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학교 분투기 - 내 교육을 방해한 건 학교 공부였다!
토니 와그너 지음, 허성심 옮김 / 한문화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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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리나라 교육은 발전했을까, 어느 정도는~이라고 할 수 있겠다. 분명히 내가 공부하던 시절, 주는 족족 외워야 하는 때보다는 많이 발전한 듯 보인다. 특히 수행평가가 도입되어 사지선다형 시험 결과만으로 평가되기보다는 과정 중심의 평가로 바뀐 부분이라든가 한 학기 한 책 읽기 등의 느린 독서의 도입이라든가 한 팀을 이루어 프로젝트식으로 아이들끼리 문제를 해결하는 수업 방식 등이 그렇다. 적어도 기획은 그렇다. 수업 현장이 어떤가, 그것이 고등학교까지 이어지는가는......




<나의 학교 분투기>를 쓴 토니 와그너는 교육혁신가이자 미국 교육정책연구소의 선임 연구원이라고 한다. 미국 전역뿐 아니라 전 세계를 다니며 교육 혁신과 리더십 관련 강연을 하고 있는 그는 그런 일을 하게 되기까지의 과정이 쉽지 않았음을 이 책을 통해 밝히고 있다. 책 겉표지 속 한 문장 "내 교육을 방해한 건 학교 공부였다!"가 그 모든 걸 시사한다. 


토니 와그너의 경우, 어디서부터가 시작이었을까. 그에 의하면 그는 읽기를 배우는 것도,다른 모든 배우는 속도도 다른 아이들에 비해 훨씬 느렸다고 한다. 그리고 그의 나이를 생각할 때 훨씬 옛날이었던 그때는 학습 발달이 늦은 아이는 부모나 선생님이 불안한 학습자로 치부해버리고 주위 사람들에 의해 압박이 심했다고.(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이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토니 와그너는 자신이 관심있는 분야는 열심히 책을 찾아가며 연구하고 공부했지만 학교에서 하는 공부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러니 초등학교에서도, 중학교 과정에서도 그는 늘 학교 밖이었고 급기야 "넌 개판이야!"라는 소리까지 들었다. 이 소리는 평생 토니 와그너의 가습 속에 남아 그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혔다.


그는 정말 개판인 학생이었을까? 그가 궁금하고 알고 싶은 분야에 대해서는 항상 책을 찾아 읽고 알고 싶고 연구하고 싶은 학생이었는데도? 그런데 토니 와그너가 알고 싶은 것에 대해서는 학교에서는 알려주지 않고 가르쳐주지 않았다. 그래서 토니 와그너는 스스로 자신이 알고 싶은 것을 알려주는 학교를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그 과정이 순탄할 리가 없다. 그 과정 속엔 고등학교도 2번을 옮기게 되고 대학도 3번을 옮기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엔 정말 다양하고 훨씬 많은 것들이 받아들여지는 곳이기 때문인지(적어도 내 생각에) 그가 원하는 곳들을 찾아낼 수 있었고 그가 원하는 방향으로 주제를 찾아 공부하고 연구할 수 있었다. 


제목 그대로 그야말로 "학교 분투기"이다. 공부가 끝났나 싶으면 이제 교사가 된 그의 학교에서의 좌충우돌 힘든 적용기가 시작된다. 그가 지금까지 겪어오고 자신의 실패를 디딤돌 삼아 아이들을 잘 이끌어주고 싶었던 그의 교사 생활은 또다른 난제였다. 아이들은 이미 흥미를 잃었고 학교라는 시스템은 경직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혼자 분투한다고 바뀌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때문에 그는 "학교 개선 컨설턴트"가 되고자 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학생으로서 교사로서 교장으로서 모든 자리에 있어봤지만 그 어느 하나 쉽지 않았던 학교라는 곳을 잘 바꾸기 위해, 모두가 행복한 진정한 배움의 자리로 바꾸기 위해서 말이다.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을 누구보다 내가 더 잘 알기에 선생님들께 항상 감사하다. 그러나 우리나라 교육 현실을 생각했을 때, 토니 와그너처럼 조금 뒤처지거나 학교 밖에 있거나 주어진 공부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아이들까지 보듬어 줄 수 있는 교육을 준비하고 다양함을 만들어줄 수 있는 미래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 이 후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


