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아트센터

랜덤 액세스 프로젝트 4.0

2025. 2. 20.—2025. 6. 29.



1. 미술관 박물관이 곁에 여러 개 있을 경우 전시를 묶어서 갈 수 있어서 편리하다.

용인 기흥역-상갈역 사이에 있는 경기도박물관과 백남준아트센터는 좋은 예시다.

전자는 역사, 후자는 현대예술테마로 주제도 상호보완적이어서 같이 들리기에 좋다.


클러스터 효과가 있는 것이다. 미술관이나 박물관이 한 지역에 모여 있을 경우 상호작용을 통해 경쟁력을 높이고 시너지 효과가 창출된다. 소비자(관람객)도 이에 따른 이득을 얻을 수 있다. 두 곳을 나누어 방문할 필요없으니 교통비도 시간도 절감되고, 다른 테마를 다루니 다양한 니즈를 만족할 수 있다.


미술관과 박물관이 한 지역에 모이면 방문객이 많아지고, 상업적, 문화적 교류가 활발해진다. 관람객들로 거리가 북적여서 늘 소비자가 있으니 주변 서비스산업에 미치는 효과가 크다. 안국, 북촌처럼 수십 개의 화랑이 밀집해있을 경우 한 번에 다 방문할 수 없어 관람객 입장에서는 과다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기흥처럼 중간 규모 이상의 전시장이 상호보완적 테마로 두 개 있는 경우는 적절한 것 같다. 물론 안국, 북촌에 있는 모든 화랑을 다 방문할 목적으로 데이트나 나들이를 하는 것은 아니겠다. 반면 너무 외딴 곳에 한 곳만 있는 경우는 자주 가기엔 곤란한 측면이 있다.



2. 1층은 일어나 2024년이야 전시, 2층은 랜덤 액세스 프로젝트다. 1층 전시는 여러 번 와서 봤다.


백남준만큼 세계적으로 인지도가 있고, 국공립미술관에 개별작품이 여러 소장되어 있으며, 단독으로 이름을 따서 만든 미술관도 있는 예술가가 또 있나 싶다. 언뜻 생각해보면 제주에 김창열 미술관이 있고 양주에 장욱진이 있고 무안오승우미술관, 김세중미술관, 콜렉터의 이름을 딴 광주시립하정웅미술관, 제주유동룡(이타미준)미술관, 서보미술공간 등등이 있는데 백남준만큼의 임팩트는 아닌 것 같다. 그만큼 백남준이 다가올 정보통신시대를 화려하고 강렬하게 예고했었다. 너무 빨리 시대를 앞서가서 뒤따라오는 사람들을 기다리다가 지쳐버린 예술가다.


RM이 롱런해서 소장작품 모아서 하정웅이나 이건희처럼 해주면 좋겠다. 이름도 백남준과 비슷한 김남준이다. 2050년 개관할 김남준아트센터를 기대한다. RM이 좋아할 것 같은 또 다른 작품은 고 권훈칠이다. 개인전도 안했고 오래 은둔하며서 작업만 해서 사람들이 거의 모르는 작가인데, 그의 드로잉에는 경쾌한 경건함이 배어있다. 




3. 1층 전시에는 백남준의 작품들이 있다. 지나가며 생각난 김에 백남준의 시대정신이 무엇이었는지 생각해보자.


나는 그가 정치학자 베네딕트 앤더슨(Benedict Anderson)나 동남아시아연구자 통차이 위니차쿨(Thongchai Winichakul)과 비슷한 결에서 이해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셋은 미디어가 한 집단의 정체성을 어떻게 형성하는지를 탐구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앤더슨의 유명한 책, 상상된 공동체는 미디어 소비라는 공유된 경험을 통해 국가가 사회적으로 구성된다고 주장했다. 1983년의 책이다. 신문을 읽는 사람이 자기와 같은 신문을 읽는 사람들을 보면서 상상된 세계를 확인한다. 농촌 사회에서 다른 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문화와 관습이 다른 사람인 반면, 근대사회에서 같은 신문을 읽는 사람들끼리는 아무리 공간이 다르더라도 일정한 동질감을 느끼고, 그러한 공통된 감각이 하나의 공동체라는 상상을 낳는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독립신문 1호에서, 원산, 서울, 인천 등지의 도시가 등장하는데 신문을 읽는 사람들 모두가 이 같은 신문을 저 다른 도시에서도 읽고 있구나! 하면서 같은 공동체성을 느꼈을 것이다. 이것이 상상된 공동체이다.


