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고소득 금융업-중산층 제조업-저소득 계약직 서비스업 구조에서
제조업이 없는 유럽국가(영국, 아이슬랜드 등)는 AI 도입으로 피라미드 위 아래에 큰 타격을 입었다.
세계화 이전 산업시대에는 참고 다음 세대를 양육하면서 살았지만 이제는 두바이로 탈출하면서, 본국엔 노인과 이민자만 남아 정치적 문제가 된다

2. 현대차가 로봇도입하는 이유는 카르텔 노조와의 전쟁에 지쳤기 때문으로 보인다. 해고도 힘들고 직장폐쇄로 맞서는 정규직 노조에게 지급해야하는 연간 인건비에 비해 설치이후 24시간 가동에 유지비만 드는 로봇은 더 효과적. 경영진입장에서 기득권은 정치적 논란을 안 만들기 위해 정년까지 계륵으로 데리고 가겠지만 청년층의 신규진입이 구조적으로 막히니, 기성세대가 젊은 층의 사다리를 걷어차는 셈이다

3. 딥시크 이후 중국산 AI 가성비 저가형 모델로 글로벌 사우스에 비중을 높여가고 있어, 칩 전쟁이 양극단으로 나뉘어 본격화. 기술지정학의 이해가 필요한 시대다

4. AI의 가짜노동

덴마크 인류학자 데니스 뇌르마르크 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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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대량 실업을 초래할 것으로 보지 않는다. 역사적으로 완전히 사라진 직업은 거의 없었다. 일의 형태가 바뀌고 일부는 더 쉬워질 뿐이며, 사람들은 반대로 새로운 업무를 더 많이 떠안게 된다. 컴퓨터 등장 이후 세무·회계 등에서 효율화가 예상됐지만 행정 인력은 오히려 늘었다. 기술 발전으로 생긴 여유를 가치가 낮은 가짜 노동이 채웠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직시하지 않으면 AI 혁명도 일부 업무를 없애는 대신 그 빈자리를 또 다른 형태의 가짜 노동으로 메우는 방향으로 흘러갈 것이다˝

˝AI끼리 가짜 노동을 만들어내는 상황에 놓일 수도 있다. 이미 그런 징후가 나타난다. 누군가는 AI로 보고서를 만들고, 받는 쪽은 읽지 않으니 또 다른 AI가 요약하는 식이다. 불필요한 중간 업무가 생기는 것이다. 일을 수행하는 주체만 컴퓨터일 뿐, 가짜 노동은 그대로다. 애초에 긴 보고서를 왜 만드는지 자체를 다시 따져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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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각에 과거의
가짜노동은 예컨대 이런 게 있었다. 무가치한 노동이 아니라, 기술 혁신이 생긴 이후 돌이켜보면 생산성 없이 불필요한 중간 노동이었다.

전화교환수 - 핸드폰 전화번호부, 후즈콜 등이 대신한다

친구들 사이에서 대신 주문 수급해 콜해주는 사람 - 배민이 대체한다

버스안내양, 표판매 역무원, 공항안내요원 - IC카드, 검표기, 스마트 출입국시스템

최근 개봉 애니 광장에서 보이는 북한 감시책 - 옛날에는 인력이 감시했으나 이제는 CCTV, 카드거래기록, GPS 등의 기술감시의 파놉티콘 시대가 됨

세탁기가 기대처럼 가사노동의 양을 줄여준 것이 아니라 더 자주 빨래하게 만들었다는 책 세탁기의 배신의 요지를 감안할 때, 빠르고 즉각적인 소통을 가능하게 해 준 스마트폰과 카톡은 불필요한 말을 증가시켜 사람을 옭아매고 서로 질리고 떨어지게 했다.

