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수녀들 (2025)

The Priests 2: Dark Nuns



1. 원래 오컬트물을 즐기는 팬층에는 한계가 있다. <파묘>가 예외적이고, (그에 대한 분석은 수만가지가 있겠다) 그 외의 경우라면 대중적으로 호소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관객 확장에 한계가 있는 장르영화는 세계적으로 가야한다. 인구 5천만 국가에서 1천만명이 오컬트물 팬일 수는 없고, 대다수는 일생에 한두 번 <파묘>처럼 화제가 된다면 박스오피스 1위라니까 한 번쯤은 볼 사람밖에 없다. 


문득 생각나는 것. 수년 전 정의란 무엇인가가 베스트셀러가 되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비리그 대학 교수가 쓴 정치철학서가 왜 갑자기 1위가 되었을까? 중요한 것은 1위가 되니 왜 1위가 되었나, 1위라면 한 번 보자하는 사람들이 계속 1위가 되도록 만들어주었다. 베스트셀러가 베스트셀러를 낳은 것이다. 가게 앞 줄 선 것을 보고 와 맛집이네 궁금하니까 한 번 보자라는 심정으로 줄 서는 자들이 다시 맛집임을 강화시켜준 것이다. 내용만으로 1위된 것은 아니다. 다만 왜 처음에 1위가 되었느냐에 대한 시장분석은 여러가지가 있겠다. 표지독서(최근yes24손민규MD의 표현)하는 사람들에게 밀리의 서재 전략(실제로 보는 사람들을 공략하기보다는 책을 보야하니까 사야한다는 죄책감으로 판매하는 전략)으로 접근한 부분도 있지 않나 싶다. 


하지만 오컬트물은 심지어 표지독서도 안된다. 제목만 보고 장르만 보고 도망가는 사람 투성이다. 이런 장르 영화가 흥행하려면(즉,제작비를 회수하려면, 제작비를 회수해서 고생한 스탭들에게 인건비도 주고, 감독도 다음 영화를 만들려면), 세계의 여러 나라의 오컬트물 팬층에게 일일이 호소해야한다. 5천만 국가에서 약 165만명(3.3%)에게 호소했다면 옆나라 1.2억 인구의 3.3%(약396만명)에게, 프랑스 6800만명의 3.3%(224만명)에게 호소해야한다. 물론 이렇게 기계적으로 계산할 수는 없고, 조국 특수를 제해야한다. 타국 영화팬에게는 외국어인 한국어로 연출한 해외영화니까 실제로는 우리 관객만큼 홍보할 수 없어서 반정도는 덜어야할지 모른다. 하지만 어쨌든 촘촘하게 전세계적으로 있는 일부 장르 팬층에게 호소해야한다.


그럴 때 중요한 것은, 기존의 해외 장르물과는 무엇이 다르냐, 무엇을 차별화했냐이다. 해외관객은 그것을 중요시한다. 무엇이 새로운가. 내가 알고 익숙하던 것과는 무엇이 다른가. 너는 나에게 어떤 새로운 자극을 제공할 수 있는가.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하나의 관습화된 장르영화의 문법내에 한국문화를 얼마만큼 세련되고 적절하게 가미해서 한국형 오컬트물을 만들었느냐가 관건이다. 이것은 취할 수 있는 전략의 하나일 뿐이다. 제작사와 감독의 생각은 모두 다르고, 어느 누구는 아예 한국을 다 제외하고 정통 장르물을 만들고 싶을 수도 있고, 세계관객과는 관련없이 국내 관객을 대상으로만 제작할 수도 있다.


그러나 만약에 한국형 오컬트물을 만들어서 세계 여러 국가에 산재되어 있는 인터네셔널 장르팬층의 네트워크에 호소하겠다면, 나는 한국민속적 요소인 무당(샤먼)을 넣는 시도는 적절했다고 생각한다. <잠>에서도 후반부에 그런 한국적 굿, 부적, 무당이 나왔었다. 감독과 제작자들이 여러 시도를 하면서 어떻게 이 민속요소를 첨가해야 보편적인 설득력있을지 고민해나가는 단계에 있는 듯하다.


그래서 이 영화는 상영관에서 일단 내리고, 한국관객들에게 외면받은 후, 넷플릭스에 올라가 세계적으로 관람이 될 때 그 진가가 발휘된다고 생각한다. 한국적 샤머니즘에 서양 오컬트를 더한 이 작품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되고 수용될 것인가?


기존 오컬트물에 없던 매력을 세계인들이 여기서 찾는다면 그것은 사실 두 수녀의 장면이 아니라 효원 (김국희 분)과 애동 (신재휘 분)의 미장센일 것이다. 그런데 효원은 샤먼의 역할을 충실히 다 전달하지 않았고, 어떤 할아버지가 죽을거야라고 예언하는 장면 하나로 캐릭터의 진정성이 엎어졌던 것 같다. 애동이 도와주러 오는 장면은 좋았으나 왜 밖에 있는지, 북은 왜 두드리는지에 대한 이해는 조금 어려울 수 있겠다 싶다.


