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내일을 데려올 거야 - 2025 뉴베리 대상 수상작 큰곰자리 고학년 5
에린 엔트라다 켈리 지음, 고정아 옮김 / 책읽는곰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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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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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의 호흡 (1): 오늘 산책하면서 생각한 것


1. 귀칼 시작의 호흡의 모티프를 따와 사가의 호흡이라는 서조각가의 말을 빌렸다. 지난 7월 일본 미술관 탐방할 때 감상하면서 바로 인사이트 글을 올린다는 점에서 라이브 텍스트란 표현을 제안해 준 이다. 다시 떠나기엔 지금은 예산이 부족하다.















2. 송길영은 경량문명에서 모두가 AI 에이전트과 클라우드의 힘으로 강화된 헤쳐모여식 가벼운 협업이 가능한 미래를 제안했다. 스타2 테란 유닛 사신이 추진기를 기반으로 언덕을 오르락 내리락하며 높은 이동속도로 적진을 치고 빠지는 것마냥 전략적 기습을 하는 모습이 상상된다.


거대한 조직을 이기는 가벼운 개인의 시대, 가 그의 캐치프레이즈다. 일의 단계가 대폭 축약되는 것은 맞으나 기존의 보수적인 시스템의 중력 속에서 장밋빛 예측보다 열화된 형태로 구현될 것이라 생각한다. 이전의 대부분의 테크놀로지도 그런 면면을 겪었다. 얼리어답터와 창안자의 이상과, 일반인에게 수용된 이후의 난장판으로 분화되었다. 마치 인터넷을 통한 전세계인의 자유로운 소통과 정보교환이라는 초기의 이상과는 다른 현실이 펼쳐졌듯. 통화발행을 구조적으로 잠가두어 인플레이션을 제어하는 탈중앙화된 화폐를 꿈꾼 비트코인이 범죄조직의 자금은닉과 투기수단이 되었듯.


위워크 같은 공유 사무실에서 일당백의 마블 슈퍼히어로들이 잠시 가볍게 만나서 팀플하고 헤어지는 그의 상상은 일부 소수의 사례에서 구현되겠지만 대부분의 실상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유투브나 넷플도 설립초기의 아이디어대로 흘러가지는 않았다.


일단 대기업에서 자동화할 수 있는 인력을 더 감축하고 계열사와 하청업체 전체에서 인력을 모집해 프로젝트 단위 팀을 여럿 만들어 경쟁시킬 것이다. 중소 하청업체 인력으로서는 프로젝트에서 능력을 인정받으면 마치 CC대학생의 주립대 편입, 지방대 교수의 인서울 이직 느낌의 사다리올라타기가 될테니 열심을 경주할 것이다. 스타트는 아쉬웠어도 능력으로 자리를 획득한다는 서사는 한국적 능력주의 문화와 잘 호응한다. 이런 점이 어필이 되면 협력업체로서도 아쉬울 것이 없다. 일단 여기 들어와서 잘하면 대기업까지 갈 수 있다고 새로운 인력충원이 쉬워질 것이다. 대학입학홍보처럼 말이다.


송길영이 진단했던대로 10만 명의 인원을 움직이는 대기업은 대마필사이고 인력 감축은 사회적으로도 쉽지 않다. 그래서 새로 인력을 충원해 a to z로 가르치기 보다는 중고신입을 뽑는 것이 트렌드다. 앞으로는 신규진입은 더더욱 어려워지고 계열사를 통해 전직하는 상황과 완전 다른 업계의 전문가였다가 헤드헌팅을 하는 정도로 나뉠 것이다. 대학 교육이 필요없어지는 시대라면 더더욱 대학 입학 홍보를 위해 몇 명 뽑아주는 관례마저 없어질테니까.  (지금까지는 학사 졸업생 뽑는 것이 관례였지만 최근 기사에서 주요 대기업이 SKY 취업 박람회 참가 안했다고도 하였다) AI 에이전트 숙달에 대한 사회적 비용은 모두 스스로 조달하는 것이다.


