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린 영화 리뷰3

CGV 하마구치 류스케 초기작 특별전 상영작 5개


인터미션 있는 영화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브루탈리스트 이후 3번째인 것 같으나 하마구치 영화 중 해피아워(5시간), 드라이브마이카(3시간)를 생각하면 그리 특별하지 않은 4시간짜리 친밀함(2012), 섬뜩함이 피부에 닿는다(2013), 천국은 아직 멀어(2016), 아무렇지 않은 얼굴(203), 영원히 그대를 사랑해(2009)

그리고 깐느 학생1등상 받은 허가영의 첫여름

위키드

그리고 넷플 드라마 웬즈데이 보기 시작

그리고 하오카를 만지작 만지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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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런 버핏과 찰리 멍거 - 세계 최고의 투자 수업
워런 버핏.찰리 멍거 지음, 임경은 옮김, 알렉스 모리스 편저 / 교보문고(단행본)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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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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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차영차 태엽 힘센 불도저 - 불도저 1대
사라 헐 지음, 스테파노 토그네티 그림, 헬렌 리 디자인 / 어스본코리아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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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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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동 디스코스 온 아트 (미술담론)이라는 신생 전시공간에 다녀왔다. 서울대 미대 명예교수 정영목씨가 만들었다고 하는데 윤해남 작가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작품은 뮤지션 이진아의 노래같다. 이진아의 노래는 언뜻 베이비 보이스라 쉽게 들리지만 전문적으로 화성학을 배운 사람만 알 수 있는 복잡한 진행이 섞여있다. 꼬마빌딩의 2층 크지 않은 공간임에도 윤해남 작가의 작품에서 유럽미술사조 무쌍난무한다. 괜히 미술 디스코스 공간에 미대 명예 교수가 초청한 전시가 아니다. 배운 자들이 배움을 확인하기에도 좋은 파이널 모의고사 전시라고도 할 수 있다.


세잔의 기하하적 구조분할과 대기 속 구조, 피카소의 큐비즘, 쇠라의 점묘, 고흐의 강렬한 필치, 마티스의 자유분방한 색채해방, 터너의 산란하는 빛과 대기, 뵈클린의 고립된 섬과 신화적 알레고리, 몬드리안의 패턴중심 조형주의, 로스코의 명상적 색면추상, 리히터의 질감실험을 윤해남 작가의 작품들에서 읽어낼 수 있다. 회화적 다성악적 구조라고도 표현해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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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영화는 시네필들에게 마치 수리영역 4점짜리 21번 킬러문항 같다. 전형적인 패턴이어 암산으로 푸는 2점짜리 마블, 디즈니, 막장 드라마와 양산형 애니를 보고 온갖 영화를 섭렵 후 동일한 스토리 라인으로 인해 지겨워질 때쯤 프랑스 영화를 만나면 신선하고 맵디맵고 어질어질하기 그지없다. 이것이 인생이고 욕망인가? 그 어떤 영화독법으로도 다음을 예측할 수 없다. <엘르> <인더하우스> <추락의 해부>... 이번 8월 킬러문항으로 <미세리코르디아>가 개봉했다.

손주은 선생은 재종반 학생들이 평가원 문제 1000개의 고비를 넘으면 1등급에서 떨어지지 않는다고 했는데 (실제로 내 경험도 그랬지만 지금 보다는 킬러문항이 덜 어려웠다) 영화계도 마찬가지로 영화 1000편을 넘어가며서 1등급 시네필이 되는 것 같다. 프랑스영화는 그런 1등급 시네필을 위한 4점짜리 문제들이다. 자라나는 10대보다는 인생의 단맛과 쓴맛을 이해하는 30-40대가 되어서야 이해되는 영화다.

설령 20대 때 봤어도 50대에 다시 보면 전혀 다르게 읽힌다.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처럼 말이다.

