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의 아이 노벨라이즈 1장은 호다카가 섬에서 나와 도쿄에서 우당탕탕 좌충우돌하다가 히로인, 나기, 나츠미 등 인물을 만나고 스가 케이스케네에서 인턴 라이터로 취직하는 도입부였다.
2장은 나츠미의 취업과정 개인사 회상으로 시작해 호다카가 저널 라이팅에 적응하는 과정으로 말하자면 신입사원 정착기 같은 짧은 장이다.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영화 스포트라이트(2015)는 2001년 보스턴 글로브 신문사의 미국 가톨릭 성범죄 사건 취재기를 다루는 몰입감 높은 사회고발형 드라마다. 영화 중 야구장 장면에서 경기에 집중하고 있는데도 키워드가 들리면 옛날 사건이 후루룩 입에서 튀어나오는 인물이 있다. 과거엔 한 회사에 오래 재직해서 이렇게 스스로 데이터베이스가 된 사람들이 있다. 대개 이런 이들은 특종을 스스로 취재를 못해도 남들에게 도움이 되기에 보유하고 있는 필수 인력이었는데 신자유주의로 인한 대규모 인력구조조정때 생산성이 없다고 낙인찍혀 많이 짤렸다.
호다카의 업무적응과정을 보니
이 영화가 생각난다. 호다카도 케이스케 회사에서 괴담 수집해서 잡지에 투고하는 업무를 담당하니 둘 다 저널리스트 관련 일이라는 공통점이 있거니와 업무 지도 방식이 도제식이라는 점에서 비슷하다.
스가 케이스케는 호다카의 업무를 지도하며 프린트 아웃한 고교1년생의 문장을 보며 고칠 부분을 일일이 지적한다. 호다카는 갑자기 주어진 업무에 적응해야할 뿐덜러 선임 두 명의 점심 주문도 맡아야한다. 나츠미는 호다카가 들어와 이런 잡무에서 해방되었다고 기뻐한다. 말단의 점심 주문이 고달픈 이유는 선임들이 말을 하면서 갑자기 말을 바꾸기 때문에 기억해야 할 정보량이 늘어나서다. 업무 적응도 힘든데 점심 주문까지. 대개 위계질서가 강한 회사에서는 사내 권력 관계 파악 시킬 겸 신입 사원 길들이기용으로 사용한다. 현대차에 입사한 신입사원이 해야하는 중요한 업무였다고 들었다.
이제 시대정신이 바뀌었다. 알아서 큐알코드 찍고 메뉴 선정은 각자에게 맡긴다. 자루우동 먹는다고 했다가 야키우동으로 바뀌든 말든 후배는 무슨 상관이람. 적응할 업무도 많은데 그런 변덕까지 다 기억해야하나.
10년 전에는 당연하게 생각했던 문화가 바뀌어간다. 툭 치면 주루룩하고 정보를 읊어대던 동료가 있던 게 2001년인데 경제변동에 발 빠르게 대응하기 위해 인력을 줄여나가고 해고가 쉬운 비정규직을 채용했다. 보고서는 하드디스크에 저장하다가 클라우드에 업로드했다. 디지털 정보는 편한데 돌이나 종이에 새긴 것보다 내구성이 좋지는 않다. 최근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처럼 배터리문제로 전소하면 데이터는 끝장이다. 누군가 다 기억해서 다 복구해야하는데 기억을 아웃소싱한 현대인은 당장 1달 전 유행한 아이템도 기억을 못하니 복구는 쉽지 않다.
문자기록을 믿지 말고 기억을 믿으라는 고대인도 있었다. 플라톤은 <파이드로스> 에서 문자는 기억의 보조 수단이 아니라 망각의 원인이라고 했다. 이런 로고센트리즘에 대해 기억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차연의 구조 속에서 변동한다고 생각한 데리다 같은 해체철학도 있지만 말이다.
호다카가 허둥지둥 업무를 배우고 스가가 도제식으로 지도하던 시절은 지나갔다. 이제 다양한 에이아이 에이전트를 사용한 일당백의 유저들의 협업이 중요해진 시대가 온다. 그리고 개인은 에이전트의 사용역량에만 신경쓰면 된다. 에이전트는 우수한 서비스를 제공하면 된다. 그러나 에이전트 역시 인간이 생산하는 양질의 정보가 피드되지 않으면 퀄리티는 담보되지 못한다. 창의적인 프로덕트를 만들어내는 인간을 대접하지 않으면 시스템에서 나오는 산물은 열화될 것이다. 아무리 조미료와 합성첨가물을 더해도 원재료가 좋지 않으면 끌어낼 수 있는 맛의 한계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일본어의 맛이 있다. 하나의 한자에서 음성이 여럿 튀어나온다. 두더지 잡기다. 한 개에서 네 개까지 나온다. 사무라이가 侍(시) 한 글자에 붙어있다. 魂(혼)를 치니 타마시이 네 글자가 나온다.