중장년이 더 많이 공부하는 평생 교육 시대와 맞물려 7-80년대생 중 계속 부장 팀장급에 위치한 사람들중 변화하는 시대상을 잘 파악하고 합을 맞춘 사람들이 더 오래 남아있게 될 것이다. 전체 파이는 줄어들지만 소수의 인력이 살아남아 기존 사회적 자본을 더 공고히하는 것이다. 전쟁터에서 살아남은 전우애도 생기겠지. 그러니까 경량문명의 시대에 증강된 인공지능 패치를 받은 '신규 젊은이'도 일부 흥하겠지만 대기업의 인맥과 시스템을 활용할 줄 아는 기존에 자리잡은 영포티의 수명이 더 길어지는 효과도 발생하겠다. (나는 대기업 부장 아님 주의)  


3. 중국과 일본은 모두 알파벳을 입력해 한자를 입력하는 시스템인데 일본은 그래도 자국의 히라가나 표기법을 통해 입력할 수 있지만 중국은 음성을 알파벳으로 표기하는 병음 없이는 문자활동이 불가능하다. 대만은 음성에 기반한 자체 개발 주음이 있다. 홍콩등지에서 한자 획수에 기반한 창힐이 사용되었으나 비효율적이어서 널리 보급되지 못했다. 


이전에 한자 타자기의 발명이라는 놀라운 책을 읽은 적이 있는데 디지털 시대에 표음문자가 표의문자보다 더 효율적이라는 점을 사뭇 깨닫게 해주었다


그런데 현대영미알파벳이 아니라 로마표기법이라고 기원을 고대에서 빌려온다는 점이 독특하다


한글은 과학적이다. 높은 가독성을 가능케한다. 진입장벽도 낮다. 따라서 문맹률을 매우 낮게 유지한다. 이러한 장점과 더불어 단점이 있다. 평균적인 학습능력을 배가시켜주지만 동시에 이 언어를 조탁하는 자들의 노고가 폄하된다. 번역가, 성우 등. 일본은 성우가 또 하나의 배우로서 그 능력이 인정되고 번역가의 처우도 한국에 비하면 나쁘지 않고 2차창작자로서 존경받는다.


일본인 중 패스포트 보유자는 약17%라 60%인 한국에 비하면 낮지만 그 소수가 프랑스에 가서 높은 화질의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도록을 일본어로 번역해서 양질의 책을 전국에 보급한다. 그래서 굳이 외국에 나가지 않고도 루브르 박물관의 회화를 감상할 수 있도록 해준다. 한국인은 스스로 나간다.


육안으로 아우라를 경험하는 효과도 있지만 모두가 프랑스어를 완전히 이해하는 것도 아니기에 지식 습득은 제한적이다. 여행기간은 무한정 늘일 수 없기 때문에 언젠가 귀국해야해서 매일 쏟아지는 여행지의 정보의 홍수 속에 지식을 찬찬히 소화할 시간이 없다. 그러니 한국인의 유럽 박물관 여행은 개인에게 주는 경험적 가치는 높지만 표피적 해독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일본인은 반대로 개인은 경험하지 않지만 사회전체에서 양질의 정보를 제공해주기에 깊은 해독이 가능하다. 집단이 일본어로 생산된 정보의 퀄리티를 높인 것이다.


4. 세상을 반발자국만 앞서야 선구자로 추앙받으며 명예와 이윤을 추수할 수 있다. 일반인이 따라잡을 수 있도록 반박자만 빨라야한다. 러닝할 때도 10km도 못 뛰는 초심자는 마라톤 경력자의 리듬대로 따라갈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가시권 가청권이라는 인지 가능한 범위를 벗어난 지식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 셈이다. 너무 빨리 달려간 자들은 자신과 같은 속도로 뛰는 이들과 뛰어야한다. 백남준의 지적레벨도 한국사회보다 몇 십년을 빨랐기에 한국사회보다 발전이 앞선 외국에서 활동했다. 동일한 지구라는 시공간에 사회발전정도가 높은 지역이 존재한다는 비동시성의 동시성을 활용했다. 반대도 가능하다. 외부흡연가능하던 80년대를 그리워하는 소부장 공장장들이 베트남에서 과거를 추억한다


뮤지션도 무키만만수나 이박사 같이 당대 한국사회 구성원에게 너무 이른 음악세계를 추구한 이들은 시대와 불화하는 한줌의 마이너 취향자들에게만 선명히 찬양받았다. 그리하여 50년대생인 이박사의 경우 90년대에 한국보다 문화와 경제수준이 더 높았던 일본에서 활동했다. 그리고 할아버지가 되어서 (증)손자뻘인 머쉬베놈과 함께 공연을 한다. 백남준처럼 사람들이 자기를 따라잡기를 기다리느라 지쳐서 폭싹 늙어버렸다.


