘들어서 이주했다가 돌아오지 못한 이들이다. 이런 역사성을 감안하면, 이주민 중에 돌아오지 못한, 혹은 돌아오지 않은 사람들은 돌아와도 다시 밑바닥부터 시작을 해야해서 이주국에서 개고생해서 쌓아올린 재산, 인맥, 삶을 지키기로 선택한 것이다. 그렇게 한 세대가 타국에 봉인되고 독자적 길을 걷는다. 뿌리는 한반도였으되 현지 토양과 기후에 적응해 자라는데 최초 품종, 즉 DNA는 변하지 않는다.
즉, 한 사회의 외곽에 위치한 이들의 대거 이동은 특정 시점의 계급적, 지역적 언어구조를 옮긴다. 촉발하는 사건은 대개 수요다. 인력이 대규모로 필요한 거대한 공간에서 개척해줄 사람이 필요한 경우다. 행성 개척이 바로 그 넥스트 트렌드다. 조선 세종이 김종서 함길도도절제사로 하여금 4군 6진을 개척하게 한 1434-1443년 연간에 남쪽 지역 사람들이 평안도, 함길도로 이주시킨 것도 비슷한 이치다.
달이나 화성 개척 때 아무리 인공지능 로봇이 있다손해도 인력이 필요할텐데 누가 이주할까? 강남 다세대 주택 보유한 부자가 이동할까? 대기업 회장이 이주할까? 높은 확률로 삶에 허덕이는 지방청년이다. 그리고 이들이 이주국에서 성공적으로 생존하면 이들의 말씨가 표준화가 되어 쭉 간다. 호주도 초기 개척민은 영국의 죄수였다. 미키17에서도 익스펜더블이 된 이는 빚에 쫓긴 이들이었다. 그러니까 서울-지방이 아니라, 지구의 한국의 서울 말씨와 달나라의 A섹터의 전라도 말씨로 나뉜다는 뜻이다.
아까 잠깐 언급했던 유럽의 사례를 조금만 더 깊게 생각해보자. 17세기 네덜란드에 살던 도시 부르주아는 본국의 상업 네트워크 속에 머물렀다. 설령 해외로 나갔다 하더라도 자본과 경력을 축적한 뒤 귀환했다. 반면 남아프리카에 눌러앉은 네덜란드인은 선원, 중산층, 농민들로, 설사 돌아가더라도 다시 현지에서 기반을 세워야 하는 처지였다. 이들이 케이프에 정착해 형성한 언어가 바로 아프리칸스(Afrikaans)어고, 이 언어엔 17세기 네덜란드 농촌, 하층 계급의 말투와 어휘를 상당히 간직하고 있다. 그러다 이후 본국과의 연락이 느슨해지고 규범적, 문화적 시스템에서 느슨하게 탈각된다. 마치 실험실에서 배앵하던 특정 개체를 분리해 다른 환경에 두었을 때 모집단과는 다른 경로로 진화하면서 동시에 초기 조건을 오래 간직하는 것에 비유해볼 수도 있겠다.
미국의 사례도 유사하다. 아일랜드계, 영국 하층민 이주가 대규모로 이루어진 18세기 영국 영어는 r에 강세를 두었다. 지금 이튼스쿨 출신을 위주로하는 런던 상류층에서 r을 가볍게 하는 non-rhotic 발음이 확산된 것은 그 이후의 일이다. 아주 대충 설명한 것이다. 어쨌든 미국남부의 강한 r발음은 런던식이 아니고 오히려 런던쪽에서 나중에 변한 결과와 대비되는 초기 보존의 사례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퀘벡사례도 비슷하다. 17세기 프랑스 농촌지역의 발음과 어휘가 북미로 이식된 것이기 때문이다. 이후 파리에서 확산된 목구멍 r(uvular r)=ㅎ발음과는 다른, 거의 이탈리아인 같은 느낌의 r이 특징이다. 즉, 퀘벡 악센트는 이주시기의 프랑스 농촌 발음에 가깝고 현대의 파리와 다르다는 것이다. 최근에 본 트뤼포 감독의 400번의 구타에서 농촌출신알베르 레미 배우가 발음하는 r이 퀘벡에 오히려 가깝게 들렸다.
출발 당시의 계급적 특징을 반영하는 지역 언어가 토대가 된다. 이주를 촉발하는 대규모 인력수요와 이에 반응하는 기회를 찾는 진취적 지방청년. 그들의 언어가 타국에서 동결된다. 물론 현지어와의 접촉, 내부적 단순화, 새로운 사회문화 구조와 더불어 다른 요인도 첨가된다. 그럼에도 디아스포라 공동체가 특정 시대와 특정 계층의 언어를 비교적 오래 보존한다는 인상은 거칠지만 분명하다.
이주는 사회적 주변부가 중심을 떠나면서 자신이 속했던 시간의 언어를 함께 들고 나가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익스펜더블이 되어, 떠나는 것보다 돌아오는 것이 더 힘든 행성간이주, 몇 세기 전 배를 타고 떠난 이들의 삶과 겹쳐보자. 22세기 한국적 SF에서 등장하는 이들은 전라도 경상도 북한말씨 조선족말투를 쓸 것이라고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