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인문 강의 시리즈 중 네번째.한글과 그와 관련한 세종의 업적에 대하여 전문적으로 풀어준다.`역사저널 그날`에서 나온 내용 대로 한글은 적어도 세종이 주도해서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으며창제과정에서그 당시 언어학(음운학) 다른 나라의 문자를 어느정도 참고 했으며 영향을 받았는가에 대하여 자세히 나와 있다.여러 북방 유목 민족의 문자와 의 관련성에 관한 내용은 매우 정밀하게 분석하고 있고 그 동안 막연히 북방 민족의 언어를 참고해서 섰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사실은 여타 기존의 문자와 관련성이 희박하고 한글이 매우 독창적인 창제원리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알게된다. 북방의 문자들은 일본의 가나처럼 한자를 기반으로 하고 몹시 복잡한 체계를 가지고 있다. 그에 반하여 한글은 초성 중성 종성의 간략하면서 정교한 체계이다. 현대의 음운학의 성과를 600년 전에 반영하고 있다는 주장에 놀라웠다.서울대 인문 강의가 지금까지 6개 나와있는데 저자는 쉽게 풀어 쓰는 것을 목표로 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가장 전문적인 느낌이 강했다. 아마도 어려운 음운학에 대한 내용과 적어도 내게는 친숙하지 않은 한자때문인 것 같다.세종의 위대함을 확실한 근거와 자료로 느끼게 해준다.다시 한번 발췌독해보아야 할 것 같다.
눈물 날 뻔 했다. 마지막 부분에서 멋지다 그의 책도 인생도 그 자신도.책은 또 책을 부른다 특히나 사놓고 아직 읽지 못 한 것들을프란시스 크릭 `DNA`올리버 색스 친구 아니면 애인 아무튼 빌 헤이스의 `해부학자`로 빠져 봐야겠다그리고 올리버의 다른 책으로.
종교가 뭔지 이상이며 신념이 뭔지.23살 어린 신부 이순이는 그렇게 죽음을 선택한다. 선택이라기 보다는 담담히 받아들인다. 지금도 그렇고 예전에도 그렇고 신념은 젊은 사람들을 사지로 몰아넣는다. 순교라는 명분으로.이야기를 읽고(사실은 논문에 가까운 글) 처음부터 가슴이 먹먹해 졌다. 아려왔다. 순교가 어떤 의미인지는 모르겠다. 이순이와 그의 친정, 시댁은 의미가 있으니까 죽음을 마다않고 오히려 기쁨으로 받아드리며 이 세상을 떠났겠지만 내가 종교가 없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그들의 죽음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또 프랑스에서 선교하러온 생면부지의 땅에 와서 죽어간 이순이와 비슷한 나이의 선교사는. 슬픔과 기쁨으로 아들의 죽음을 받아들였다는 가족은. 이순이가 순교할 당시 일본은 상상을 초월하는 가혹한 고문으로 기독교나 개신교가 우리나라 만큼 자리잡지 못했다는 것은 또 무슨 의미일까?그리고 정조는, 그의 조선은 그들을 죽여야 했나. 아름다운 영혼을 가진 젊은 생명의 죽음으로 보낸 상황이 철학적 고민을 안겨준다. 모든 것은 양면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신이 있다면. 그 신이 완벽하다면 그리고 우리의 일상사 하나하나를 관할한다면, 적어도 자율적으로 움직이게 설계했다면 좀 더 완벽할 수는 없었느냐고 묻고 싶다. 행복할 수 있었던 사람들의 죽음을 생각하며, `죽음을 넘어서는` 떠나간 그들 모두다 행복하길 바라면서 이만 줄인다.
제목이 참 멋 있다고 생각 했는데 작년에 1권을 읽고 이제서야 다 읽었습니다.TED에서 성급한 일반화라고 할까? 하나의 경험이나 사건이 전체인것 처럼 생각 하는것, 아프리카 하면 사바나 초원을 떠올리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이 오류라고 당차게 주장하던 아디치에 그녀가 인상 깊었는데이 작품을 통해전쟁의 고통과 사랑, 인간 군상의 다양한 모습을 잘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2권 후반부로 가면서 김원일 작가의 ˝노을˝ 의 마지막 클라이막스와 짐 크레이스의 ˝그리고 죽음˝의 첫장면이 떠올랐네요.전쟁 막바지의 죽음에 대한 묘사 때문일 것 같습니다.책을 덮고 떨리는 마음으로 모던 클래식 시리즈 이름에 걸맞는 작품으로 추천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