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배받는 지배자 - 미국 유학과 한국 엘리트의 탄생
김종영 지음 / 돌베개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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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배받는 지배자>는 미국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은 한국인 엘리트들을 분석한 책이다. 한국의 학계가 국내 박사보다는 미국 박사를 더 우대하고 그러한 미국 박사들을 중심으로 한국의 학계에 헤게모니가 구성된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라 할 수 있다. 저자는 이러한 미국 학계의 글로벌 헤게모니에 대해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보고 비판적 관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대학원 진학을 생각하고 있는 한국인 학생에게는 한국의 대학원보다 미국의 대학원이 더 매력적인 선택임이 분명하다.

세계 최상층을 차지하는 연구 중심 대학 집단, 영어의 글로벌 지배력, 세계 최고의 연구 생산성과 영향력, 전 세계로부터 인재를 끌어모으는 견인력 등은 미국 대학의 글로벌 우위를 구조화시키는 요소들이다. 조직적 측면에서 미국 대학은 기능적으로 분화되어 있고, 우수한 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연구에 집중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학문적 리더십을 바탕으로 교수진을 끊임없이 검증하고, 우수한 연구진에게 차등적 보상을 제공하며, 다양한 방식을 사회적 인정을 부여한다. 문화적인 측면에서 미국 대학은 합리적이고 개방적이고 경쟁적이다. 한국 대학과 달리 학벌 인종주의가 미약하고 파벌이 약하며 업적주의를 철저하게 견지하기 위해 노력한다. 무엇보다 이들은 헤게모니를 쥔 입장에서 유학파/국내파의 위계와 같은 갈등이 존재하지 않는다. (298, 299)

즉 학생 입장에서 기왕 대학원에 진학한다면, 재정이나 시설 면에서 지원이 탁월하고, 훨씬 민주적이고 개방적인 분위기인 데다가, 소위 '대가'라 불리는 석학들이 많고, 세계적 학문의 트렌드를 선취할 수 있는 미국 명문대가 당연히 합리적인 선택일 것이다. 더구나 영어 논문, 영어 강의, SCI급 저널 등재를 중시하는 한국 대학은 미국 유학파를 선호한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 학계의 미국 학계에 대한 종속성은 당연한 귀결인 측면이 있다.

문제는 이러한 미국 유학파 엘리트들이 폐쇄적인 한국 대학에서 헤게모니를 잡고 그 자체가 권력화되는 현상이다. 미국 유학이라는 경력 자체가 일종의 지위재로서 과대평가받고 있고, 그로 인해 뒤틀린 학문적 구조가 나타난다면 문제인 것이다. "국내 박사 출신 교수들을 대상으로 한 질문에서 외국 박사가 국내 박사보다 우수하다는 긍정적인 응답이 24.1퍼센트, 그렇지 않다는 부정적인 응답이 55.1퍼센트였다. 반면 같은 질문에 대해 외국 박사 출신 교수들은 긍정적인 답변이 66.7퍼센트로 나타나, 양 집단 간의 인식 차이가 크다는 것을 보여주었다"(152)는 연구 결과는 그러한 문제의 단면을 드러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미국 유학 경험과 정착 과정에 대한 인터뷰가 흥미로웠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미국에 유학하여 학위를 취득하고 미국의 대학이나 기업에 취득하더라도, 미국의 주류 사회에 진입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영어의 벽이 가장 큰 난관이다. 결국 미국에서 생활하면서 미국 원어민들에게 상대적으로 열등한 주변적 위치를 차지하는 것에 만족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공계에 비해 인문사회 전공은 그러한 벽이 더 심각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미국 유학의 현실에 대해 구체적으로 분석하고 있다는 점에서 큰 도움이 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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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상상력 - 지나간 백년 다가올 미래
김정섭 지음 / Mid(엠아이디)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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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한일 위안부 합의를 다루었다. 내용상으로도 한국측에 영 불만족스럽고, 절차상으로도 당사자 할머니들의 양해를 얻지 못한 위안부 합의는 문제가 많았고, 현재에도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굴욕외교라고도 할 수 있는 이러한 합의를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박근혜 정부가 지나치게 강경한 태도로 일본과의 대화를 거부하다가 한일협정 50주년인 2015년 연내에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섰고, 미국의 압력이 작용한 결과라는 것이었다. 한편 대통령이 중국의 전승절 행사에까지 참가하며 중국 측에 접근하다가 사드 배치 문제로 인해 한중관계는 급랭하게 되었다. 북한의 연이은 핵 실험, 미사일 실험에 대해서도 개성공단 폐쇄라는 최후의 카드까지 사용했지만, 대북정책 역시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탄핵 의결 이후 리더십의 부재를 주변국들은 파고들고 있다. 일본은 위안부 소녀상에 반발해 대사를 소환했고, 중국의 사드 보복성 조치도 점점 노골적이 되어가고 있다. 연례행사가 된 북한의 미사일 실험은 올해도 일어났다. 미국에서는 주한미군 방위 분담금 인상과 환율조작국 지정이라는 카드로 위협해오고 있는 트럼프가 당선되었지만, 트럼프가 아베 신조 수상과 골프를 할 동안 한국은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한때 박근혜 대통령이 외교는 제일 잘 한다고 했던 말이 무색하다.


