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작가상 2024
2024-10-25 ~ 2025-03-23
양정욱은 작가상 4인 중 세 번째이고 처음 보게 되는 장면은 위에서의 부감샷이다.

1. "현대미술은 어렵다"라는 말이 인구에 회자된다. 보기 편하고 예쁜 인상파의 작품이나 창의적이고 특이한 피카소나 아니면 아예 이집트 미라, 피라미드나 공룡처럼 시각적 자극에 의한 즉물적 감상이 어렵기 때문이다. 정확히 무엇을 표현하고 싶어하는지 설명을 읽어야 비로소 이해가 된다. 그런데 그 설명이 거의 논문같은 학술표현으로 되어있어서 사람들이 읽기에 난해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작품 자체도 무엇인지 모르겠고 설명도 어려우니 점입가경이다. 그래서 "현대미술"하면 자동적으로 "어렵다"라는 말이 튀어나오게 되었다. 현대미술이라는 체언(혹은 명사)과 어렵다라는 용언(혹은 형용사)가 검색 코퍼스에 단단히 엮여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상파나 피카소나 다 처음에는 그게 뭔지 잘 몰랐고 당대의 감각과는 많이 달랐다. 일견의 어려움도 어린왕자의 여우가 말하듯 길들여지기 시작하면 하나의 뉴노멀이 되리라 생각한다. 길들여진다는 말은 곧 현대미술을 이해하고자 하는 청중들을 교육하는 것이다. 이때의 교육이란 강의실에서 교조적인 가르침이 아니라 자주 많이 접하게 만드는 것이다. 더 많이 보여주고 더 많이 설명을 제공하고 읽게하면 그 어려운 현대미술을 1년 5년 10년에 걸쳐 조금씩 이해하는 새로운 새대가 탄생하는 것이다.

2.
해석이 없다면 이 작품은 도저히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해석을 경유하고 나면 비로소 보이는 것이 있다.
물론 그 설명도 완전한 해석도, 무조건적 정답도 아니지만 감상자에게 가이드는 제공해줄 수 있다.

3. 전시장 현장에서 작품은 반복 운동을 하고 있다. 관람객은 나무 구조물이 있네 왔다갔다하네 설치예술인가? 정도는 파악할 수 있다. 이제 캡션을 읽어보자.
위의 설명에 따르면,
작가는 누군가의 반복적인 행동을 통해서만 깨달을 수 있는 삶의 모습을 상상한다.
Yang imagines life that reveals understanding only through one's repetitive actions
그 반복 행위는 고난과 희망 사이에서 해 보고 또 해 보는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시도 속에서 견뎌내고 희망해나가는 자들(those continue to hope and preservere amist trials)에 대한 것이다.

4.
<서서 일하는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오랫동안 한 가지 일을 해 온 사람들이 퇴직 후 생계를 위해 임시적인 일을 한다는 이야기에서 출발한다.
The Standing Workers series begins with the narrative of individuals who, after long careers, take on temporary work to make a living post-retirement.
임시적인 일이기 때문에 작품에서 그들은 서 있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The subjects are depicted standing, alluding to the transient nature of their labor
평생 종사한 직업에서 얻은 리듬과 습관 같은 것들이 새로운 상황에 놓이며 낯선 심리를 환기하고 지금의 형상과 움직임을 낳는다.
The rhythms and habit acquired from their lifelong careers evoke unfamiliar feelings and movements in their new situations
..누적된 시간의 경험으로 정의하기에 이른다.
define work .. as an accumulation of time and experience
작품과 작품설명은 서서 보기 때문에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없다. 그리고 수많은 작품과 설명이 있기 때문에 문장 전체를 다 기억할 수 없고 일부 핵심어만 기억하고 볼 뿐이다. 이것이 현실적인 관람객의 읽기 방법이다.
아 이 작품은 "서 있는 사람Standing workers"이고 "임시직temporary work"을 표현하고 그들의 "리듬과 습관rhythms and habits"을 표현했고, 이를 통해 "누적된 시간의 경험accumulation of time and experience"을 표현하고자 했구나. 그러면 왜 이 작품이 나지막하게 반복 운동하고 있는지 이해하게 된다.
설명을 이해하면 한 발 더 나아갈 수 있다. 이 작품이 완성된 형태가 아니라 목조로 만들어졌다는 점을 관찰해냈다면, 임시적 성격을 지녔으며, 전시회 이후에 아마 해체될 것임을 추론해볼 수 있다. 그러니 노동의 임시적이고 단기적이고 일시적인(transient) 성격을 잘 표현한 작품이라고도 볼 수 있다. (alluding to the transient nature of their labor)
이정도 이해하고나면 현대미술 이해도 그리 어렵지는 않다.
작가의 의도와 작품의 표현방법을 매칭하기 위해 캡션설명 정도만 경유하면 된다.
이 이상의 철학적 함의를 끌어내는 것은 학구열이 많은 자가 취해야할 그 다음의 일이지만
대부분 관객들은 하나의 가이드라인에 따른 적절한 설명이 제공되면 다른 작품을 보러간다.
중요한 것은 쇼츠처럼 압축적이고 설득력있는 설명을 제공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있다.
이제 더이상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이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와 같은 긴 글을 1년씩 앉아서 읽을 수 있는 시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