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정치를 하는가
유승민 지음 / 봄빛서원 / 2017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난 대선에서 유승민은 큰 위기에 빠졌다. 한 쪽에서는 유승민을 "배신의 정치"라고 비판했고, 다른 쪽에서는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이 되냐?"라며 비판했다. 물론 유승민에 대해 호의적으로 본 사람들도 적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투표소에서 문재인, 안철수, 혹은 심상정이라는 선택지보다 유승민을 우선할 사람은 많지 않았다. 급기야 바른정당 안에서 후보 사퇴를 종용하기 시작했고, 선거 직전에 당의 국회의원 십여 명이 탈당해서 자유한국당으로 가는 사태가 벌어졌다. 막판에 동정표가 일면서 유승민은 200만 표 이상 득표하며 4위로 선거를 마쳤지만, 바른정당이 과연 자유한국당과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사이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따로 후원은 못 하더라도 책이라도 한 권 사자는 심정에서 유승민이 선거 직전에 출판한 <나는 왜 정치를 하는가>라는 책을 샀다. 책의 수익이 100% 저자에게 돌아가는 것은 아니기에 큰 의미는 없지만 말이다. 정치인이 쓴 책이 흔히 그렇듯이 이 책 역시 미화와 변명이 많다. 자신이 잘 한 일은 미화하고, 잘 못한 일은 변명한다. 책을 출판하는 목적이 정치인의 이미지를 제고하는 것인 이상 당연한 일일 것이다. 특히유승민에게 약점인 부분은 박근혜의 비서실장을 했다가 배신자로 낙인을 찍혔다는 사실일 것이다. 책에서는 자신은 원래 별 생각이 없었는데, 박근혜 당시 의원의 삼고초려로 마지못해 수락했다가, 쓴소리와 직언을 마다하지 않았다는 식으로 저술하고 있다.

이 책에는 성장과정과 정치에 입문하기까지의 여정, 정치인으로서의 성과, 현안에 대한 의견 외에 저자의 비전, 혹은 정치철학이라고 할 만한 부분이 있다. 저자는 따뜻한 보수주의(2000년 대선에서 미국의 조지 부시 주니어 역시 따뜻한 보수주의를 주장했었다)를 하면서 공화주의라는 말로 자신의 정치철학을 요약한다. 영미 정치철학에서 말하는 공화주의는 복잡한 개념인데, 알기 쉽게 말하자면, 자유주의-공동체주의 논쟁에서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의 단점을 극복하여, 시장과 국가 어느 쪽에도 소속되지 않는 공동체를 지향하자는 사상이라 할 수 있다.

책에서 저자가 하는 말 자체는 상당히 수긍할 만 한 부분이 많고, 희망적인 부분이 많다. 하지만 역시 말은 쉽고 실천은 어려운 법이다. 말과 실천을 연결하는 것은 원칙이다. 저자는 원내대표에서 축출되었을 때, 총선에서 공천 학살을 당하고 무소속으로 출마했을 때, 탄핵 의결에 찬성했을 때, 새누리당을 탈당했을 때, "나는 왜 정치를 하는가"라는 물음을 하면서 헌법의 정신을 다시 생각했다고 한다. 저자가 말하는 헌법의 정신은 공화주의다.

저자는 경제학 박사 출신으로 KDI에서 연구원을 했고, 국회에서는 국방위원회에 소속되어 많은 현안을 다루었다. 경제와 안보라는 보수의 강점을 살릴 수 있는 인물이다. 그러면서도 소위 "수구꼴통"과는 다른 모습을 보이며 중도나 좌파로부터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물론 정치적 상황은 많은 난관이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다음 5년이 가장 기대되는 정치인이라고 생각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왜 나는 법을 공부하는가 - 서울대 교수 조국의 "내가 공부하는 이유"
조국 지음, 류재운 정리 / 다산북스 / 2014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최근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발탁되면서 화제가 된 저자가 자신의 반생을 회고한 책이다. 제목과는 달리 법학에 대한 내용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데, '법'이 아니라 '나(=저자)'에 강조점이 놓여져 있는 책인 듯 싶다. 특이한 이름 때문에 선생님들의 주목을 많이 받았던 학창시절부터 독재정권에 저항하려고 했던 청년 시절, 미국 대학의 자유로운 분위기에 매료된 유학 시절 이야기, 공적 지식인으로서의 활동에 언론의 주목을 받게 된 최근까지 이런저런 에피소드가 많이 실려 있다.


그 중에서도 흥미로운 것은 저자에 대한 '강남좌파' '폴리페서'라는 꼬리표가 붙었었다는 사실일 것이다. 서울대 법대 교수로서 진보적 활동을 하는 저자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들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자신의 인생에서 학문과 참여는 중요한 두 축이라고 말한다. 여느 학문이 그렇겠지만 법학은 특히 학문 외부의 현실과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지식인으로서 현실에 참여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학자의 공직 진출, 이른바 회전문 인사에 대해 어떠한 제약도 없어야 하는가 하는 보다 깊은 문제에 대해서는 좀더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은데, 책에는 여기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다. 

