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에도 슬픔에도 아랑곳없이 - 박준의 시를 읽는 마음
박준 지음 / 난다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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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간 제목보다가
그 도련님이 그 도련님이 아닌데
뭔가 느낌적인 느낌으로...

2. 도서 연체가 위법이 되니다는 설정이 재밌는데 왜 전자책으로밖에 없는 것인가. 전자책도 도서 연체가 구조적으로 가능한가. 도서 연체는 종이책이라는 조건 속에서 가능했던 건가. (내용과 매체의 불일치)

3. 도서모임은 한 적 없지만
제목은 특이하다.

제곧내인 라노벨부터 도서 제목의 발전사를 추적해도 재밌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귀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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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이 없고 지시문밖에 없으니 베끼고 번식하고 복제하며 원작의 아우라를 감가상각하는, 가짜 복사본인 시뮬라크르의 위험성이 없다는 거.
작가의 손이 아니라 아이디어가 본질이며 그 생각의 씨앗이 새로운 조건의 토양에서 복제되나, 본래의 그 지시문만 남기고 퍼포먼스라는 사건은 휘발되고 물리적 실체인 벽화는 지워지니, 번식하고 생식하고 생육하지 않는다는 거.
그러니까, 지시문은, 아니 지시문만이 영원하나, 실행자라는 인적 매개체, 전시장이라는 물리적 공간,, 시대와 환경이라는 시공간이 다르니 복제하는 행위가 곧 유일한 작품을 생산하고 특정 맥락에 앵커링하게 된다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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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 말고도 최근에 오토바이로 배달일하는 시인이 조명되었던 것 같은데 갑자기 기억이 안나네요 경제성장의 이면에 존재하는 약자가 픽션으로 등장하는 듯 해요. 폭발적인 급성장의 반대급부겠죠. 국내 영화와 미술은 재개발 철거를 많이 주목했던 것 같아요. 임민욱도 재개발 영상작업을 했고 십 년 전인가 대전시립에서도 그런 재개발 사진전을 본 것 같아요. 양익준의 강렬한 데뷔작 똥파리도 있네요. 2008년이던가.. 이런 감성도 다 시절인연이 있고 시대가 배태한 이미지와 심상이기 때문에 몇 년 전 영화 화란처럼 시간이 흘러 이런 가난한 소외자의 모티프로 다시 픽션을 만들면 예전만큼 반향을 얻지는 못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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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엄마는 도시의 청소부입니다 읽었다. 원제는 워더무친쭈어바오지에 我的母亲做保洁다.

보통 교과서에서 배우는 청소는 다사오 打扫로, 개인이 방을 쓸고 닦는 행동인 반면, 바오지에 保洁 환경을 깨끗하게 유지 관리하는 전문적인 위생 관리 서비스(용역)을 의미한다.

작년에 번역출간된 나는 북경의 택배기사입니다(워짜이베이징콰이띠 我在北京快递), 가 생각나는 급속한 도시화 이면의 저임금 불안정 노동을 하는 이들에 대한 논픽션이다. 둘 다 현지에선 23년에 나왔다.

두 책의 차이점은 제목에서도 드러난다. 후자는 내가 북경에서 택배를 한다로, 문학청년이 되고 싶었던 이가 사업실패하고 택배 배달을 하는 개인적 회고록이다. 전자는 나의 엄마라는 3인칭을 사용해 모녀의 두 관점이 투영되어 조금 더 거리감이 있는 다큐나 르포다. (-에 가깝다, 라는 표현으로 문장을 종결하고 싶었으나 요즘 지피티가 다듬은 어설픈 글에 너무 많이 보여서 순간 불쾌해 사용하지 않았다. AI시대의 워터마크 자기검열이다)

택배기사나 청소부나 둘 다 남의 건물을 출입하고 공공장소에서 이동해야하는 일이다. 필연적으로 타인과 조우하고 남의 시선에 민감해지며 오래 일할수록 사회의 변화를 체감하게 된다. 차이는 후자는 독서를 바탕으로 자기가 관찰자가 되었고, 전자는 딸이 엄마의 구술을 바탕으로 조금 더 해석을 첨가했다.

제도적 보호장치가 없을 뿐만 아니라 저임금에 숙소 환경도 열악.. 통제도 엄격하고 휴일도 없어서 대부분 몇 개월도 버티지 못하고 그만.. 물론 그렇게 떠나는 사람들은 보통 엄마보다 젊은 사람.. 근무 조건이 아무리 나빠도 엄마가 예전에 했던 일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 라는 p57를 읽을 때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진단한 사회문제가 생각났다. 자본주의에서의 싸움은 부자와 빈자의 싸움이 아니라, 빈자와 더 빈자의 투쟁이라는, 그 해석이 유효해서 전세계의 반향과 칸의 인정을 얻었다고 생각한다.

특히 더러운 휴지를 바닥에 그냥 버린 것을 보고 장씨 아주머니가 가로막고 한마디하자 다음날 바닥에 대변을 보는 것으로 복수당한 p218 일화는, 택배기사에서도 비슷하게 세련된 상업시설에 택배상자를 얹은 구루마를 끌고 가자 건물관리인이 막았다는 에피소드가 겹쳐 보였다. 시설을 만든 이나 시스템과 구조를 설계한 이는 모두 어디가고, 사회 취약계층끼리 다툰다.

아무리 배움이 부족하고 농촌에서 상경했어도 일을 하게 되면 서당개가 풍월을 읊듯 자기가 속한 시스템이나 거시적 경제현상의 이치에 대해서도 터득하게 된다. 석탄 채굴 산업에 대한 이해p156-7가 그렇다. 이는 저임금 노동을 하는 이들이라고 무식하지 않다는 걸 방증한다.

가즈오 이시구로의 소설/영화 어디에선가, 아마 내가 남아있는 날들이었던거 같은데, 영국 엘리트 계층이 바칼로레아급으로 난해한 질문을 집사(안소니 홉킨스 분)에게 던지면서 대답 못하는 것을 보고 무시한 장면이 있었다.

택배기사에는 없는 부분은 노화로 인한 예견된 상실을 체감할 때. 노화의 흔적을 타인을 통해 발견하는 p260-261이 마음이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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