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자와 죽은 자 스토리콜렉터 32
넬레 노이하우스 지음, 김진아 옮김 / 북로드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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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주의*

독일의 추리소설 작가 넬레 노이하우스의 <타우누스 시리즈>는 프랑크푸르트 근처의 타우누스 지역을 배경으로 형사 보덴슈타인과 피아가 활약한다. 한국에 번역된 순서는 다르지만, 출판된 시간 순으로 <사랑받지 못한 여자> <너무 친한 친구들> <깊은 상처> <백설공주에게 죽음을> <바람을 뿌리는 자> <사악한 늑대> <산 자와 죽은 자> 그리고 최근의 <여우가 잠든 숲>이 있다. 사실 개인적으로 <백설공주에게 죽음을>까지는 어려운 독일 이름의 용의자들이 많이 등장해서 사건이 안 풀리다가 어찌어찌 해결한다는 스토리가 딱히 재미있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최근 작품들은 작가의 필력이 많이 향상되었는지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이 시리즈의 특징은 작품이 계속 나올수록 보덴슈타인과 피아의 사적인 인간관계 또한 깊이있게 묘사된다는 것이다. <사랑받지 못한 여자>의 2005년부터 <산 자와 죽은 자>의 2013년까지 보덴슈타인과 피아는 이혼도 하고, 연애도 하고, 재혼도 한다. 때로는 말 안 듣는 부하나 재수없는 동료 때문에 속을 썩이기도 한다. <산 자와 죽은자>에서 피아는 연말연시에 휴가를 얻었다가 사건 때문에 휴가를 취소하게 된다.

또한 사회파적 요소 또한 있는데, <깊은 상처>는 홀로코스트를, <바람을 뿌리는 자>는 지구온난화와 풍력발전을, <사악한 늑대>는 아동포르노 문제를 다루고 있따. <산 자와 죽은 자>는 장기기증 문제가 중심에 있다. 저격수의 총격으로 선량한 사람들이 하나 둘 죽어가는데, 연관성이 없어보였던 연쇄살인은 10년 전 사고로 사망한 뒤 장기를 기증한 여자의 유족의 복수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뇌물을 받은 병원 측에서 강압을 통해 보호자로부터 장기 기증을 하게 했던 것이다.

이 소설의 배경은 세계에서 제일 투명하고 준법정신이 투철할 것 같은 나라 독일이다. 그런 나라에서 이런 소설이 나오다니 놀랍다. 더구나 소설이 모티프로 삼은 사건이 실제로 독일에서 벌어진 것 같다는 암시도 소설 속에 나온다. 그동안 장기 기증에 대해서 막연히 좋은 일이라고만 생각해왔다. 그런데 어쩌면 장기 기증을 둘러싼 유족과 병원 사이의 문제는 그리 아름답기만 한 이야기는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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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무중에 이르다
정영문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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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오리무중에 이르다>를 읽기 시작하면, 끝날 듯 끝나지 않는 당황스러울 정도로 긴 문장들에 강한 인상을 받게 된다. 백문이 불여일견,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나는, 어디에도 없는 곳에 가면 어디에도 없는 사람 정도는 될 수도 있겠지만 어디에도 없는 곳은 어디에도 없으니 어디에도 없는 곳을 갈 수는 없을 테지만 그럼에도 마음속으로 어디에도 없는 곳을 향해 어딘가를 가다보면 어디에도 없는 곳으로 가고 있는 사람이거나 어디에도 없는 곳으로 가고는 있지만 어디에도 없는 곳으로 가느라 어디에도 가지 못하는 사람 정도는 될 수도 있겠지, 하는 어지러운 생각을 할 수 있었는데, 그것은 머리가 무척 어지러운 덕분인 것 같았다. (299, 300)

위의 인용문은 한 문장이다. 그리고 이 책에 나오는 문장들 중에서는 상당히 짧은 편에 속한다. 어떤 문장은 두 페이지에 걸쳐 마침표 없이 쉼표만으로 이루어져 있기도 하다. 그러다보니 읽는 게 난해해서 소설 내용을 쫓아가는 것이 어렵기도 했다. 하지만 끝날 듯 끝나지 않는 문장들은 묘한 리듬감을 느끼게 한다. 특유의 읽는 맛이 있다고나 할까. 