학문과 참여의 균형과 함께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이성과 감성의 균형이다. 법학이라는 논리적 학문 분야에서도 약자에 대한 공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학문은 논리가 뒷받침되어야 하겠지만, 감성이 결여된 이성만으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학문 또한 사람이 모인 사회의 한 부분이라는 점에서 당연하다면 당연한 얘기다. 공부 열심히 해야 한다는 뻔한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만, 지식인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는 책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올해는 1987년 6월항쟁으로부터 30주년이 되는 해다. 민주화를 통해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하고, 6공화국 헌법을 수립한 6월항쟁을 기념하며 민주화와 민주주의에 관해 읽어볼 만한 책 10권을 골라보았다.

 

1. <100도씨> 최규석

 

 

6월항쟁의 전체적인 내용을 파악할 수 있는 입문용으로는 이 만화가 적역이 아닐까 싶다. 만화지만 1980년대 당시를 살아갔던 사람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역사적 사건들과 함께 그리고 있어 감동적으로 읽을 수 있다.

 

2. <특종 1987> 신성호

 

 

6월항쟁의 도화선이 된 것은 "탁 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며 공분을 산 것이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 당시 중앙일보 기자였던 저자가 이 사건을 보도하게 된 경위를 풀어내고 있다. 독재 정권 치하에서의 언론인의 용기있는 보도가 가진 큰 힘을 생각하게 한다.

 

3. <유월의 아버지> 송기역

 

 

박종철 열사의 부친인 박정기 전 유가협 회장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민주화 이후를 살아온 유가족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르포다. 아들을 먼저 떠나보내고 슬픔 속에서도 고군분투해 온 노인의 이야기가 감동적이다.

 

4. <L의 운동화> 김숨

 

 

6월항쟁에서 최루탄을 맞고 세상을 떠난 이한열 열사가 남긴 운동화를 복원하는 과정을 추적한 소설이다. 유품의 복원을 통해 아직 치유되지 않은 기억들을 소설로 담아내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5. <민주화 20년의 열망과 절망> 경향신문 특별취재팀

 

 

많은 사람들의 희생을 통해 성취한 민주화가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민주화와 민주주의에 대한 환멸이 들이닥쳤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2007년에는 민주정권을 표방한 김대중, 노무현정부에 대한 실망과 환멸이 극대화되어 있던 시기였다. 그 무렵 경향신문에서 진보좌파 세력의 문제를 반성하며 내었던 책이다.

 

6.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최장집

 

 

한국 정치학의 석학인 최장집 교수가 한국 민주주의의 과거, 현재, 미래를 한 권으로 담아 낸 책이다. 21세기에 출판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현대의 고전으로 자리잡은 정치학의 명저라 할 수 있다. 민주주의에 대한 실망과 환멸을 넘어선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희망을 얻을 수 있다.

 

7. <민주화 20년, 지식인의 죽음> 경향신문 특별취재팀

 

 

민주화 시대 대중을 선도했던 참여적 지식인이 민주화 이후 어떻게 변질했는가에 대해 묻는 책으로, 한국 지식인의 현주소를 다루고 있다. 10년 전에 나온 책이지만, 그 문제의식은 아직도 유효하다는 점이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불행이라고 해야 할지.

 

8. <민주주의의 모델들> 데이비드 헬드(박찬표)

 

 

'민주주의'라고 해도 그 종류는 직접민주주의, 자유민주주의, 참여민주주의, 숙의민주주의 등등 수없이 많으며, 각각이 의미하는 바는 서로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나기도 한다. 서로 다른 민주주의 모델들이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발전해 왔는가를 다룬 이론적 저서로서 어떤 민주주의를 추구할지에 대해 시사를 준다.

 

9. <민주주의는 어떻게 망가지는가> 조수아 컬렌칙(노정태)

 

 

일단 민주화가 이루어진지 오래된 민주주의 역시 망가지기도 한다. 민주주의의 미래에 대해 다소 비관적 전망을 하고 있는 책이다. 경제윅, 포퓰리즘 등으로 인해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는 전세계의 경향에 대해 잘 설명하고 있는 책이라 생각된다.

 

10. <박근혜 퇴진 촛불 행동> 최영준, 최일봉

 

 

6월항쟁 30주년이 되는 올해 박근혜 전 대통령이 파면되었다. 헌법이 규정한 절차에 따라, 국민을 대의하는 입법부의 투표와 헌법재판소의 판결로, 무엇보다 국민들의 행동으로 행정부의 수반이 그 자리에서 쫓겨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건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1조 2항의 의미를 되새기며, 지난 10월부터 계속되었던 촛불집회에 대한 책을 읽어보고자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여흥상사 (은행나무X) - 2017 한경신춘문예 당선작 개봉열독 X시리즈
박유경 지음 / 은행나무 / 2017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얼마 전 '마음산책', '북스피어', '은행나무' 세 출판사가 재미있는 기획을 했다. 각 출판사가 책을 한 권씩 포장지에 덮어서 출판사 이름 외에는 아무런 정보도 공개하지 않고 판매한 것이다. 저자도 줄거리도 비공개로 한 책(아마도 소설인 것은 분명해 보임)을 판매하는 방식은 큰 관심을 끌었고, 나를 포함한 많은 독자들이 책의 정체를 궁금해 하며 구매하였다.

