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작가상 2024

2024-10-25 ~ 2025-03-23


양정욱은 작가상 4인 중 세 번째이고 처음 보게 되는 장면은 위에서의 부감샷이다.




1. "현대미술은 어렵다"라는 말이 인구에 회자된다. 보기 편하고 예쁜 인상파의 작품이나 창의적이고 특이한 피카소나 아니면 아예 이집트 미라, 피라미드나 공룡처럼 시각적 자극에 의한 즉물적 감상이 어렵기 때문이다. 정확히 무엇을 표현하고 싶어하는지 설명을 읽어야 비로소 이해가 된다. 그런데 그 설명이 거의 논문같은 학술표현으로 되어있어서 사람들이 읽기에 난해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작품 자체도 무엇인지 모르겠고 설명도 어려우니 점입가경이다. 그래서 "현대미술"하면 자동적으로 "어렵다"라는 말이 튀어나오게 되었다. 현대미술이라는 체언(혹은 명사)과 어렵다라는 용언(혹은 형용사)가 검색 코퍼스에 단단히 엮여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상파나 피카소나 다 처음에는 그게 뭔지 잘 몰랐고 당대의 감각과는 많이 달랐다. 일견의 어려움도 어린왕자의 여우가 말하듯 길들여지기 시작하면 하나의 뉴노멀이 되리라 생각한다. 길들여진다는 말은 곧 현대미술을 이해하고자 하는 청중들을 교육하는 것이다. 이때의 교육이란 강의실에서 교조적인 가르침이 아니라 자주 많이 접하게 만드는 것이다. 더 많이 보여주고 더 많이 설명을 제공하고 읽게하면 그 어려운 현대미술을 1510년에 걸쳐 조금씩 이해하는 새로운 새대가 탄생하는 것이다.




2.  

해석이 없다면 이 작품은 도저히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해석을 경유하고 나면 비로소 보이는 것이 있다.

물론 그 설명도 완전한 해석도, 무조건적 정답도 아니지만 감상자에게 가이드는 제공해줄 수 있다.




3. 전시장 현장에서 작품은 반복 운동을 하고 있다. 관람객은 나무 구조물이 있네 왔다갔다하네 설치예술인가? 정도는 파악할 수 있다. 이제 캡션을 읽어보자.

 

위의 설명에 따르면,

작가는 누군가의 반복적인 행동을 통해서만 깨달을 수 있는 삶의 모습을 상상한다.

Yang imagines life that reveals understanding only through one's repetitive actions

 

그 반복 행위는 고난과 희망 사이에서 해 보고 또 해 보는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시도 속에서 견뎌내고 희망해나가는 자들(those continue to hope and preservere amist trials)에 대한 것이다.






4.

<서서 일하는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오랫동안 한 가지 일을 해 온 사람들이 퇴직 후 생계를 위해 임시적인 일을 한다는 이야기에서 출발한다.

The Standing Workers series begins with the narrative of individuals who, after long careers, take on temporary work to make a living post-retirement.

 

임시적인 일이기 때문에 작품에서 그들은 서 있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The subjects are depicted standing, alluding to the transient nature of their labor

 

평생 종사한 직업에서 얻은 리듬과 습관 같은 것들이 새로운 상황에 놓이며 낯선 심리를 환기하고 지금의 형상과 움직임을 낳는다.

The rhythms and habit acquired from their lifelong careers evoke unfamiliar feelings and movements in their new situations

 

..누적된 시간의 경험으로 정의하기에 이른다.

define work .. as an accumulation of time and experience

 

작품과 작품설명은 서서 보기 때문에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없다. 그리고 수많은 작품과 설명이 있기 때문에 문장 전체를 다 기억할 수 없고 일부 핵심어만 기억하고 볼 뿐이다. 이것이 현실적인 관람객의 읽기 방법이다.

 

아 이 작품은 "서 있는 사람Standing workers"이고 "임시직temporary work"을 표현하고 그들의 "리듬과 습관rhythms and habits"을 표현했고, 이를 통해 "누적된 시간의 경험accumulation of time and experience"을 표현하고자 했구나. 그러면 왜 이 작품이 나지막하게 반복 운동하고 있는지 이해하게 된다.


