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격의 거인 1~17 박스 세트 Part 1 - 전17권 - PVC카드 17매 동봉
이사야마 하지메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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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격의 거인 20권까지 읽어 반환점을 돌았다. 애니로 얼마나 업스케일링이 되었는지 나중에 봐야겠지만 인체비율과 표현이 엉망진창이었던 초반에 비해 점점 더 자본이 두둑히 들어간 듯한 (정확히는 어시의 어깨와 팔목을 갈아넣은 듯한) 컷이 갈수록 많아진다.

거인에게 잡아먹힌다는 바디호러와 긴박함이 가득했던 1부 도입부에 비해 1부 후반은 거인이 아군이 되며 공포물은 벗어난다. 세계의 비밀이 밝혀지며 성 안의 권력관계를 다루는 정치물의 표피도 덧씌워진다. 아직 짐승거인, 라이너와 베르톨트, 유미리의 정체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고 과연 지하실에 무엇이 있는지 2부를 위한 트리거가 남아있다. 역사에 대한 정보비대칭이 설정의 고갱이인데 그런 의미에서 지하실은 역사 아카이브일지도 모르겠다.

일단 레이스가에게 부여된 능력은 역사해석권과 역사접근권으로 칭해볼 수 있다. 역사를 누가 쓰고 편집하며 어떤 이야기를 유통하는가. 또한 벽은 보호와 감금의 이중장치처럼 보인다. 문명은 감옥이기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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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국 본토에서 한국어 원어민끼리는 일상 단어나 일반 명사로 사용하는데 외국에서는 이를 레스토랑 상호명이나 가게명으로 쓰는 경우가 있어서 신기하다. 예를 들어 이런 단어는 한국에서 밥집 이름이 아닌데 외국에선 음식집 이름이다. 친구 (비비큐집) Chingu 안주 Anju 맛있어어요 Mashisoyo 대박 Daebak 대박사건 Daebaksageon 빨리 빨리 Pali-Pali 식사 Sixsa 니나노 Ninano 아줌마 Ajumma 이모 Emo 마음 Maeum 배고파 Begopa 맛있다(마시따) Masitta 2. 가톨릭 사제의 강론모음집 책 <은총 수업>을 읽다가 고등학교 선생님이 등단하더니 영화감독이 되었다는 부분이 있었다. 그의 이름은 이창동이었다. 그에게서 고전문학을 배웠다고 했다. 1988 전에 서울대 신문과에 입학했다고 했으니 아마 이창동 감독 커리어상 신일고였을 것으로 추측한다. 제목의 라틴어 번역이 Classis Gratiae가 전혀 아니라는 점만 빼고는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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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지도
우케쓰 지음, 김은모 옮김 / 리드비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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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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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요커 이번 주 기사 중에 이 주말 에세이가 가장 재밌었다.

스무살에 가짜 이야기로 영국 입국하기라는 제목에 여행기인가 아무 생각없이 클릭했다가 흡사 탈북자 수기의 지하철검문을 방불케하는 밀입국 이야기의 긴장과 몰입감에 빨려 들듯이 끝까지 읽었다.

검문소 경찰이 경계하며 관찰하는 표정의 studied expression, 심장이 철렁했다는 극도의 긴장감을 보여주는 heart in throat, 두려워도 태연한 척한다는 put on a brave face, 주변의 상황에 무심한 일반 영국인과 자신의 처지를 대조하며 일상 속의 정치, 정체성문제를 드러내는 sat among oblivious Brits, 심장이 갈비뼈를 두드리듯 뛰었다는 my heart hammering agaist my ribs 같이 문학적이고 좋은 영어 표현은 덤이다. 특히 상대의 표정에서 아무 것도 읽을 수 없었다는 he gave nothing away와 내 안에서 뭔가 무너져 내렸다는
I felt sth give away inside me에 같은 give away가 있는데 같은 구동사가 다른 식으로 해석되어 글맛을 한층 증진시킨다.

