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침대 위에 부는 바람 - 야하고 이상한 여행기
김얀 지음, 이병률 사진 / 달 / 2013년 7월
평점 :
절판


"야하고 이상한 여행기"라는 부제가 붙은 <낯선 침대 위에 부는 바람>의 저자는 어디선가 교도소나 군대에서 책을 읽은 독자가 많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도 그럴 법 하다. 어딘가에 갇혀 있는 사람이 가장 갈망하는 무언가가 이 책에는 있다. 나 역시 군대에서 이 책을 처음 읽었다. 당시 나는 여행기를 즐겨 읽었다. 방콕, 싱가포르, 믈라카, 홍콩, 오타와, 뮌헨, 프라하, 가 본 적 없는 외국 도시들의 이름을 마음 속 지도에 그렸다. 어디에도 갈 수 없는 몸이었기에 제대만 하면 어디든지 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세계일주의 계획을 세워 보기도 하였다. 제대하고 나서 1년이 지났다. 세계일주는 무슨. 일본에만 몇 번 다녀왔을 뿐이다.

작가 파울로 코엘료는 "여행은 언제나 돈의 문제가 아니라 용기의 문제다"라고 말했다. 왜 돈의 문제가 아니겠냐만, 역시 여행에 가장 필요한 것은 용기가 아닐까 싶다. 이를테면 낯선 장소에서 낯선 사람을 만날 용기 말이다. 낯선 여행지에서의 만남들을 기록한 이 에세이가 재미있게 느껴지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가 아닐까 싶다. 동남아시아에서 유럽까지 전세계를 종횡무진 떠돌아다니는 저자가 부러웠다.

저자와 나는 성별, 성격, 성향, 나이, 살아온 과정, 그리고 무엇보다 연애경험까지 모든 것이 다르지만, 책을 읽으며 묘한 친근감을 느꼈다. 공통점이라면 2008년 무렵에 일본에서 살았다는 것(도시는 달랐다)과 2013년에 첫 책을 출판했다는 것(나는 번역서였지만) 정도일 것이다. 저자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는 무라카미 류인데, 나는 하루키를 더 좋아한다. 책에서 내 이야기 같다고 느낀 부분은 아무런 계획 없이 직장을 그만두고 막막하게 싱가포르로 떠나기 위해 모친에게 돈을 빌리는 대목이었다.

천사 같은 나의 엄마. 서른이 되어도 여태껏 철없이 겉도는 딸은 감사하다는 말도 하지 못한 채 휴대폰 전원을 껐다. 글을 쓰기 위해 여행을 한다는 것은 사실 핑계였다. (중략) 자괴감이 들었다. 과연 내가 글을 쓸 수 있을까? 그냥 평생 읽는 사람으로 만족해야 하는 건 아닐까? 이번 여행이 정말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다. 서른이 넘어서까지 갈대처럼 흔들리며 살 수는 없다고 다짐했다. (45)
 
내일 모레 서른인데, 취직도 못하고(혹은 안 하고) 돈도 못 벌면서 부모님께 의지하고 있는 내 처지가 한심하고, 지금까지 뭐 하며 살았는지 후회스럽고, 앞으로는 뭐 하고 살지 막막하지만, 그렇다고 막상 취직을 할 용기는 안 나서 막막하고 불안하게 하루하루를 살고 있는 내게 이 문장은 나 자신의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왜 남들처럼 평범하게 취직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며 살지 못하는 걸까, 고민하던 내게 아마도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저자의 책은 위로가 되었다. 저자처럼 철없이, 혹은 자유롭게 삶을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말이다. 군대는 제대했지만, 그래서 용기만 내면 어디든 갈 수 있겠지만, 여전히 어디로도 떠나지 못하는 내게 <낯선 침대 위에 부는 바람>은, 그리고 이 책의 저자는 여전히 부러움과 동경의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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