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과 빵 사이에 내용물이 껴있는 조합의 다양성 생각하기

1. 햄버거 번
참깨빵, 브리오슈, 크리스피크림, 호떡, 크루아상, 베이글, 모짜렐라치즈번, 버터번, 밥, 또띠아

2. 패티
미제소고기, 한우, 와규
돼지:돈까스
치킨:닭가슴살, 닭다리살, 싸이
새우, 오징어

3. 부속 재료
베이컨, 치즈, 햄, 페타치즈, 페퍼로니, 양파볶음, 해쉬브라운, 통마늘, 버섯, 고구마, 어니언링, 할라피뇨

4. 소스
케첩, 마요네즈, 마라, 로제, 볶음김치, 과카몰레, 옥수수, 트러플, 마늘쨈, 감바스, 디아블로, 청양마요, 그레이비, 칠리, 멕시칸, 버번졸임

5. 연세우유 생크림빵
1) 크림
플레인, 초코, 메론, 마롱, 단팥, 쿠키앤크림, 옥수수, 황치즈, 커피, 솔티카라멜, 한라봉, 야쿠르트, 그릭요거트, 말차, 말차초코, 말차크림, 녹차팥, 밤티라미수, 흑임자, 딸기피스타치오, 딸기바나나, 피넛초코, 저당크림

2) 내용물 추가
황치즈/크림/찰떡콩떡맘모스

브레인스토밍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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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DDP 바스키아전은 좋다. 못 보던 작품도 있고 갯수도 많으며 회화, 드로잉에서 조각보, 조형, 설치까지 다양하다. 으레 반달리즘과 공공예술이라는 점에서 뱅크시와 연관겠지만, 바스키아와 접속할 수 있는 한국미술도 있다고 생각한다. <제시이야기> <옌안송>의 박건웅이나 경기도미술관의 한국현대판화 60년전(3-6월)이다. 굵은 스트로크와 같은 기법적 연관성, 판화의 대량생산과 공공성, 메시지 중심적 성격, 민중예술 지향에 주류에 반대하는 혁명적 성격 같은 요소가 그렇다.


2. 한국미술전에서 케데헌을 언급하지 않는 곳이 없다. 케데헌과 한국미술은 아주 느슨한 관계만 있고 이를 정교하게 연결해야하는데 대개 한국문화라는 거대한 맥락을 통해 니것도 내것하는 식으로 말하고 글을 쓴다. 그런 글을 읽으면 토가 나올 것 같다. 협소하고 폐쇄적 생각에 갖혀있다.


3. 넓고 개방적인 시야는 돈이 많아 유학을 가야지만 얻게 되는 것은 아니다. 이전에는 그랬다. 


외국을 가야지만 외국어를 배우고 다른 사고방법을 배워 새로운 시각으로 자기와 자기를 둘러싼 세계를 이해할 수 있었다. 강제적으로 공간과 문화를 이동해 이방인으로서 자기를 재정초시키는 방법이다.


그러나 남의 나라에서 비주류로서 뿌리를 내리고 살기는 쉽지 않다. 내가 태어난 땅에서 해외경험의 유익만 추수할 수는 없을까? 


디지털 시대에 즉각적으로 유통되는 지식정보를 빠르게 습득하기 위해 외국어를 배우고 외국자료를 섭취하는 것이 한 방법이다. 그러나 현지경험 없이 번역을 통한 완전한 이해는 한계가 있다. 내 다리로 가고 내 눈과 귀로 보고 들은 체화된 경험적 지식은 더욱 아니다. 혹은 일본처럼 전문적이고 거대한 번역집단을 통해 한 번 필터링된 지식을 섭취하는 것도 방법이다.


