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과 한겨레를 동시에 본다. 남성향 웹툰과 여성향 웹소를 동시에 보고 버핏과 바루크와 칼 폴라니와 맑스를 병렬독서하는 이유와 같다.
자신을 읽는 독자를 정확히 인지하고 있는 것 같다. 조선기사는 새는 돈, 구조문제, 키워놓았는데 배신, 오랫동안 일궈놓은 것의 붕괴, 새로 바뀌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와 어쨌든 발 맞춰나가기 위한 배움, 저출산고령화 같은 데 반응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정치성향, 연령대, 배경, 직업이 짐작된다. 한경과 매경 같은 신문을 제외하고 경제섹션이 잘되어있다.
한겨레 기사는 국제 노동 인권 기후에 특화되어있다. 안보와 경제도 없지 않은데 논조가 다르다.
조선 독자는 대개 100억, 10억을 벌면서 100만원, 10만원 자잘한 돈 나가는 것은 신경쓰지 않는 자들로 적절한 투자기회 상실, 정치문제, 시스템 분배, 제도와 규제같은 거시적 이슈로 집단과 업계전체가 큰 돈을 손실하는 것에 분노한다.
한편 한겨레는 당장의 가처분 소득 10만원 100만원이 이번 주 치맥을
하느냐 못하느냐 같은 삶의 질 향상을 좌우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 초점을 둔다.
대개 미시적 삶의 불공정 불평등에 특화되어있다. 국제문제에서도 중후장대형 산업의 미시적 영향을 다루는 편이다. 하나의 산업 생태계를 이해하기 위한 여러 다채로운 사례를 이해하려고 한다. 동물권 AI같은 미래에 관심을 두는 한겨레의 기사가 조선에서는 당장 먹고사는 데 어떻게 응용될지 추이로 전환된다. 한겨레는 여성인권, 조선은 여성출산이다. 조선은 거시적이긴 하되 테마와 접근방식이 제한적이라면, 한겨레는 사례의 다양성과 네트워크적 영향관계, 제도변화의 일상적 영향에 주목한다.
중앙일보 한국일보 모두 전문가 인터뷰, 사설 섹션이 좋다. 중앙일보가 지면을 큼지막하게 허락하고 여러 분야의 전문가가 있다. 한편 경향신문은 다소 필진이 서울대 교수진 위주다. 그러나 읽는 신문이 너무 많으면 감당이 안되어서 중앙 한국 경향까지 읽을 시간이 없다.
조선 한겨레 코리아타임즈 뉴욕타임즈 정도로 줄여야 내가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