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일정은 조금 난이도가 있다.


서울 - 여수 전남도립미술관 - 부산현대미술관 - 포항시립미술관 - 서울


산수화 백남준 박수철을 보기 위한 여정이다.


하루만에 지역 미술관 훑고 전국을 도는 것이 가능한가? 


효율적인 동선으로 움직이니 가능하더라


서울-여수는 아시아나 하나만 운행중이다. 원래 5-8만원하는데, 2만8천원이라고 하길래 


미리 생각해둔 이 루트를 실행할 수 있었다.


갈 때보다 올 때 이동수단에 돈을 써야한다. 


갈 때는 이코노미에, 버스도 일반석을 탔지만, 일정 마치고 돌아올 때 KTX를 우등으로 탔다. 그래봤자 일반과 1만3천원 정도밖에 차이가 안난다.


왜냐? 일정을 떠날 때는 휴식 후 체력이 있지만 일정을 마칠 때는 체력이 방전되어 있어 편한 의자에 앉아야하기 때문이다.


아직 미국과 유럽은 안 가봤지만 설령 갈 때는 이코노미를 타도, 돌아올 때는 비즈니스를 타려고 한다. 이코노미니가 170만원이면 비즈니스는 2배인 350만원이라고 하니 유럽과 미국 미술관은 지금처럼 미니멀 여행으로는 힘들 것이다.


지금 일본 여정을 간혹 소화할 수 있는 이유는 캡슐호텔 2만7천원에 묵기 때문인데,


쉽지 않다. 시끄럽고, 새벽에 들어오고, 심지어 옆 칸 누군가가 만취로 새벽 2시에 들어와서 방과 방바닥에 토를 해서 냄새도 나고 방바닥에도 흥건이 고여있었다. 애써 마음을 다스리며 시간을 보냈다. 


모네전, 류이치사카모토전을 보기 위해 갔던 방문이었고, 정말 이 전시는 놓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서울 현재 하고 있는 전시는 대략 다 가서 이제 지방을 다닌다. 더 많은 연결점이 더 많은 시냅스를 만들고 나만의 세계를 구축하게 할지니. 모두 다 아는 책과 영화와 전시는 물론 잘 모르는 것도 열심히 읽고 보고 다녀야 한다.


전남도립 산수화 이머시브. 자연과 인공의 관계, 색태와 형태의 관계에 초점을 맞춘 프랑스인 슈발리에와 전통과 현대의 공존을 도모한 이이남의 포커스가 다르다.


부현미 백남준 트랜지스터 회로도를 보고 테크니션으로서의 면모를 새로 알게 되었다. 과천에서는 브라운관 보수유지의 어려움을 대전에서는 거북선을 백남준센터에서는 굿모닝오웰의 동기성을 세종문화회관에서는 동서양 융합 사상가이자 판화가로서의 면모를.


포항 박수철 작가의 미술 독학의 고군분투 여정에서 가난한 미술가로서의 애잔함과 예술에 대한 녹진한 애정이 느껴진다.



전남도립은 오지호 할 때 왔어야 했는데 그때는 여력이 없었다. 아쉽다. 대구 와엘 샤키도 못 갔다.


앞으로도 아쉬울 것 천지겠지. 지적 주파수 범위 안에 들어오는 모든 전시를 다 갈 수 없으니까. 지금도 미국 유럽 일본 좋은 전시를 놓치는 게 얼마나 많은지. 얼마나 많이 놓쳐왔는지




같은 지역 안에서 움직이는 것과 멀리 움직이는 것 중 무엇이 더 어려울까


서울 내 평창 안에서 움직인다면 하루에 15군데를 돌 수 있다. 예를 들어


환기 에이라운지 하랑 자하 목석원 석파정서울 김달진 화정 퀄리아 시립아카이브 가나 세줄 자인 누크 김종영




이런 한 공간 내 이동 루트는 서울-강릉을 가는 것보다 절대 거리가 짧기 때문에 쉬워보이지만 실질 난이도는 멀어 보이는 서울-강릉이 더 쉽다. KTX에 몸을 맡기고 영화 1편 보거나 친구와 대화하다보면 금방 도착해 있으니. 이동수단이 움직여준다. 오히려 평창 안을 돌아다니는게 산을 올랐다 지도를 봤다 더 힘들다.


이동수단이 마련되어 있는 도시 간 이동은 그렇게 어려운게 아니다. 점과 점 사이 이동과 같다. 같은 지역 내 갤러리 이동이 곡선 이동과 같아 발품이 든다.