2000년대 외고가 우후죽순 만들어졌다. 국제유학반을 목표로 한 경우도 있었지만 대개 영어전형 등으로 대학에 입학했다. 외국어 고등학교지만 사실 입시명문의 다른 이름이었다. 20년쯤 지나고보니 외고출신인물의


진로를 통해 앞서 말한 출생지에서 사춘기 민감한 시절에 부모님과 함께 안정적으로 살며 외국어 공부를 통해 해외경험의 유익만 취득하는 효과를 알 수 있게 되었다.


장단점은 여러 개 있으나 굳이 말할 필요는 없고, 중립적인 의미에서 특별한 현상 대해서는 말할 수 있다.


그것은 실제 가서 살아보지 못한 자의 외국에 대한 베일에 쌓인 그리움과 이를 해소하기 위한 텍스트 기반의 이해와(영어로 된 논문) 결국 제도적으로 해결보고자 하는 유학에 대한 동경이다.


외고의 국제반이 아닌 국내반(수적으로 더 많다)은 실제 외국의 국제학교에 살았던 자들과 교류하면서 그들이 던지는 현지 생활, 현지 브랜드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약간의 열등감 섞인 그리움이 더 증폭된다. 사실 부모님따라 잠깐 산 것에 불과한데도, 그들에게 결여된 감각이다. 아예 모르면 아무 느낌이 없는데, 베일처럼 알 것 같은데 알 수 없는 감각이다. 


대학입시에서 국제학과를 선택하기도 하는데 외국고를 나온 학생을 만나며 이 감각은 더 증폭된다. 외국을 머리로는 알지만 마음으로는 모르는, 블라인드에 쌓여있는 것 같은 감각이. 여행이나 교환학생으로 인한 단기체류는 청소년 때 정서적 성장기에 주변의 모든 것을 쫘악 흡수하던 그 감각과 다르기도 하고 이전의 글로벌 호황기가 아니라서 채울 수 없는 결핍이 되기도 한다.


그러다가 어쨌든 외국에 나가고 싶어서 유학을 가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생각하는 것과는 꽤 다르다. 절대 말을 하지 않지만 부적응으로 귀국하는 이들도 꽤 있다. 일본의 프랑스병을 겪는다. 일본인 5명 중 1명꼴로 가지고 있는 여권을 어렵사리 발급받아 비싼 돈을 들여 현지에 도착했는데 판타지와 픽션에서 그리는 그 아름답고 낭만적인 프랑스가 아니라 빈대 나오고 냄새나고 아랍어가 들리는 인종차별하는 프랑스라는 것에 정신적인 충격을 받아 과호흡을 하는 정식 증후군이다. 생각과 다름을 인정하고 적응할 수 있다면 계속 살 수 있다.


3. 나는 유학이라는 경험이 주는 부수적 효과가 분명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사람이 유학을 가야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아무리 외국의 명문대를 나왔어도 지금부터 말할 이 경험을 하지 못했다면 그 돈과 시간이 아무 의미없다고 생각한다. 학벌이라는 멋있는 네임밸류는 자신의 본질이 아닌 피상적 악세사리에 불과하고 삼선 쓰레빠에 해진 츄리닝을 입고 반클리프 백에 구찌 귀걸이를 해봐야 미스매치될 뿐이다.


그 유학이 주는 부수적 효과는 한국인으로 동질집단으로 구성된 한국사회문화에서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이심전심의 고맥락문화에서 떨어져 철저하게 분리된 개인으로서 나를 설명하고 말로 이해시키는 경험이다. 작게는 나의 취향과 생각과 내가 원하는 바와 싫어하는 바를 룸메이트에게 일상언어로 설명하는 것이 하나이고, 크게는 한국인으로서 나와 내 작품이 학문 공동체에 무엇을 기여할 수 있을지 학술 언어로 설득하는 SOP의 과정이 있다.


