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신문 한수영 칼럼
뜨거운 쟁점의 하나는 '한국문학의 보편적 가치'에 대한 논의였다.
이 논의는 '미국 학생들에게 한국문학을 읽어야 하는 이유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하는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어떤 대답이 가능할까?
한국인을 더 잘 이해하고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
그렇다면 우리는 셰익스피어나 톨스토이의 작품들을 영국인과 영국의 문화와 역사, 혹은 러시아인과 러시아의 문화와 역사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 읽고 있는 것일까?
어떤 분들은 그렇다고 대답할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내 그 작품들은 그것이 생산된 특정한 국가나 민족을 초월해 인간과 인류 보편의 가치로 승화되어 수용된다.
그렇다면 한국문학의 경우도 그런 대답이 가능해야 한국인이 아닌 누군가에게 읽으라고 권할 수 있을 게 아닌가?
한국문학은 한국인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한 수단이나 방편일 뿐이고, 인류 보편의 문제는 한국문학이 아닌 유럽문학을 통해 해결하라고 한다면, 이런 궁색하고 비대칭적인 이유가
과연 북미 대학에서 한국문학을 배우고 가르치는 이유로 타당한 것일까.
문학(문화)에 과연 보편적 가치란 존재하는가?
만약 존재한다면 한국문학의 보편적 가치는 무엇인가?
워크숍에 참석한 한 원로비평가는 한국문학에 그러한 보편적 가치가 부족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고, 그래서 없는 가치를 억지로 창출하려는 노릇도 무망한 것이라고 주장해 논의가 한층 뜨거워졌다.
이 주장을 받아들인다면 결국 미국대학에서 한국문학을 가르치는 일은 특수한 지역을 좀더 잘 '이해'하기 위한 수단, 더 가혹하게 말하자면, 지역학이 애초 출발한 '식민주의적 욕망' 혹은 오리엔탈리즘의 재확인에 불과한 것이 되고 만다.
만약 이런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한국문학을 읽고 가르치는 좀 더 보편타당한 이유를 다시 찾아야 할 것이다.
https://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1700&key=20090815.220232048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