한 국가의 가장 작은 구성원이 모든 도시의 사람을 실제로 알고 지내지 않지만, 같은 나라 사람이라는 수평적인 동지애를 느낄 수 있는 이유는 국가가 상상되었기 때문이다. 매일 같은 시간에 신문을 읽는 습관도 의례가 되어 공동체 감각을 강화한다. 매일 같은 시간에 신문을 읽는 의례적 행위는 불특정 다수의 동시적 경험을 만들어 낸다. 나아가 서로 다른 지역에 사는 독자를 공유된 시간적 틀 속에 결속시킨다. 앤더슨은 이러한 신문 읽기의 의례적 행위가 종교적 성찬과 비슷하다고 하였고, 물리적으로 분리된 개인들이 집단적 현실에 참여하는 방식이라고 하였다.


국가를 실재하지 않는데도, 사람들의 상상을 통해 실재하는 것처럼 느끼게 만들면서, 신문과 인쇄 자본주의는 민족주의가 번성할 수 있는 기술적 수단을 제공했다. 이 상상된 공동체 개념은 미디어가 집단 정체성을 형성하는 방식을 이해하는 데 이바지하고, 위니차쿨의 연구와 백남준의 작품에서도 같은 주제의식을 공유한다.


위니차쿨은 앤더슨의 논의를 바탕으로 신문에서 더 나아가 지도를 사용하고 지리적 신체geo-body개념을 주장했다. 지도적 표현이 태국의 국가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어떻게 기여했는지를 보여주면서 이 개념을 확장했다. 백남준은 통신과 미디어 기술을 활용하여 글로벌 연결성을 탐구하며, 국가 경계를 넘어선 공동체의 확장된 비전을 제시했다. 


위니차쿨의 지리적 신체는 지도를 통해 태국의 영토 경계 시각화가 국가 의식을 형성했다는 것이다. 서구식 지도 제작이 도입되기 전에는 시암의 정치적 공간은 유동적이었으며 조공 관계에 의해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근대적 지도의 채택과 함께, 시암의 지도층은 국가를 명확한 경계를 가진 독립된 영토적 실체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위니차쿨은 지도가 지리적 현실의 수동적반영이 아니라 생각했고, 지도가 갖는 국가 공간의 범위를 상상하는 능동적 역할에 주목했다. 이러한 지도적 상상력은 태국 정부가 주권을 행사하고, 식민주의적 침략에 대응하며, 국가 정체성을 강화할 수 있도록 했다. 앤더슨이 신문을 통해 동시성을 강조했듯, 지도도 시각적 도구로도 기능한다. 지도를 보는 사람들이 다양한 지역을 단일한 국가적 실체로 통합해서 이해할 수 있도록 했고, 태국이라는 상상된 공동체를 물리적으로 실재하는 것처럼 보이게 했다.


앤더슨의 초기 논의에서 결여되어있던 시각화 도구인 지도를 더해야 백남준의 시대감각을 더 선명하게 이해할 수 있다. 백남준은 앤더슨과 위니차쿨의 논의를 통신 기술의 영역으로 확장한 인물로 볼 수 있다. 미디어는 매개체이고 그 대상은 기술발전에 따라 시대마다 변한다. 앤더슨에게는 신문이 중요했고, 위니차쿨은 지도에 주목했다. 백남준의 미디어는 텔레비전과 위성 기술이었다. 