오랜 전통문화와 관습이 강한 고맥락 사회언어적 공간인 교토에서는 "아드님이 피아노를 참 잘 치시네요"라는 말이 "피아노 소리가 시끄러워 방해가 되니 치지 말아달라는 말이다" 비슷한 경험을 한 비슷한 사람끼리 모여있으면 이심전심이 되고, 거시기가 거시기하니까 거시기하다고 말해도 찰떡 같이 알아듣는다. 지시어의 정확성이 아니라 학습화된 맥락과 표정과 제스처 같은 비언어적 표현이 커뮤니케이션에 개입하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유학을 가면 내가 말하지 않으면 나를 먼저 적극적으로 이해해주지 않는 소수자 외부인이 되어서 나의 모든 것을 철두철미하게 낯선 언어로 설명해야만하는 상황에 직면한다. 굳이 이렇게까지 일일히 말해야해? 싶지만 그렇게 해야한다. 우리나라도 인도네시아 유학생의 고충에 대해 모른다. 이슬람과 무슬림과 아랍은 다 다른 카테고리라는 것을 스스로 한국어로 풀어주지 않으면 주변은 모른다. 이런게 내가 나고 자란 출생지에서만 살아왔던 사람들에게는 고통스러운 일이다. 


이런게 부분이 사소하게 느껴진다면 외국에서 살아도 좋다. 앞서 말했던 이들이 부러워한 청소년기 아이들은 이 부분이 짜증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되었는데 누구든지 서로서로 친구가 될 수 있었던 학창시절에는 신경쓰지 않아도 아주 자연스럽게 진행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서로간의 차이도 그렇게 심각하지 않은데다가 차이가 문제라고, 다름이 틀림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을 시기다. 나이가 들어 외국에 가면 익숙해서 편안하던 관습에 교란이 오고 앉은 자리가 불편해지기 때문에 다름은 틀림이 되어버린다. 한국어른들이 다르다를 틀리다로 혼동해 사용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우리끼리 신토불이하면서 사는 것이 어쩌면 더 행복할 사람은 외국을 안 가는게 적절하다.


이 외국경험의 부수적 효과는 한국을 어떻게 소개할지 문제와 연관이 된다.


그동안 한국미술전시 정말 많이 갔다. 나는 전시 소개  채널이 아니라 간 곳을 다 올리지는 않지만 올해 5월만해도 전국 117군데를 갔고 한국미술전시도 꽤 된다.


그런데 대개 한국미술전은 이런 네 가지 이야기를 거의 벗어나지 않는다.

1) 한국화는 이런 것도 할 수 있다(변화)

2) 한국화는 옛날 것이 아니다(고루하지 않다) (전통과 현대의 융합)

3) 한국화는 이런 그림도 그릴 수 있다(기법, 소재의 혁신)

4) 드디어 한국도 세계에 인정받는다.


유명한 APMA, 국현미 덕수궁, 국중박, 리움호암 같은 곳도 갔고 인사동 거리의 수많은 소규모 화랑도 갔다. 예컨대 인사아트센터 지하 제주갤러리의 4.3사건 거대 드로잉(김영화, 7월), 세화의 건식벽화(오기영, 9월) 같은 사람들이 잘 모르는 곳도 갔다.


대전시립미술관 이동훈미술상 본상 수상의 최예태(9.17~)는 일월오봉도 모티프에서 해와 달을 1:2의 비율로(1/3:2/3) 분할한 독특한 리듬도 보았고


서촌 이상범가옥의 손동현(5-11월)도 그전에 송은부터해서 수많은 곳에서 봤었고


선혜원의 김수자 보따리 작품도 보았는데 심지어 다들 모르는 2024년 작년 갤러리 세줄의 자수 작품도 봤다.


김지평 작가의 경우도 지금 하고 있는 국현미 올해의 작가상 뿐 아니라 혜화역 아르코 2층에서도 하고 있다. 전시장에서 큐레이터 2명과 나눈 메일 인터뷰집도 읽었다. 2024년에는 경기도미술관 민화전 2층 안쪽, 부산비엔날레 초량재 단독주택 골목 1층에서도 봤었다.


생각나는 예시만 브레인스토밍해도 이렇다. 곳곳을 최대한 보았다는 증거다.