동북아시아 국제정세는 가히 위기라 할 만하다. 탄핵정국이 수습되고, 새 대통령이 취임하면 이 문제들이 해결될 것인가? 불행히도 그렇지 않다. 첫째로 다음 대통령은 박근혜 외교의 유산 내지는 숙제를 해결하는 부담을 떠안게 된다. 현재 주요 대선 후보들은 위안부 합의 재협상 내지는 파기를 주장하고 있는데, '최종적, 불가역적'이란 말을 주문처럼 외우고 있는 일본이 이에 쉽사리 응할 것 같지도 않다. 한국 측의 일방적 요구로 재협상을 해서 더 나은 조건의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는 카드가 있을지 모르겠다. 사드 문제 역시 이미 배치를 결정한 상태에서 이를 번복하겠다고 하면 한미동맹에 치명적인 금이 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이대로 추진한다면 중국과의 관계 악화라는 부담을 고스란히 끌어안게 된다. 박근혜 정부는 길어야 1년 내로 끝나겠지만, 그 외교적 실패는 다음 정부의 몫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둘째로 작금의 외교적 문제가 박근혜 정부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동북아시아의 구조적 문제라는 점이다. 중국의 부상과 미국의 견제라는 미중간의 긴장은 이제 피할 수 없는 것이 되었고, 그에 따라 미국은 일본의 우경화를 용인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드 배치라는 형태로 한중관계가 경착륙한 것은 문제지만, 언젠가는 미국과 중국 중 한쪽을 양자택일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일본의 우경화나 북한의 도발 또한 미중신냉전의 구조가 계속되는 한, 다음 정부에서도 계속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셋째로 다음 대통령이나 다음 정부가 과연 이러한 외교적 난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비전과 역량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의문이다. 물론 이건 차기 정부의 공약을 살펴봐야 할 문제지만, 결코 낙관적일 수 없는 문제다.

<외교상상력>은 이러한 한국의 외교적 난제들과 국제정치에 대한 입문서다. 1,2차세계대전부터 냉전, 탈냉전 시대의 국제정치를 자세하게 소개하면서 현실주의, 자유주의, 구성주의의 이론을 통해 국제정치의 과거와 현재를 분석하고 있다. 이론과 역사를 상세히 분석함으로써 현재 유럽, 중동, 동북아시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외교적 문제들을 설명하고 있기에, 이 책을 통해 국제정치에 대한 안목을 기를 수 있을 것이다. 같은 사안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시각을 소개하면서도 균형 있는 관점에서 문제를 보고 있다는 점에서 국제정치의 입문서로서 적역이라고 생각된다. 개인적으로는 정치학을 전공하고 있는 지라 책의 대략적인 내용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자세하면서도 알기 쉽게 저술된 책은 보기 드물다.

한국을 둘러싼 외교적 상황은 결코 해결이 쉽지 않다. 중국의 신하라도 될 것처럼 추종하다가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감수하고 갑자기 사드를 배치하는 것도, 일본과의 정상회담은 없다며 강경한 자세를 고수하다가 굴욕외교로 갑자기 돌아서는 것도, 북한에 무작정 퍼주기만 하다가 개성공단까지 폐쇄하며 강경하게 나서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을 것이다. 이를테면 균형감을 가지면서도 확고한 전략과 비전을 가지고 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인데, 과연 한국은 이러한 난제들을 해결해 나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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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터에서
김훈 지음 / 해냄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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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김훈의 부친이자 중국문학 연구자였던 김광주(1910-1973)는 <정협지>, <비호> 등을 저술하며 한국 무협소설의 효시로 알려져 있다. 당시 와병 중이던 김광주는 아들인 김훈에게 소설을 구술하면 김훈이 그 내용을 받아적어 원고를 완성했다고 한다. 부친이 들려주는 무협소설 주인공들의 용맹무쌍한 모험담과 나날이 노쇠해져 가는 아버지의 현실 사이의 간극이 김훈이 처음 마주한 문학이 아니었을까?  