말하자면 나는 이 책을 사면서 알 수 없는 책과의 우연한 만남을 구매한 것이다. 세상에 나오는 수많은 책들 가운데 나와 인연이 닿는 책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만약 이런 기획이 아니었다면 존재조차 알지 못했을, 무심코 지나쳐 버렸을 책과 만날 수 있다는 점은 좋은 기회였다.

책들의 복면은 5월 16일에 벗겨졌는데, 마음산책은 로맹 가리의 <마법사들>, 북스피어는 필립 커의 <베를린 누아르>, 은행나무는 박유경의 <여흥상사>였다. 복면이 씌워져 있지 않았더라면 절대로 만날 일이 없었으리라는 점에서 박유경의 한경신춘문예 수상작 <여흥상사>는 이 기획의 수혜를 톡톡히 본 책이었던 것 같다. 각각의 출판사가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떤 도서에 복면을 씌울지 결정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신인상 수상작을 선택한 것이 옳은 판단이었는지는 의문스럽다. 소설 자체보다 소설 외부의 이벤트가 더 큰 주목을 끌면서 소설 자체의 가치는 가려지는 역효과가 발생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소설의 내용으로 들어가자면, <여흥상사>는 고등학생 시절의 끔찍한 악몽으로부터 8년이 지난 후, 공범의식과 죄책감을 가진 세 남녀가 다시 모여 '그날의 일'을 재현하는 데서 비롯되는 이야기다. 서로가 서로를 불신하고 경계하는 데서 비롯되는 심리극이 흥미롭고, '그날의 일'이 밝혀지기까지의 전반부는 나도 모르게 페이지를 넘기게 되는 매력이 있다. 하지만 문제의 '그날의 일'이 밝혀지고 난 후반부는 긴장감과 몰입감이 떨어진다. 처음에는 긴장감을 불러일으켰던 심리스릴러도, 끝나고 보면 여느 평범한 B급영화에 나왔을 법한 기시감이 느껴지는 소설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천공의 벌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6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일본의 추리소설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는 현재 한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작가라 할 수 있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1985년 데뷔한 이래로 다작한 작가인데, 한국에는 갈릴레오 시리즈 등의 최근 작품부터 데뷔작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식의 순서대로 번역되는 경향이 있다. 일본에서 1995년에 출간된 <천공의 벌>은 한국에서는 작년에 출간되었다.

<천공의 벌>이 최근 다시 읽힐 이유가 있다면, 이 소설이 원전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자위대 자동조종 군용헬기를 원격조종으로 납치해 원전 바로 위로 이동시킨다. 그리고 범인은 메일을 통해 즉시 일본 전역의 원전을 정지하지 않으면 헬기를 추락시키겠다고 협박한다. 게다가 우연히도 헬기 안에 어린아이가 실수로 들어간 채로 납치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일본 전역은 충격에 빠지게 된다. 원전사고에 대해서는 체르노빌과 같은 휴먼 에러(human error)나 후쿠시마와 같은 자연재해에 대해서만 상상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소설은 특이하게도 원전에 대한 테러를 시나리오로 삼고 있다.

저자인 히가시노 게이고는 오사카부립대학 전기공학과를 졸업해 엔지니어로 일하다 작가로 데뷔했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는 이과적인 요소도 많이 들어가 있는데, 원자력기술에 대해서도 소설에서 자세히 다뤄지고 있다. 범인을 추적하는 경찰들이 원전 주변 주민들이나 원전 관계자들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원전에 대한 찬성, 반대 양론을 드러내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소설 속에서 등장인물들을 복화술 인형 삼아 주장을 펼치게 만드는 방식을 좋아하지 않는데 이 소설에서는 등장인물들의 입을 빌려 원전 문제를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다가 소설의 분량 자체가 600페이지가 넘다보니 전체적으로 소설이 너무 루즈하다. 탐정이나 형사가 범인과의 치열한 두뇌싸움 끝에 범인을 잡는 것도 아니고, 추리소설 특유의 반전도 없다보니 추리소설로서의 재미는 부족한 편이다. 한국에서도 얼마 전 <판도라>라는 원전사고를 다룬 재난블록버스터 영화가 개봉되었다. 하지만 원전사고를 엔터테인먼트로 다루는 데는 난점이 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처럼 방사성 물질 유출은 장기간에 걸쳐 진행되고 눈에 보이는 형태로 나타나기 어려워 재난 스펙터클의 요소를 충족시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천공의 벌>은 원전사고 그 자체보다는 헬기 납치라는 스펙터클을 통해 서스펜스를 형성하고 있는데, 이 사건만으로 600페이지가 넘는 소설을 진행시키기에는 지루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소설을 통해 원전문제를 접하고자 하는 독자들에게는 좋은 입문서가 될 수 있겠지만, 스릴러 소설 자체로는 밋밋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