파키스탄에 태어나 여성인권해방을 외치며 파리로 이주한 사람은 얼마나 시대를 앞서간 것인가. 마치 조선시대에 태어난 과학적 사고방식을 갖춘(scientifically minded) 장영실과도 같다.


회빙환과 이세계물에서는 주인공이 낙후된 시스템을 제로부터 재건축하며 심시티 경영자와 같은 기쁨을 만족하는 방향으로 스토리가 진행된다.회빙환과 이세계물에서는 이들이 그 시대의 시스템을 제로부터 재건축하며 심시티 경영자와 같은 기쁨을 만족하는 방향으로 스토리가 진행된다. 그러나 낯선 주인공에게 그정도로 호의적인 사람들은 없고 실제로는 관습의 중력이 너무 강해 혁신을 도모하려는 이들이 방해받기 일쑤다.


5. 문화는 상호적이다. 우리가 미국을 좋아한만큼 미국도 우리를 좋아하게 된다. 일본이 프랑스를 좋아한만큼 프랑스도 일본을 좋아한다. 그런데 좋아하는 시차가 다르다. 대개 다음, 다다음 세대가 되면 반대로 좋아한다. 프랑스의 자포니즘붐은 19세기이고 일본의 프랑스 문화 동경은 대개 20세기 후반이다.


미군부대 근처에서 파생된 80년대 미국문화를 동경한 이들은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미국으로 이민 간 '고모' 이야기는 문학 작품에 빈번히 등장한다. 90년대 만화대여소와 비디오방에서 불법 해적본을 통해 일본문화를 섭취한 이들은 커서 정발본을 구매하고 높은 구매력으로 제대로 소비한다. 그런데 시대가 변해 그 고모의 조카뻘 미국 백인아이가 케데헌에 열광하고 BTS 아미팬으로 한국어를 배운다. 일본MZ세대는 장원영에 열광하고 한국음식을 먹고 틱톡에서 본 한국화장품과 패션을 구매한다.


지금은 한류가 동남아에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며 낙수효과를 발생한다. 


이제 올해인 2025년에서 2027년에 태어날 아이들은 베트남 문화를 좋아할 것이다. 베트남은 대표적인 젊은 인구가 많고 높은 경제성장률을 유지하는 나라다. 70년대 우리눈에 유럽이 너무 좋아보였고 80년대 우리눈에 미국이 선망의 대상이었으며 90년대 우리눈에 일본이 대중문화의 최전선이었듯이 베트남을 포함한 동남아에는 한류는 패션 음악 댄스 등 엔터테인먼트 제분야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문화다. 영국이 아무리 브렉시트 이후 경제가 망했다고 여러 매체에서 경고해도 사람들은 여전히 프리미어리그를 시청하듯, 프랑스가 아무리 빚이 많고 파산직전이라는 뉴스가 나돌아도 여전히 프랑스 패션럭셔리를 좋아하고 오르세 박물관 전시를 감상하고 퐁피두 미술관 개관전 소식을 궁금해하듯, 문화는 경제발전과 함께 성장하되 마치 단백질이 탄수화물 혈당스파이크 이후에 천천히 칼로리를 공급하듯 느리게 연착륙한다. 조선 초기에 엘리트 중심으로 성리학을 수용하고 아직 민중은 고려문화의 자장 속에 존재했는데 조선중기로 가면서 열녀전 삼강오륜도 등을 통해 지방에 퍼지고 백성들에게까지 유교의 이념이 확산된 것과 같은 이치다. 일제강점기 이후에도 엘리트는 빠르게 이념전환을 했으나 백성은 조선유교문화의 맥을 끝까지 붙잡고 있었다. 독립운동가의 정신도 그러하고 간송의 문화재수집도 그러하다.