#토니와그너 #나의학교분투기 #한문화 #교육현실 #교육혁신 #진정한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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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밍웨이의 작가 수업 - 키웨스트와 아바나에서의 일 년
아널드 새뮤얼슨 지음, 백정국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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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이 책을 알게 된 건, <더 저널리스트 : 헤밍웨이편>을 통해서였다.

책 뒤편에 자신을 무작정 찾아와 작가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묻던 젊은 청년에게 일자리를 주고

청년의 모든 질문에 답해주던 헤밍웨이의 답변이 실려있었다.

궁금해서 그 젊은 청년, 아널드 새뮤얼슨을 찾아봤더니 딱 한 권 바로 이 책

<헤밍웨이의 작가 수업>이라는 책이 있었다.

부제 "키웨시트와 아바나에서의 일 년"이라는 것을 보니 헤밍웨이와 함께 보냈던 일 년 동안의 이야기를 글로 쓴 책이다.

이 함께 보낸 일 년 동안 이 젊은 작가는 어떤 것들을 보고 배웠을까. ...가 궁금했다.

그런데, 그런 관점으로 이 책을 읽으면 사실 실망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이 "키웨스트와 아바나에서의 일 년" 중 대부분은 작가 수업을 하는 시간보다 낚시를 하는 시간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낚시라고는 정말 1도 모르는 나로서는 조금은 지루하고 인내해야 하는 시간이었음을~ ㅎㅎㅎ

대부분의 작가 수업에 대한 이야기는 그 전에 읽었던 <더 저널리스트> 뒤편에 거의 다 있었다. 그러니 그걸 알기 위해 굳이 이 책을 읽을 필요는 없었다.

그보다는 이 쿠바 아바나에서의 여정 동안 수많은 새치들을 기다리고 놓치고 다시 기다리는 과정과 다시 낚싯줄을 드리우는 과정 속에 <노인과 바다>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고 아마도 헤밍웨이 또한 이렇게 자신이 잘 아는 이야기를 소설 속에 담을 수밖에 없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널드가 헤밍웨이에게 느끼는 감정은 "아버지" 같은 다정함이다. 살뜰하게 보살펴주고 다정하지만 마지막 충고까지 잊지 않았다.

"자네가 꼭 극복해야 하는 건 낙심하는 일이야... (중략) ... 하늘이 무너져도 낙심하지 말게! 열심히 하되 멈출 때를 알아야 하네. 한 번에 몇 주 동안 써지지 않을 때가 있을 거야. 그런 일이 벌어지더라도 낙심하지 말게. 세상 그 어떤 작가라도 써지지 않을 때가 있어. 자연스러운 일이야."...318p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아널드는 이 원고를 깊숙이 숨겨두었는지 궁금하다. 결국 이 원고는 딸이 나중에 발견하여 출간하게 되었다고 한다.

작가 수업에 대해서는 조금 아쉬움이,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일상에 대해서는 잘 알게 된 책이다.

#헤밍웨이의작가수업 #아널드새뮤얼슨 #문학동네 #아바나 #낚시 #어니스트헤밍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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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4-15 00: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헤밍웨이는 역시 낚시와 전쟁이죠~!! 소설아닌 이런 책도 읽어보고 싶네요