그런데 이 모든 곳에서 한국미술전시 소개는 내수용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영어 번역의 문제가 아니다. 외국에 어떻게 소개할 것인지에 대한 부분, 외국인이 읽었을 때 과연 K란 무엇인가 이해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부분이 결여되어있다.


비슷한 맥락에서 한류 현상과 그 성과에 대해 대부분의 주간지에서도 위의 네 가지 이야기를 넘는 경우가 없다.

국뽕, 고양감, 한류 확산으로 인한 산업 성장, 현지 진출, 현지 행사, 김밥 수출, 굿즈 실적 등등.


네 카테고리를 한국화를 한국으로 바꾸면 거의 같다.

1) 한국은 이렇게 바뀌었다

2) 한국은 오지가 아니다

3) 한국은 이런 것도 할 수 있다

4) 드디어 한국도 세계에 인정받는다.


해외 주간지, 잡지에서 기술적으로 한류 확산이라는 현상에 대한 구절은 떼와 편파적으로 보도한 기사는 있되 그들의 관심사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을 인용한 경우는 거의 보지 못했다.


누구나 케데헌과 케이팝을 말한다. 자랑스러운 일은 맞다. 세계화 초기에 변방오지 취급을 받던 불과 20년 전을 생각하면 상전벽해다. 괄목성장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케이팝의 불편한 진실은 함구한다. 한국계 미국인이나 외국대학에서 한류를 연구하는 여러 논문에서 읽고 다큐도 본 결과 이런 부분도 있었다.


팬덤에는 퀴어도 포함되고 BTS를 초기부터 응원한 수많은 미국 인플루언서 중에는 게이도 있다는 점. 한국남돌이 결혼 안하고 무해한 남성성을 전시하는 것에서 몸과 배에 검은 털이 많고 자신을 자궁이자 성욕해소수단으로만 보는 수많은 마초적 남성성에 대항하는 정서적 서사로서도 이해한다는 점.


한국여돌을 미성년자라고 생각한다는 점. 킴 카다시안 같은 어른 여자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 따라서 동양여성을 좋아하는데에는 일부 소아성애도 결합되어 있다는 점. 실제로 유럽에서 한국입양아를 많이 데리고 왔는데 이제 성인이 된 그 입양아들은 어렸을 때 남녀를 막론하고 양아버지에게 펠라치오 같은 성폭행을 당했다고 증거한다는 점.


경찰관이 수염을 안 기르면 터프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인도 파키스탄 스리랑카에서는 한국보이밴드는 남성적이지 않다고 생각한다는 점. 이들을 좋아하는 여성들을 멸시한다는 점,


혹은 케데헌을 PC주의 없는 디즈니라고 이해한다는 점.


그러니까 한국과 외국이 케데헌을 인식하는 방법은 차이가 있다.


케이팝의 성공신화와 한국의 세계적인 인정과 경제성장만 생각하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매우 불편한 이야기다. 


허나 한국문화의 세계적 열풍만 보지 않고 다양한 이면도 이해해야지 한국이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 건설적으로 논의해볼 수 있다.


왜 한국을 원하는가? 


한국을 좋아하는 그들은 누구인가? 


한국은 무엇을 할 수 있나? 


케이팝이 세계적 담론에 철학적으로 무엇을 기여할 수 있나? 


그래야 일시적 현상으로 그치지 않고 지속된다


케이팝이 세계적 담론에 철학적으로 무엇을 기여할 수 있을지 말이다. 그래야 일시적 현상으로 그치지 않고 지속된다

출생지에서 살아가지만 외국어를 배우고 외국자료를 습득하는 이들이 우리를 외국에 제대로 설명하기 위해서 어떻게 접근해야하는지에 대한 방법과 같은 맥락이다. 대개 영어독해를 통해 외국→한국으로 외부→내부로 이해했던 이전의 흐름에서 한국→외국으로, 내부→외부로 우리를 설명하는 단계다.