<공터에서>에 나오는 주인공 마차세의 아버지 마동수는 "1930년대의 상해에서 반식민 반제국의 선전 활동에 종사했고 임정의 외곽 조직에서 공연 단체를 조직해서 민족자결의 문예운동을 전개"(51, 52)했다고 한다. 태어난 해가 1910년이라는 사실도 김광주와 소설 속 마동수의 공통점이다. 주인공 마차세가 군생활 중 휴가를 나와 상을 치른 것 또한 저자 본인의 에피소드로 잘 알려져 있다. 즉, 이 소설은 저자의 자전적 소설이라 할 수 있겠다.

소설 속 주요 등장인물은 아버지 마동수와 장남 마장세, 차남 마차세다. 여기에 어머니 이동순과 마차세의 부인 박상희, 마차세의 딸 마누니 등이 나온다. 마동수는 일제시대 상해에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해방 후 서울로 돌아왔고, 한국전쟁이 있고 난 얼마 후 부산으로 피난했다. 이동순은 흥남철수 때 미군의 군함에 몸을 싣고 부산으로 내려와, 빨래일을 하다가 마동수와 결혼했다. 장남 마장세는 베트남전쟁에 참전했다가 제대 후, 괌과 팔라우에서 사업을 전개하였고, 차남 마차세는 강원도 GOP에서 군생활 중 1979년 아버지의 초상을 치르고 얼마 안 있어 대학 친구 박상희와 결혼하여 생활전선에서 악전고투하게 된다.

상해에서의 독립운동, 한국전쟁 와중의 흥남철수, 베트남전쟁, 괌에서의 사업, 강원도 GOP에서의 군생활까지 파란만장한 마동수 3부자의 일대기는 시간적, 공간적 스케일로 보면 <태백산맥>이나 <토지>와 같은 대하소설이 될 법도 한데, 350여페이지의 책 한 권으로 쓰여졌다. 상해에서의 독립운동이라든지 흥남철수, 베트남전쟁이나 해외 사업 같은 부분은 어떤 의미에서는 영화 <암살>과 <국제시장>을 엮어놓은 듯이 보인다. 하지만 영화 <암살>에서 나오는 카타르시스나 <국제시장>의 신파적 감동은 김훈의 소설에서는 나오지 않는다. 작가 후기에서 저자가 털어놓듯이 "나의 등장인물들은 늘 영웅적이지 못하다. 그들은 머뭇거리고, 두리번거리고, 죄 없이 쫓겨 다닌다. 나는 이 남루한 사람들의 슬픔과 고통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다"(353)는 것이 그 이유일 것이다.

마장세와 마차세 형제에게 가장 큰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것은 아버지 마동수의 존재다. 박상희는 마동수의 생전 사진을 보고 "아버지와 두 아들이 모두 가엾어서 눈물겨웠습니다"(262)라고 고백한다. 부계의 혈통을 따라 흐르는 핏줄이야말로 소설에서 마장세와 마차세를 괴롭히는 원흉이 된다. 마장세는 이를 두고 "덫"(255)이라고, 마차세는 "늪"(269)이라고 표현한다. 마장세가 한국에 오지 않고, 들르더라도 가족을 만나지 않으려 하는 이유가 바로 이러한 핏줄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형님은 한국이 싫은 건가, 가족이 싫은 건가"
"둘 다 무서운 거야. 아버지도 그랬어. 물려받은 거지. 난 형을 이해할 수 있어." (309)

마장세는 혈연으로부터 도망다녔지만, 결국 팔라우에서의 사업 도중 저지른 범죄로 체포되어 남산경찰서에 구금된다. 남산경찰서는 일제시대 마동수가 경찰에 체포된 형을 보러 갔던 곳이다. 수십 년의 세월을 거쳐 아버지의 인생과 아들들의 인생은 다시 고리를 이루며 순환하고 반복된다. 일제시대부터 민주화 이후까지 되풀이되는 폭력의 정체를 소설은 암시하고 있다. 마동수는 1979년에, 이동순은 1987년에 사망했다고 그려진다. 마동수의 모델인 김광주는 1973년에 사망했으니 소설에서의 연도 변경은 의미가 있는 듯 싶다. 박정희와 같은 해 사망했다고 소설의 화자가 말하고 있으니 일부러 그렇게 설정한 것 같다.