화자의 의식의 흐름이 도대체 어디로 이어질지 감을 잡을 수가 없어 그야말로 오리무중인 느낌을 들게 만든다. 소설이 그리고 있는 종잡을 수 없는 혼란스러운 느낌을 표현하기에는 이러한 문장이 적역이라는 생각도 든다. 다음 인용문을 보면 특유의 문장 스타일을 통해 소설에서 궁극적으로 말하는 바를 짐작할 수 있다.

오래전부터 모든 것이 아무래도 좋은, 아무런 필연성이 없는 세계 속에 살고 있는 것 같았고, 그 필연성이 없는 세계는 궁극적으로, 모든 것이 일어나도 그만, 일어나지 않아도 그만, 뭔가가 어떤 식으로 일어나도 그만, 다른 식으로 일어나도 그만인, 아무런 원리가 없는 세계였다. 이 세계에 반드시 일어나야 하는 일 같은 것은 없었다. (78)

궁극적으로 아무런 필연성이 없는 세계의 문제를 이 소설은 다루고 있다. 제목에 나타난 오리무중이라는 말이 시사하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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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침대 위에 부는 바람 - 야하고 이상한 여행기
김얀 지음, 이병률 사진 / 달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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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하고 이상한 여행기"라는 부제가 붙은 <낯선 침대 위에 부는 바람>의 저자는 어디선가 교도소나 군대에서 책을 읽은 독자가 많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도 그럴 법 하다. 어딘가에 갇혀 있는 사람이 가장 갈망하는 무언가가 이 책에는 있다. 나 역시 군대에서 이 책을 처음 읽었다. 당시 나는 여행기를 즐겨 읽었다. 방콕, 싱가포르, 믈라카, 홍콩, 오타와, 뮌헨, 프라하, 가 본 적 없는 외국 도시들의 이름을 마음 속 지도에 그렸다. 어디에도 갈 수 없는 몸이었기에 제대만 하면 어디든지 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세계일주의 계획을 세워 보기도 하였다. 제대하고 나서 1년이 지났다. 세계일주는 무슨. 일본에만 몇 번 다녀왔을 뿐이다.

작가 파울로 코엘료는 "여행은 언제나 돈의 문제가 아니라 용기의 문제다"라고 말했다. 왜 돈의 문제가 아니겠냐만, 역시 여행에 가장 필요한 것은 용기가 아닐까 싶다. 이를테면 낯선 장소에서 낯선 사람을 만날 용기 말이다. 낯선 여행지에서의 만남들을 기록한 이 에세이가 재미있게 느껴지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가 아닐까 싶다. 동남아시아에서 유럽까지 전세계를 종횡무진 떠돌아다니는 저자가 부러웠다.

저자와 나는 성별, 성격, 성향, 나이, 살아온 과정, 그리고 무엇보다 연애경험까지 모든 것이 다르지만, 책을 읽으며 묘한 친근감을 느꼈다. 공통점이라면 2008년 무렵에 일본에서 살았다는 것(도시는 달랐다)과 2013년에 첫 책을 출판했다는 것(나는 번역서였지만) 정도일 것이다. 저자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는 무라카미 류인데, 나는 하루키를 더 좋아한다. 책에서 내 이야기 같다고 느낀 부분은 아무런 계획 없이 직장을 그만두고 막막하게 싱가포르로 떠나기 위해 모친에게 돈을 빌리는 대목이었다.

천사 같은 나의 엄마. 서른이 되어도 여태껏 철없이 겉도는 딸은 감사하다는 말도 하지 못한 채 휴대폰 전원을 껐다. 글을 쓰기 위해 여행을 한다는 것은 사실 핑계였다. (중략) 자괴감이 들었다. 과연 내가 글을 쓸 수 있을까? 그냥 평생 읽는 사람으로 만족해야 하는 건 아닐까? 이번 여행이 정말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다. 서른이 넘어서까지 갈대처럼 흔들리며 살 수는 없다고 다짐했다. (45)
 