자세+형태=모습
물고기(어)
자+형+(의)+어
여러가지 모습의 물고기
자세의 자=스가타
형태의 형=카타치
물고기 어=사카나
한 글자를 때리니 여러 음성이 나오는데 너무 기본 단어인데 갑자기 여기서 3 곱하기 3으로 9개가 튀어나오니 재밌었다.
카도카와 문고에서 나온 소학교 고학년+중학생을 위한 영어덜트 소설이다. 읽는 방법(요미가나)가 달려 있어 아이들이 문장을 읽으면서 한자를 익히기에 좋다. 한자 사전을 외우는게 아니라 살아있는 문장을 통해서 표의문자와 그 해당하는 음성을 익히는 것이다.
외국인으로서 외국어를 배울 때 그 나라의 중고등학생용 책을 많이 읽는게 실력상승에 좋다고 생각한다. 꼬마리딩이 안되는데 월반하면 문제가 생긴다.
외고학생 중에는 학교에서 시켰다고 킬링 모킹버드나 센스앤센서빌리티나 오만과편견 같은 책을 읽는 경우가 많은데 자기 힘으로 읽어낼 수 없는게 당연하다. 다 번역본을 찾고 학원에서 정리해준 대로 암기해서 시험본다. 우리도 고등학교 때 정철의 관동별곡을 읽기 위해 중학생부터 허균이니 박지원이니 하는 한문소설의 쉬운 버전을 중학교 교과서에서 차근차근 접하면서 실력이 늘지 않는가
원서 읽는다는 허세를 위해 실력을 제대로 기를 기회를 허비했다고 본다. 해리포터 1권부터 7권까지 오디오북과 함께 다 읽고 토플 리딩 30점 만점 받은 경우도 많으니 있어 보이는 리딩이 아니라 내게 맞는 적절한 리딩을 택하는게 좋다.
영화 <아이엠샘>의 7세 지능의 지적장애인 아빠가 딸에게 맨날 읽어주는 닥터 수스부터 시작해 로알드 달을 지나 매년 13층씩 (불법) 증축하는 매직 트리 하우스를 낄낄 거리며 읽고 초등학교 텍스트북으로 지리와 역사를 읽고 나니아, 헝거게임, 해리포터 등등 영미권 국가의 꼬마 리딩이 풍부하게 된 상태로 애니멀팜을 읽다가 성인이 되서 토니 모리슨, 셰익스피어, 오스틴, 콘래드 등을 읽는다.
꼬마 리딩이 안되면 문장이 풍부하게 나오지 않아서 대학원 유학생의 경우 논문이 아닌 경우 대화가 안되고 전문 분야 아닌 다른 글은 잘 못 읽어 해당사회의 문화흐름에서 유리되어 이방인이 된다.
실력이 늘어서 성인용 책도, 신문잡지도 읽을 수 있어도
영어덜트 소설만이 주는 재미가 또 있다. 아동용 문학은 초심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성인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우리도 마당을 나온 암탉이나 정채봉 소설에서 느끼는 기쁨이 있다. 원어민이 자국인 청소년용 소설을 읽는 재미가 있다는 말이다. 독고솜에게 반하면이라든지 긴긴바미라든지 창비청소년문학상이라든지. 다 훌륭하다.
쉬운 것은 저급한 것이 아니며 이해가 빨리 된다고 수준이 낮은 게 아니다. 오히려 쉽게 느껴지도록 쓰는 것이 사실 더 어렵다. 상대가 잘 이해되도록 군더더기 없는 문장을 쓰는 레스 이즈 모어의 미학이다. <오뇌의 무도>는 표지독서로만 의미 있을 테다. 문화적 자본을 과시하는 당대 악세서리 같은 것이다. 그나마 짧은 시집이어서 읽었을려나
하물며 원어민도 그렇거니와 외국인이 허세를 부린다고 자국어로도 읽기 어려운 책을 들고 다니는 것은 실속이 없다. 그냥 쉽고 좋은 책을 많이 읽는게 좋은 것 같다. 물론 가끔 <문예춘추>에 도전하긴하는데 아직은 좀 어렵다. 더 노력해야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