 

설명을 이해하면 한 발 더 나아갈 수 있다. 이 작품이 완성된 형태가 아니라 목조로 만들어졌다는 점을 관찰해냈다면, 임시적 성격을 지녔으며, 전시회 이후에 아마 해체될 것임을 추론해볼 수 있다. 그러니 노동의 임시적이고 단기적이고 일시적인(transient) 성격을 잘 표현한 작품이라고도 볼 수 있다. (alluding to the transient nature of their labor)


 

이정도 이해하고나면 현대미술 이해도 그리 어렵지는 않다.

작가의 의도와 작품의 표현방법을 매칭하기 위해 캡션설명 정도만 경유하면 된다.

이 이상의 철학적 함의를 끌어내는 것은 학구열이 많은 자가 취해야할 그 다음의 일이지만

대부분 관객들은 하나의 가이드라인에 따른 적절한 설명이 제공되면 다른 작품을 보러간다.

중요한 것은 쇼츠처럼 압축적이고 설득력있는 설명을 제공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있다.

이제 더이상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이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와 같은 긴 글을 1년씩 앉아서 읽을 수 있는 시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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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 도자공예: 영원의 지금에서 늘 새로운

2024-11-21 ~ 2025-05-06


1. MMCA 과천과 같이 전시관 하나만 따로 이동시간이 소요되는 경우에는 전시회가 몇 개하면 묶어서 간다.

예를 들어 작년의 경우 다음과 같은 세 전시를 같이 볼 수 있는 공통분모인 2024.09.10.-2024.09.22 사이에 세 전시를 같이 보러갔었다. 아더랜드가 9월 10일 시작했고 60-70년대 구상회화가 9월 22일 마치기 때문이었다. 


MMCA 기증작품전: 1960-70년대 구상회화 2024-05-21~2024-09-22

연결하는 집: 대안적 삶을 위한 건축 2024-07-19~2025-02-02

MMCA 뉴미디어 소장품전: 아더랜드 2024-09-10~2025-03-30


물론 60-70년대 구상회화는 단독으로 보기에도 괜찮은 전시라서 5월 21일에 시작하고나서 갈 수도 있었다. 2023년에는 그렇게 했다. 시간이 있어서 과천에 전시 하나 보러 갈 수 있었다. 그러나 전시회를 많이 다니다보니 이제 지적 주파수의 대역폭이 넓어져서 가야될 곳이 너무 많아졌고, 2024년부터는 묶어서 다니기 시작했다. 비슷한 지역의 전시회 몇 개 이런 식으로 묶어서. 서울, 경기의 전시만 다닐 때는 한 번에 하나만 갈 수 있으나, 지역적 범위가 전국이 되니 전략적인 시간배치가 필요하게 되었다. 예를 들어 광주에 전시 한 개 갔다가 대구에 전시 한 개를 갈 수는 없다. 비효율적이다. 광주-대구는 KTX도 직통이 없고 대전을 경유하고 이동에만 한 나절이 소요된다.


이제 글도 일간으로 생산하기로 결심한 이상 더더욱 가장 효율적인 시간계획을 찾을 수 밖에 없다.


예를 들어 MMCA 과천에 다음 전시 세 개를 묶어서 가는 것이다.


한국 현대 도자공예: 영원의 지금에서 늘 새로운 2024-11-21~2025-05-06

젊은 모색 2025  2025-04-24 ~ 2025-10-12

MMCA 상설전 «한국미술 1900-1960» + «한국미술 1960-1990» 2025-05-01 ~ 2027-06-27


그러며 2024년 11월 21일에 도자기 보러 한 번 가는게 아니라 (물론 아더랜드도 같이 하고 있지만 이미 보았으므로)

2025년 5월 1일 이후에 한국미술 열리면 가는 것이다. 젊은 모색 4월 24일에 개관하고 갈 수도 있으나 전시 시작 1주일 밖에 차이 안나므로 조정가능하다.

그리고 도자공예전이 5월 6일에 마치므로

5.1-5.6 방문하면 적절한 것이다.

다만 5.5는 어린이날로 서울대공원에 방문객이 아주 많을 것이다. 지하철역 부근 입구에서 현대미술관까지 들어갔다 나오는데만 1시간 이상 소요될 것이 예상되므로 이날은 피해야한다.