내일 모레 서른인데, 취직도 못하고(혹은 안 하고) 돈도 못 벌면서 부모님께 의지하고 있는 내 처지가 한심하고, 지금까지 뭐 하며 살았는지 후회스럽고, 앞으로는 뭐 하고 살지 막막하지만, 그렇다고 막상 취직을 할 용기는 안 나서 막막하고 불안하게 하루하루를 살고 있는 내게 이 문장은 나 자신의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왜 남들처럼 평범하게 취직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며 살지 못하는 걸까, 고민하던 내게 아마도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저자의 책은 위로가 되었다. 저자처럼 철없이, 혹은 자유롭게 삶을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말이다. 군대는 제대했지만, 그래서 용기만 내면 어디든 갈 수 있겠지만, 여전히 어디로도 떠나지 못하는 내게 <낯선 침대 위에 부는 바람>은, 그리고 이 책의 저자는 여전히 부러움과 동경의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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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어리석은 투표를 하는가 - 욕망과 무지로 일그러진 선거의 맨얼굴
리처드 솅크먼 지음, 강순이 옮김 / 인물과사상사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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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설과 달리 히틀러는 직접선거에서 독일 국민 대다수의 지지를 얻어 총통으로 선출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민주주의 체제였던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히틀러의 나치스가 합법적으로 집권에 성공한 것은 사실이다. 히틀러까지 가지 않더라도 국내외에서 "도대체 어떻게 저런 사람이 대통령/총리/국회의원이 될 수 있지?"라는 의문이 드는 인물이 민주적 선거를 통해 선출되는 일이 허다하다. 어떠한 선택지가 주어져도 차악이나 차선 대신 최악을 선택하는 능력이 사람들에게 있는 것이 아닌가 싶은 의심이 들 정도다.


민주주의(democracy)는 원래 "민중에 의한 지배" 혹은 "다수에 의한 지배"를 의미한다. 고대 그리스 시대의 플라톤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민주주의가 중우정치(衆愚政治, Ochlocracy)로 타락할 가능성을 우려했다. 민주주의가 "다수에 의한 지배"를 의미한다면, 어리석은 사람이 다수일 경우에는 어리석은 결정을 내리지 않을까 하는 문제다. 이러한 의심을 엘리트주의로 치부하고 민주주의가 장기적으로는 가장 오류가 적은 체제라고 옹호하기는 쉽다. 하지만 사람들은 종종, 혹은 자주 잘못된 결정을 내린다는 사실 자체는 인정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왜 어리석은 투표를 하는가>의 저자는 유권자들이 1.투표를 하기 위해 필요한 정보에 대해 무지하거나, 2.정보를 찾는 일에 소홀하거나, 3.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 믿거나, 4.국가의 장기적 이익 대신 근시안적 사고를 하거나, 5.희망이나 두려움을 이용한 선동에 쉽게 흔들린다고 말한다. 저자는 20세기 후반 이후의 미국 정치의 사건들을 사례로 들고 있지만, 나에게는 무척 친숙한 이야기로 여겨진다. 물론 저자는 조지 W. 부시를 선출한 국민들은 어리석고 버락 오바마를 선출한 국민들은 어리석다는, 혹은 그 반대의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2008년 오바마 진영의 선거 캠페인에 대해서도 비판을 가하며, 이러한 경향이 특정한 정당이나 유권자의 문제가 아니라고 말한다.

이 책의 원서는 2008년에 출판되었지만, 독자로서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되는 것은 작년에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된 사건이다. 한국의 많은 진보주의자나 페미니스트들은 힐러리 클린턴이 낙선하고 트럼프가 당선된 것은 클린턴이 여성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추론의 전제는 "힐러리 클린턴이 도널드 트럼프보다 똑똑하고 능력이 있다"는 것이며, 대전제는 "(인종이나 성별 등의)다른 조건이 같다면, 사람들은 똑똑하고 능력이 있는 후보에 투표할 것이다"라는 것이다. 그런데 대전제가 틀렸다면? 이 책의 저자는 조지 W. 부시가 실제보다 더 멍청한 척 이미지메이킹을 했을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즉, 미국인 중 다수는 똑똑하고 능력있는 후보가 아니라 '인간미'가 많은 후보에 투표를 한다는 것이다. 조지 H.W. 부시 대신에 로널드 레이건이나 빌 클린턴이, 앨 고어나 존 케리 대신에 조지 W. 부시가, 그리고 힐러리 클린턴보다 도널드 트럼프가 재미있고 인간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에 대통령이 되었는지도 모른다.(하버드대학 로스쿨 출신의 인텔리인 오바마가 당선된 것은 예외적인 사건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바마 역시 유머와 에너지, 인간미를 겸비한 인물이었고, 상대 후보였던 맥케인이나 밋 롬니와 비교해도 그렇다.)