돈이 없으면 없는대로, 하고 싶고 해야할 일들을 할 뿐이다. 돈이 생기면 그전에 하고 있던 소중한 일들을 증폭해서 하게 된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보던 사람은 책을 구매하고


도서관에서 DVD로 영화보던 사람은 영화관을 다니고, 영화제도 다니게 되며


무료 전시 위주로 다니던 사람은 티켓 2만원하는 전시와, 지방과 해외 전시를 다닌다.


내가 품고 있는 씨앗이 확장성이 좋다면, 돈이 생길 때 가치가 더 많아질 것이다.


그때에는 돈이 문제가 아니라 시간과 체력이 없어서 다 못하게 될 것이다.


책을 사고 싶었지만 못 사고 도서관에서 보던 사람은 책을 사게 되지만, 그렇다고 1달에 몇 백만원을 들여 몇 백 권씩 사더라도 다 못 읽는다. 매일 빼놓지 않고 하루에 1권 꾸준히 읽는다면 정말 잘 하는 것이다. 단, 1시간에 읽고 마는 책을 읽었다면 300쪽 400쪽짜리 양서를 포함해야한다. 그렇게 했을 때 정말 끝까지 다 읽는 책은 한 달에 30권이 될 것이다. 그 이상으로 사는 책은 소장용이거나 표지 독서만 하게 된다.


영화를 더 보고 싶었지만 못 보고 빌려보던 사람은 영화관도 가고 영화제도 가게 되지만 그렇다고 3시간 러닝타임 영화를 하루에 8개씩 볼 수가 없다.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포스터나 소품을 수집을 하거나 팬미팅이나 GV를 가서 감독과 배우의 사인을 받을 수 있다. 영화 촬영지를 방문해볼 수도 있겠다. 그럼 이제 돈이 아니라 시간과 체력의 문제가 된다. 돈으로 시간을 사는 방식으로 살게 된다. 서울 도심권을 제외한 지역에는 흔한 일인데, 버스로는 대기 시간 빼고 1시간 반 걸릴 거리가 택시로는 15분이다. 1-2만원으로 시간을 사는 것이다. 편의점 삼각김밥, 도시락 1300원, 4900원을 먹으며 사는 20대 시절에는 택시는 꿈도 꾸지 못할 일이지만, 사회생활을 시작해서 돈이 뭉텅이로 들어오게 되면 몸이 힘들어서 자연스럽게 소비패턴이 바뀐다. 그리고 대학생 때는 천원 2천원이 세면서 썼었지 .. 지금은 아저씨 여기서 조금만 더 가주세요 한 마디에 천원 2천원이 붙는데 아무 생각이 없어, 이렇게 되어 버린다.


돈이 없을 때는 여행 영상, 교환학생 블로그, 외국생활 브이로그 같은 것을 찾아본다. 여행 관련 에세이와 사진책도 읽는다. 그런데 이제 돈을 벌기 시작하면 조금씩 해외도 나가보고 몰랐던 곳을 방문한다.


만약 내가 품고 있는 씨앗이 확장성이 없다면 돈이 들어왔을 때 할 수 있는 것이 제한적이다. 그런 것들은 안 하느니만 못하다. 홀딩스나 파트너스 같은 투자회사에서 돈을 부어서 프랜차이즈화가 되어 외면적으로 성장했는데 메뉴가 부실해서 한시한철에 끝나는 것이 너무 많다. 잠바 주스, 탕후루, 대왕카스테라 등등.. 어쩌다 한 번은 먹을 수 있지만 매일 먹을 수 있는게 아니라는 점에서 확장성이 애초에 없던 것이다. 죽은 씨앗이라고 할 수 있다. 물을 주어 억지로 심폐소생술을 통해 깨워 생명을 만들어내더라도 흐드러진 가지에 주렁주렁 열매가 달린 나무로 자라나긴 힘들다. 이미 사막이 된 지역은 기후가 급격하게 바뀌지 않는 이상 초원으로 변화하기 힘들다. 죽은 땅은 죽은 것이다. 


책 영화 전시는 살아있는 씨앗이다. 돈이 없어서 못 하던 시절을 지나 시간과 일정과 체력의 제한 때문에 다 못하는 시절로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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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엉덩이는 내가 책임진다 씽씽 어린이 1
강정연 지음, 차야다 그림 / 다산어린이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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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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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미술관 기획 전시

로봇드림: 백남준 팩토리 아카이브

2025.03.05-04.27




시대를 앞선 선구자


영어 한자 한국어 일본어 독일어 프랑스어가 섞여있다.