AI영상, AI글을 생산했는데 아무도 보지 않거나, 소비하되 기억나지 않는다면 왜 그렇게 해야하는걸까

무언가가 없어지지 않는다, 무가치하게 된다

덴마크 인류학자의 AI가짜노동 인터뷰
https://www.chosun.com/economy/weeklybiz/2026/01/22/4JICUL6VBBHU3BDMQFLV5NV63Q/

중국 가성비 AI 아프리카 중동 중남미 장악 기사 (딥시크 쇼크 연대 3부작)
https://www.chosun.com/economy/tech_it/2026/01/22/6RFSKSELQFADRC6FFGJOZ5ER2M/?utm_source=nate&utm_medium=referral&utm_campaign=nate-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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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저점이 높은 편, 어딜가나 평타는 한다. 그러나 확실한 고점은 찾기 힘들다. 협회, 대기업, 지방문화, 정치 등에 막혀서 내수가 아닌 발산형 구조는 어렵다.

한국은 저점이 처참하고, 확실한 고점이 있고 찾기 쉬운 편이다. 고점의 한계가 없어 글로벌로 진출해 큰 성공을 거두고 천문학적 부자가 될 수도 있다

중국은 커뮤니티 기반 공동구매 문화가 확산되어 있어서 리그에 들어가지 않으면 정보가 없다. 꽌씨는 아직도 중요하다

일본과 중국 모두 한 국가 안에 국제를 품고 있다. 설경의 홋카이도에서 남국의 오키나와섬까지 기후, 방언, 문화, 역사가 다양하다. 사무라이 영주가 거점지역에서 패권을 잡던 정치사덕에 지방특색이 있다. 아이누족에서 몽골로이드, 남방계통까지 인종도 다양하다

그런 다양성은 중국이 압권이다. 티벳, 위구르, 내몽골에서 쿤밍까지. 평생 국내 여행만해도 된다. 국내에서 국제를 경험할 수 있다

한국은 수도권과 나머지로 나뉘고 국제 경험을 위해 실제로 국제로 출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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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언어나 초급단계에서 글자나 발음이 쉬워보이지만 어려운 허들이 있다.

대개 스페인어가 발음이 쉽다고 진입한다. 트릴 r(으르르르)에서 죽는다.
일본어는 츠, 즈, 가탁음을 제대로 하기 쉽지 않다.

이탈리아어 대개 발음 쉽지만 남성 복수 정관사 the인 gli가 특이하다. 혀의 앞부분을 모두 입천장에 대고 앞으로 밀어내 을리 발음이다(일본 오사카의 글리코glico는 글리코겐의 준말이다)

알파벳을 공유하는 유럽언어에서 대개 자음은 비슷한 발음이지만 크게 r, j와 c, g가 저마다 다르다. r은 영어 ㄹ, 서어 ㄹㄹ, 불어는 ㅎ, 독일어는 ㄱㅎ, 포어는 철자에 따라 ㅎ와 r을 섞어쓴다. j는 ㅎ냐 ㅈ냐로 파가 갈린다(호세) c와 g를 중모음 앞에서 경음화해서 ㅋ,ㄱ로 읽기도, 연성화해서 ㅅ,ㅈ로 읽기도 한다.

저마다 모음 읽는 방식이 다르다. 영어의 a는 악명이 높다. 어, 애, 아, 에이..
네덜란드어는 장음 a를 구분해 aa로 쓰기에 Centraal이다.

일본어 글자에서가타가나는 한자의 획수를 줄인 것이긴한데 그래도 너무 했다.
ク쿠ケ케
シ시ツ츠ン응ソ소
ノ노メ메
ワ와フ후ヲ오ヌ누フ후
구분이 힘들다.
필기체로 가면 더 헷갈린다. 하지만 언젠가 적응한다.

그래서 영어권의 dummies 시리즈는 우리의 ‘누드교과서‘격인 쉬운 해설본인데 일본어 학습서에 글자학습 없이 알파벳 음차로만 달아두었다.

한국어는 어, 응, 에 같은 모음 발음을 외국인은 힘들어한다.

러시아가 대표적으로, 외국인은 강세있는 B와 강세없는 B를 구분하는데 우리는 그런게 없다. 부산은 부산이다. 그런데 Busan은 ㅇ부산에 가깝고, 그래서 외국인이 듣기에 가까운 Pusan이라고 쓰는데, 이를 우리는 푸산으로 읽기에 서로 난리다.