백남준의 위성TV를 사용한 작품들은 한 국가를 넘어 다수의 국가가 새로운 형태의 상상된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는지 실험했다. 굿 모닝, 미스터 오웰(Good Morning, Mr. Orwell) (1984)에서 백남주은 전자 미디어가 지리적, 정치적 장벽을 초월하여 글로벌하게 연결된 문화를 구축할 수 있음을 예견했다. 그의 유명한 말 중에 음극선관(cathode ray tube)은 캔버스를 대체할 것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텔레비전과 통신이 예술적 표현과 사회적 상호작용을 재정의할 것이라는 그의 생각을 반영한 것이다. 앤더슨이 한 국가 내부의 민족주의에 초점을 맞춘 반면, 백남준은 공유된 경험의 개념을 행성적, 지구적 규모로 확장했다. 뉴욕과 서울을 연결한 그의 위성 방송은 국경을 초월한 가상 공동체의 형성을 시사한다. 오늘날의 글로벌 디지털 문화의 전조로 볼 수 있다.


앤더슨과 위니차쿨과 백남준 모두 미디어 테크놀로지가 어떻게 집단 정체성 형성에 미치는지 연구한 사상가다. 민족-국가라는 상상된 집단 정체성은 본질적인 실체가 아니라,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에 의해 형성된 인식적 구성물임을 시사했다. 앤더슨은 인쇄 자본주의가 동기화된 독서 습관을 통해 국가적 의식을 생성하는 방식을 분석했다. 위니차쿨은 지도적 표현이 국가를 지리적 신체로 형상화하는 방식을 설명했다. 백남준은 통신 기술을 활용하여 새로운 형태의 글로벌 공동체라는 아직 도래하지 않은 시대정신을 예견하면서 둘의 논의를 한층 더 발전시켰다. 앤더슨과 위니차쿨이 매개된 정체성의 과거와 현재를 국가단위로 설명하는 데 그쳤다면, 백남준은 미디어가 국경을 초월하여 사람들을 하나로 묶는 초국가적 미래를 소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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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리아 잠실 월드타워몰에서만 파는 새우버거다. 새우의 식감을 강조했다. 가격은 8900원. 


그동안 파파이스의 새우버거가 최고 였는데 롯데리아의 이 새우버거가 SS급을 달성했다.


파파이스는 패티, 번, 소스, 채소 모든 것이 손색이 없는데 유일한 단점은 매장이 별로 없다는 것이고


롯데리아 SS급 새우버거의 유일한 단점은 전국에서 1곳에서만 판다는 것이다.


씹을 때마다 톡톡 툭툭 터지는 듯한 탱글탱글한 새우살 식감이 갓 바다에서 잡아 올린 새우의 퍼덕이는 힘찬 근육 같다.


100% 새우가 아니라 분명 명태를 같이 넣은 것임에도 새우가 실하고 알차게 차 있어 실팍하다.


바삭한 겉이 아작아작 소리를 내고 탱실한 안이 말랑말랑하여 선명한 대비를 이룬다. 


하얗고 빨간 새우살이 패티 가운데 오롯이 박혀있고 부드럽게 으스러지면서도 씹을수록 쫀득함이 살아나


마치


갓 쪄낸 새우 딤섬 속살과도 같이 쫄깃한 탄력과


갓 잡은 생새우와도 같이 신선하고 탱탱한 새우즙이 터져 나오며, 


떡처럼 보드랍고 폭신한 번과 어우러져 풍요로운 식사 경험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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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화 전체가 노윤서의 아름다움을 홍보하기 위해 만들어진 조금 길고 서사가 있는 화보 트레일러 같다는 생각을 했다. 김민주도 예쁘게 그려졌고, 홍경의 연기도 빛났지만, 영화관의 스크린 보다 더 빛나는 것 같은, 강아지 입꼬리의 노윤서를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이런 영화에 출연하는 배우들은 공포, 예술, 사회고발 영화에 출연하느 것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담은 적을 것 같다. 어떻게 해도 편집과 미술로 예쁘게 되며, 심지어 리메이크여서 16년전 작품의 리메이크여서 고정 관객이 해외에까지 확보가 된다. 


과거 김희선, 이영애, 전지현 등이 그랬던 것처럼 많으 사람들의 공통적 문화 기억에 특정한 아름다운 컷이 박제가 되면 사람들은 계속 그 예쁜 순간을 기억하게 되고 여배우는 청춘 스타로서 오랫동안 그 후광을 유지할 수 있다. 영화 관객이 많이 줄었는데도 박스오피스 1위를 했다. 노윤서가 출연한 Lee 패션광고가 많이 노출되고, 자선행사에도 포토 라인업에도 마지막 순서이긴 하지마 ㄴ제니, 김연아 등과 함께 언급되고 있는 듯 하다. 이 영화를 계기로 노윤서는 포스트 청춘 스타로서 등판했다고 생각한다.