저기는 선진국이고 저쪽 문화와 기술은 발달되었으므로 우리가 잘 이해해야해라는 맹목적 습득에서, 우리도 선진국이고 저쪽에 줄 것이 있으니까 저쪽의 니즈과 생각을 감안해서 우리의 것을 이렇게 설명하고 알려줘야해, 라는 상호이해로 전환하는 것이다.


좋은 롤모델은 있다. 이미 해외에 한국을 잘 설명해온 선진 작가들이다 .예컨대 오랫동안 외국생활을 하면서 쌍방향의 커뮤니케이션을 하면서 자기 작품 세계를 국내외에 설득력있게 표현해 온 김수자는 검정색을 말하면서 내재된 시간성과 전통의 오방색이라는 개념어휘와 전통어휘를 동시에 사용한다. 보따리 작업을 통해 우주관계와 몸과 여성성과 존재론을 말한다. 한국성이라는 폐쇄된 출신 공동체를 언급하는 동시에 보편적인 공동체인 여성성을 논한다. 남성 작가는 못하는 것 아닌가 싶지만 여성성 말고 선택할 수 있는 카테고리가 더 많고 (오히려 여성은 여성성이라는 글로벌 담론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고) 몸-마음 이분법을 해체하고 소수자를 포용하는 이해를 탑재할 수도 있다


관건은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이해하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문화적 자산을 비평언어에 적합하게 그리고 세계와 소통될 수 있도록 조탁하는 것이다. 유학생은 동유럽과 아프리카에서 온 다른 유학생의 크리틱과 설명방법을 접하면서 나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 간접적으로 체험한 반면, 예컨대 외고 국내반출신 국내대 국제학과는 영어는 알아도 이런 경험이 없었다.


무엇이든지 빠르게 되지는 않고 조급할 필요는 없다. 한국과 한국화는 그런 어휘를 이제 만들어가는 중이라고 생각한다.  누구나 시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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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 <은중과 상연>을 보는 사람이 영화 <극장판 체인소맨 레제편>을 볼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전혀 다른 미학이다. 여기에 <3670>같은 소수자영화나 PTA의 <원배틀애프터어나더>와 <사마귀>까지 보는 사람이 있다면 일로서 뭐든지 봐야하는 문화전문기자나 6시그마밖의 인물이다. 나는 후자의 길을 택한다. 복수로 세분화된 서로 합일할 수 없는 취향의 공동체 사이에서 교차적인 인물이 되는 일이 AI시대의 생존법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조선일보도 한겨레도 본다. 버핏, 바루크와 레이달리오 같은 투자서도 읽고 칼 폴라니나 자본론도 읽는다. 무협, 회빙환류의 남성향 웹툰도 보고 공작저, 하지점 같은 여성향 웹툰도 본다. 동서양 고전도 현대문학도 읽으려 한다.


이데올로기는 이념이라는 말로 오늘날에는 취향과 얼추 비슷한 뉘앙스다.

100년 전에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싸움은 전쟁을 할 정도로 치열했는데 하나의 진영이 다른 진영을 압살하기보다는 하나의 이념이 지속성을 잃어서 사라졌다.


신념이라고 이해해봐도 좋다. 어린아이도 나름의 생각이 있는데 다 장성한 사람의 생각은 얼마나 공고할까. 나이든 어르신이 내 나이만큼 다져온 가치관을 변화시키는 것은 쉬운 게 아니다. 타인의 신념을 바꾼다는 것은 쉽지 않고 집단의 신념을 통제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뇌과학적으로도 그렇다. 전두엽이 자라나는 20대 중반까지 뇌가 말랑말랑한 다음 세대의 교육은 유의미하나 성장이 끝난 사람의 뇌를 변화시키는 것은 어렵다. 확증편향을 강화할 수는 있다.