뇌에서 함께 사고 했을 것이다.


진정한 코스모폴리탄인.







마라의 암살에 이승만 김구 김규식 여운형 박헌영 조만식을 한자로 쓰고 너무하다 죽는다 고만두라 바보라고 써있다.

프랑스인 장폴 마라의 죽음과 한국 현대사를 연결지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밑에 총과 사람 캐리커쳐가 박수근의 담배갑지 그림같다. 귀엽다.. 







루소와 노자를 엮는다. 두 사상가에 대한 이해가 높다.



다만 오타가..


캡션에는 에밀-자연상징이라고 써있는데

아무리 봐도 에밀-자연숭배라고 써있다. 한자로.



백남준을 더 알기 위해

MMCA과천

용인기흥 백남준센터

광화 세종문화회관에 이어

오늘은 부산현대미술관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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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일정은 조금 난이도가 있다.


서울 - 여수 전남도립미술관 - 부산현대미술관 - 포항시립미술관 - 서울


산수화 백남준 박수철을 보기 위한 여정이다.


같은 지역 안에서 움직이는 것과 멀리 움직이는 것 중 무엇이 더 어려울까


서울 내 평창 안에서 움직인다면 하루에 15군데를 돌 수 있다. 


예를 들어 환기 에이라운지 하랑 자하 목석원 석파정서울 김달진 화정 퀄리아 시립아카이브 가나 세줄 자인 누크 김종영


이런 한 공간 내 이동 루트는 서울-강릉을 가는 것보다 절대 거리가 짧기 때문에 쉬워보이지만 실질 난이도는 멀어 보이는 서울-강릉이 더 쉽다. 


KTX에 몸을 맡기고 영화 1편 보거나 친구와 대화하다보면 금방 도착해 있으니. 이동수단이 움직여준다. 


오히려 평창 안을 돌아다니는게 산을 올랐다 지도를 봤다 더 힘들다.


이동수단이 마련되어 있는 도시 간 이동은 그렇게 어려운게 아니다. 점과 점 사이 이동과 같다. 같은 지역 내 갤러리 이동이 곡선 이동과 같아 발품이 든다.


이렇게 하는 목적은, 정말 나만이 쓸 수 있는 글을 쓰기 위해서다. 


시중의 너무 많은 책들이 서로 베끼고 짜깁기 해서 별반 영양가 없다. 이런 책만 읽다보면 지적 영양실조에 걸리기 십상.


남들이 모르는 곳, 조그마한 곳, 멀리 있는 곳, 다 보고 직접 느끼고 해야 나만의 글을 쓸 수 있다.


유일한, 세상에 다시 없는.


왜냐? 겪고 본 것의 조합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 조합에 한 가지 요소에만 집중된다면 품질이 대동소이해지지만, 특이한 요소 추가가 되면 될수록 다양성과 고유한 가치가 더 생긴다.


챗지피티도 베낄 수 없는 그런 글감과 재료를 채취하기 위해서 여러 곳을 다녀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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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1.22-25.03.09] 마리아 스바르보바 : 어제의 미래

[25.02.26-25.10.12] 카와시마 코토리 개인전 - 사란란


1. 

사란란은 일본인 작가가 한국어의 사랑과 사람이라는 단어에 흥미를 느껴 나름 제목화해서 표현한 것이다.


마리아 스바르보바는 체코-슬로베키아 사람이다.


일본 전시가 귀여움, 동유럽 전시가 향수를 말하지만, 두 테마는 사실 연결된 것이다. 귀여움을 이야기하면서 향수를 말해야하고, 향수를 말하면 귀여움을 말해야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귀여움의 구현대상인 어린아이가 어른의 과거이기 때문이다. 귀여운 어린 아이를 좋아하는 마음은 귀여웠던 어린 시절에 대한 향수와 일부분 결합된 감정이다.







2. 둘 다 귀엽고 예쁜 아이를 카메라에 담았지만, 일본인과 동유럽인이 생각하는 귀여움이 다르다.







사란란전에서 카와이 미학에 뿌리를 둔 일본적 귀여움이 보인다. 작고 앙증맞은 요소들. 동심을 자극하는 동시에 성인들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전략적 장치다. 아이들이 아니라 어른들이 전시를 보러와서, 자신들이 아닌 어린아이들의 사진을 보면서 귀엽다고 생각한다. 아마 아이들은 자신들의 얼굴을 카와이하지 않다고 생각할 것이다. 