3. 아직 도자공예전은 가지 않았다. 전시회 한 번 가고 그 전시회에 대해 다 쓰는 것이 안니라 전시회의 한 작품을 주제로 하나씩 계속 쓰기 때문에 글조각은 다 파편적이다. 일단 아무렇게나 생산해보고 무엇이 어떻게 나올지 보는 실험단계다.


4. 전시는 가지 않았으나 전시 유투브에 대한 품평을 한다. 영어 성우가 아주 솜씨 좋았다. 이전에 유투브에 댓글로 단 내용인데 여기에 복사해둔다.


https://www.youtube.com/watch?v=sMbngjB4lqU&lc=UgxeZ1S9XRDueYHTGpN4AaABAg



성우 픽 잘 한듯. 한국어와 영어 둘 다 자연스럽고 명확한 발음과 정확한 딕션. 전달하려는 전문적 지식과 어울리는 목소리 톤, 신속하면서 편안하여 듣기 적절한 속도와 리듬, 마지막 호흡음. 비엔날레biennale를 finale(피날리)처럼 비에날리라고 읽었고, broadening도 뒤에 생략하고 브뤈닝이라고 하고, letter of 같은 리듬감에서 보아, 약간 미국 midwestern과 남부와 서부가 조금씩 섞여있는 듯. 한국에서 유년시절을 보내고 미국에 유학한 듯. 한국어의 '정규'에서 보이는 ㅈ은 영어의 j와는 달리 유기음aspirated sound이 아니기 때문에 유년시절을 외국에서 보낸 교포는 흉내내기 어려움. 한국어의 '옹기'에서 들리는 초성 ㅇ 발음도 영어권 사람들은 흉내내기 어려움. 영어에는 무성 자음의 개념이 없어서 단어가 o으로 시작하지 못하기 때문. 이런 부분도 성우는 자연스러움.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kim'은 유기음으로 강하게 발음하고 성씨로 전달하고자 김준명, 김지혜를 발음할 때는 한국어식으로 발음하며 두 개 국어를 자유롭게 전환함. 다소 젊게 들리는 20대 초반 여성의 음성인데, 20년 정도 더 커리어를 쌓으면 내가 좋아하는 Smarthistory의 Dr. Beth Harris와 같은 음성도 가능하게 될듯. 중후하면서 톤의 교육받은(learned) 전문직 나이든(aged) 백인 여성의 리듬감 있고 천천히 말하면서 모든 단어가 정확히 소실점을 향해 달려가는 타격점이 확실한 음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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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년 남짓 책을 쓰려고 취재 연구 구상을 시작해

서울, 경기, 강원, 청주, 대전, 광주, 대구, 부산 등 전국 각지,

일본 도쿄 교토와 대만 홍콩 미술관 박물관을 돌아다니면서 감상하고 찍은 사진 2만 5천개

영화는 리스트업한 것만 700편.


쓸 것은 너무 많은데 퇴고까지 완벽하게 하려고 하니 도저히 쓸 수 없었다.

마치 책 1권을 읽으면 읽어야할, 읽고 싶은 책이 토끼 새끼치듯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만가듯

전시도 전시 하나를 가면 비슷한 지역이나 같은 주제로 가야할 곳 몇 곳이 생기고

영화도 한 편을 보면 감독의 전작포함해서 몇 편이 생기니

콘텐츠 소비만 하기에도 너무 부족한 시간이었다.


거기다가 새로 개관한 전시, 새로 상영한 영화, 새로 출간되는 책까지

그에더해 15년부터 24년도까지 최소 5천만 이상의 조회수가 있는 웹툰 40여편까지(아직도 다 따라잡지 못했다)

콘텐츠를 계속 쳐내며 이러다가는 영원히 퍼블리시가 안되겠다고 생각해


그냥 아무거나 무조건 쓰기로 했다. 형편없고 부질없고 완성도가 부족한 글을.

제작하는 사람이 어쩔 수 없이 겪어야하는 자기혐오를 감수하면서


멋지고 정밀하고 완성된 글을 안 쓰려고 하니 가볍게 쓸 수 있게 되었다

지금은 그냥 그렇게 가볍게 계속 생산해야 한다. 

마치 등산할 때 자기 발 앞의 계단만 보고 가듯, 정상까지 다 보고 가는게 아니듯


만약 퇴고까지 한다고 생각한다며 지금 품고 있는 아이디어가 너무 많아서 다 쓸 수 없다.