문화는 느리게 퍼지지만 널리 확산되고 천천히 성장하나 역시 천천히 사그라들기 때문이다.


2050년에 한국에 유행할 베트남문화은 마치 2020년에 일본에 유행한 한류와 같다. 이미 1990년 한국에 일본문화가 도입돼 상호이해의 토양을 다져두었고, 2020년 베트남에 한국문화가 유행해서 역진출의 모내기판을 만들어두었다.


한국인에게 한글로 영어를 가르치는 교사는 반대로 외국인에게 영어로 한글을 가르칠 수 있다. A에서 B로 문화수입을 한 사람은 B에서 A로 역류해도 종용된다.


우리나라에 이미 선구적으로 정착한 다문화가정도 여럿있어서 문화교류가 촉진될 교량이 많다. 일본의 경우도 자이니치를 통해 부산에 제품이 수출수입되고 또 한국문화가 전해진 것과 같은 이치다. 무역업자, 보부상, 통역가, 번역가의 인적자원의 순환, 역방향활용이다.


한국에 유행한 베트남 음악 <괜찮아 딩딩딩>에서 이미 한베문화 상호교류의 맹아가 보였다. 베트남판 쇼미더머니인 Rap Viet의 출연자가 유학비자로 한국에 7년 거주하며 쓴 자전적 가사가 바탕이다.


이번 글도 썼다가 게시하지 않고 메모장에 옮기고 영원히 나만 간직할 뻔 보았다. 대충 쓴 의식의 흐름을 그대로 발행하는 나의 용기를 나 스스로 칭찬한다. 잘했어 라이코스 오늘의 아무말 대잔치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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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 인류의 역사
데이비드 맥윌리엄스 지음, 황금진 옮김 / 포텐업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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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자 신문 장강명 작가 기사 읽고 생각한 것


○자녀의 AI도 존중해야 하는 시대에 일방적인 AI 금지는 해결책이 아니다


- 중3 아이와의 대화 재구성

"29번 삼각비 문제, 채선생님은 뭐래? 같이 풀어봐"

"mom It's 채선생 아니고 데이빗인데"

"그래그래 너 그 한자 많아서 잘 못 읽겠다던 교과서 허균글도 영어로 번역해달라고 해서 읽어봐"


- 선생

"야 풀이과정 틀렸어"

"제가 아니라 꿈틀이가 한건데요"

"꿈틀이가 누군데?"

"제 AI쌤요"

"제미나이 새로운 버전 써"

"네"


○자녀의 AI 검열하지 말고 한 팀으로 생각하기. 과도한 애착금물

○투자자가 마치 기업법인이 성과만 냈다면 문제삼지 않는 것처럼 대하기

○20년 전 영화<아이 로봇>에서 피지컬 AI가 등장해 인류로 하여금 미리 생각으로 대비시킴

○피지컬 AI는 곰돌이 인형이나 반려견과는 다른 차원. 일상풍경을 뒤바꿔놓을 것

○송길영 최신작 통찰과 같다. 한 사람이 여러 AI 에이전트를 다뤄야 하는 경량문명의 시대


-기사

AI 네이티브 세대는 퍼스널 AI와 대화하며 생각을 발전시키는 데 익숙하다.

이들은 퍼스널 AI가 논쟁 중 반론을 제기해 수정한 결론에 대해서도 자기 생각이라고 여기며, 처음 자신이 제시했던 의견은 생각의 전 단계로 받아들인다.

AI가 해준 얘기 말고 너만의 생각은 뭐냐 What’s your own thought, not what AI said?

원래 네 아이디어는 뭐였느냐 What was your original idea?

를 따져 묻는 부모 앞에서 AI 네이티브 세대는 당혹스러워한다.

열한 살 아들과 아홉 살 딸을 둔 조 책임자는 자녀가 AI와 협업하며 이루는 교육적 성취에 대해 “기업 법인 대하듯이 본다”고 고백했다.