ilovebooks 2021-04-15 00:11   좋아요 2 | URL
옆에서 바라보는 헤밍웨이도 좋았던 것 같아요~
 

쿠바 아바나에서 E.H와 아널드가 직접 목격한 만 마리의 돌고래떼

E H는 그 일을 잊지 않았다. 몇 년 후 그날의 쇠돌고래들은 《노인과바다》에 나오는 어부의 꿈속에 등장했다. "노인은 사자 꿈을 꾸지 않았다.
그 대신 십오륙 킬로미터나 길게 뻗어 있는 엄청난 쇠돌고래떼의 꿈을 꾸었다. 짝짓기 때였고 쇠돌고래들은 공중으로 높이 뛰어올랐다가는 뛰어으를 때 수면에 생긴 바로 그 구멍 속으로 도로 떨어지곤 했다."
- P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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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홉 명작 단편선 2 체홉 명작 단편선
안톤 파블로비치 체호프 지음, 백준현 옮김 / 작가와비평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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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톤 체홉이라는 작가의 이름을 들은 건 꽤나 오래 됐다. 흘러가는 귀동냥으로는 훌륭한 희곡을 쓰는 작가였고 내게 그런 작가는 "뭔가 이해할 수 없는 어려운 작품을 쓰는 작가"라는 선입관이 있어서 좀 더 공부를 한 다음에~라는 조건이 붙는 작가이다. 그러다 아주 우연히 체홉의 "카멜레온"이라는 작품을 읽게 되었다. 정말 짧은 작품이었는데 그 짧은 작품 안에 오추멜로프라는 인물의 인간성이 모두 녹아있었다. 그것도 그가 입었다, 벗었다 하는 외투를 통해서. 이것이 단편이 주는 묘미이면서 재미겠지~하며 정말 즐겁게 읽었고 다른 단편들도 궁금해졌다. 




이번 <체홉 명작 단편선 2>은 모두 7편의 단편과 체홉의 삶과 문학 세계, 개별 작품 해설, 체홉 연보로 구성되어 있고 생각보다 체홉의 삶과 문학 세계와 개별 작품 해설 부분이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단편은 앞서 말한 "카멜레온"을 포함한 "뚱뚱이와 홀쭉이"를 제외한 5편 모두가 여성이 주인공이고 이 여성이 주인공인 단편들의 내용은 조금씩 발전하는 양상을 보이는데 일부러 작가와 비평 출판사 제작진의 구성인지는 잘 모르겠다. 연혁을 살펴보니 체홉이 글을 쓴 순서와도 비슷해서 아마도 체홉이 실제로 고민하고 걱정한 러시아 여성들의 삶이 고스란히 글에 드러난 것이 아닌가 싶다. 


"아뉴따" 속 아뉴따는 여러 남자들에 의지해 생활할 수밖에 없다. 지금은 생활력이 없지만 나중에 성공할 수 없는 그 남자들을 도와 굴욕적인 행동도 해야 한다. 지금은 정조가 없는 그녀와의 생활을 청산하는 것도, 다시 남으라고 "명령"하는 것도 남자들이고 그 명령을 충분히 어길 수 있으면서도 결국 자기 자리고 돌아가 시키는대로 하는 것도 그녀이다. 떠나면 스스로는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불행" 속 소피야 빼뜨로브나는 겉으로 보기에 훌륭한 가정을 이룬 부인이다. 그런데 그녀에게 사랑을 갈구하는 남성이 있다. 거절을 했지만 그 거절 속에는 여성의 우쭐함, 자존심 같은 것도 존재한다. 그리고 돌아온 그녀는 남편에 대해 최선을 다하려 하지만 오히려 남편은 자신에게 아무 관심 없음을, 만족스러웠던 가정의 편안함이 사실 권태였음을 깨닫고 불행하다고 느낀다. 그리고 이 집을 떠난다. "불행"은 비슷한 앞선 이야기의 "약사의 아내"와 다른 결말을 보여주어 조금 앞으로 나아간 듯한 느낌을 받게 하였다. 


중편처럼 느껴졌고 앞선 모든 이야기와 조금 다른 분위기가 느껴졌던 건 "약혼녀"였다. 우선 길이가 길었고 앞의 이야기들은 짧은 중에 큰 깨달음을 주었다면 "약혼녀"의 경우 등장인물 중 싸샤라는 인물이 적극 개입하여 나쟈를 직접 일깨운다.