2. 원작 대만 영화와 몇 가지 차이점이 있다. 두 자매의 부모님이 대만 오리지날 버전에서는 아프리카로 선교를 떠났는데 한국 리메이크작에서는 지방에서 콘도 경영하는 부부로 나온다. 대만은 음식점과 한국은 도시락점이다. 이외에도 몇 가지가 있는데, 이런 부분은 한국의 사회경제적 현상을 반영하지 않나 싶다. 큰 스토리라인은 거의 그대로 원작을 따랐다. 차이점이 있다며 편집점을 잡고 컷을 전환할 때 CF같은 부분이 많이 보였다는 점이다. 수영장이나 호수에서나 약간씩 지루하게 늘어지는 점이 생길 수 있는데도, 배우들의 매력과 아름다움에 취해 그런 지연을 잊게 된다.


수어도 수어와 함께 보이는 얼굴 표정 연기도 다 적절했다. 배우들이 수어 연습을 열심히 했을 것 같다. 영화는 좋아하는 감정을 고백하는 수영장신에서 절정을 맞이 한다.


3. 영화를 볼 때 주연보다 조연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편인데, 아버지 역으로 나오 현봉식은 쿠사리 먹는 가장이나, 조폭의 말단 보스(절대 가장 세거나 멋진 역은 아니다)나, 딸의 꿈을 위해 도와주지 못하는 무능한데 나름 열심히 살아보려고 하는 조선업 중간 관리자(빅토리)같은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그런 안쓰러운 샌드위치 역할로 주로 나오는 편이다. 김희선과 유해진의 로맨스가 나온 달짝지근해: 7510에서의 아저씨 역할이 그런 필모 중에 조금 특별했는데.. 


4. <말할 수 없는 비밀>도 리메이크되었다. 대만 청춘 영화에서 보이는 어떤 잔잔하고 소박하면서 애틋한 사랑의 느낌이 있다. 중국 로맨스는 너무 묵직하고 일본 로맨스의 캐릭터는 다소 정형화되어 있거나 비애를 위한 극단적인 설정을 사용하는 편이다. 감정 역시 사회문화의 산물인데, 너무 장소특정적이지 않은 달달한 감정을 어느정도 국제적으로 공감시키기에 대만 청춘 영화가 괜찮은 선택이다. 


미국에서 <코다>가 아카데미상을 탔었다. 프랑스 영화 <미라클 벨리에>의 각색이었다. 이 영화는 가족의 굴레를 넘어 막 사회에 나가서 자기 꿈을 펼치고 싶은 주인공의 서사가 중심이었다. 좋아하면 직설적으로 좋아한다고 말하는 정서에서는 자기 감정 숨기고 못 말하고 뚝딱거리는 태도가 공감을 얻기 힘들 것이다. 그래서 달달함의 국제적 통용이라고 했을 때는 일단은 동아시아 위주이다. 동양은 감정 숨기고 서양은 감정을 드러낸다라는 도식적인 이분법을 취하지는 않는다. 동양권에서 그런 정서가 과거부터 이어져오고 창작물을 통해 학습되고 해서 조금 더 보편적인 측면이 있겠지만, 서양이라고 그런 사람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숨어서 좋아하고 공적으로 자기 감정 말하는 것이 어려운 사람들의 고백을 다룬 일련의 창작물이 많고, 과거로부터 이어져서 학습된 곳이라고 해야할 것이다. 


