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유홍준의 <모두를 위한 한국미술사> 다 읽었다. 육백오십여쪽에 달하는 대장정이었다. 형광 초록빛깔의 <외국인을 위한 한국미술사>와 한 세트인데 일단 검정이부터 먼저 읽었다.
3만2천원으로 가격이 있는 책이지만 그만큼 소장할 가치가 있는 이유를 먼저 밝혀야겠다.
1) 한반도 미술사 전범위에 걸쳐 배경, 기능, 시각적 묘사, 소장처, 특징분석 등이 포함된 백과사전이다.
2) 그만큼 박학다식한 지식모음집이기에 한 번에 읽기는 무리가 있고 사두고 조금조금씩 떼어 읽어야한다.
3) 그런 옴니버스식 구성의 책에서 눈 감고 랜덤하게 아무 페이지나 펴보아도 문단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고 일반인이 이해할 수 있는 정도로 설명이 베풀어져있다.
4) 그런데 지금까지 나온 시중책에 소개되지 않은 작품까지 소개되어있고 해당작품의 고화질의 사진까지 더해져있다. 두 장 건너 그림이 없는 페이지가 없다. 저작권을 구매하고 이름을 틀리지 않게 출처를 정리하는 노력을 기울인 편집부가 참 고생했을 것 같다.
5) 또한 대개 알고 있는 상식을 보완하며 약간 더 높은 정도의 정보가 가미되어 수월한 이해를 통한 복습과 함께 무언가를 배웠다는 만족을 준다.
이러한 특징들이 두드러지는 인상 깊은 부분은 예를 들어
고려 말기 청자의 변화(간략화와 원나라풍, p269)
조선 초상화 사실성 확보 3단계 기법(p403)
뚝섬 출토, 규암 출토 불상 소개(p128 130)
절대자 이미지의 다양성으로서 불상에서 지방 양식도 다양하게 설명하고 파리 국립기메동양박물관 소장 <철주천수관음상>설명
시카고미술관 소장 <청자백조모양주전자>(p250)
신안 해저 유물 발굴 언급(p271)
이다.
6) 모든 파트가 균질하고 밀도 있다. 대개 자기가 아는 것은 많이 설명하고 모르는 것은 소략하기 마련인데 육백오십쪽에 걸쳐서 설명의 템포가 일정하다. 깊이는 있되 장황하게 말하는 전문연구자와는 달리 깊이는 있되 구어체로 핵심만 정리했다. 따라서 학부생은 이대로 외워서 기말페이퍼를 써도 좋고 술자리에서 설명하기도 좋다 예컨대 조선 목가구의 미학 네 가지 특징(p584-585)같은 부분이 대표적이다.
7) 옴니버스식 백과사전에 깊이 있고 이해 가능하고 깔끔한 설명의 리듬이 일정하다는 장점에 더해 그동안 미술사의 본령으로 여겨지지 않았던 장식예술을 대거 포함했다. 대개 문인화나 불교회화에 치중되었던 한국미술사의 기조에서 속화와 민화를 주목하도록 일조한 저자답다. 이 책에서는 자수, 궁보, 칠가구, 나전, 공예, 솟대, 능묘조각, 장승까지 다루었다. 이는 유럽회화 위주였던 글로벌 미술사에서도 점차 장식예술을 포함하는 트렌드와 맥을 같이한다.
8) 개인적으로 그의 설명 중 물성 있는 모든 것에 대한 설명이 좋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시기적으로는 고려에 대한 설명이 일품이다. 십 수년 전 리움미술관에서 했던 그의 고려불교미술을 대중강의에 참석했었는데 사람들이 자기를 다 민중예술 전문가로 알지만 자기는 화려하고 섬세한 고려미술을 좋아한다고 한 말이 기억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점도 없지 않다.
우선 인트로에서 history가 아니라 story라고 언급하며 모두를 위한다고 설명했는데 이 어원의 진위와 그 효과는 모두 부적절하다. 희랍어에서 조사 탐구 연구를 의미하는 Ἱστορία를 헤로도토스가 자신의 저서에서 사용하며 이후 그의 책 특징을 따서 역사를 지칭하게 되었다.
이오타에 거친 유기음이 붙어 '이'가 아니라 '히'로 발음이 되는 것이지, his(그의)라는 남성소유대명사와는 관계없다. 그런데 이 단어를 오해하곤 남성위주의 역사서술법에 대항해 그동안 주목하지 않았던 여성을 발굴하자는 취지의 저서에서 이를 잘못 사용해 history가 아니라 herstory를 쓰자고 하는 주장이 나오면서 이 단어는 오염되었다. 저자는 딱히 여성사를 염두에 두고 이 말을 한 것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story라는 의미로 쓴 것이지만 여전히 이 단어는 잘못 쓰이고 있다. 우연히 비슷하게 생겼으나 실제로는 어원적으로 다른 기원인 가짜 동족어(false cognate)수준도 아니다.(불어의 car-왜냐면 영어의car-차, 영어의 much, 스페인어의 mucho처럼)
심지어 그 효과도 부적절하다. 글자야 어찌되었든 모두를 위한 이야기라는 말 아닌가? 라고 읽기에도 그의 장점이 드러나지 않은 부분에서 설명이 다소 곤란하다. 특히 p502-503에 속화의 여인의 젖가슴 색정 에로틱 같은 부분이 그렇다. 물론 유럽회화에서도 여성의 나체를 그린 누드화는 빈번하다.
