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사진은 시간을 두고 오롯이 바라보고 있으면 처음엔 보이지 않던 요소들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부산 고은 랄프깁슨 사진미술관에서 예술이 된 일상의 단편 전시를 했었는데 대부분 작품에 두 사진이 병치되어있다.

언뜻 봤을 때는 달라보이지만, 찬찬히 뜯어보고 있으면 무의미한 나열이 아니라 의미가 돋을새김된 페어링으로 새로이 이해된다. 왜 예술사진이며, 왜 예술사지은 미술관에 걸려 음미의 대상이 되는지 이해된다. 스쳐지나가는 사진이 될 수 있었지만, 안목있는 사람의 눈에 솜씨좋게 페어링된 사진이 눈에 띄며 구도, 음영, 의도 등 여러 측면에서 분석의 대상이 된다.
예를 들어 유리창 너머 병사와 커튼 너머 기하학적 문양의 바닥이 보이는 사진이 있다.
일단 인물과 무생물의 대립으로 보이지만 대상이 다른 사물과 얼마나 가깝냐도 비교의 포인트다. 왼쪽 사진은 인물이 유리창 앞으로 전진배치되어 있어 피사체와 카메라가 가깝고, 오른쪽 사진은 기하학적 패턴의 바닥이 멀리 위치해있고 사람이 사라진 공간을 보여준다. 마름모꼴의 격자무늬가 공통적으로 확인되지만 왼쪽은 유리창에 선으로, 오른쪽은 바닥에 그리드로 표현되어 왼쪽은 투명한 중개를, 오른쪽은 밀도 있는 물성을 표현한다. 왼쪽은 근경의 다소 거친 질감의 서늘한 빛이 반사되는 유리창과 그 너머의 인물의 부드러운 실루엣을 표현한다. 오른쪽은 근경의 부드러운 커튼과 그 너머의 단단한 바닥 타일이 구도와 질감의 대비를 이룬다.
병사의 얼굴은 입자감 있는 검은점들로 가려져있고 오히려 바닥쪽이 더 시원하게 인식된다. 시선이 유리를 투과했으나 가까이 있는 대상은 완전히 인식될 수 없고, 시선에서 멀리 있는 바닥이 더 선명하게 보인다. 병사의 시선이 왼쪽에 있고 유리창 프레임이 살짝 보이게 한 배치는 오른쪽에 위치한 커튼에서 왼쪽의 바닥으로 시선이 옮겨지는 구성과 닮았다.
시선의 반투명한 차단도 감상의 대상이다. 유리와 커튼은 시야를 가리기도, 매개하기도 한다는 점에서 시각적 필터다. 유리는 대상을 투영해 보여주지만 물리적으로 접근을 제한하고, 커튼은 대상을 가리지만 접근시 물리적으로 방해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유리는 언뜻 직접 보기의 가능성을 제시하지만 보는 이의 다가옴은 제한한다는 점에서 심리적 친근함과 물리적 방해를 상징하며, 반대로 커튼은 직접 보기의 불가능성을 시사하지만 보는 이의 다가옴은 제한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심리적 규제와 물리적 환대를 상징한다. 그러나 둘 다 모두 공간 너머를 암시하는 구조를 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흔히 일반적으로 시각은 진실에 접근하는 수단으로 받아들여지다. 실재 존재하는 사물을 시각으로 감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두 이미지는 시야의 방해물이 오히려 서사를 풍부하게 만들 수 있음을 암시한다. 유리, 커튼, 혹은 반사 등의 여러 요소가 시선을 제약하면서 상상력이 개입할 여지를 열어준다. 이는 보는 것만이 아는 것이라는 근대적 인식론에 대한 나름의 도전과 비판이기도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