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대 대선에서 야권은 왜 졌을까? 정상호 서원대 교수는 "
18대 대선은 환경만을 놓고 본다면 결코 야당에게 불리하지 않았던, 정확하게 말하면 제법 유리하였던 (중략) 오히려 예외적 상황 속에서 치러졌다"(161)고 말한다. 이명박 정부의 지지도는 추락했었고, 유권자의 절반 이상이 정권 교체를 희망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후보는 100만 표 이상의 차로 졌다.
다음이나 트위터 같은 인터넷 커뮤니티들에서는 간단한 대답을 얻을 수 있다. 첫째, 부정선거 때문이다. 둘째, 50대가 1번을 찍었기 때문이다. 물론 국정원과 국군 사이버사, 국가보훈처 등 국가기관의 선거 개입은 결코 허용되어서는 안 될 심각한 문제다. 두 후보의 TV토론이 있었던 2012년 12월 16일 밤 있었던 경찰의 국정원 댓글조작사건에 대한 중간수사결과 발표에 대해 야권 지지자들이 의문을 제기하는 심정은 이해할 수 있다. 근데 솔직히 말해서, 그러한 사태의 심각성과는 별개로, 댓글 때문에 100만 표 이상의 큰 차이로 진 것 같지는 않다. 둘째로 50대보수화론은 원인과 결과를 혼동한 이야기다. 50대에서 득표율에 뒤졌다면, '왜 50대가 야권에 투표하지 않았는가'를 탐구해야 할 일이다. 그러한 분석 대신에 50대 유권자들의 선택을 무개념과 몰상식에 의한 것으로 단죄하는 데 그친다면, 그야말로 "
자신과 상대로 '선과 악'으로 구분하고 과도한 적대의식을 보이면서 국민들에게 양자택일을 종용하는"(175) 일이 될 것이며, 진정한 성찰을 이루기 어려울 것이다.
다행히도 18대 대선에 대한 각계 전문가들과 학자들의 전문적인 분석이 나왔다. 2013년 12월, 18대 대선으로부터 1년쯤 될 무렵 나온 책이 바로 이 책, <18 그리고 19>다. 세대문제, 중도, 안철수, 리더십, 지역운동, 언론, 외교안보, 복지, 경제민주화, 노동, 정치개혁 등의 다양한 논점들에 대해 총 21명의 필자들의 논고를 모았기 때문에 보다 총체적이고 다각적인 관점에서 18대 대선의 의미를 탐구하고 있다.
물론 다양한 관점에서의 분석이 이 책의 가장 큰 강점이기는 하지만, 그래서 결국 어떤 변인이 대선 패배의 진짜 원인이었는가를 잘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이 책에서 열거된 주요한 원인들을 내 나름대로 종합해 보자면, 1.복지 등의 주요 공약에서 여당에 의제를 선점당했고, 2.문재인 후보의 리더십이 약했고, 3.안철수 후보와의 단일화 과정이 국민들에게 실망을 안겨주었고, 4. 그러다 보니 TV토론에서 이정희가 보여준 것과 같은 네거티브 캠페인에만 치중했던 것이 역효과를 낳았고, 5.애시당초 민주당과 진보진영의 기반이 약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을 것 같다. 다른 매체들에서도 한번쯤은 들어본 적 있는 이야기들이지만, 실증적인 데이터 분석을 통해 잘 정리된 만큼,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이 된다. 결국 민주당의 무능이라는 문제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 소장은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민주당은 정권교체 여론이 60%를 상회하는 분위기에서 치러진 총, 대선에서 졌다. 선거는 구도라고 하는데, 이렇게 좋은 구도에서 패배했으니 결국 사람이 문제라고 할 수밖에 없다. 갑자기 터진 악재 때문에 무너졌다면 할 말이라도 있겠으나 그것도 아니다. 또 한 번은 그럴 수 있으나 두 번이나 졌다는 점에서 불운을 탓할 수는 없다. 민주당은 딱 부러지게 실력 때문에 졌다. 더도 덜도 아니고 자신이 가진 역량만큼만 보여주는 선거를 치렀기 때문에 패배했다. (140)
선거정치에 한해 말한다면 민주당은 시종일관 노무현 모델에 의지하고, 그에 매몰되어 있었다. 새로운 집권 전략을 마련할 상상력도, 당의 체질을 바꿀 담대한 용기도 보여주지 못했다. (147)
이 책이 나온 이후, 요란스럽게 민주당과 안철수신당이 합당을 했지만, 지지율은 저공비행 중이고, 야당이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이야기도 들려온다. 여전히 야권은 국민들의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대통령으로 당선된 뒤, 박근혜 대통령은 공약을 줄줄이 후퇴시켰다. 대선 당시 TV토론에서 "그래서 제가 대통령 되려는 거 아니에요"라고 말했던 것이 무색하다. 새누리당의 홍문종 사무총장은 지난 2월 25일, 공약 후퇴에 대해 "아버지가 다이아 반지와 세계여행 약속 못 지켰지만, 어머니는 행복하게 잘 산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http://media.daum.net/politics/others/newsview?newsid=20140303125411479)고 한다.
문제는 문재인 의원이 대통령이 되었더라도 과도한 복지공약에 대한 후퇴는 불가피했으리라는 점이다. 김연철 인제대 교수는 대선 당시 문재인 의원의 복지 공약에 대해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박근혜 후보에 비해 큰 복지 공약을 지닌 문재인 후보가 재정조달 면에서 차이를 드러낼 부분은 증세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민주통합당을 비롯한 문재인 후보 캠프는 증세를 적극적으로 주창하지 못했고, 구체적인 방안도 내놓지 못했다. 부자감세가 100조 원이라며 이것만 철회하면 동일한 금액이 마련될 것처럼 주장했다. 하지만 이 금액은 2008년 감세가 예정대로 진행되었을 때 추계한 상징적 규모로 2009년부터 이루어진 부분적 감세 철회를 반영하지 않은 것이다. 게다가 감세 혜택이 중소기업과 중간계층에도 제공되었기에 이 몫까지 제외하면 부자증세 방식으로 되돌릴 수 있는 세수는 실제 그리 많지 않다. 그만큼 문재인 후보의 증세 공약이 부실했고 이 카드로는 복지 논쟁을 적극적으로 돌파하기 어려웠다.
(중략) 야권이 내놓은 재정지출 혁신방안은 원론적 수준에 그쳤고, 보편복지를 주창한다면서도 실질적인 증세방안도 내놓지 못했다. 중간계층 이상이 참여하는 보편증세론은 등장하지도 못했고, 부자증세론 역시 1% 최상위층을 명시했을 뿐 여기서 얼마만큼의 재정이 조달되는지 분명히 말하지 못했다. (246)
만약에 당선이 되었다면 증세 없는 복지라는 문제를 어떻게 풀었을지 상상도 안 되지만, 당선되고 나서 "아버지가 다이아 반지와 세계여행 약속 못 지켰지만, 어머니는 행복하게 잘 산다"라는 이야기를 할 거라면, 선거는 실현가능성과 관련없이 '누가 더 뻥을 그럴 듯하게 치느냐'의 싸움이 될 수밖에 없다.
대선으로부터 1년 반 가까이 지났지만, 한국정치의 현재는 여전히 카오스적 상황이다. 앞으로 과연 한국정치는 어디로 나아갈 것인가?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에 날아오른다는 말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