첫 술에 첫 테이크 첫 글에 만족할 수 없고

지금은 그냥 아무거나 브레인스토밍하면서 아이디어를 쏟아내는 단계다.

아무 것도 안 하고 있으면 아무 것도 고칠 것이 없기 때문

아이디어에도 유통기한이 있는데

기왕에 누구보다 빨리 접했는데 공유하지 않은 채 시간만 지나버릴 뿐이었다.


오히려 퇴고나 수정은 편집자 구해지면 아웃소싱하는 게 낫다고 생각해서 비로소 시작할 수 있었다

나의 장점은 콘텐츠가 나오는 즉시 소비하고 그 다음 보고 또 쓰고 하는 것이다. 

신메뉴 나오면 꼭 먹어보고, 새로 영화 나오면 꼭 보고, 전시 나오면 보러가고..

그런데 그렇게 누구보다 먼저 봐도 기록으로 남기지 않으면 의미가 없었다

이러한 라이프 스타일이 선순환이 되려면 이렇게 하면 적절하다.

나는 지속적으로 정찰 다니고 정찰보고서를 원격 토스하고

누군가가 베이스캠프에서 그것을 편집, 제작, 관리하기


게다가 나중에 수정하고 퇴고하는 것은 하려면 할 수 있지만, 관심이 떨어진다음에는 못하게 되니까 

더더욱 편집자가 필요하다.


일간으로, 데일리 베이스로 글을 생산하면 글을 다듬어 주고 완성된 형태의 물성을 가진 무언가로 만들어줄 사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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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문이 사라졌다 - 제25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수상작 보름달문고 95
김은영 지음, 메 그림 / 문학동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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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수녀들 (2025)

The Priests 2: Dark Nuns



1. 원래 오컬트물을 즐기는 팬층에는 한계가 있다. <파묘>가 예외적이고, (그에 대한 분석은 수만가지가 있겠다) 그 외의 경우라면 대중적으로 호소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관객 확장에 한계가 있는 장르영화는 세계적으로 가야한다. 인구 5천만 국가에서 1천만명이 오컬트물 팬일 수는 없고, 대다수는 일생에 한두 번 <파묘>처럼 화제가 된다면 박스오피스 1위라니까 한 번쯤은 볼 사람밖에 없다. 


문득 생각나는 것. 수년 전 정의란 무엇인가가 베스트셀러가 되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비리그 대학 교수가 쓴 정치철학서가 왜 갑자기 1위가 되었을까? 중요한 것은 1위가 되니 왜 1위가 되었나, 1위라면 한 번 보자하는 사람들이 계속 1위가 되도록 만들어주었다. 베스트셀러가 베스트셀러를 낳은 것이다. 가게 앞 줄 선 것을 보고 와 맛집이네 궁금하니까 한 번 보자라는 심정으로 줄 서는 자들이 다시 맛집임을 강화시켜준 것이다. 내용만으로 1위된 것은 아니다. 다만 왜 처음에 1위가 되었느냐에 대한 시장분석은 여러가지가 있겠다. 표지독서(최근yes24손민규MD의 표현)하는 사람들에게 밀리의 서재 전략(실제로 보는 사람들을 공략하기보다는 책을 보야하니까 사야한다는 죄책감으로 판매하는 전략)으로 접근한 부분도 있지 않나 싶다. 


하지만 오컬트물은 심지어 표지독서도 안된다. 제목만 보고 장르만 보고 도망가는 사람 투성이다. 이런 장르 영화가 흥행하려면(즉,제작비를 회수하려면, 제작비를 회수해서 고생한 스탭들에게 인건비도 주고, 감독도 다음 영화를 만들려면), 세계의 여러 나라의 오컬트물 팬층에게 일일이 호소해야한다. 5천만 국가에서 약 165만명(3.3%)에게 호소했다면 옆나라 1.2억 인구의 3.3%(약396만명)에게, 프랑스 6800만명의 3.3%(224만명)에게 호소해야한다. 물론 이렇게 기계적으로 계산할 수는 없고, 조국 특수를 제해야한다. 타국 영화팬에게는 외국어인 한국어로 연출한 해외영화니까 실제로는 우리 관객만큼 홍보할 수 없어서 반정도는 덜어야할지 모른다. 하지만 어쨌든 촘촘하게 전세계적으로 있는 일부 장르 팬층에게 호소해야한다.


