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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상상력 - 지나간 백년 다가올 미래
김정섭 지음 / Mid(엠아이디) / 2016년 2월
평점 :
며칠 전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한일 위안부 합의를 다루었다. 내용상으로도 한국측에 영 불만족스럽고, 절차상으로도 당사자 할머니들의 양해를 얻지 못한 위안부 합의는 문제가 많았고, 현재에도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굴욕외교라고도 할 수 있는 이러한 합의를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박근혜 정부가 지나치게 강경한 태도로 일본과의 대화를 거부하다가 한일협정 50주년인 2015년 연내에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섰고, 미국의 압력이 작용한 결과라는 것이었다. 한편 대통령이 중국의 전승절 행사에까지 참가하며 중국 측에 접근하다가 사드 배치 문제로 인해 한중관계는 급랭하게 되었다. 북한의 연이은 핵 실험, 미사일 실험에 대해서도 개성공단 폐쇄라는 최후의 카드까지 사용했지만, 대북정책 역시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탄핵 의결 이후 리더십의 부재를 주변국들은 파고들고 있다. 일본은 위안부 소녀상에 반발해 대사를 소환했고, 중국의 사드 보복성 조치도 점점 노골적이 되어가고 있다. 연례행사가 된 북한의 미사일 실험은 올해도 일어났다. 미국에서는 주한미군 방위 분담금 인상과 환율조작국 지정이라는 카드로 위협해오고 있는 트럼프가 당선되었지만, 트럼프가 아베 신조 수상과 골프를 할 동안 한국은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한때 박근혜 대통령이 외교는 제일 잘 한다고 했던 말이 무색하다.
동북아시아 국제정세는 가히 위기라 할 만하다. 탄핵정국이 수습되고, 새 대통령이 취임하면 이 문제들이 해결될 것인가? 불행히도 그렇지 않다. 첫째로 다음 대통령은 박근혜 외교의 유산 내지는 숙제를 해결하는 부담을 떠안게 된다. 현재 주요 대선 후보들은 위안부 합의 재협상 내지는 파기를 주장하고 있는데, '최종적, 불가역적'이란 말을 주문처럼 외우고 있는 일본이 이에 쉽사리 응할 것 같지도 않다. 한국 측의 일방적 요구로 재협상을 해서 더 나은 조건의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는 카드가 있을지 모르겠다. 사드 문제 역시 이미 배치를 결정한 상태에서 이를 번복하겠다고 하면 한미동맹에 치명적인 금이 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이대로 추진한다면 중국과의 관계 악화라는 부담을 고스란히 끌어안게 된다. 박근혜 정부는 길어야 1년 내로 끝나겠지만, 그 외교적 실패는 다음 정부의 몫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둘째로 작금의 외교적 문제가 박근혜 정부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동북아시아의 구조적 문제라는 점이다. 중국의 부상과 미국의 견제라는 미중간의 긴장은 이제 피할 수 없는 것이 되었고, 그에 따라 미국은 일본의 우경화를 용인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드 배치라는 형태로 한중관계가 경착륙한 것은 문제지만, 언젠가는 미국과 중국 중 한쪽을 양자택일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일본의 우경화나 북한의 도발 또한 미중신냉전의 구조가 계속되는 한, 다음 정부에서도 계속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셋째로 다음 대통령이나 다음 정부가 과연 이러한 외교적 난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비전과 역량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의문이다. 물론 이건 차기 정부의 공약을 살펴봐야 할 문제지만, 결코 낙관적일 수 없는 문제다.
<외교상상력>은 이러한 한국의 외교적 난제들과 국제정치에 대한 입문서다. 1,2차세계대전부터 냉전, 탈냉전 시대의 국제정치를 자세하게 소개하면서 현실주의, 자유주의, 구성주의의 이론을 통해 국제정치의 과거와 현재를 분석하고 있다. 이론과 역사를 상세히 분석함으로써 현재 유럽, 중동, 동북아시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외교적 문제들을 설명하고 있기에, 이 책을 통해 국제정치에 대한 안목을 기를 수 있을 것이다. 같은 사안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시각을 소개하면서도 균형 있는 관점에서 문제를 보고 있다는 점에서 국제정치의 입문서로서 적역이라고 생각된다. 개인적으로는 정치학을 전공하고 있는 지라 책의 대략적인 내용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자세하면서도 알기 쉽게 저술된 책은 보기 드물다.
한국을 둘러싼 외교적 상황은 결코 해결이 쉽지 않다. 중국의 신하라도 될 것처럼 추종하다가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감수하고 갑자기 사드를 배치하는 것도, 일본과의 정상회담은 없다며 강경한 자세를 고수하다가 굴욕외교로 갑자기 돌아서는 것도, 북한에 무작정 퍼주기만 하다가 개성공단까지 폐쇄하며 강경하게 나서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을 것이다. 이를테면 균형감을 가지면서도 확고한 전략과 비전을 가지고 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인데, 과연 한국은 이러한 난제들을 해결해 나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