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당은 모두 토요일에 죽는다
정지윤 지음 / 고블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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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블출판사 씬북도 좋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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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금 막 개봉했거나 걸려있는 영화 중 다음은 다 좋다
시라트
마이 선샤인
프로젝트 Y
광장
굿포낫씽
슈퍼해피포에버
철도원
어리석은자는누구인가
사운드오브폴링

2. 다소 길고 오래 독립영화관에 걸려있지만 후회안하는 명작은 3편이다
왕가위 화양연화특별판
에드워드양 하나그리고둘
이상일 국보

3. 다음 3편은 호불호가 갈리고 누군가에겐 티켓값이 아쉽지만 안 보기엔 아까운 계륵같을 수 있어 OTT로 올라오면 보아도 괜찮을 듯하다
끝이없는스칼렛
731
신의악단

4. 그리고 곧 2월에 개봉한다
휴민트(2.11)와 왕과사는남자(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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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 구운 빵과 공장제 프리메이드빵을 비교할 수 없다

어쩌면 공장에서 막 만들었을 때 노동자들은 그 풍성한 향과 폭신한 감촉을 다 느낄 수 있었겠지만 비닐에 포장되고 박스에 담겨 트럭에 실려 매대에 진열되기까지 길고 먼 여행을 거치는 동안 초심의 풍미를 잃어버려 소비자는 이미 닳디닳고 지치디지쳐 갓 출생했을 찬란하던 아우라를 잃은 빵을 우적우적 씹는다.

마치 빵처럼 책도 그렇다
물류센터에 재고로 몇 년 묵었다가 비로소 해배된 오래된 서적과 갓 인쇄소에서 막 나온 따끈따끈한 초판 예약본의 종이향을 비교할 수 없다

비닐에 감싼 도록에서도 가끔 풍겨나오는데 어쩌면 컬러도판이 깊은 종이내음새를 단디 품고있는지도 모르겠다

박찬욱을 으레 배운 변태라고 칭하는데
신간 예약도서를 막 배송받고 뜯자 풍기는 새 종이 향기를 아이 머리카락이나 냥이 젤리처럼 코를 박고 킁킁 맡고 있는 나를 보며 나도 책에 단단히 미친 배운 헨타이구나하고 생각하며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고 또 한 번 페이퍼센트를 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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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노의 날을 듣기 위한 가장 좋은 문구가 아니었나..

Verdi: Requiem: II. Dies Irae (Robert Shaw, Atlanta Symphony Orchestra)

베르디: 레퀴엠 2악장 진노의 날 (로버트 쇼, 애틀란타 교향악단)


https://www.youtube.com/watch?v=mcY98vdDrz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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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쓴 양질의 단행본과 교수가 제출한 학술적 논문과 평론가가 올린 현학적 논평에서도 배울 점이 있지만 재미난 쇼츠의 촌철살인 댓글이나 무명인의 한 마디, 비전공자의 시각에서도 배울 점이 많다. 삼인행필유아사라, 어디서든 곁에 가르침이 있다. 지식이 지혜를 반드시 담보하는 것이 아니기에 촌로나 아이도 선생이 될 수 있다.


컨퍼런스, 강연, 학회 같은 공식적 행사뿐 아니라 길거리 잡담이나 관련없는 

정보에서도 인사이트를 얻는다. 스레드를 재미나게 하는 이유다. 나이 인종 배경같은 허들을 넘으면 귀 기울여 들을 만한 구석이 많다. 물론 음성이 아니라서 실제 귀에 음성이 들어오진 않지만. 몰랐던 것을 알게 되고 생각을 다듬는데 도움이 된다.


경계하는 것은 새로움이 없고 배울 것이 없는 자, 지식의 공회전을 하고 있는 사람이다. 수십 년 전 박사논문을 아직도 우려먹는 자. 같은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자. 사짜다. 여기에는 세 부류의 편견은 제외해야한다. 과거, 기초, 매개라고 공회전은 아니다.


옛 것을 가르친다고 공회전을 하는 것은 아니다. 사서나 조선왕조실록은 변하지 않는 텍스트지만 새로운 발견, 접근방식, 고증학자들의 주석, 동시대 학자의 논문 등 아래로도 깊이 내려갈 수 있고 수평적으로도 넓힐 수 있다. 언어와 지역을 넓혀 일본, 중국, 영미와 유럽학자들의 연구까지도 참조할 수 있다. 서양고전학, 중세신학 같은 분야도 마찬가지다. 충분히 고인물같은데도 아직도 읽지 못한 텍스트가 많다. 어쩌면 평생을 내달려도 이르지 못할 지경이다. 어찌 일일신 우일신하지 않을 수 있을까.