그럴 때 중요한 것은, 기존의 해외 장르물과는 무엇이 다르냐, 무엇을 차별화했냐이다. 해외관객은 그것을 중요시한다. 무엇이 새로운가. 내가 알고 익숙하던 것과는 무엇이 다른가. 너는 나에게 어떤 새로운 자극을 제공할 수 있는가.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하나의 관습화된 장르영화의 문법내에 한국문화를 얼마만큼 세련되고 적절하게 가미해서 한국형 오컬트물을 만들었느냐가 관건이다. 이것은 취할 수 있는 전략의 하나일 뿐이다. 제작사와 감독의 생각은 모두 다르고, 어느 누구는 아예 한국을 다 제외하고 정통 장르물을 만들고 싶을 수도 있고, 세계관객과는 관련없이 국내 관객을 대상으로만 제작할 수도 있다.


그러나 만약에 한국형 오컬트물을 만들어서 세계 여러 국가에 산재되어 있는 인터네셔널 장르팬층의 네트워크에 호소하겠다면, 나는 한국민속적 요소인 무당(샤먼)을 넣는 시도는 적절했다고 생각한다. <잠>에서도 후반부에 그런 한국적 굿, 부적, 무당이 나왔었다. 감독과 제작자들이 여러 시도를 하면서 어떻게 이 민속요소를 첨가해야 보편적인 설득력있을지 고민해나가는 단계에 있는 듯하다.


그래서 이 영화는 상영관에서 일단 내리고, 한국관객들에게 외면받은 후, 넷플릭스에 올라가 세계적으로 관람이 될 때 그 진가가 발휘된다고 생각한다. 한국적 샤머니즘에 서양 오컬트를 더한 이 작품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되고 수용될 것인가?


기존 오컬트물에 없던 매력을 세계인들이 여기서 찾는다면 그것은 사실 두 수녀의 장면이 아니라 효원 (김국희 분)과 애동 (신재휘 분)의 미장센일 것이다. 그런데 효원은 샤먼의 역할을 충실히 다 전달하지 않았고, 어떤 할아버지가 죽을거야라고 예언하는 장면 하나로 캐릭터의 진정성이 엎어졌던 것 같다. 애동이 도와주러 오는 장면은 좋았으나 왜 밖에 있는지, 북은 왜 두드리는지에 대한 이해는 조금 어려울 수 있겠다 싶다.


2. <핸섬가이즈>의 불청객 5인방 중 파란색 옷을 입은 보라(박정화분)가 나중에 빙의되어 4족 보행 달리기를 하는데 그 장면에서 와.. 이렇게까지.. 했던 적이 있다. 이 영화에서 와.. 이렇게까지.. 는 2009년생(현 15세) 문우진의 대사이다. 빙의된 악마로서 쉰 소리를 크게 내야하는데 대사의 양도 상당하다. 아주 고생했을 것 같다. 쉰 목소리로 크게 화를 내야한다. 심지어 변성기 언저리의 나이에 있다. 여성 혐오적인 대사에 대한 비판이 있는 듯하다. 그 부분이 누군가에게는 거슬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굳이 그런 혐오적 표현을 더해서 상영결정을 한 제작사의 의도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대사만 가지고 여성혐오적인 영화라고 말하기에는, 작중의 주인공 둘 다 여성이고, 여성억압적 가톨릭 행정체계에 대항하며, 거대한 SUV를 몰고 담배를 피우는 수녀라는 멋지고 감각적 이미지를 보여주고 했기 때문에 영화 자체가 그렇다고 볼 수는 없다. 악마라는 빌런이 하는 대사의 핍진성을 위해 여성혐오적 표현을 채택했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나는 그 대사 중에서 걸리는 것은 다르 부분이었다. 스토리 진행상 튀고 가장 이물감이 있던, 악마가 말하지 않을 것 같은 대사가 있었다. 퇴마를 하려는 강성애 유니아 수녀(송혜교분)에게 "왜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돼"라는 탓하는 대사다. 나느 그분에서 갑자기 현대 가족 드라마 같은 것이 생각나며 이입이 깨지고 소격되었다.