문제는 인서울도 학과별 대학별 서열이 있고, 귀족 세계에도 자작 백작 공작 후작 왕족 등 온갖 복잡한 계급표가 있으며, 대기업도 직종별 직군별 티어가 있듯이 1등급을 넘어도 분화된 세계가 있다. 한우 1등급 이후 원뿔과 투뿔이 있는 것처럼. 그말인즉슨, 1,000편 이후 10,000편까지는 강호의 무법자, 재야의 고수이 그득해 진검승부를 펼쳐야한다. 만 편 이후로는 영화 신선이 되어 무릉도원으로 등선한다고 하던데. 주변에 만 편을 봤다는 사람이 없는 이유는 다 복숭아 꽃과 함께 유유자적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아 왜 그들은 무지하고 불쌍한 시네필을 위해 자비를 베풀어주지 않는가

영화는 끝까지 어떻게 끝날지 알 수가 없다. 특히 마지막 엔딩 슬레이트를 칠 때 와 여기서 끝맺는다고? 생각을 했다. "아직 조금 이른 것 같다" "손은 나도 좋아"

처음 시작할 때 리듬이 좋다. 참새 날갯짓처럼 깨방정부리는 연출의 리듬이 특징적인 <가오갤>이나 <하이파이브>같은 영화가 있는가하면, <미세리코르디아>처럼 전혀 흥분하지 않는 차분한 상태에서도 이렇게 유유하게 리듬감있고 경제적으로 컷을 구성할 수도 있다. 내일 툴루즈로 떠나요 → 나를 슬픔 속에 내버려두고? → 바로 뱅상 침대 만드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영화 캐릭터들이 서로 욕망하고 욕망의 대상이 되지만 욕망이 미끄러지는 장면은 라깡의 대타자와 소타자를 건드리지 않고 설명할 수 없다. 관음하고 관음받는 즉 훔쳐보고 훔쳐보여지는 부분은 현기증, 이창 같은 고전영화의 오랜전통이다.

영화의 얼개는 제레미가 사랑했던(욕정했던) 스승 피에르의 죽음으로 상마르셸에 방문하고 머무르다가 실수로 친구 뱅상을 죽이게 되는데 알리바이를 만들면서 일이 꼬이게 되고 이 대화 속에서 서로가 서로를 욕망하고 있다는게 드러나는 얼개다.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제레미가 죽으려고 하지만 신부가 달래는데, 영화의 제목이 라틴어로 자비이기 때문에 신부의 자비가 어떻게 표현되는지 확인하는 게 영화의 핵심이다.

피에르의 부인 마르틴은 아들 뱅상의 중학교 친구 제레미를 욕망하고 집착하며 집에 머무르게 하고 싶은데 표면적으로 정확히 표현하지 않아서 주위의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제레미 정황상 머물르다가 자기와 욕정관계가 발현되었으면 좋겠다.

뱅상은 엄마 곁에 머물고 아버지의 옷을 입는 제레미가 못 마땅하고 그에게 분노한다. 이러한 화 역시 그가 제레미에 대한 욕망과 집착의 다른 표현이다.

왈터는 뱅상의 친구로 모두 유년시절 친구다. 제레미는 왈터를 향해 다가가고 그와 자고 싶어한다. 뱅상과 왈터는 제레미와의 관계에 있어서 거울쌍이다. 뱅상은 제레미를 향해 분노로 다가오고, 제레미는 왈터를 향해 차분함으로 다가가며, 제레미는 뱅상을 거부하고, 왈터는 제레미를 거부하지만 완강한 거부가 아니라 서로의 스페이스를 허용한다.

주변 핵심인물이 아닌, 뱅상의 아내 아니와 경찰(폴리스가 아니라 시골의 장다르메리.. 파출소 같은, 미국으로 치면 셰리프 같은 보안관의 느낌) 두 명만 제레미와의 관계가 설정되어있지 않다.

여러 장면이 인상적이지만 신부와 제레미가 역할을 바꾸어 고해성사를 하는 장면에서 살인범이 누구인지를 아는 것이 정황상 드러나는 대사가 아주 찰지고 깊다. 각본집을 구해서 신부의 모든 대사는 문학책 읽듯이 분석하고 뜯어볼 필요가 있다. 허투루 넘길 대사가 아니었다.

제레미가 알리바이를 하나씩 풀어내는 동아 주변인물이 이를 나름대로 납득하고 커버쳐주는 장면에서 각 캐릭터의 마음의 지향이 드러난다.

사제관에서 신부와 제레미가 벌거벗고 껴안는 신은 표면상으로는 제레미가 살인 당일 행방이 묘연한 밤시간 동안 사제관에서 신부와 관계를 맺었다는 것을 경찰에게 "들킴"으로써 진실을 만들어주기 위함이다. 그런데 거기에 내부자들 이경영처럼 노배우의 발기가 겹쳐서 제레미를 향한 신부의 욕망도 존재함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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