조지아어의 방출음은 누구라도 어려울 것이다. კ(k‘ ㅇㄲ!) ტ(t‘ ㅇ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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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회 송은미술대상전 지하, 가벽 뒤 초록색 비니와 함께 낙서처럼 적혀있던 나의 세상 악보, 검색해보니 이런 포크 음악이었다.

작가는 시각예술가, 뮤지션이자 기획매개자로 활동하고 있는 봄로야다. 사회에서 소외된 이에 주목하는 작업을 한다. 이런 이슈를 다루는 사람은 귀하다. 리플렛에서는 ˝비인간을 포함한 몸을 가진 주체가 사회 집단으로부터 통제될 때 내면화되는 모순과 저항에 주목˝한다고 하였다.

전시장을 다니는 이는 크게는 (유럽)회화파와 동시대미술파로 나뉠 것 같다. 색채를 중시하며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는 이와, 미술을 사유의 매개체로 생각하는 이다. 반드시 이분법으로 나뉘는 것은 아니고 경향이 그래보인다. 전자는 예전, 국중박 등을 자주 다니고 후자는 MMCA, 서울시립, 아르코, 두산, CR콜렉티브, 프로젝트사루비아를 많이 방문한다.

컨템포러리 미술은 돌아와서 보는 것도 어렵고 글도 난해하다.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주제도 광범위해서 신체, 노동, 전쟁, 퀴어,비시각(청각, 후각), 디지털, AI 끝도 없다. 컨템포러리 미술을 대할 때 느끼는 피로감이 분명히 있다.

작품은 불편한 질문을 어렵게 던지며 우리의 생각의 흐름과 태도를 조정하라고 권유한다. 의도적으로 혼란을 유발하면서 소격효과로 우리를 둘러싼 시스템 전체를 메타인지하기를 요청한다. 익숙한 의미작용과 빈번한 패턴을 어긋나게한다.

이를 해석하는 언어도 평범하지 않다. 작품을 만드는 작가와 이를 해석하는 큐레이터/평론가의 언어가 일치하는지, 그들이 같은 말을 하는지, 내가 그들과 같은 것을 보았는지 알 수 없을 정도다. 복잡한 담론, 정치적 맥락, 기술적 전제, 윤리적 입장을 빠짐없이 호출하다 보니 문장은 방어적으로 변한다. 독자를 설득하기보다는 오해를 예방하려 글을 쓴다. 영어로 읽으면 차라리 쉬운데 번역투의 문체가 이해를 어렵게 만든다.

그래서 관람자는 이해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떠안는다. 마치 따라잡지 못하면 창피를 당하는 세미나에 멀뚱히 앉아 있는 기분이다. 정답은 없고온갖 해설지만 난무한다. 최종적으로 검토해주는 이도 없어 내 생각이 맞는지도 확정할 수 없다.

그런데 이런 모든 것이 동시대 미술의 묘미다. 완성된 세계관을 제시하지 않는다. 작가는 특정 화두를 끌어안고 우리 대신 이슈와 씨름하면서 살아가며 그 과정, 그리고 생각의 부산물을 전시한다. 당연하게 여겨온 접근방식 자체를 어색하게 만든다. 왜 이것을 예술이라고 할 수 있나, 왜 지금 이 주제인가, 왜 이 매체여야 하는가. 답보다 질문이 오래 남고 감상보다 태도가 축적된다.

관객은 이해하지 못한 채로 전시장을 나선다. 미완의 상태를 견뎌야한다. 설명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는 감각 속에서 배움이 슬그머니 움튼다. 어느 날 전혀 다른 맥락에서 다시 말을 걸어올 때 멈칫, 하며 나의 생각이 달라져있음을 발견한다.

봄로야, 〈나의 왕국(The Kingdom)>
가벽에 펜 (원곡: 황푸하)

곡은 황푸하 나의 세상
https://www.youtube.com/watch?v=UuDWjWkzsy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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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달강
권정생 지음, 김세현 그림 / 한울림어린이(한울림)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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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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