반면, 마리아 스바르보바는 동유럽 사회주의 리얼리즘과 현대적 미니멀리즘을 결합하여, 정제된 색감과 절제된 표정을 통해 차가운 귀여움을 보여준다. 사회주의 시대에는 개인의 이동이 통제되어 있었고, 생활방식이나 움직임 모두 도식화되어 있었다. 대부분 사람들이 특정 방식으로 행동하고 움직였다는 말이다. 그래서 사진 속의 인물들은 모두 비슷한 동작과 포즈를 취하고 있고, 수영장의 모습도 자유로운 이동이 아닌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의 동작을 보여주고 있다. 




부박하게 말하면, 사회주의적 꼬뮌으로 각각의 생애와 일상이 연결되어 있었던 삶의 방식을 가장 동기화되고 집단적인 스포츠인 싱크로 수영으로 시각화해서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사진 속 사람들은 모두 무해해보인다. 고립되거나 외로워 보이지 않는다. 이런 동유럽적 귀여움은 서구적 개념의 귀여움과도 다소 차별화되는 지점으로, 사회주의적 집단주의 미학 속에서 개인성이 절제되면서도 일정한 정서적 울림을 남기는 방식으로 보인다.


3. 둘 다 과거에 대한 향수를 말하지만, 일본인은 쇼와시대를, 슬로바키아인은 사회주의시대를 그리워한다.


카와지마 코지로와 마리아 스바르보바의 사진 작업은 귀여움과 향수라는 테마를 앞세웠지만, 둘 다 두 요소를 공유하고 있다. 즉, 어린 아이의 귀여움이란 어른의 향수인 것이다. 향수를 이야기하려면 과거로 돌아가야하고, 과거는 곧 귀여워서 맹목적인 사랑과 보호를 받던 시기이다. 포유류는 유년기가 길기 때문에 보호받아야할 어린 개체를 귀엽다고 느끼도록 프로그램되었다는 글도 읽은 적이 있다. 어리다는 것은 귀엽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그러니 향수와 귀여움은 동행하는 것이다. 


카와지마 코지로는 일본적 카와이함을 통해 어린시절에 대한 향수와 쇼와시대에 대한 그리움을, 

마리아 스바르보바는 어린시절에 대한 향수와 사회주의시대에 대한 그리움을 통해 동유럽적 귀여움을,

사진을 통해 나름의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다.


한편 둘 다 과거에 대한 향수를 작업의 주요한 정서적 축으로 삼지만, 그 회귀의 방향성에는 큰 차이가 있어 보인다.


사란란전이 소환하는 과거는 일본의 쇼와시대, 즉 20세기 중반 폭발적 경제적 성장의 흐름 속에서 대중문화와 함께 형성된 독특한 레트로 감성에 가깝다. 작가의 작업 속 피사체는 당대의 얼굴이지만, 구도 색감 감성은 쇼와 시대 애니메이션, 잡지 광고, 영화 등의 시각적 언어를 적극적으로 차용한다. 어떤 의미에서 쇼와시대에 대한 향수는 잃어버린 30년에 대한 소극적 저항으로도 읽힌다. 


심지어 작가는 타이완에 가서도 쇼와시대 일본인(지금은 할아버지가 된)의 얼굴형을 찾는 것 같다.



타이완에서 찍은 사진의 배경도 현대 일본에서 볼 수 없는 이전의, 낡고, 빛바랜 느낌이다. (대만은 비가 많이 와서 외관이 낡게 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한국에서 찍은 사진도 빛바랜 돌과 시멘트 계단 위에서 찍었다. 대만 배경의 건물도 일본처럼 비를 피하기 위한 아케이드가 있고, 폭이 좁고 너비가 긴 일본식의 수직형 건물이다.  (한자 간판이 있어야한다는 점에서 한국에선 이런 공간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반면, 마리아 스바르보바가 재현하는 과거는 동유럽 사회주의 시대의 집단적 기억이다. 전시 작품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공공 수영장과 무표정한 인물들은 체제적 규율과 통제의 흔적을 반영하면서도, 이를 폭력적이게 묘사하지 않고, 낭만적으로 포장함으로써 과거에 대한 모종의 이상향적 태도를 드러낸다.



4.

둘 다 3층 규모의 전시장이지만 그라운드서울은 중간을 뚫어 절벽 아래와 같은 공간감을 주었고, 석파정은 오밀조밀 배치했다.



공간과 감정은 분리된 것이 아니다. 따라서 전시 공간의 설계 방식도 각각 추구하는 미학적 기조와 긴밀히 연결된다. 