책의 표지에는 말 그림이 그려져 있다. 주인공 일가의 성씨가 마(馬)씨인 상징성 때문이다. 저자가 쓴 <내 젊은 날의 숲>에는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주인공의 할아버지가 데려온 말이 등장한다. 그 말의 이름은 "좆 내논"이다. 이 소설에서 말은 '만주(=대륙)'의 상징인 동시에, 남성성의 상징인 것이다. <공터에서>에도 말이 등장하는데, 마차세의 딸 누니가 놀이공원에서 타는 조랑말이다. 말은 늙고 초라했다.

누니를 태운 말이 멀어져 갔다. 말 엉덩이 사이에 새카만 생식기가 쪼그라져 있었다. 말은 수말이었다.
마차세는 자신이 마씨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상병 계급장을 달고 휴가 나와서 아버지의 밑을 살필 때, 아버지의 생식기는 쪼그라져 있었다. (322)

마씨라는 성씨를 통해 말은 아버지와 연결된다. 소설 내에서 마장세와 마차세 형제가 느끼는 비애와 우수는 잃어버린 남성성에 대한 불안이라 할 수 있다. 마장세의 부인은 팔라우에서 현지인과 눈이 맞아 감옥에 갇힌 마장세를 버린다. 마차세는 직장을 구하지 못해 오토바이를 타며, 부인이 버는 돈이 없으면 생계를 세우지 못한다. 결국 잃어버린 남성성은 소설 안에서 회복되지 못하고 마동수, 마장세, 마차세는 한심하고 갑갑한 삶을 살게 된다. 읽으면서 그런 부분이 짠해진다. 



P.S. 이 소설이 발매되고 나서 인터넷 일각에서 물의를 빚었다. 문제가 된 것은 다음 문장이다.

이도순은 보따리에서 기저귀를 꺼냈다. 딸아이의 작은 성기가 추위에 오므라져 있었는데 그 안쪽은 따스해 보였다. 거기가 따뜻하므로 거기가 가장 추울 것이었다. (95)

흥남 부두에서 이도순이 딸의 기저귀를 가는 장면이다. 그런데 이 문장이 독자의 성적 흥분을 야기하기 위해 쓰인 묘사인가?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딸아이의 작은 성기"라는 표현은 별 생각없이 지나친 부분이라,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물론 개인마다 느끼는 감정이 다르니 이 부분을 읽고 불편하게 느끼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성기라는 말만 나와도 변태적이라고 느낀다면 생물 교과서에 나온 인체 사진을 보고도 호들갑을 떠는 중학생이나 다를 바 없지 않은가 하고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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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수용소에서 (양장) - 빅터 프랭클의
빅터 프랭클 지음, 이시형 옮김 / 청아출판사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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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이 아주 좋아서였든 아니면 기적이었든 살아 돌아온 우리들은 알고 있다. 우리 중에서 정말로 괜찮은 사람들은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는 것을....(29)

'아우슈비츠'라는 단어는 오늘날 인간성의 어떤 극한을 나타내고 있다. 프리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에서 극명하게 묘사하고 있듯이 나치시대의 유대인 수용소는 모든 인간성을 제거하고 끝끝내 절망 속에서 죽음에 이르게 하는 인간사의 최악의 기제였음이 분명하다. 오스트리아에서 정신과의로 일하던 저자 빅터 프랭클은 나치에 의해 유대인 수용소에 수감되어 말로 다 할 수 없는 고통을 겪어야만 했다.