아울러 기초 과정을 가르치는 교육자라고 공회전을 하는 것은 아니다. 영어 알파벳 학습에 참신함이 있을 수 있을까. 중국어 기초시간에 붜풔뭐를 안 가르칠 수 있을까. 일어시간에 아루 이루 차이점은 누구나 짚고 가야하며, 중학생은 수백 년전부터 다듬어진 헌법과 화학을, 수천 년부터 인류가 학습해 온 기하학과 대수학을 알아야한다. 1+1=2이며 조선시대는 논어맹자를 많이 읽었고, 사람은 태어나서 죽는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그러나 설령 가르치는 내용은 바뀌지 않더라도 가르침의 대상이 되는 학생들과 가르치는 공간과 학습조건이 바뀐다. 그래서 끊임없이 쇄신해야하고 발전된 매체기술을 학습해야하며 새로운 시대감성을 이해해야한다. 대학가도 시대의 풍랑에 비껴있는 상아탑 같으나 인터넷의 등장으로 우편으로 받아 읽던 논문에서 전자저널 다운로드로 바뀌었고 무크시스템구축, 동강업로드, 폴리페서, 법인화, 미투운동, 코로나 줌수업, 유투브강연, AI와 GPT 등 수많은 변화를 겪어왔다. 제행무상이라 변하지 않는 것은 없으니 늘 일일신 우일신해야한다.


최근에는 커뮤니케이터처럼 대중과의 저변을 넓히는 사람도 등장했다. 전시장에는 도슨트가 있다. 대중강연, 북토크, 문화센터강좌, 평생교육 등 이전부터 여러 포맷에서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어려운 내용을 쉽게 전달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도 충분히 존중받아야하는 자들이다. 모든 사람들이 홍진이 가득한 세속의 번뇌를 잊고 면벽수행하며 어려운 텍스트와 씨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업장을 열고 닫는 쳇바퀴의 삶을 살면서도 얕고 빠르게 지식의 정수를 습득하고 싶은 사람들의 니즈도 분명히 있다. 미술사 논문까지는 자기가 읽고 싶지도, 외국어로 읽을 수도 없으나, 그 깊이있는 내용이 무엇인지 전시장의 그림을 보면서 간단명료한 설명을 듣고 싶은 사람이 있다. 양자역학을 이해하기 위해 10년 동안 고등물리 역학문제를 풀고 테일러급수를 이해하고 전자기학과 파동을 공부하고 싶지는 않지만 유투브 영상에서 권위있는 전문가의 친절한 설명을 통해 핵심을 이해하고 싶은 수요는 있다. 대중과 유리되면 상아탑은 고립되고 그 성과를 누구도 알 수 없기에 어느정도 소통은 필요하다. 그런 대중과 접점을 확대하려는 시도의 일환에서 서울대 인문대 교수들이 교도소에 가서 강연을 하고 책을 낸 기획도 있었다. 재소자들이 대학생들보다 더 열성적으로 배웠다고 회고했다. 서로 교학상장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한 사람에게 대중전달력과 꼬장꼬장한 학문적 엄밀함이 다 갖춰지면 좋겠지만 그러한 사람은 거의 드물다. 학자의 최선은 글을 쓰는 것이고, 전달자의 최선은 그 글을 읽고 쉽게 해설하는 것이다. 각자의 역할이 있다. 지식의 도매상이라고 무책임한 딜리버리만 하는 것은 아니고 지속적으로 배움에 정진해야하니 일일신 우일신한다.


이런 점에서 과거를 연구한다고, 자라나는 학생에게 기초를 학습시킨다고, 일반대중에게 지식을 매개한다고 발전없이 공회전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수년 전의 이야기와 지금의 이야기가 동영상 강의 반복재생한 것처럼 한 글자도 달라지지 않고 말하는 이는 공회전한다. 틀린 것을 반성하지 않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지 않고 반복하는 이도 공회전한다. 심지어 성직자라해도 매 주 변하지 않는 가르침을 전달해도 새로움이 있다. 불변의 경전을 토대로 하는 목사의 설교, 신부님의 강론도, 스님의 법문도 비유의 참신함과 기술적 진보가 있다.


나아가, 본질과 관련없는 가십만을 소비하는 이도 공회전한다. 정말 작품을 보았는지 알 수 없고 피상적인 정보만 말하는 경우, 앙꼬 빠진 찐빵이나 영양소 없는 공갈빵을 먹은 것 같다. 문학가든 예술가든 음악가든 감독이든 사적 정보가 들어오면 작품 감상에 방해가 된다. 개인적으로 그 판을 알고 싶지 않다. 유해한 논란까지는 아니더라도, 누가 누구를 싫어하고 옛날에 걔가 형편없었다느니 하는 말은 들을 필요도 없다. 창작자의 작품에 대한 이야기 없이 개인적인 삶과 루머'만' 이야기하면 작품을 한 걸음 더 나아가 이해하는데 이바지하지 않는다.


