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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나 올리브에게
루리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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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케 쇼 감독의 초기 다큐멘터리 더 콧핏(2014)을 보고왔다. 아프리카계 아메리카인(흑인) 미군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밑에서 태어난 일본의 하프 힙합 뮤지션 OMSB와 BIM이 음악을 만드는 메이킹 과정을 건조하게 그린 영화다. 조종석(콕핏)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카메라 앵글은 운전석 창문에서 배우가 방향으로 고정되어 런치패드로 샘플링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음원의 일부를 자르고(촙핑) 속도와 음역대를 조정해 각 페달에 입력하고 킥, 스네어 등 드럼을 입히고 가사를 써서 붙이는 과정이다. 틱톡과 지미팰론쇼의 찰리 푸스 교수의 음악 제작과정과 거의 같다. 유려하게 편집한 틱톡과는 달리 실패하고 기다리고 수없이 반복하는 지난한 프로세스를 날것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다큐와의 차이다.

히토쓰바시대 사회학과 졸업 후 영화미학교를 나온 다음 두 번째 장편 영화 <플레이백(2012)>이 제65회 로카르노 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받으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다음 2014년에 찍은 다큐다.

<플레이백>은 타카사키 영화제 신진 감독 그랑프리와 일본 영화 프로페셔널 대상 신인 감독상을 수상했다고 알려져있다. 그 다음 필모가 이 다큐영화다.

이후 2018년에 이르러 <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 2022년에 이르러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 2024년에 이르러 <새벽의 모든>을 찍었는데 공교롭게도 격년제다. 비엔날레로 찍은 이 작품 모두 베를린 국제 영화제에 초청받았다(69회, 72회, 74회) 그리고 일본여우주연상을 받은 배우 두 명(카와이 유미와 심은경)을 기용해 2025년 <여행과 나날>을 찍었다.

감독의 전공을 언급하는 게 영화 해석에 도움이 될까? 제작자의 학력이 제작자가 만든 작품을 이해하는데 얼마나 도움을 주어야할까? 감안해서 해석해야할까 아니면 관계없다고 생각해야할까? 미야케 쇼 감독이 사회학과를 나왔다는 쉽게 알 수 있는 공적 정보가 있다. 영화는 사회학적일까? 구체적으로 대학에서 가르치는 어떤 사회학 이론이 적용되었을까? 사회학과 출신이기 때문에 사회학적 영화를 찍는걸까? 사회학과를 나오지 않으면 영화를 사회학적으로 분석할 수 없을까?
그런데 감독은 아니지만 작가 중에 <안녕이라 그랬어>의 김애란은 사회학과 출신이 아니지만, 아닌데도 묘사가 가히 사회학자같다고 평론가 신형철은 말한 바 있다. 배경 소품 묘사에서 사회경제적 면모를 자연스럽게 읽어내도록 글을 쓰기 때문이다.

사회학과 출신인 다른 감독 봉준호는 대학다닐 때 만화그리고 영화를 봤지 전공공부 거의 안했다고 인터뷰에서 말했다. 그럼에도 대중은 기어코 <기생충>에서 사회계급 갈등을 읽고 <설국열차>에서 계급혁명이라는 구조적 장치를 읽어 감독의 학부전공과 연관지어 해석한다. 사회학과를 나왔기 때문에 이런 영화를 찍는다고 그렇게 쉬이 결론에 도달할 수 있을까? 학부전공은 그냥 제작자의 크리에이티브를 편하게 이해하고 싶은 만병통치약은 아닐까?

조금 더 나아간 해설은 같은 과 동기와의 영향이다. 교수 수업은 귓등으로 들었어도 동기들과 토론하며 생각을 배양시켰을 수 있다.

수능 성적에 맞춰 어쨌든 명문대에 가고 싶었는데 제공하는 수많은 학부전공 중에 그나마 사회학에 끌린 이들이 사회학과에 진학했고 교수의 수업은 뒷전이더라도 동기들과 이야기 나누면서 마치 가랑비에 옷ㅇ 젖듯 사회학적 관심이 배태될 수 있었다는 말이다. 중견 감독이 되고 사회학과 교수나 연구원이 된 얌전한 모범생과 오랜만에 한 잔 하면서 요즘 어떻게 지내? 하고 운을 떼어 대화하다가 그들의 삶과 연구분야를 들으며 대학 때 못 배웠던 사회학에 대한 이해가 더 깊어졌을 수 있다. 이런 프레임을 미야케 쇼에게도 적용해야할까? 만약 그렇다면 일단 미야케 쇼 영화의 어떤 부분이 사회학적인걸까?

