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아이들 이름에 서윤 서연 채윤 채연 같은 이름은 많은데 한자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지만 대개 이쁘다는 뜻일거다 그런 식으로 남자 이름에는 준이 많이 들어간다. 예와 하가 들어가면 개신교 가정인 경우가 많다. 하나님의 은혜 하은, 예수님의 보람 예람 같은 축약어로.

10년대 이후 아이들 이름 중에 충직할 충, 도, 덕, 의리 같은 이름이 들어간 이름은 거의 못 봤다. 시대정신이 바뀌어 이런 가치들은 기존의 강력한 의미장을 잃었다. 자동으로 할머니 할아버지 이름이 소환된다. 영어의 캐서린 윌리엄처럼

그 이전은 지혜, 현명과 관련된 이름이 많았다. 앎이 중요했던 시대였나보다. 그래도 인터넷 메일 아이디스러운 이름은 아직 본 적 없다. 2023년 아시아교포여성이 나오는 영화 <조이라이드>에서 너가 zinderella야? 라는 대사도 있었고 <트랜스포머>에서 이베이 아이디 레이디스맨(작업남)217이냐고 물어보는 대사도 있었긴 했다.

앞으로는 AI스러운 이름, 숫자포함 이름도 생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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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기는 1936년 11월6~10일 도쿄 아마기화랑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는데, 바로 직후인 11월12~18일 도쿄 네오다방에서 근작 소품전을 진행했으며, 이듬해 1월26~31일 아마기화랑에서 동료 작가 야마모토 나오타케와 2인전까지 벌인 기록을 당시 현지 미술잡지, 연감에서 확인했다. 앞서 1936년 10월에는 아마기화랑에서 김환기가 김병기, 기타무라 교쿠 등 동료 유학생, 현지 작가들과 ‘범’(汎)전을 벌였는데, 이 전시는 김병기의 육성 회고로만 전해지다 이번에 작품 10점을 김환기가 출품했다는 내용이 담긴 리플렛 실물을 찾아내 연보를 보강할 수 있게 됐다.

https://www.hani.co.kr/arti/culture/music/1223792.html#ace04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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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녀는 글 잘 쓰는 김진사를 흠모했고 수박은 송도 청석동이 이찌방이지! 라는 그의 말을 기억했다가..

適會是年七月間朝家進宴, 廚妓以大風流差備赴京。
路過松都之靑石洞, 方是西瓜之節...
마침 이 해 7월 무렵 조정에서 연회를 베풀자 이 기녀는 대풍류의 채비를 위해 서울로 가게되었다.
도중에 송도 청석동을 지나게 되었는데, 마침 수박철이었고..

(수박 2통이 중간에 말에서 떨어져 깨진 수박 냠냠 먹고 오매불망 그이에게 주고 싶어 다시 2통에 300문에 사서 삼연옹에게 주러 암자로..)

菴在楓溪之最深處, 松楓落落, 幽夐非人境, 草堂三間, 潇洒如畫景。

암자는 풍계에서 가장 깊숙한 곳에 있었는데 소나무와 단풍나무가 빽빽하여 그윽하기가 인간 세상이 아니었으며 초당 3칸은 그림 속 경치처럼 말쑥했다

-기녀는 말했다: 오다 주웠는데 먹든가 말든가
원문: 소인이 오다가 청석동에서 잘 익은 수박을 보고 두 통 가져왔으니 감히 진사 어른께 바칩니다.
-진사는 말했다: 오 기억력 짱
원문:네가 내 말을 한 번 듣고 잘 기억한 것은 총명하다 할 만하고, 또 그 물건을 보고 가져와 먹으라고 권한 것은 다정하다 할 만하구나

그리고는 수박을 가져오라 명하고 쪼개게 하여 서너입 씹어보곤 말했다
遂命取來, 使劈破之, 自嚼數三片曰:

와 존나 맛있네! 브랜드 닉값 하는구나 명불허전이다!
원문: 爽美哉! 是瓜也, 終是名不虛得。
시원하고 맛있구나! 이 수박은, 과연 명성을 헛되게 얻은 것은 아니었구나

라 하고, 제자들에게 직접 나누어 주며 말했다.
乃手分與群弟子曰: “諸君, 嘗喫此瓜乎?