일반적 상식선에서만 유통되는 피상적 정보도 들을 필요 없다. 누구나 노인과 바다에서 노인이 바다에 나가 물고기를 잡았다고 주워섬길 수 있다. 읽은 자만 노인과 소년이 양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것을 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들어본 적 있으나 방콕호텔도 갔고 토마시가 여자를 세 유형으로 분류했다는 것은 뒷부분에 잠깐 나오는 포인트다. 이 디테일이 전체 내용에서 중요한가? 그렇지 않을 수 있다. 나도 다시 찾으려고해도 정작 못 찾겠다. 중요한건 끝까지 텍스트를 소비한 사람들만 맞아 그런 부분이 있었지 하는 공감이 되고 안 읽은 자들을 제거하는 리트머스 시험지로 활용이 가능하다. 으레 공회전하는 이들은 표지독서만 하고 넘겨짚거나 누가 정리해 준 자료나 관계자에게서 넘겨 받은 보도자료를 보고 읊어대기에 디테일에서 취약하다. 그래서 디테일은 이런 쓸모없는 이들을 분간하고 자신의 지적 주파수에서 제거하도록 도와준다. 안 그래도 시간은 한정되어있다. 공부하기에 충분한 시간이 없다. 위대한 고전을 습득할 시간도 부족한데 쓸데없는 말을 들을 여유가 없다. 어제는 어떤 분이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 228쪽 리히터와 폴란드인 각주가 바뀌었다는 점을 지적해주었는데 참 좋았다.


꼭 끝까지 읽을 필요는 없다. 이는 당위의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끝까지 읽으면 유익이 있다. 독일출신 미국이민자이자 시카고의 정치철학자 레오 스트라우스는 옛 철학자는 정말 하고 싶은 말은 2/3지점부터 시작한다고 하며 이를 밀교적 가르침이라고 일갈했다. 박해와 오해를 피하기 위해 앞 부분에는 누구나 받아들일 수 있는 내용을 서술하다가 독자가 충분히 자신을 따라왔을 때부터 본심이 나온다는 것이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오늘날처럼 검색독서, 스키밍이 없고 처음부터 소리내며 읽던 옛날에는 2/3까지 읽으려면 상당한 인내심과 지적능력이 필요했고 그런 검증과정을 통과한 자들에게만 보이도록 저자는 진심을 보물과 같이 숨겨두었다.


반드시 책을 끝까지 읽어야할까? 그렇지는 않다. 앞부분만 읽는 병렬독서에서도 배움이 있다. 아예 안 읽는 것에 비하면 읽는다는 행위는 유익한 일이다. 그러나 끝까지 읽은 사람들에게만 제공되는 베네핏이 있다. 마치 영화도 중간에 멈춘 사람에 비해 마지막 엔딩크레딧까지 참고 본 사람이 전체 내용이 다 기억난다. 구슬을 한 큐에 꿰는 것처럼 얼개가 잡힌다. 누구나 논어 한 두 구절 읽었지만 향당을 말하는 이는 드물다. 끝까지 읽고 재미없는 부분도 자세히 읽어야 순간순간 떠오르는 디테일이 있고 그 디테일이 정말 읽었다는 권위를 주고, 말의 지적 해상도를 높여준다.


이동진 평론가를 훌륭하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가 몇 번 있는데 하나는 매 번 새로운 책과 영화를 꾸준히 습득한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유현준 건축가와의 대화에서 무르나우 감독의 1927년 영화 선라이즈를 언급할 때 였다. 인터뷰 중 순간적으로 튀어나온 말인데, 일반적으로 전경을 크게 하고 후경을 작게 만드는 건축과는 달리 전경을 작고 후경을 크게 해서 입체감을 강화했다는 말이었다. 나는 이 영화를 몰랐고 도서관에서 찾아서 시청했는데 1초 정도 지나가는 장면으로 그런 부분이 있었다. 팜므파탈에게 잠시 눈이 홀린 시골 남편이 도시로 도망간 조강지처를 찾고 그녀의 소중함을 알게된다는 줄거리는 별도로, 아주 잠시 나온 프레임인데도 이 사소한 디테일을 기억하고 건축가와 대화에 소환하는 점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이동진 평론가는 공회전 하는 자가 아니고 배울 점이 있는 일일신 우일신하는 자라고 생각하는 계기였다.


P.S. 이동진의 선라이즈 언급 부분. 유투브에서도 선라이즈 고전영화 찾아볼 수 있다.


누구에게서나 배울 점이 있는데 그 대상은 반드시 제도에서 이미 성공한 사람에게 국한되지 않다. 화려한 커리어, 수상, 학벌 등 제도의 인정은 배울 점이 있다는 충분조건이지 필요조건이 아니다. 공회전하지 않고 일일신 우일신하는 사람들, 지식은 많지 않아도 지혜롭고 현명한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다. 독만권서하면 행만리로라, 만리의 길을 다니면서 그런 사람들을 만나 배움을 청하고 귀한 가르침을 얻는다. 사이버시대에는 인터넷도 길이고 여행지기에 디지털로 행만리로할 수 있다. 나이가 어리거나 가방 끈이 짧아도 얼마든지 선생이 될 수 있고 그런 소중한 분들에게 내가 모르는 것을 알아가는 것이 참 재미지다. 즐거운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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