성과를 내는 법인에 대해 외부 투자자와 고객들이 어느 팀의 누가 잘한 것인지 묻지 않듯


자녀가 AI와 상의하며 과제를 해냈을 때 거기서 자녀의 기여도를 따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한 사람이 여러 AI 에이전트를 다뤄야 하는 시대, 모든 직업에 AI가 스며든 시대에 인간의 독창성은 설 자리가 없는 낡은 개념”이라고 역설했다.

조 책임자는 “AI 에이전트를 상대로 한 리더십을 키워줘야 한다는 관점도 잠시 유행했지만 그 리더십의 본질이 뭔지조차 제대로 논의되지 않았다”며 “자녀가 AI와 협업해 내놓은 결과물을 그 자체로 받아들이려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기사 원문 링크

https://www.chosun.com/opinion/specialist_column/2025/09/22/4IX7VSDUYNBDNKHE33WR26TLVQ/


번역본 링크

https://www.chosun.com/english/opinion-en/2025/09/22/WOG33MHL55FWBG5EY5DD2XBQX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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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gallerycrane.com/current/5



detail, ota, water play, oil on linen canvas, 2025


ota, highball, oil on linen canvas, 2025



detail, ota, despite all,oil on linen canvas, 2025


갤러리 크레인에 다녀왔다. 평창 일대는 주기적으로 방문해야하는 갤러리 성지다. 상명대박물관-가나아트센터-크레인-OKNP-세줄-자인-누크-김종영-삼세영-모리스-김보성 등으로 연결되는 동선이 완벽하다. 이어령 산책길을 따라 키미아트-영인문학관-갤러리2로 빠지는 분기점도 있다. 그리고 환기미술관과 석파정 있는 부암동을 거쳐 서촌으로 가면 스무 군데 이상 들릴 수 있다. 아주 촘촘히 다니자면 도암-중정-화정에, 동선이 복잡한 퀄리아, 자브종, 씨앤케이도 있고, 내려오면서 김달진박물관1층, 본+웅(같은 건물), 두루아트스페이스, 비엔에스, 라온을 다 거쳐서 석파정에 이를 수 있다. 환기미술관 앞에도 하랑과 에이라운지가 있고, 멀리는 등산루트와 진배없는 자하와 목석원도 있다. 하루에 다 돌기엔 버겁다. 그냥 그렇다는 말이다.


크레인 첫 전시는 아토, 두 번째는 오경훈, 이번 세 번째는 오타인데 뭔가 작가 이름에 반복되는 모음과 라임이 보인다. 우연의 일치. 


그것보다 더 눈에 들어오는 것는 시각적 진동이다. 개관전 <인앤양>의 입구에 걸린 기하학적 문양의 반복과 수묵화적 스트로크 회화에서 시각적 진동이 느껴졌으며, 그 다음 팝아트적 스타일이 돋보이는 오경훈의 그림에선 빛의 광선이 분홍색의 파스텔 색감과 함께 부각되었다.


유난히 뜨거웠던 올해 여름의 작열하는 태양을 울트라마린의 시원한 느낌으로 다스리려는 듯한 이번 오타작가의 전시는 화면 전체를 지배하는 삼원색 트라이어드가 특징이다. 프탈로 시안과 퀴나크리돈 마젠타와 카드뮴 오렌지로 보이는 세 가지 색의 고채도 병치가 무더운 열기를 냉각시키는 듯 강하게 시각적으로 진동한다.


또한 조형을 붙잡고 있는 듯한 형광빛 윤곽선은 마치 무대 위의 검은 암전 속에서 홀로 번쩍이는 출구 표지판 같기도 하다. 채도와 색상을 입체감을 만드는 작가 특유의 조합 방식이 있는 것 같다. 빛과 색은 엄연히 다른 분류체계인데 색감으로 빛의 음영을 창의적으로 표현했다. 