과거의 저자는 대충 이런 상황이다. 알바니아 남부 피에르 출신인데 생존을 위해 국경을 넘을 때마다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정체성을 조금씩 바꿔야한다.

그렇게 국경을 넘는 과정에서 타인의 아이덴티티를 빌리며 국가적, 민족적, 문화적, 사회적 정체성을 잃는다. 매번 통하지 않고 거짓이 탄로나고 거짓을 고백하면서도 그 사이 만난 다양한 사람들의 친절을 통해 새로운 자신을 만들어간다. 나는 어디 사람인가? 나의 소속은 어디인가? 보다 더 중요한건 나는 누구이며 지금 나는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이 더 중요하게 다가온다. 이는 기원이나 존재론이라는 고정적 가치보다 지금-여기의 행위가 중요하다는 통찰로 이어질 수 있다. 롤랑바르트의 작가의 죽음 이후 새로 태어난 퍼포먼스와 플레이의 가능성이다. 무언가를 한다는 게 중요하다는.

저자가
영국에 들어가는 과정은 참 쉽지 않았다. 알바니아 이주민으로는 망명심사를 받기 어렵다는 것을 깨닫고, 파리의 알바니아인들에게 들은 풍문을 바탕으로 코소보 전쟁에서 가족과 함께 알바니아로 피신한 17세 코소보 난민으로 자기 서사를 재구성한다. 심지어 그 전에 그리스에서 까페 등에서 알바하면서 그리스어는 배웠는데 그리스어를 쓸 수는 없다. 다 청소년 때의 난리통이다. 어느 나라에서는 영어학원에서 독해문제를 풀고 디베이트를 훈련하는데 누군가는 생존을 위해 영어를 픽업하고 페이크 서사를 암송한다. 식민지시기 독립열사가 조선에 태어나 상하이조계지를 거쳐 구미에 갔을 때도 이런 기분이려나.

알바니아인 → 그리스 체류 이주민 → 유럽을 이동하는 불법 이주자 → 프랑스에서 영국으로 넘어가는 코소보 난민으로 변신하는 과정은 일견 사기극인 듯하면서도 그렇게만 국한시킬 수 없다.

코스모폴리탄이지만 투자자산을 바탕으로 비즈니스석에 탑승해 글로벌 호텔에 체류하는 부유한 자가 아니라 생존기반이 부족한 하층 코스모폴리탄이다.

코소보인의 고통을 빌려 자신의 생존을 확보하지만, 그 이야기를 반복해서 말하는 동안 자신 역시 몰랐던 그들의 고통과 불안, 그리고 소속의 문제를 내면화한다. 그러면서 저자는 고정된 출생지나 부여된 국적이 아니라 국경마다 살아남기 위해 새롭게 만들어내는 서사가 정체성을 만든다는 자각에 이른다.
https://www.newyorker.com/culture/the-weekend-es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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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CPU가 혼자서 복잡한 문제를 푸는 천재 수학자‘이고 ‘GPU가 단순한 사칙연산 문제를 동시에 푸는 수천 명의 초등학생‘이라고 비유할 수 있다면, 젠슨 황은 가장 위대한 초등학교 선생님인 것 같다. 수천 개의 연산 코어를 지휘하는 천재다.

따옴표 안의 유비는 이봉렬의 <모두를 위한 반도체 특별과외> 88, 221-222쪽의 내용이었다. ‘화면의 점 수백만 개의 색상을 바꾼는 것은 고난도의 미적분이 아니라 단순한 계산‘이라면서 GPU는 연산을 동시에 한꺼번에 병렬 처리한다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북한의 매스게임도 이런 픽셀 변환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연산 소자가 된다. 선택 가능성은 많지 않고 업무는 단순반복이지만 함께 모이면 예술의 경지가 된다. 고해상도 게임을 집단적으로 수작업으로 하느냐 전자를 활용하느냐의 차이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매스 게임 지휘자나 자본주의 국가에서 지피유 개발자는 개별 점들이 어떤 타이밍에 어떤 색깔을 띌지 정해주는 역할을 하는 위대한 초등학교 선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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