사회의 한 단면, 특히 우리가 종종 지나치는 사회의 부분집합에 대해 정치하게 묘사하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찍는다고 모두 사회학의 세례를 받았다고 볼 수 없다. 사회학과 졸업은 다큐영화제작의 필수조건도 충분조건도 아니다. 어떤 제작자는 사회학을 경유해 영화에 접했을 수도 있고 어떤 제작자는 공공연연히 사회학적 인사이트를 표방할 수 있다. 어떤 관객은 사회학적 영화를 음악이나 배우같은 다른 부분에 주목하며 볼 수도 있다. 모든 것은 케바케. 다만 어떤 부분집합에 느슨한 연관성이 있다고는 이해할 수 있다. 그러한 접근방법도 가능하지만 그저 한 가지 이해방식일 뿐이라는 것

그러한 맥락에서 미야케 쇼의 작품에서는 일본 안의 소수자 캐스팅을 통해 한 사회의 마이너한 부분집합을 조명하려고 한다. 대단한 이론으로 분석할 필요도 대단한 교훈도 아니다. 그저 남들이 주목하지 않는 이러한 사람도 충분히 배우가 되고 조명을 받고 네러티브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런 마이너리티 캐릭터는 <더 콕핏>에선 일본랩퍼 흑인혼혈 오엠에스비, <너의 새는..>에선 15세때 유학가 캐나다 등지에서 발레 배운 교포여배우가 그리는 전형적인 일본여성 같지 않은 자유분방한 감성, <새벽의 모든>에선 공황장애와 PMS에 시달리는 두 배우와 중학교 방송부 흑인혼혈 탄이 있다. 이런 캐릭터들이 전혀 위화감없이 서사에 잘 녹아있어 그들의 존재가 한 무리 속에 잘 받아들여져있다는 느낌이 든다. PC주의의 적나라하고 고압적인 설교가 없는 PC주의 정신같다. 너는 이렇게 너를 드러내야해, 우리는 너를 이렇게 받아들일거야, 하는 말 없이도 마음이 아픈 이들과 인종이 다르고 배경이 다른 이들이 그냥 자연스럽게 어우러져있다. 다르게 인식하지 않고 다르게 대우하지 않는다. 정다운 이웃으로 고민을 나누는 친구로 자기 일 하는 학생으로 살갑게 맞아들여져있다. 그래서 보기 참 편안하다.

<더콕핏>으로 돌아가자. 조종석 앵글로 드럼 브레이크, 샘플링(대사에서 네타-양념 촙핑이라고 했던 것 같다)을 하는 동안 대략 12시에서 저녁 5시까지 지난다. 장지문에 비친 자연광에서 알 수 있다. 긴 옷을 입었으니 대략 늦가을, 겨울이라 일몰이 빠르다. 뒤에서 친구들이 왔다갔다 리듬을 탔다 레드불을 먹었다 하는 동안 주인공의 옆 모습 단 두 컷 삽입된다. 첫 번째는 핸드핼드로, 두 번째는 차 마실 때. 조금 쉬러 갈라치니 빔이 아이디어를 주고 세 번 정도 더 수정하고 잠을 잔다. 일어나서 가사를 쓰고 저녁에 프로듀서가 와서 녹음을 한다. 드럼 브레이크 뽑을 때도 10번 이상 박자를 놓쳐서 다시 했는데 가사도 10번 이상 절어서 다시 한다.

다큐는 이런 지루한 메이킹 과정 동안 아무도 짜증내지 않는 주변 인물들을 그리며 매우 차분하고 진득하게 묘사한다. 그렇게 55분이 지나고 마지막 2분에서 지하철에서 바깥을 찍은 로드샷으로 아이치현의 풍경을 묘사하며 비트, 멜로디, 가사가 다 포함된 최종버전을 틀어준다.

OMSB가 런치패드에 드럼 잘못 찍고 가사 절면서 실패하는 동안 관객 역시 같은 부분을 학습했기 때문에 최종버전은 모든 시퀀스와 라인이 다 분리된 것마냥 아주 선명하게 들린다.