젠더갈등도 심하고 세대갈등도 심하며 정치갈등도 심하다. 이는 맞고 틀림의 싸움이 아니라 나만 맞다고 생각하는 자들끼리의 소모적인 다툼이다. 이것이 진리이다와 이것이 더 진리이다의 뫼비우스의 띠다.


그리고 이러한 다툼의 해결은 한 이념의 완전한 정복이 아니라 서로 다른 것을 믿는 생각의 공동체가 합의할 수 있는 부분에서만 교류하고 서로 떨어져 사는 것이다. 


세대갈등으로 추석 때 안 만나고 싶으면 안 만나면 된다. 젠더갈등과 그 부속 가족문제가 괴로운데 아이는 갖고 싶다면 시험관아기, 공동육아하는 공동체 같은 해결법도 있다. 너무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한 공간에 있는 것은 괴로운 법이다. 퇴근 만원 지하철의 10분도 버티기 힘든데 평생을 사적공간에서 부딪히며 배은망덕과 후안무치에 대해, 유리천장과 복무경험에 대해 갈등의 평행선을 달리는 것도 개인의 평화와 공동체의 온존에 좋지 않다.


온갖 갈등이 현대사회에 특별한 것은 아니고 인류가 집단을 이루어 사는 내내 그랬다. 다만 현대사회는 정보의 확산으로 인해 표면으로 드러나고 우리와 관계없는 곳의 갈등까지 노출되는 것이 문제다. 대개 전근대사회는 떠남과 이동으로 이를 해결했다. 안 보는 것이다. 얼마나 안 보고 싶었으면 아프리카에서 아시아까지, 몽골에서 알래스카까지 간 걸까


그러나 이렇게 서로를 만나지 않게 되면 개개인의 미시적 안정은 누릴 수 있으나 점점 보이지 않는 벽이 너무 높아진다. 문학만 읽는 2-40대 여성과 게임만 하는 2-40대 남성의 간극처럼 말이다. 교회 설교와 트로트만 듣는 5-70대 여성과 국뽕 경제정치 유투브만 듣는 5-70대 남성의 간극처럼 말이다. 혹은 이 모든 차이들의 차이들처럼 말이다.


높은 벽으로 둘러싸인 중세 성 하나는 소규모 적은 막을 수 있어도 중소 영주들의 종횡무진 연합이 필수적인 대규모 공습은 막을 수 없다. 사회경제정치문화 제분야에서 복잡하게 연계된 우리 삶은 전근대사회처럼 노마드적 이동으로 말끔하게 해결될 수 없기에 교류는 필수적이다. 너 살아있니? 일로 와봐 이건 우리 같이 해결봐야해 안 그럼 다 죽어


AI는 기존의 지식정보를 체계적으로 정리할 수 있으나 없는 것은 만들어낼 수 없다. 지식정보를 습득하고 피드하는 것은 인간의 몫이다. 전문 정보 큐레이터, AI 피더가 이런 필수적 교류의 촉매제다.


이때 한 가지 정보를 극단으로 강화하는 알고리즘을 제어하기 위해 다른 방향의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교차적 인물이 필수적이다. 그래서 조선과 한겨레를, 동서양을, 남녀노소를 이 모든 취향의 공동체를 넘나들려고 한다. 그러한 자는 다가올 중세시대의 궁정을 초청받아 출입하는 광대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복수의 취향 공동체의 독립적 평화를 위해 교차적인 인물이 해결해줘야하는 미래적 문제가 있다.


내가 예측하는 미래다.


1. 플랫폼 소유자는 영주, 셀레브리티는 체제를 강화하는 성직자, 엔지니어는 체제 유지보수하는 피지컬한 기사 그리고 97%는 데이터 노동하는 농노로 분화된 현대테크놀로지기반 중세가 온다. 테크펑크 중세다.