물론 <단오>의 목욕신에서 실제 묘사된 여성 나체를 언급하지 않을 수는 없다. 그러나 이러한 속화에서 여성 신체 묘사가 "당연히 색정이다" "대단히 에로틱한 분위기"다라고 설명하고 단선적 서술에 그치는 것과 부연설명하면서 다른 각도의 접근 방식을 정교하게 제공하는 것은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이렇게 말이다.
여성이 복수의 여성의 벗은 모습을 그리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점에서 남성 화가의 시선과 그들의 여성 신체를 향한 성욕이 반영되어있다, 이러한 묘사는 서양 유럽 회화에서도 빈번하게 보인다. 종교의 기강이 엄격했던 중세시대에는 성경에 등장하는 여성 대신 허용된 이교도인 그리스로마신화의 여신들의 나체를 그렸다. 근대 회화는 말할 것도 없다.
한편 남성의 시각이 아닌 여성의 시각에서는 다르게도 해석될 여지가 있다..그림에서 젖가슴을 드러낸 하단의 여인과 함께 상단의 여인은 그네를 타며 자유롭게 노닐고 있다. 하단은 에로틱한 모습으로 남성의 욕망의 대상이 되었을 수 있으나 그러한 해석에 그치면 상단의 옷을 차려 입은 여인들은 해석이 되지 않는 반쪽짜리 접근이다. 남녀유별이 있는 조선 사회에서 여성끼리의 우정, 남성의 시선과 사회적 규율에서 풀려난 그녀들만의 자유로운 프라이빗 스페이스에 대한 묘사일 수도 있다. 이에 남성이 접근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금기시되었던 시절이기에 이러한을 묘사함으로써 금지된 시각적 욕망을 환기할 수도 있겠다. (엄마, 이모, 누나가 홀딱 벗고 샤워하는 모습을 훔쳐보면 할머니랑 아버지에게 불려가서 혼나지 않을까?)
제목은 <단오> 풍경이다. 그리는 자는 보이는, 보고싶은 모습을 재현했다. 확실히 화가보다는 해석자가 이를 야한 그림으로 해석했다. 과거의 인물의 의도는 알 수 없는 까닭이다. 중요한 것은 복수의 해석이 가능할 때 미술을 보는 감칠맛을 더해줄 것이라는 점이다
이렇게 부연설명, 비교문화적 시각, 남성시각에서 한 번, 여성 시각에서 한 번 다루어주면 더 해석이 풍요로워진다.

시대정신이 바뀌어서 이런 보수적 남성의 관음증적 서술을 하려면 동시에 조선시대 여성의 시선의 서술로도 한 번 보완해주어야한다. 주체적 여성의 사회진출, 야담, 여성전기영웅소설, 언문 등 말이다. 젠더적 형평에 의거한 중립적 서술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그런 서술은 여성을 위한 것만은 아닌데 비단 높은 경제적 사회적 지위를 지닌 장년남성-젊은여성의 위계적 구도에 대한 저항으로서의 서술뿐 아니라 장년여성-젊은남성과 같은 전복된 구도에도 적용되기 때문이다.
이런 확장된 이해는 젠더를 포함한 모든 종류의 이분법에 균열을 일으키고, 소수자를 유의미한 분석대상으로 초대한다. 정신과 신체가 분리하지 않고 신체성에 주목하는 메를로-퐁티를 차용한 포괄적인 서술방식이 전통예술에도 들어올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대로는 현대예술과 전통예술은 방법론과 접근방식에서 너무 유리된다.
아울러 '모두를 위한'이지만 한반도 북부는 소략했고, 시대적으로 개화기 김가진에서 멈춘다. 반면교사로 미술사는 아니나 오구라 기조의 <조선사상사>는 북한과 이어령까지 다루었다.
물론 저자가 아니라 후속 세대의 과업이리라. 유홍준은 386세대도 베이비붐세대(55년대생)도 아닌 1949년 출생한 방년 76세의 증조할아버지다.
저자는 낙양의 지가를 올린 그의 문화유산답사기를 통해 우리 것의 아름다움을 대중적으로 널리 알리고 상아탑에서만 유통되던 전문지식을 친근하게 설명해주어 그의 본연의 역할을 다하였다. 이러한 형태의 새로운 접근은 그가 해야하는 작업은 아니고 그는 DB식의 정리된 지식체계를 후대에 남기는 것으로 역할이 종료될 것이다.