미국의 보수화를 분석한 조지 레이코프의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나 토머스 프랭크의 <왜 가난한 사람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는 사악한 공화당의 책략에 미국의 민중들이 속고 있다는 주장을 펴지만, 이 책의 저자는 공화당이 미국 민중의 원하는 바를 적절히 이행하고 있는 것이라고 파악한다. 저자는 민주당이 쇠퇴한 요인 중 하나가 "그들이 흑인 민권운동과 여성 해방운동을 받아들인 것"(236)이라고 말한다. 만약에 인종차별주의자나 성차별주의자가 유권자의 다수를 차지한다면, 민주주의는 인종차별주의나 성차별주의를지지하게 된다. 작년의 미국 대선에서 벌어진 일이 그 사실을 입증한다.

저자는 미국 건국의 아버지 중 한 사람인 알렉산더 해밀턴의 다음과 같은 말을 인용한다.

우리는 견제가 없던 시절의 국민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왕이나 원로원 못지않게 부당하고 압제적이며 악랄하고 잔인했다는, 논박할 수 없는 증거를 지금까지 넘겨본 모든 역사의 페이지에서 찾게 될지도 모른다. 다수는 끊임없이 또 예외 없이 늘 소수의 권리를 빼앗아왔다.
국민이 최고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상황에서 그들이 부단한 경계와 현명함, 미덕과 견실함을 발휘할 것이라는 가정에 바탕을 두고 계획된 정부의 모든 프로젝트는 속임수고 망상이다. (232)

물론 유권자의 투표권을 부정할 수는 없겠지만, 유권자가 항상 옳고 현명하다는 신화 또한 잘못이다. 저자는 교육을 통해 유권자들이 정치적 의식과 지식을 함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다. 건전한 민주주의는 유권자에 대한 적절한 불신을 바탕으로 형성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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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도난마 한국경제 - 장하준.정승일의 격정대화
장하준 외 지음, 이종태 엮음 / 부키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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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도난마 한국경제>는 지금으로부터 약 10년 전,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시장주의적 경제개혁을 비판한 책이다. 두 경제학자의 좌담을 책으로 엮은 것인데, 한 장이 끝날 때마다 그 장의 내용을 간단히 요약 정리하고 있어서 '경알못(경제는 알지도 못하는 사람)'인 내게는 친절한 책이었다.

사실 한국사회에서 신자유주의 비판은 십여년 동안 거의 클리셰가 되어서 식상한 감이 있다. 하지만 이 책의 신선한 부분은 저자들이 보수/진보의 이분법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흔히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는 좌파와 달리, 저자는 박정희의 반자유주의 정책이 경제성장에 도움이 되었다거나 재벌 체제가 한국 같은 후발국에서는 순기능을 했다고 인정한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신자유주의 노선에 대해서 비판하는 것은 물론 참여연대나 민주노동당 등의 경제 인식도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말하면서, 주주자본주의나 경제민주화에 대해서도 비판을 한다.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는 책은 많지만, 이러한 이야기를 속 시원히 하는 책은 이 책 외에는 거의 없는 것 같다.

저자들의 진단에 따르면, IMF 이후 한국에 주주자본주의가 정착하면서, 기업들이 장기적인 투자나 개발 대신 주주들의 단기적인 배당을 위해서만 움직이고, 그 때문에 내부유보나 자사주 매입에 더 많은 자금을 소모한다고 한다. 기업이 투자나 연구 개발을 하지 않으니 경제 성장은 둔화되고, 실업이나 비정규직 양산의 악순환을 낳는다는 것이다. 책의 내용은 이러한 악순환의 메커니즘을 외국의 사례들과 비교하며 상당히 설득력 있게 제시하고 있어서 읽으면서 재미도 있고 유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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