이 최종 2분을 위한 근 1시간의 여정이다. 인생이라는 드라마도 어쩌면 이와 같을지도. 클라이맥스를 위한 무수한 실패. 정점의 결과물을 온전하고 높은 해상도 이해하기 위한 재미없는 그러나 필수적인 스케일 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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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보다 중요한 공부는 없습니다
이예린 지음 / 다산북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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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길영의 신간과 AI와 인공지능, 데이터 노동에 대한 여러 책을 읽고 내 안에서 천천히 발효되고 있는 생각의 단상


경량문명 시대에 AI 에이전트를 사용해 일당백의 일을 하게 된다는 말은 곧 유능한 개인이 된다는 것이다. 이전에는 서비스 제공자의 일을 서비스 사용자가 갖고온다는 말과 동의어다. 관련해서 포스팅을 여럿 올렸었다. 키오스크는 홀서버의 업무, 교통카드발급 및 충전은 매표소의 업무, 지도앱에서 행선지 확인은 버스안내양의 업무 등등


오늘은 비행기 관련 유투브를 보다가 좌석 뒷면 디스플레이에 제공되던 엔터테인먼트가 OTT 구독하는 개인의 스마트폰과 태블릿으로 옮겨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티켓값에 포함이 되어 장시간 착석의 무료함을 달래줄 영화인데 이제 리스트업이 진부하게 느껴진다. 극장개봉, OTT를 거친 3차 시장이기 때문이다. 바비나 디즈니 같이 모두가 다 좋아하고 많이 바이럴된 플래그 콘텐츠 몇 개로 눈가리고 아웅하려고 하나 대부분은 볼 만한 게 없다. 


홍수가 나면 정작 마실 물은 없듯이 뭔가 많이 차려놓았는데 딱히 끌리는 영화가 없다. LCC는 이런 서비스를 제외해 수익을 맥시마이징한다.


최신 한정판 콘텐츠가 끊임없이 쏟아지는 넷플에서 내 입맛에 맞는 작품을 다운로드해와서 시청하고 기내 엔터테인먼트는 이용하지 않는다. 설령 좋은 작품이 있다고 해도 디스플레이가 낡아 해상도가 낮은데다 기장의 방송시에 자동 정지되니 몰입이 뚝뚝 끊긴다. 에어쇼 켜두거나 아예 끈다. 넷플은 어떤 의미에서 여행시 필수재가 되었다.


교통카드, 스마트폰 등을 사용해 여행하는 개인은 몇 십, 몇 백 년 전에 수많은 전문가가 붙어서 해주던 일을 스스로 하고 있다. 편리함과 신속성이라는 이름으로, 즉 기다리지 않고 내가 원할 때 즉각 대응맞춤한다는 명분으로, 기존 서비스 제공자의 업무를 자기가 대신하고 있다. 그림자 노동이다.


그만큼 또 자신의 취향에 대해 세부적으로 알고 있어야한다. 백인들이 레스토랑 예약시 온갖 알레르기와 음식취향에 대해 코멘트하는 것처럼


여행지에 대해 전문가이드에게 맡기지 않고 미리 다 조사해온다. 맛집에 대해 타베로그나 구글지도에서 찾는다. 20년 전만해도 초급 어학교재에 현지에서 길 가던 현지인에게 길을 물어보는 대화문이 있었는데 이제는 번역앱을 쓰거나 아예 물어보지 않는다.


일당백이 된다는 것은 그만큼 100명치 업무를 혼자 하는 것이다. 따라서 신경쓸 것이 많아 뇌가 포화상태가 되고 필연적으로 정신질환이 수반된다. 명상, 요가, 심리치료는 성행할 것이다. 보건복지가 국방 외교와 더불어 국가의 필수업무가 될 것이다.


덧붙여 심리 하니 문득 생각나는 것은, 향후 사회적 의제가 되어 국가제도적 관리가 필요할, 현재는 개인적 질병관리로 내버려두고 있는 것들이다.


세 가지인데, 마약중독문제 대사질환(비만) 우울정신질환이다. 그런데 이때 마치 위급상황대처가 마을의 상부상조에서 교회와 절 같은 종교조직의 영역에서 국가보험과 연금으로 넘어왔다가 사보험/스타트업이 담당하게 된 것처럼 공공성은 부에 따라 개인화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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