그냥 얼렁뚱땅 결혼하지 말고 정신을 깨우기 위해 세상에 나아가 공부하라고 말이다. 그리고 나쟈는 싸샤의 도움으로 세상에 나가 공부를 하게 된다. 싸샤는 그 후에도 많은 여성들에게 공부를 하라고 설득하는 인물로 등장한다. 체홉이 하고 싶었던 말은 바로 이것이 아니었을까. 뒤늦게 바뀌어가는 러시아에, 새로운 변화를 이끌어나갈 사람들은 바로 여성들이라고 말이다. 돈을 위해 가난을 위해 결혼이라는 굴레에 묶이지 말고 공부를 하고 나가서 세상을 배우라고. 



*이 후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


#체홉명작단편서2 #안톤체홉 #작가와비평 #카멜레온 #약혼자 #목위의안나 #불행 #러시아문학 #단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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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 - 무루의 어른을 위한 그림책 읽기
무루(박서영) 지음 / 어크로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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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들은 제목만으로도 마음을 확! 끌어당긴다.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가 그랬다. 난 특별히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은 건 아니었지만 그런 할머니가 되고 싶다는 저자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아니, 어쩌면 그 제목 옆, "무루의 어른을 위한 그림책 읽기"라는 소제목에 더 관심이 갔는지도 모르겠다. 




그림책은 내게 아주 익숙하다. 무려 40년 전, 내가 어렸을 때부터(물론 내가 진짜 어렸을 땐 그림책이란 것이 있어서 우리 엄마가 그림책을 읽어주었던 것 같지는 않다. 그보단 조금 더 자라서 초등학교를 다닐 때 도서관에서 처음 접했다. 내가 기억하는 최초의 그림책은 <꽃들에게 희망을>이다.) 20년 전 내 첫 아이를 키우면서부터는 그림책이 일상이 되었다. 정말 열심히 읽어주었다. 아이가 자라면서 그림책에서 벗어나 동화책으로, 청소년책으로 진입했지만 곧 둘째가 태어나면서 10년 만에 다시 그림책으로 돌아왔다. 관련된 일도 하면서 나는 최소한 그림책에 대해서는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흠, 충격이다. 이 책, 무루가 자신의 경험과 엮어 소개하는 그림책 대부분은 내가 모르는 그림책들이다. <프레데릭>이나 <알도>를 제외하곤 생전 처음 들어보는 그림책뿐이다. 어찌 이럴 수가. 그러다가 이 그림책들이 조금은 내용상 어둡다는 사실을, 세상의 밝고 희망차고 깨끗한 면이 아닌 어둠과 상실, 부재 혹은 눈에 보이지 않는 그 어떤 것에 대한 것들을 말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래서 어른들을 위한 그림책 읽기가 아닐까. 




"책을 읽는다는 건 작가의 세계 위에 내 세계를 겹쳐보는 일이다. 어떤 이야기도 읽는 이의 세계를 넘어서지는 못 한다."...174p


아이를 위해 그림책을 많이 읽어주기는 했지만 나 자신을 위해 그림책을 읽지는 않는다. 그림책이 재미있다거나 그림책으로 위안을 받은 적은 별로 없다. 그럼에도 내게도 아이와 별도로 소중히 하는 그림책이 따로 있다. '내가 좋아하는 그림체라서, 내가 살고 싶은 모습을 담고 있어서'라는 이유 때문이다. 그건 이제 다 커버린 큰 딸도 마찬가지다. 어릴 적 판타지인 자신 만의 공간을 담은 책 한 권을 자신 만의 소중한 책으로 여긴다. 


아마도 그림책은 그림이라는 이미지와 함께 간결한 문장으로 우리 기억속에 각인되기 때문에 그 어떤 책보다 마음속에 더욱 오래 남는 것이 아닐까 싶다. 처음 이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땐 제목이 주는 느낌만큼 내게 맞는 책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읽어나갈수록 가슴에 남는 문장이 많아지고 생각할 거리가 많아져서 좋았다. 


#이상하고자유로운할머니가되고싶어 #무루 #어크로스 #어른을위한그림책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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