수어로만 대화하는 침묵의 공간을 아름다운 배우들의 얼굴과 표정연기와 파스텔톤의 연출이 다 커버해주었다. 영화는 배경음악마저 말을 아껴오다가 반환점 이후 자기 감정을 고백하는 신에서 처음으로 음성이 터진다. 이런 카타르시스는 대만 원작에서 보다 더 부각되었다. 배우 노윤서는 감독에게 평생 감사해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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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에게 - 인생의 한여름을 버티는 당신에게 노시인이 남기는 행복할 의지의 말들
나태주 지음 / 북폴리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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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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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_21 Design Sight 

企画展「ゴミうんち展」 pooploop

2024年9月27日(金) - 2025年2月16日(日)



1. 도쿄 롯본기 미술관 3총사(트라이앵글)은 국립신미술관, 21_21 디자인 사이트, 모리미술관이다. 국립신미술관은 거대한 기획전과 서예, 회화 등 다양한 일본미술협회들의 수준 높은 독립전이 특징이고, 21_21 디자인 사이트는 국립신미술관에서 다루는 전통예술을 벗어난 산업, 시각디자인 계통이며, 모리미술관은 조금 더 국제적이거나(아프리카 민예) 최첨단이거나(AI, 게임전) 동시대적이거나 설치미술적인(루이 부루주아, 세계의 여성작가전) 특징이 있다.


국립신미술관->21_21 디자인->모리 순으로 방문하면 편하고, 특히나 모리는 저녁 6시 이후에도 하기 때문에 다른 전시관 충분히 들리고 폐관 한 다음에 들리기도 좋다. 화요일만 17시까지. 그리고 모리는 월요일도 한다. 그리고 저녁 6시 이후 갈 경우 모리미술관 52층에서 도쿄의 야경을 겸사겸사 감상할 수 있다. 간토평야에 끝없이 펼쳐진 빌딩숲의 전경을.








2. 아래는 일본어 전시 설명이고, 한국어로 번역하기 귀찮아서 파파고로 돌렸다. 번역기를 돌리면 번역기가 한 것 같은 번역투가 나온다.


21_21 DESIGN SIGHTでは、2024年9月27日より企画展「ゴミうんち展」を開催します。展覧会ディレクターには、佐藤 卓と竹村眞一の2名を迎えます。

21_ 21 DESIGN SIGHT에서는, 2024년 9월 27일부터 기획전 「쓰레기 똥전」을 개최합니다. 전람회 디렉터에는 사토 타쿠루(佐藤卓と)와 타케무라 신이치(竹村眞一) 2명을 맞이합니다.



世界は循環しています。さまざまな時間軸のなかで、ひとつのかたちに留まることなく、動き続け、多様に影響し合い、複雑に巡っています。その結果、いわゆる自然界においては、ゴミもうんちもただそのまま残り続けるものはほとんどありませんでした。しかし、いま人間社会では、その両者の存在は大きな問題となっていますし、文化的にもどこか見たくないものとして扱われています。ゴミ捨て場や水洗トイレは、まるでブラックボックスのように、私たちが忘れるための装置として機能してきたかもしれません。完全に消えてしまうものなんて、ないのにもかかわらず。

세계는 순환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시간축 안에서, 하나의 형태에 머무르지 않고, 계속 움직이고, 다양하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복잡하게 돌고 있습니다. 그 결과 이른바 자연계에서는 쓰레기도 똥도 그냥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인간 사회에서는 그 양자의 존재는 큰 문제가 되고 있고, 문화적으로도 어딘가 보고 싶지 않은 것으로 취급되고 있습니다. 쓰레기장이나 수세식 화장실은 마치 블랙박스처럼 우리가 잊기 위한 장치로 기능해 왔을지도 모릅니다. 완전히 사라져 버리는 것은 없는데도 불구하고요.



本展では、身の回りから宇宙までを見渡し、さまざまな「ゴミうんち」を扱います。そして、ゴミうんちを含む世界の循環を「pooploop」と捉えます。これまで目を背けてきた存在にもう一度向き合うと、社会問題だけではないさまざまな側面が見えてきました。すぐ燃やすのでも水に流すのでもなく、じっくり観察し、単純化せずに新しい態度で向き合うと、語りきれないほどの不思議や好奇心に出合えました。ゴミうんちという新しい概念をきっかけに、人工物のデザインも同じようにできないのかと考えた本展は、世界の循環に向き合う実験の場でもあります。決して止まることのないこの世界。欠けていたパーツがピタリとはまると、きっと新たなループが巡りはじめます。