가혹한 노동과 감시원들의 구타와 모욕 속에서 유대인들은 삶에 대한 희망을 잃어가고 죽음을 마주한 절망에 빠지게 된다. 그러한 가운데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고, 사소한 것의 행복을 찾아가며 저자는 끝내 살아남았다. 여기에는 운명의 장난이라고 할 수 있는 우연들도 작용했지만, 살아남았다는 사실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보다 큰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인간성이 박탈당한 가장 극한적인 상황에서 오히려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탐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저자는 "왜 사는지 알고 있다면 어떤 역경도 견딜 수 있다"는 니체의 말을 인용하며, 자신의 수용소 경험을 정신의학 이론으로 체계화한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아들러의 개인심리학에 이은 제3의 이론체계가 바로 저자가 주장한 로고테라피인데, 삶의 의미를 찾고자 하는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삶의 의미는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저자는 어떤 일을 성취함으로써, 혹은 다른 사람과 사랑을 함으로써, 혹은 시련 속에서 찾을 수 있다고 역설한다. 이 부분은 신흥종교나 자기계발 같은 느낌도 들지만, 이 책을 읽고 인생의 의미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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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발견하는 시간 - 하버드.MIT 석학 16인의 강의실 밖 수업
양영은 지음 / 생각정원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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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인 양영은은 KBS 기자로 <아침 뉴스타임>을 진행하기도 했고, 현재 매주 토요일 <특파원보고 세계는 지금>을 진행하고 있어 익숙한 이름이다. 그런 저자가 재직 중 MIT와 하버드대학에서 유학하고 그때 만난 석학 16명의 인터뷰를 책으로 낸 것이 <나를 발견하는 시간>이다. MIT와 하버드는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최고의 대학들이기에 그 유학 시절의 인터뷰는 당연히 흥미를 끌 수밖에 없다.


이 책의 인터뷰이 중 언어학자 노엄 촘스키, 국제정치학자 조지프 나이, 에릭슈미트 구글 회장의 이름은 잘 알고 있었지만, 아시아계 여성으로는 최초로 하버드대학 종신교수가 된 석지영, 삼성전자 실리콘밸리 연구소 최연소 임원 프라나브 미스트리, 류샤오보의 노벨 평화상 시상식장에서 연주한 바이올리니스트 린 창, 하버드 최초의 여성 총장 드루 파우스트 등의 이름은 이 책을 통해서 처음 알게 되었다. 생각보다 인터뷰 하나하나의 길이가 길지는 않은데 책에 나온 인터뷰이들의 생각을 요지로서 접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짧으면 짧은 대로 의미가 있는 것 같다.

나 자신의 교환유학 경험에서 느낀 미국 대학의 특징은 학생들이 다양한 학문 분야를 접할 수 있고, 전공을 비교적 쉽게 바꿀 수 있다는 점이다. 내가 카투사 시절 만난 미군 소위는 대학에서 슬라브어문학과 생물학을 전공했다고 하는데, 이과/문과/예체능 구분이 확실한 한국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조합인 것 같아 인상적이었다. 이 책에 나오는 석지영 로스쿨 교수는 고등학교 때까지 발레리나를 꿈꿨고,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고토 류는 하버드에서 물리학을 전공했으며, 마찬가지로 바이올리니스트 린 창은 학부 2학년 때까지 의학을 전공했다고 한다. 이들에게 예술적 창조성과 학문적 경험이 시너지 효과를 냄으로써 많은 도움이 되었음은 말할 나위 없다. 물론 이러한 전공 경시 풍조에 대해 미국 학계 내에서는 비판적 시각도 있지만, 다양한 학문 분야를 경험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긍정적 효과가 있으리라고 생각된다.

책을 읽으며 또 하나 인상적이었던 것은 국무부 정무차관을 경험한 닉 번스, 국방부 국제안보 차관보를 경험한 조지프 나이, 선거 전략을 담당한 스티브 자딩 등 실무경험이 풍부한 인사들이 하버드나 MIT에서 교수로 강의를 한다는 것이었다. 학계와 기업, 정부 인사를 돌아가며 맡는 이른바 '회전문 인사'에 대해서도 비판이 있기는 하지만, 실무 경험이 있는 교수들의 강의를 대학에서 들을 수 있다는 것은 학생들에게 귀중한 경험이 되리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읽을 때 있어 구성이 조금 난해하다는 느낌이 든다. 이 책은 질문, 인터뷰이의 대답, 인터뷰어의 해설이 뒤섞여 있는데, 질문은 작은 글씨로 쓰여 있어 읽다 보면 질문이 무엇인지 놓치기 십상이다. 반면에 인터뷰이의 대답과 인터뷰어의 해설은 따옴표 여부 외에는 글씨체나 글씨 크기 등이 완전히 똑같기 때문에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인터뷰이의 대답이고 인터뷰어의 해설인지 한 번 보고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는 단점이 있다. 조금 더 구성을 신경썼더라면 이해하기 쉬웠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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