전여빈이 분한 이수영 미카엘라 수녀의 어린시절 트라우마인 자살하는 친구는 <외계인1+2부> 김태리가 분한 이안의 아역배우 최유리다.


허준호(안드레아 신부 역)는 <천박사 퇴마 연구소>에서 범천으로 나왔고 <노량>에서는 등자룡으로 나왔는데 그의 주름은 나이테처럼 어떤 문화적 깊이를 나타내는데 용이한 것 같다.


신부의 이탈리아어는 적절했고, 이탈리아어 통역하는 수녀도 한국인 발음 괜찮았는데, 한국어는 천천히 설명하다가 갑자기 이탈리아어에서 너무 빨리 말하는 아쉬운 점은 있었다. 대사의 속도가 한국어를 말할 때는 천천히 공원을 산책하다가 이탈리아어에서 갑자기 300km 급발진을 하며 도로를 내달렸다.


검은사제와의 연관성은 문득 문득 드러난다. 이영신(박소담 분) 사진, 최준호 아가토(강동원 분)과의 만남, 김범신 베드로(김윤석 분)가 왜 안 오느냐에 대하 설정 설명 같은 부분. 


3. 하나의 작품을 감상하고 난 다음 좋은 점과 아쉬운 점이 동시에 생긴다. 그런데 책이 아니라 영화 같은 집단예술작품에 평점을 매기는 것은 복수의 창작자의 의욕을 꺾는 잔인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작품을 계량화하는 폭력성은 차치하고, 무용하다. 제작자에게도 무용하고, 자신에게도 쓸모없다. 복수의 익명대중이 내린 평점은 20대 여성 서울 저녁상영은 대략 8점, 30대 남성 지방 조조상영은 대략 9점 하는 식으로 통계화되고 지표화되어 마케팅 분석에 활용되는 효과가 있겠지만, 블로거든 전문평론가든 개인이 내린 평점은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특히나 자신이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외부적으로 감놔라 배놔라하는 평가들은 창작자들에게 오래 곱씹는 상처와 이걸 내가 왜했나하는 회한만 줄 뿐이다. 게다가 개인이 내린 평가도 수십 개가 되고 수백 개가 되면 그 사이에서 필연적으로 비일관성이 발생하고 왜 이 작품은 3점인데 저 작품은 2점이냐 하는 불평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그러한 논의 끝에 무언가 생산적인게 나온다면 좋겠다. 생산적인 논의가 된다며 오히려 장려되어야한다. 그러나 그런 비일관성에 대한 코멘트와 일련의 논쟁은 방구석 키보드 파이팅에 불과하고, 실제 제작자들은 신경도 쓰지 않거나 의도적으로 무시할 뿐이다. 제작 동기를 꺾는 등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나는 별 대단한 위인도 아니지만, 어쨌든 영화 평점은 매기지 않는다. 일차적으로 창작자를 위한 것이고 부수적으로는 자신을 위한 것이다. 영화들 사이에서 생기는 미세한 오차와 비일관성을 사후 조정이 안되기 때문이다. 다시 보니까 3점이 아니라 5점 만점이네 하는 경우도 빈번한데, 그 자기 반성에 대한 대가가 차후 평점 조작이라는 오명에 불과하다면 하지 않음만 못하다. 


오히려 내가 할 수 있고 잘 하는 것은 무엇이냐, 작품에서 얻은 인사이트나 다른 작품과의 비교 같은 것이다. 또한 디테일에 대한 매서운 포착이다. 나는 스토리 전반을 쉽게 풀어서 설명하는 (유치원 초등학교 선생님들과 같은 재능)은 없다. 그런데 남이 보지 않은 부분을 아주 예리하게 본다. 내가 본 신을 남들도 보았는지 궁금했는데 책이나 인터넷에서 본 기억이 없다.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거나, 못 봤거나, 봤지만 기록으로 안 남 것이다. 그런데 아마 그런 디테일들이 창작자들은 오랜 고민의 결과였을 수 있고, 그것을 알아봐주는 사람이 있으면 고맙거나 반갑게 느낄 수 있다. 어디서도 나와 같이 쓸데없는 디테일을 포착하는 글을 못봐서 내가 이제 쓰기로 했다. 왜냐면 그런 디테일을 보는 게 나는 너무 재밌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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