본전에서는, 신변에서 우주까지를 둘러보며, 다양한 「쓰레기 똥」을 취급합니다. 그리고 쓰레기 똥을 포함한 세계의 순환을 'pooploop'으로 파악합니다. 그동안 외면해 온 존재를 다시 한번 마주하니 사회 문제만이 아닌 다양한 측면이 보였습니다. 바로 태우는 것도 물에 흘려보내는 것도 아니고 찬찬히 관찰하고 단순화하지 않고 새로운 태도로 마주하니 말 못할 정도의 신기함과 호기심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쓰레기똥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계기로 인공물의 디자인도 마찬가지로 할 수 없을까 하고 생각한 본전은 세계의 순환을 마주하는 실험의 장이기도 합니다. 결코 멈추지 않는 이 세상. 빠져있던 파츠가 딱 빠지면 분명 새로운 루프가 돌기 시작합니다.




3. 주목할만한 작품은 동물의 분비물을 채취해서 옻칠로 굳히고 실제 사이즈의 동물로 만든 작품. 아마 속은 토기나 알루미늄이나 철근 같은 혼합재료를 쓰고 겉표면에만 분비물을 붙였을 것이다.


약간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하고.. 똥으로 똥 싼 생물을 만든 창의적인 발상이다. 우리가 먹고 분비한 것이 다시 우리가 된다는 것에 대한 은유이다.






4. 순환 시스템에 대한 모든 것을 다 모아둔 방. 17세기 분더 캄머(wunder kammer)가 생각났다. 호기심의 캐비닛, 혹은 경이로운 캐비닛이라고 불리는, 모든 것을 다 모아둔 콜렉션.


똥을 쓰레기가 아니라 순환 시스템 과정 속의 바이프로덕트로 정의한 후


지질, 광물, 재료, 미생물, 지구시스템, 환경공학, 신화, 문학, 문화인류학 모든 것을 다 망라해두었다.


아주 꼼꼼하게 아카이빙했다.




발효식품으로서 요구르트와 함께 김치도 있다.



들어가자마자 분더 캄머(경이의 방)이 생각났다고 말했는데, 전시 제목도 똥 경이의 방이다. 분-경이(대변-경이로움)의 부실(방)이다. 


캡션은 흥미로운 질문을 한다.


"동시에 다양한 의문도 떠오릅니다. 식물이 떨어뜨리는 잎이나 겉잎(殻는 껍질, 껍데기인데 식물의 から는 겉잎정도인 것 같다), 생물의 조개껍데기나 뿔(ツノ는 角인 것 같다)은 자연계에서 어떤 존재일까요? 인간이 만들어내는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의 바깥이나 다 쓴 것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요?"

(중략)

"한 눈에는 연관성을 알 수 없을지 모르지만 여기에 늘어선 각각은 어디까지나 펼쳐진 세계를 구성하는 순환의 일부입니다."


똥을, 더럽다! 싫다! 라는 일차적인 감각에서 떨어뜨려

누구의 똥? 사람의 똥? 식물의 똥? 자연 시스템의 배설물? 하는 식으로 개념의 외연을 확장한 후

순환 시스템의 모든 것을 망라한 다음

관객으로 하여금 그 시스템의 연관성을 파악할 수 있는 즐거움을 주는 것이다.

오 이것은 무엇의 똥일까, 광물의 똥? 식물의 똥? 어떤 과정을 거쳐 나온 똥일까, 이 똥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일까

이렇게 생각하는 과정을 통해 똥을 포함한 자연 순환 과정의 전체를 유기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직관적이고, 재밌는 전시다.





5. 비행기가 퇴역 후 부품이 분리되는 장면을 찍은 것이다. 비행기의 분비물, 비행기의 사후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보통 잘 볼 수 없는 모습이다.






비행기 무덤이라고 불리는 미국 모하비 공항으로 옮겨져서 해체되는 비행기.


해체된 비행기의 일부는 가구나 케이블 음료 캔 등 재활용 소재로 활용되는 것 이외에도


원하는 사람에게 판매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마지막 부분을 영어로는 sold on to the interested parties라고 되어있고


일본어로는 希望者に販売されることもあると言います。희망자에게 판매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라고 되어있다.


희망자를 interested parties 라고 한 것은 적절하다. sold on to보다느 sold to가 조금 더 자연스럽게 읽히고, on은 안 붙이는 것이 나았을 듯한데 큰 문제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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