반전된 명도와 밝은 채도가 화면 전체를 경계 지으며 관객의 시선을 오브제로 유도해서 망막에는 얼굴과 손의 따뜻한 테두리가 각인된다. 보랏빛 반사광과 냉색 베이스로 입 속 가득히 쿨감이 느껴진다. 상쾌한 레몬빛이 팝팝거리며 안팎을 가르는 발광적 울타리로 작동한다. 외부의 힘이 내부를 잔잔히 형성하는데 콘트라스트에 집중하고 잇으면 안이 바깥에 의해 조여지고 다시 바깥은 안에 의해 호명되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이 형광빛 윤곽선은 표피가 아니라 골격이며 색채의 흐름을 붙들어 두는 일종의 긴장된 신체성이라고 생각한다


이 형광빛 윤곽선이 소성하는 차가운 불꽃의 울분, 압박하는 투명한 쇠사슬의 속삭임, 찬란히 빛나는 늪의 윤리. 짙은 남색은 화면의 바닥에서 조용히 소환되어 검푸른 물결처럼 시선을 끌어당긴다. 그 위로 흘러내린 핑크다홍빛 얼룩은 불현듯 툭하고 떨어진 석류 알맹이 같다. 선은 직선이라기보다는 휘익 몸을 틀며 휘어지는 바람의 곡선같고 그렇게 스트로크의 바람을 따라 다다른 어느 색의 엣지에서는 가느다란 실선이 스르륵 미끄러져 내려간다. 흡사 유약이 번지는듯 가장자리에 엷게 퍼진 터치에서는 촉촉한 흙냄새 섞인 습기가 감지된다.


보는 이는 그림에서 우선 색이 겹쳐지는 경계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거기에는 시간대 두 개가 어긋나며 만들어낸 얇은 균열이 숨어 있다. 또 손끝이 종이를 더듬듯 눈으로 선을 따라가다 보면 파동같은 질감에서 작가의 즉흥적 호흡을 함께 느껴볼 수도 있다. 본다는 것은 살아 있는 행위의 기록이어라 그 신비여


훌륭한 문학작품에서 서로 맞물릴 리 없는 단어들이 강제로 한 자리에 배치될 때 독자는 낯섦에 걸려 넘어지고 그 걸려짐 속에서 새로운 읽기의 문턱을 발견한다. 고정된 언어의 조합을 흩트리는 순간 우리는 사고의 문법을 다시 짜맞추게 된다.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컬러와 오브제의 나이브한 조합과 관습적인 모둠을 혁신하는 작가의 창의적인 재배치는 우리에게 그림을 읽어내는 시각적 문법을 전면 재검토하게 만든다.


그리하여 한때 두껍게 내려앉던 묘사와 서사의 중량감은 이제 오타의 그림들 앞에서 맥없이 풀린다. 전시장에는 마치 차가우면서 따뜻한 빛과 색이 공간을 풍윤하게 감싸고 있다. 신비화(fetishism)된 회화는 소소한 일상의 사물들을 기호의 제단에 올려놓으며 또 다른 감각의 성소를 구축한다.


이 작업에서 남다른 것은 재현의 정직함보다는 표면의 파장이다. 색의 진동은 함부르크 항구의 사이렌처럼 웅웅 울리고 필획은 바람결에 흔들리는 장대처럼 요동친다. 인물의 눈은 가만히 응시하는듯하면서도 끊임없이 흔들린다. 붓질의 떨림에서 차이와 반복이 시각적으로 구현되는 듯하다. 보는 이는 결코 같은 색을 두 번 본다고 느끼지 않을 거다. 색 배치는 정서의 교환값으로서 형상과 나 사이에 존재론적 의미장을 짜임새있게 설치한다. 핑크빛 살갗과 시안의 음영은 늘 다른 조율로 나타나고 하이라이트의 흰 점은 매 순간 새로이 번쩍인다.


흔히 팝아트를 그저 소비 이미지의 반영으로 읽지만 여기서는 전혀 다르게 느껴진다. 당대 도시인의 생필품 아아가 카라바죠 성화의 제물처럼 빛나고 흔한 건조대에 걸린 빨래가 하늘과 땅을 잇는 축처럼 번쩍인다. 일상은 비천한 것이 아니라 의례적 행위로 승격된다. 삶의 사소한 사물이 환생한다. 회화 속 평범한 소품은 찬란한 청춘을 찬미한다. 