다만 그의 존재론적 위상이 확고하고 한국은 메시아적 일개인에 모두의 시선이 주목되면 그 중심에서 퍼지는 지식유통은 빠르고 무분별하고 맹목적인 나머지 부족한 부분마저 확산될 가능성이 있어 수용자의 주의가 필요하다. 위와 같은 여성 신체에 대한 에로틱한 묘사에 경도된 작품설명뿐 아니라 최근 국중박 조선전기미술 강연에서 갑툭튀로 나온 "혼혈 1세대는 무조건 미인이다" 같은 발언은 술자리 조크로 그냥 넘겨야한다
어렸을 때 읽었던 먼나라 이웃나라는 유럽에 대한 동경으로 재밌게 읽었는데 몇 십 년이 흘러 다시 읽어보니 정치적 편향과 편견으로 가득했던 것을 발견했다. 한 시대의 인물의 어쩔 수 없는 한계로 이해하고 내게 준 영향 은 취하고 과오는 넘기는 그런 유연한 자세가 필요하다.
여기까지는 그냥 그러려니 할 수 있고 독자로서 페이지를 넘기며 지나칠 수 있는 부분이다. 사실 가장 비판하고 싶은 점은 마지막에 남겼고 이 부분의 과오는 적지 않다. 영어로는 Last but not least다. 마지막에 말하지만 가장 사소한 건 아니다. 방법론에 대한 부분이다.
미술'사' 즉 미술이라는 물성 있는 작품을 토대로 역사를 서술한 책이다. 책은 문화사를 지향한다고 했다. 그런데 작품을 위주로 변화상을 추적하지 않고 기존에 성립된 왕조 위주의 정치사를 기준으로 책을 서술했다.
쉽게 말해 삼국-고려-조선, 15-16-17-18-19세기 하는 식으로 넘버링에 맞춰서 미술작품을 해당시기에 분류했다는 말이다. 틀에 맞춰 납작하게 찍어버렸다.


종교인, 제작자, 장인은 정치인과 달라 정권이 바뀐다고 자신의 기법을 변화시키거나 하지 않고 미술작품의 변화상은 정치사와는 별개의 흐름을 따른다. 물론 관요나 도화서는 발주하는 왕가를 의식해야한다. 임진왜란 같은 전쟁이 도공에게 끼친 악영향, 대한제국의 멸망이 서예의 발전에 끼친 악영향은 무시할 수 없다.
그렇지만 일단 상식적인 역사를 서술하고 그 역사의 프레임에 미술을 끼워맞추는 것과, 미술의 발달과정을 별도로 접근하면서 그 변화를 추동한 외적 정치경제적 요인을 다루는 것은 전혀 다르다. 전자는 역사학의 미술이고, 후자가 미술사다. 경제사나 과학사처럼 별도의 학문분과가 성립된 주제사를 다루는 학문에게도 적용되는 이야기다.
고려와 조선 파트 시작하기 전에 어느정도 시대개관이 있으나 이 설명은 이후에 정합적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한계도 있다. 아까 언급했던 장점으로서 백과사전식, 옴니버스식 서술의 한계이기도 하다.
이에 대한 방법론적 보완점은 예를 들어 김영민 교수의 <중국정치사상사>에서 찾을 수 있는데 관습적인 시대구분이 아니라 당나라는 '귀족사회' 송나라(특히 남송)는 '형이상학 공화국' 몽골 원나라는 '혼연일체' 같이 시대의 특성을 표현하는 주제어를 선정해 열쇳말로서 시대상을 개괄해냈다.

인트로에서 저자는 잰슨, 곰브리치, 설리번으로 미술사를 배웠어도 그 방법론을 따르지 않고 모두를 위한 문화사를 서술했다고 했지만 정합적인 방법론적인 특징은 보이지 않는다. 지금으로서는 기존 역사학의 일반적인 시대구분에 의거한 백과사전식 문화자료 설명집이다. 구체적인 유물을 풍성하게 알려준다는 큰 장점은 있으나 과연 정말 문화사란 무엇인가, 그가 말한 한국문화의 정체성은 그의 서술방식을 통해 설득되었는가 아니면 선언에 그쳤는가 하는 의문이 남는다.
한중일 문화의 전개방식 차이도 큰 틀에서 양식사의 발전과정이 촘촘하게 설명되었으면 더 문화사에 가까웠겠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모두를 위한 한국미술사'가 아니라 '특정 시대 특정 유물사'가 될테니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수도. 아울러 근래 나온 최신 트렌드의 연구성과는 반영되어 있지 않은 편이다.
유홍준이라는 대들보가 다져놓은 훌륭한 유산이 있다. 우리문화유산에 대한 증진된 이해라는 그의 목표는 이루어졌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