2. 코로나 이후 시작되어 관세전쟁으로 강화된 글로벌 공급망 붕괴, 북중러-한미일의 신냉전구도, 동력을 잃고 몰락하는 나이 든 유럽, 인구 폭등하는 글로벌 사우스와 같은 거시적 시대 변화. 거대 선진국 수출위주 해상무역에서 중소규모의 국가(동유럽, 중앙아 등)과 다자무역하는 자급자족의 시대 


(소품종 대량생산에서 다품종 소량생산과 비슷하게 적은 수의 거대 선진국에 많이 파는 것에서 다양한 국가에게 조금씩 납품해 적은 이익을 여러 곳에서 얻는 구조로 변화)


3. 20년의 일. 스마트 글래스로 인한 증강현실. 자율주행 자동차에 바로 보이는 즉각적 정보 디스플레이. 바로 보여지지 않는 정보는 섭취되지도 않을 정도로 빠른 지식의 유통과 소비


4. 40년의 일. 양극단의 라이프스타일. 저가형은 염가생산이 가능한 곤충프로틴 콩고기로 시즈닝 뿌린 맛. 양념과 소스의 다변화. 고급형은 청정 재배. 처음에는 거부. 나중에는 받아들임


5. 60년의 일. 폭염 태풍 등 연안도시와 섬의 기후 위기 직격 문제. 한국은 송도, 인천. 유럽은 베네치아, 도쿄, 상하이 등.


6. 100년의 일. 뇌척추 인터페이스와 뇌과학, 뇌파의 발달로 영성, 트랜스, 귀신, 심령현상 등 미확인 과학현상에 대한 심도 깊은 과학적 이해


7. 200년의 일. 외계인 조우, 화성진출, 우주식민지, 테라포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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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뉴욕 특파원 윤주헌 기자의 오늘 사설에서


"하버드대 스티븐 월트 교수는 최근 본지 인터뷰에서 “한국은 5년마다 정치적 입장이 달라지지 않느냐?”고 꼬집었다. 한국이 동아시아에서 강력한 우방국인 것은 맞지만, 정치적으로 불안하고 100% 신뢰하기 어려운 국가라는 미국 조야(朝野)의 시각을고스란히 보여준다."


라고 했다.

1. 그러나 본인이 연구실 방문해서 딴 45일 전 광복80주년 기념 기사 그때 나도 읽었고 다시 찾아봤지만 그런 구절이 없었다. 설령 자기가 들었더라도 공식적으로 쓰지 않은 말을 지나가면서 뇌피셜로 던지는 것은 저널리스트 본연의 자세는 아니다. 독자가 기억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8.15 https://www.chosun.com/opinion/correspondent_column/2025/09/29/WLALOOKR7REQJO7JAASKJ2VNMI/


9.30 https://www.chosun.com/international/international_general/2025/08/15/YYKSJC63LRBMBNTUDMKEE6X6FQ/



2. 전달방법은 곤란하더라도 내용은 유념할 부분이 있다. 한국정권의 기조가 5년마다 바뀐다고 생각하는 타자의 시각은 분명 존재한다. 예컨대 2년 전 언더스탠딩에서 한창 자극적으로 책 광고하던 북한 침공설 <이미 시작된 전쟁>에서도 한국정권에 대한 중국정부의 시각이 있었다


이 책 역시 앞의 기사와 마찬가지로 전달하는 메세지보다는 그 이면의 세밀한 디테일을 읽어내는 편이 현명한 독서다. A다! 이렇게 될 것이다! 라고 하는 표면의 주장보다는 뒷받침 근거에서 보여지는 파도의 출납을 관장하는 거대한 심층 해류를 읽어낼 수 있는 것이다.













<이미 예정된 전쟁>에서도 북침 시나리오는 구현되지 않았으나 그 앞부분의 전직 대통령 내용에 대한 분석에서 전승행사에 참석한 박근혜 대통령에게 중국정부에서 무엇이든 주려고 하였으나 아무 요구도 안해서 당황하고 그 결과 한국정부는 일관적인 전략이 없다라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했다. (p30-34)


이때 남한 주도 통일도 선택지에 있었다는데 이때 결단을 내렸다면 탄허스님(呑虛 1913~1983)이 예언했던 "여자 임금이 나오고 3,4년 있다가 통일이 된다"는 말이 현실이 되었을지 모르는 일이다.