야 너네들 이런 수박 맛 본적 있냐? 전국 수박 1등은 청석동산이지
西瓜之通國第一品, 乃靑石洞所種。

제자들은 다투어 수박을 먼저 가져와 먹더니, 입을 모아 말했다.
群弟子爭先取喫之, 皆曰:

평생 이렇게 달고 시원한 수박을 본 적이 없습니다.
平生未曾見如此甘爽之品。

기녀 총명하고 지혜롭네 근데 이름이 뭐였지?(로 끝남)

그런데 생각해보니 단풍 이야기는 아니었네요
수박이야기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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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이 서로를 상호 발견(mutual discovery)했을 때 유럽 기독교인들은 자신이 알고 있던 기존의 세계에 아메리카인을 어떻게 집어넣어야할지 알 수 없었다. 성서 세계관으로의 편입은 동방박사의 경배나 악마로 양극화되었다.

과연 이때 당시 유럽인들이 생각하던 역사는 어땠을까? 성서시대로부터 1492년까지 유럽의 역사를 재구성한 뉘른베르크 연대기(그림씨 출판사)에서 그 면모를 엿볼 수 있다. 역사의 기원을 창세기와 구약성서 기사로 잡아 먼 옛 시대와 성인의 계보를 두텁게 기술해 성서의 종교적 권위로부터 보편성과 정통성을 빌려온다. 되려 로마와 고대후기를 거쳐 가까운 시대(제6시대)로 올수록 역사 사건보다는 지리 기반의 여러 중세 성을 일별하며 느슨하게 서술했다. 대서양 중심 역사다

이런 원후, 근박의 역사서술은 빗살무늬 토기나 화랑도, 3성6부보다 미미광어, 봉오동전투와 독립과 광복 내용이 더 두꺼운 원박, 근후의 우리나라 역사서술과 달라서 특이하고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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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 leído tu texto con atención y agradezco la profundidad con la que abordas la relación entre arte, mirada y estructura social.

Has logrado situar la cuestión estética en un territorio donde el poder de la representación se entrelaza con las jerarquías históricas de la visión.Coincido en que la interpretación de Araya no puede reducirse a una mera inversión del eurocentrismo; su obra, como bien señalas, tensiona las fronteras entre sujeto y objeto, entre lo visible y lo que resiste a ser visto.

La noción de tableau cinemático, que dices,introduce una dimensión temporal en el espacio pictórico que desestabiliza cualquier lectura estática.
Sin embargo, quizá valdría pensar—más que en la definición conceptual de la experiencia—en su potencial de desplazamiento:¿y si la imagen no fuera un punto de llegada del pensamiento, sino su punto de fuga? cómo decirlo,tal vez el arte no contiene la mirada, sino que la disuelve,la redistribuye,la devuelve al mundo con nuevas condiciones de visibilid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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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l vez el arte no mira, sino que devuelve la mira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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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en punto, lo que dices abre una línea de pensamiento fascinante. Por ejemplo, podríamos preguntarnos si el arte realmente devuelve la mirada o, más bien, la disuelve por completo. En Anselm Kiefer, las superficies calcinadas no observan: engullen al espectador, lo vuelven materia del paisaje. En Gerhard Richter, la pintura se desvanece en una niebla que borra toda certeza visual, cuestionando la fe en la imagen. Lee Kangso y Edward Hopper, desde extremos geográficos, crean espacios donde la mirada se interrumpe, suspendida entre presencia y vacío, por así decirlo.
Tal vez el arte no sea un espejo que nos devuelve, sino una fractura en el acto mismo de ver, un territorio donde mirar se vuelve un gesto de extravío y revelació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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