그라운드서울은 내부 공간을 수직적으로 개방하여, 관람자에게 절벽 아래를 내려다보는 듯한 공간감을 제공한다. 성당처럼 위를 올려다보며 신성성을 경험하는 구조와는 달리, 전시자가 위에서 아래를 조망하며 순간적인 권력감을 느끼도록 연출된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하방식 개방 공간 연출은 협소한 주거 환경에서 사치스럽게 넓은 공간을 누릴 수 없는 1인 가구 젊은층에게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갈 것이다. 



또한 이러한 공간 연출은 스바르보바의 사진 속 기하학적 질서 및 인공적 구성미와 조화를 이룬다. 수영장을 배경으로 한 사진 작업과 수영장을 오마주한 공간이 호응한다. 물이 없는 수영장을 보여주는 사진 작업과 실제로 물이 없는 수영장을 만들어놓은 공간이 호응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자유로움을 느끼며 사진을 찍고 있다. 


이전 전시 뱅크시때보다 더 적절한 연출이다. 뱅크시보다 관객이 적었다면 그것은 한국사람들에게 동유럽, 러시아, 사회주의에 대한 관심이 적기 때문일 뿐이다.



5.

둘 다 브랜딩을 잘해서 마케팅적으로 성공적이고 인스타그래머블하지만, 사진의 본질에 대한 인사이트를 주는 전시는 아니다. 


사진이라는 매체의 본질적 의미에 대한 성찰보다는, 미적 소비의 대상으로서 이미지를 제시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있다. 이런 인스타그래머블한 현대 사진 전시는 전시를 시각적 경험을 통한 감각적 쾌락의 수단으로 정의한 결과다. 좋고 나쁘고가 아니라, 결과에 정련되어 있는 선택들이 읽혀진다. 



그래서 두 전시에서는 어려운 전시 설명은 소략하고, SNS에 읽을만하게, 찍어서 올렸을 때 가독성 있는 한 문장 단위를 벽에 부각시키고 있다. 대부분 관람객을 타켓팅한 streetwise한 디자인 전략이다. (이 반대 측면에, 설명을 천천히 다 읽고 이해해야하는 전시는 서울시립미술관 전시들이다.)


두 전시 모두 감각적 요소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전시할까에 대한 고민이 깃들어 있다. 한편 서로의 문화적 뿌리와 형식적 구현 방식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일본적 귀여움이 레트로한 감성적 동경과 아이들의 놀이를 통한 유희성, 어른의 공간에 아이를 배치하면서 생기는 상황적 엉뚱함을 강조하는 반면, 동유럽적 미학은 동기화되고 차갑고 절제된 형태로 소실된 과거를 조망한다. 





이 사진이 귀엽게 느껴졌다면, 어른의 공간에 아이를 배치하면서 생기는 상황적 엉뚱함을 귀엽다고 한 것이다. 이러한 감각도 사회적으로 학습된 것이다.






6. 두 전시 모두 각자의 시각적 언어를 통해 과거의 이미지가 현대의 감각적 소비 구조 속에서 어떻게 재구성되고 향유되는지를 보여준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사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지적 주파수의 폭을 넓혀 주는 전시는 아니다. 


사진 프레임 속 구도와 배치에 대한 화두를 던져주는 전시는 뮤지엄 한미 삼청 아놀드 뉴먼사진전이다.


캡셜 설명에 "뉴먼은 긴 편집 테이블을 일종의 그래픽 요소로 활용하여 시선을 전경에서 후경으로 자연스럽게 이끈다라고 되어있다.

He used the long editing table a a graphic element to guide the eye from the foreground to the background of the frame.


이런 설명은 사진을 다시 보고 깨닫게 하는 효과가 있다. 이런 글을 써야한다.


사진 속 많은 소품의 어수선한 배치는 "분주함"을 나타낸다. 대단히 훌륭하다.



사진에 대해 원래 큰 흥미가 없었다. 누구나 찍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혹은 사진의 등장으로 인해 초상화가 타격을 받은 정도, 업계 전환의 하나로만 이해하고 있었다.


새롭게 생각하게 된 계기는 존 버거의 책이다. 다른 방식으로 보기. 사진의 이해. 글로 쓴 사진. 풍경들. 초상들... 하나하나 다 소장가치가 있는 좋은 책이다. 좋은 미술책은 대부분 열화당 출판사에서 나온다. 존 버거의 번역책은 다 샀다.


영어로 읽으니까 또 신세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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