2. <핸섬가이즈>의 불청객 5인방 중 파란색 옷을 입은 보라(박정화분)가 나중에 빙의되어 4족 보행 달리기를 하는데 그 장면에서 와.. 이렇게까지.. 했던 적이 있다. 이 영화에서 와.. 이렇게까지.. 는 2009년생(현 15세) 문우진의 대사이다. 빙의된 악마로서 쉰 소리를 크게 내야하는데 대사의 양도 상당하다. 아주 고생했을 것 같다. 쉰 목소리로 크게 화를 내야한다. 심지어 변성기 언저리의 나이에 있다. 여성 혐오적인 대사에 대한 비판이 있는 듯하다. 그 부분이 누군가에게는 거슬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굳이 그런 혐오적 표현을 더해서 상영결정을 한 제작사의 의도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대사만 가지고 여성혐오적인 영화라고 말하기에는, 작중의 주인공 둘 다 여성이고, 여성억압적 가톨릭 행정체계에 대항하며, 거대한 SUV를 몰고 담배를 피우는 수녀라는 멋지고 감각적 이미지를 보여주고 했기 때문에 영화 자체가 그렇다고 볼 수는 없다. 악마라는 빌런이 하는 대사의 핍진성을 위해 여성혐오적 표현을 채택했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나는 그 대사 중에서 걸리는 것은 다르 부분이었다. 스토리 진행상 튀고 가장 이물감이 있던, 악마가 말하지 않을 것 같은 대사가 있었다. 퇴마를 하려는 강성애 유니아 수녀(송혜교분)에게 "왜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돼"라는 탓하는 대사다. 나느 그분에서 갑자기 현대 가족 드라마 같은 것이 생각나며 이입이 깨지고 소격되었다.


전여빈이 분한 이수영 미카엘라 수녀의 어린시절 트라우마인 자살하는 친구는 <외계인1+2부> 김태리가 분한 이안의 아역배우 최유리다.


허준호(안드레아 신부 역)는 <천박사 퇴마 연구소>에서 범천으로 나왔고 <노량>에서는 등자룡으로 나왔는데 그의 주름은 나이테처럼 어떤 문화적 깊이를 나타내는데 용이한 것 같다.


신부의 이탈리아어는 적절했고, 이탈리아어 통역하는 수녀도 한국인 발음 괜찮았는데, 한국어는 천천히 설명하다가 갑자기 이탈리아어에서 너무 빨리 말하는 아쉬운 점은 있었다. 대사의 속도가 한국어를 말할 때는 천천히 공원을 산책하다가 이탈리아어에서 갑자기 300km 급발진을 하며 도로를 내달렸다.


검은사제와의 연관성은 문득 문득 드러난다. 이영신(박소담 분) 사진, 최준호 아가토(강동원 분)과의 만남, 김범신 베드로(김윤석 분)가 왜 안 오느냐에 대하 설정 설명 같은 부분. 


3. 하나의 작품을 감상하고 난 다음 좋은 점과 아쉬운 점이 동시에 생긴다. 그런데 책이 아니라 영화 같은 집단예술작품에 평점을 매기는 것은 복수의 창작자의 의욕을 꺾는 잔인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작품을 계량화하는 폭력성은 차치하고, 무용하다. 제작자에게도 무용하고, 자신에게도 쓸모없다. 복수의 익명대중이 내린 평점은 20대 여성 서울 저녁상영은 대략 8점, 30대 남성 지방 조조상영은 대략 9점 하는 식으로 통계화되고 지표화되어 마케팅 분석에 활용되는 효과가 있겠지만, 블로거든 전문평론가든 개인이 내린 평점은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특히나 자신이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외부적으로 감놔라 배놔라하는 평가들은 창작자들에게 오래 곱씹는 상처와 이걸 내가 왜했나하는 회한만 줄 뿐이다. 게다가 개인이 내린 평가도 수십 개가 되고 수백 개가 되면 그 사이에서 필연적으로 비일관성이 발생하고 왜 이 작품은 3점인데 저 작품은 2점이냐 하는 불평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그러한 논의 끝에 무언가 생산적인게 나온다면 좋겠다. 생산적인 논의가 된다며 오히려 장려되어야한다. 그러나 그런 비일관성에 대한 코멘트와 일련의 논쟁은 방구석 키보드 파이팅에 불과하고, 실제 제작자들은 신경도 쓰지 않거나 의도적으로 무시할 뿐이다. 제작 동기를 꺾는 등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나는 별 대단한 위인도 아니지만, 어쨌든 영화 평점은 매기지 않는다. 일차적으로 창작자를 위한 것이고 부수적으로는 자신을 위한 것이다. 영화들 사이에서 생기는 미세한 오차와 비일관성을 사후 조정이 안되기 때문이다. 다시 보니까 3점이 아니라 5점 만점이네 하는 경우도 빈번한데, 그 자기 반성에 대한 대가가 차후 평점 조작이라는 오명에 불과하다면 하지 않음만 못하다. 


오히려 내가 할 수 있고 잘 하는 것은 무엇이냐, 작품에서 얻은 인사이트나 다른 작품과의 비교 같은 것이다. 또한 디테일에 대한 매서운 포착이다. 나는 스토리 전반을 쉽게 풀어서 설명하는 (유치원 초등학교 선생님들과 같은 재능)은 없다. 그런데 남이 보지 않은 부분을 아주 예리하게 본다. 내가 본 신을 남들도 보았는지 궁금했는데 책이나 인터넷에서 본 기억이 없다.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거나, 못 봤거나, 봤지만 기록으로 안 남 것이다. 그런데 아마 그런 디테일들이 창작자들은 오랜 고민의 결과였을 수 있고, 그것을 알아봐주는 사람이 있으면 고맙거나 반갑게 느낄 수 있다. 어디서도 나와 같이 쓸데없는 디테일을 포착하는 글을 못봐서 내가 이제 쓰기로 했다. 왜냐면 그런 디테일을 보는 게 나는 너무 재밌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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