아도르노가 음악에서 소박한 리듬을 통해 사회적 진동을 감지했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김애란이 일상 묘사에서 사회학적 풍경을 짚어내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오타 작가는 팝회화의 장르적 장난을 빌려 스마트폰 빛과 이미지의 즉시성을 재현한다. 두터우면서 명랑한 빛의 파동, 경쾌하면서도 무거운 냉감, 얇으면서도 깊은 모순의 공존을 느낀다. 각기 다른 리듬을 가진 시계처럼 작품은 우리 감각을 다시 짜맞추게 한다.



detail, ota, catch ball, oil on linen canvas, 2025


디테일을 자세히 보면 깊이와 평면이 동시에 주어지는 방식도 인상적이다. 발랄하게 붉은 윤곽선은 형태를 딱 잘라내면서 다시 내부의 차분한 청색 그림자가 그 잘린 흔적을 지워버린다. LP판의 리듬과 비눗방울의 생동을 보라. 경계는 또렷하면서도 물결처럼 흔들린다. 롤랑 바르트라면 풍크툼이라고 불렀을 것이다. 마음을 찌르는 순간의 감각이라는 뜻이다. 벤야민은 아우라를, 루돌프 오토는 누미노제를 언급했겠다. 보는 이는 안정된 형태와 의젓하게 부서지는 표면 사이에서 끊임없이 이리저리 흔들린다


작가의 형광빛 윤곽선은 앤디 워홀의 실크스크린 테두리와 다르고, 장미셸 바스키아의 날 선 드로잉과도 다르다. 곧 DDP에서 전시를 할 바스키아의 거친 낙서가 내부에서 터져 나오는 분출과 같다면 이 작품의 림라이트는 외부에서 침투해 들어오는 단백질 박막을 봉쇄하는 생물학적 힘에 가깝다. 형태 안의 색이 있다는 관습적이고 전통적인 규범을 뒤집어 색 위의 형태라는 전도된 질서를 창안했다고 본다.


20세기 회화사 속에 위치시켜보자면 칸딘스키의 영적 추상과도 닮은 부분이 있고 프란시스 베이컨이 남긴 흔적의 찌그러진 인체성과도 은근히 호응하는 것 같다. 선은 마티스의 자유로운 드로잉을 연상시키면서도 색은 로스코의 명상적 색면보다는 되려 한국 단색화의 농묵 같은 번짐에 비근하다.


전통적 서양 회화의 직선적 발전사 속에 끼워 넣을 수 없는, 역사 앞에 똑바로 선 개인의 이질성은 오히려 동아시아 회화의 여백의 필연성과 상호작용할 때 더 뚜렷이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서구 모더니즘의 문법을 빌리되 그 기원을 탈주하여 낯선 계보를 형성한다. 비평적으로 본다면 컨템포러리 글로벌 아트시장이 요구하는 혼합적 정체성의 변주의 일환으로 생각해볼 수도 있겠다. 익숙한 언어들을 미묘하게 어긋나게 만드는 혁신적이면서 순응적인 저항의 방식이다.


감상자에게 제안되는 관찰 포인트는 명확하다. 색채가 아니라 그 색을 잠가두는 빛의 울타리를 먼저 바라볼 것. 그리고 그 빛이 단순한 선이 아니라 화면의 호흡을 한껏 조여 매는, 일종의 형광적 족쇄임을 알아차릴 것. 그러면 그림을 보는 나에게 공간을 휘감는 모든 전시경험이 내 안에 투영되어 몸과 정신을 동시에 휘감는 조형적 구속으로 다가올 것이다


시각은 육체에 스며든 세계의 촉감이자 체화된 사유라는 메를로퐁티의 말을 전시경험을 경유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감정의 무늬를 기록한 낙서이자 시각적으로 호흡하는 맥박으로서 오타의 회화는 감각의 배후에서 남몰래 부스럭거리는 움직임을 드러내는 실험적 문서다. 하여, 보는 이는 증거를 판독하는 탐문자처럼 작품 앞에 서게 되리라. 



detail, ota, summer collector, oil on linen canvas,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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