한국은 임기응변만 한다. 이에 대한 가장 큰 피해자는 정부 관료, 기업 담당자 등 개인이다. 예컨대 이번 프리즈도 계엄때문에


해외화랑에서 급변사태가 나면 미술품이 훼손, 도난될까봐 대거 취소해서 한국화랑을 사십 여군데 추가해 땜빵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제조업, GDP, 수출규모에 비해 금융시장이 너무 작은 구조적인 코리아 디스카운트문제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좋은 점은 정당을 막론하고 위기 사태마다 시민의 힘으로 개혁하는 다이내믹이 있다는 것이고 해외에서는 이런 정치적 역동성을 부러워한다. 


나쁜 점은 정책의 일관성 없이 땜빵만 하다가 장기적으로 더 큰 손해를 본다는 점이다. 이번 정권에서는 허가가 난 정책이 다음에는 뒤집어지는 일이 너무 빈번하니 투자금 회수가 장담이 되지 않아 단기투자에만 몰입하게 된다. 어떤 산업은 성장에 20-30년이 필요한데 그런 산업을 장기적으로 육성하기 힘들다.


F&B에서 대거로 식품 들여와서 반짝 홍보하는 엇비슷한 제품들(장어, 맛차 등), 성수동 팝업스토어, 투자캐피털 자금으로 수익보고 사라지는 대만왕카스테라, 주스, 탕후루, 마라탕 등만 가득하다. 이 역시 역동성인데


이러한 구조적 흐름 속에서 사람들은 나중에 생각해보며 없어지니까 있을 때 빨리 찾아가고, 홍보할 때 빨리 사먹는다. 좋은 점은 사람들이 트렌드와 유행에 매우 민감해지고 최첨단을 달리게 되는 것이다. 365일 아침을 간장 계란밥으로 일관적으로 먹는 일본인에 비하면 메뉴는 다양하다.


이런 맥락에서 한국문화의 흐름이 빠르고 계속 변화해서 재밌다고 생각하는 외국인은 한국을 찾아온다. 인상주의 회화에서 그리는 유럽의 중세풍 평화로운 마을은 살기는 좋다. 그러나 어떤 유럽 청년은 어렸을 때부터 계속 똑같은 풍경에 질려서 한국을 오는 경우도 있다. 시즌별로 모든 게 다 바뀌어서 사는게 재밌다고 생각한다.


또 장점은 급변하는 국제정세 속에 어떻게든 상황에 맞춰서 서바이벌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역시 국가나 정부같은 우리의 최상위 기관이 우리의 운명을 결정할 수 없는 20세기 초의 격변 속에서 (일제, 한국전쟁) 배태된 어떻게든 살아남자는 생존전략이다. 기후가 바뀌어도 뿌리를 내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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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루토의 사스케 사륜안 이후로


일본 만화에서 동공을 일반적으로 검게 칠하지 않고 장식하기 시작했다.


가장 키라키라 빛 나는 것은 최애의 아이


개인작으로 탑3라고 생각하는 고퀄 애니메이션 3대장에서도 모두 눈이 특별하다


마파의 체인소맨 - 마키마 눈(원심), 파워의 눈(십자)


사이언스 사루의 단다단 - 바모라 눈(별)


그리고 가장 특징적인 것은 바로


유포테이블의 귀멸의 칼날


상하현 모두 눈에 급수와 함게한자 숫자 123456의 이체자로 넘버링 되어있다.


심지어 십이귀월뿐 아니라 귀살대 주들도 눈이 모두 다르다


체인소맨은 눈 자체보다 눈 밑 두덩이 라인이 특징이다. 덴지. 왼쪽 오른쪽 2-3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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