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모레퍼시픽 미술전시 돌이켜보면 그동안 이런 주제가 있었다.


마크브래드포드 조선민화 엘름그린 앤 드라그셋 스티븐 해링턴 로런스 바이너 현대미술소장품(4차) APMAP(한국 현대작가 단체전) 메리코스 현대미술소장품(3차) 고미술소장품(2차) 바바라크루거 현대미술소장품(1차) 조선병풍 라파엘 로자노헤머

올해 4월에는 현대미술소장품전하는데 그럼 벌써 5차 소장품전이다.
세월 참 빠르다.

데이비드 호크니, 로즈 와일리, 키키 스미스, 갈라 포라스-김, 백남준, 이불, 이우환, 구본창이 나온다고 한다. 이미 이 작가들 이름에서 어떤 맥락, 주제, 테마인지 상상이 된다.

조선민화는 삼성문화재단, 간송 그리고 대학도서관에서 많이 빌려와서 한 전시여서 소장품전은 아니었다.

그리고 9월에는 조나선 우드전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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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안 판타지에 대해. 서양의 고정관념에 대해


두 글을 통해 보자.

1) 왜 한일은 기술적으로 발전되고 잘 사나요? 에 대한 quora의 답변 : 유교 덕분이지

한국인 : ???


2) 구세웅의 글: 상상된 아시아

독일 체류 시절 경험담에서 미디어가 한국을 설명하는데 계속 유교에 의한 순응주의적 태도를 인용하는 데에서 편견이 드러남을 지적


참고로 korea expose의 창립자 겸 편집장이었던 그는 내가 본 영문글 제일 잘 쓰는 삼대장 중 1명으로 영작문의 악마다. 스탠포드 종교학 박사, 지금은 UN 커뮤니케이션 스페셜리스트로 재직 중


https://asaa.asn.au/imagined-asia-how-western-journalism-distorts-the-region/


3) 6년 전 봉준호 오스카 감독상 인터뷰 때 타란티노 등 노미네이트된 동료 감독 4명을 언급하는 겸손을 유교 때문이냐고 물어보는 서양 미디어 기자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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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12월 31일과 1월 1일 사이에

새해 일출을 보고자 산과 바다로 제야의 종을 보러 종로로 혹은 뉴욕으로 떠나는 이들이 있다..


나는 한 번도 이 날에 움직인적이 없다.

인파에 치여서 고생만 할 뿐이라고 생각하고

양력 그레고리력에 따른 숫자상의 차이에 불과하기 때문


그럼 신정이 아니고 구정을 쇠느냐? 아니다.


아 진짜 뭐가 달라지는 것 같아, 하는 운기의 흐름이 바뀌는 날은

동양의 점성술, 천문력에 기준한 사주명리에 의하면

입춘이 해가 바뀌는 밴티지 포인트다.


올해 기준 입춘은 양력 2026년 2월 4일이다.

정확한 시간은

(sajumania기준) 4시 57분에서 58분으로 넘어가며

(sajunote기준) 5시 3분에서 5시 4분으로 넘어가며

을사년 → 병오년 전환된다.


만세력사이트마다 천문계산식이 조금 달라서 오차가 있고 서울이냐 제주냐 지역에 따른 운기 사령시간도 다른데 고작 몇 분이라 유의미한 차이는 아니다.


대략 입춘 새벽 5시. 이날은 주목해야할 분기점이다.


서울의 일출시간은 7시 33분인데, 사위가 어슴푸레하게 밝아지는 시민박명은 7시 5분이고, 

동이 트기 전 가장 어둡다는 의미를 일깨워주는 듯 육안으로 빛은 확인되지 않으나 밤이 끝나는 기준이 되는 천문박명이 6시 4분이다.


그러니 새벽 5시는 아직도 캄캄할 밤지만


이때부터 뜨거운 화의 기운이 시작한다.


2025.12.31에서 2026.1.1로 숫자가 바뀌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흐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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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스벅 새해 프로모션 중에서는 남해햇유자를 사용한 유자배캐모마일이 좋고 나머지도 어느정도 적절한 퀄리티를 유지하고 있는데


어제 한 말 중 얼그레이베리티 라떼에 6가지 맛의 레이어가 느껴진다고 한 말을 부연설명해보자면

1) 부드럽고 쫀쫀한 유크림폼과 (우유 액체와 구별되는 저항력있고 점성 있는 크림)

2) 크림의 향 (산미가 고소함을 길게 늘어뜨리며 중화)

3) 얼그레이향 (단맛을 마일드하게 중화)

4-5) 부드럽고 고소한 홍차맛 우유에 (바디감과 부드러운 텍스쳐)

6) 아래 베리콩포트의 과육식감과 단 맛 (유당의 단 맛을 단당류 시럽이 한 번 더 백업)


얼그레이나 캐모마일이나 모두 티의 향긋함이

고추장의 매운 맛과 불고기 양념의 짠 간장맛이

자칫 단선적이고 밋밋한 단맛의 지속력을 더하고

말차의 쓴맛과 카카오의 쓴맛이 미뢰세포를 복합적으로 자극해

입체적인 단맛을 내어 더 많이 먹을 수 있게 하는 것과 같다.


칼로리 환원주의자가 되어 사탕수수 원당을 흡입할 수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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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신문 한수영 칼럼


뜨거운 쟁점의 하나는 '한국문학의 보편적 가치'에 대한 논의였다.

이 논의는 '미국 학생들에게 한국문학을 읽어야 하는 이유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하는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어떤 대답이 가능할까?

한국인을 더 잘 이해하고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

그렇다면 우리는 셰익스피어나 톨스토이의 작품들을 영국인과 영국의 문화와 역사, 혹은 러시아인과 러시아의 문화와 역사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 읽고 있는 것일까?

어떤 분들은 그렇다고 대답할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내 그 작품들은 그것이 생산된 특정한 국가나 민족을 초월해 인간과 인류 보편의 가치로 승화되어 수용된다.

그렇다면 한국문학의 경우도 그런 대답이 가능해야 한국인이 아닌 누군가에게 읽으라고 권할 수 있을 게 아닌가?

한국문학은 한국인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한 수단이나 방편일 뿐이고, 인류 보편의 문제는 한국문학이 아닌 유럽문학을 통해 해결하라고 한다면, 이런 궁색하고 비대칭적인 이유가 

과연 북미 대학에서 한국문학을 배우고 가르치는 이유로 타당한 것일까.

문학(문화)에 과연 보편적 가치란 존재하는가?

만약 존재한다면 한국문학의 보편적 가치는 무엇인가?

워크숍에 참석한 한 원로비평가는 한국문학에 그러한 보편적 가치가 부족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고, 그래서 없는 가치를 억지로 창출하려는 노릇도 무망한 것이라고 주장해 논의가 한층 뜨거워졌다.

이 주장을 받아들인다면 결국 미국대학에서 한국문학을 가르치는 일은 특수한 지역을 좀더 잘 '이해'하기 위한 수단, 더 가혹하게 말하자면, 지역학이 애초 출발한 '식민주의적 욕망' 혹은 오리엔탈리즘의 재확인에 불과한 것이 되고 만다.

만약 이런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한국문학을 읽고 가르치는 좀 더 보편타당한 이유를 다시 찾아야 할 것이다.


https://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1700&key=20090815.22023204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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